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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naver.com/godnjf12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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Å日月眞人 明 선생님Ω
♧마지막 구세주(救世主) 황발(黃髮: 明 선생님)♧
【인천(仁川) 중앙동(中央洞) 자유공원 작은 정자 옆에 있는 큰 정자(大亭:석정루石汀樓)黃宮】
【 鄭道令 (明 선생님)은 1946년 병술년(丙戌年)(음력 12월 대한민국 수도 서울 용산(龍山)에서)
해월(海月) 황 여일(黃 汝一) 선생 후손(後孫)으로 재림(再臨)하셨다 】
【Ω】 아리랑
“옛날부터 내려오는 노랫말 중에, 흥(興)에 겨울 때나 기분(氣分)이 좋을 때 어깨를 들썩이며 부르는 「얼시구 절시구 기화자 좋을시구」 가 들어있는 구절이 예언서(豫言書)에 나오는데, 『세요유행(世謠流行) 심각(心覺) 을시구하리(乙矢口何理) 절시구하의(節矢口何意) 기화자(氣和者) 조을시구(肇乙矢口)』 그렇다면 이 「얼시구 절시구 기화자 좋을시구」 라는 노래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겁니까?“ 라고 오른쪽에 있는 한 사람이 물었다.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우리 나라에 옛부터 내려오던 「얼시구 절시구 기화자 좋을시구」 라는 노랫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앞서, 먼저 흰비둘기와 토끼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얼시구 절시구 기화자 좋을시구」 란 말의 의미(意味)를 정확(正確)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
격암유록(格菴遺錄)의 정각가(精覺歌) Ⓟ67에,
『庚辛金鳩四九理 甲乙木兎三八理 一勝一敗縱橫矣 四九之間十勝處 欲知 金鳩木兎理
경신금구사구리 갑을목토삼팔리 일승일패종횡의 사구지간십승처 욕지 금구목토리
世謠流行心覺也 乙矢口何理 節矢口何意 氣和者肇乙矢口 日中有鳥 月中玉獸 何獸
세요유행심각야 을시구하리 절시구하의 기화자조을시구 일중유조 월중옥수 하수
鳩兎相合眞人 世人苦待 鄭道令 何意事永不覺』 ―【※※】
구토상합진인 세인고대 정도령 하의사영불각.
이 글의 의미를 보면, 경신사구(庚辛四九)은 금비둘기(金鳩)를 의미하고, 갑을삼팔(甲乙三八)은 목토끼(木兎)를 의미한다.
그 의미인즉 일자(一字)를 종횡(縱橫)으로 한 십자(十字) 즉 음양태극(陰陽太極)으로
십승처(十勝處)라는 의미인데, 금구(金鳩)와 목토(木兎)의 의미를 알려면, 세상(世上)에서 유행(流行)하는 노래를 마음 속에 깊이 깨달으라고 한 것이다.
『을시구(乙矢口), 절시구(節矢口), 기화자조을시구(氣和者肇乙矢口)』 라는 의미는 무엇인고 하니, 해(日) 가운데는 새(鳥)가 있고, 달(月) 가운데는 짐승(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비둘기(鳩)와 토끼(兎)이며, 이 비둘기(鳩)와 토끼(兎)를 합한 진인(眞人)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고대(苦待)하던 정도령(鄭道令) 인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통 깨닫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
격암유록(格菴遺錄) 은비가(隱秘歌)Ⓟ59에,
『欲知生命處 心覺 金鳩木兎 邊』 ***
욕지생명처 심각 금구목토 변
말세(末世)에 목숨을 보존할려면, 금비둘기(金鳩)와 목토끼(木兎)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한 것이다.
또 격암유록(格菴遺錄) 정각가(精覺歌) Ⓟ67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는 것이다.
『欲知 弓弓乙乙處 只在 金鳩木兎 邊』 ***
욕지 궁궁을을처 지재 금구목토 변
궁궁을을처(弓弓乙乙處)를 알려면, 즉 궁궁을을(弓弓乙乙)인 정도령(鄭道令)이 있는 곳을 알려면, 다만 금비둘기(金鳩)와 목토끼(木兎)가 있는 곳이라고 한 것이다.
즉 태양(日)과, 달(月)이 뜻하는 것은, 정도령(鄭道令) 을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나누면 태양(日)과 달(月)이지만, 한 글자로 하면 명(明)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도령(鄭道令)을 일월진인(日月眞人) 또는 명 (明) 이라 부르는 것이다.
궁을(弓乙) 자체가 격암유록(格菴遺錄) 초장(初章)에 나오다시피, 천궁지을(天弓地乙)로서 태극(太極)을 달리 말한 것이다.
우리의 민요(民謠) 속에 있는 「얼시구 절시구 기화자 좋을시구」 라는 말을 좀더 깊이 알아보면, 얼시구란 을시구(乙矢口), 또는 얼리시구(孼離矢口)로 표현하는데, 이 얼(孼)자는 요물 얼(孼)자로 마귀(魔鬼)를 의미하는 것이고,리(離)자는 떠날 리(離)자이며, 시구(矢口)는 합하여 알지(知)자가 된다.
곧 마귀(魔鬼)는 떠나간다,
라고 해석이 되는 것이다.
또한 절시구(節矢口)라는 말의 절(節)자는 때를 알라는 말인데, 무슨 의미인가 하면,
증산(甑山) 상제께서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 4권 갑진(甲辰: 1904년)편 4절에서, 「을시구(乙矢口) 절시구(節矢口)」 라는 말에 대하여 설명하시기를, 때(節)를 알라(矢口)는 의미의 절시구(節矢口)라는 말에서, 절(節)자의 뜻이 숨겨 놓은 의미로 부처(佛)을 뜻한다고 하였다.
즉 부처님을 알라는 말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말운론(末運論) Ⓟ32를 보면,
『肇乙矢口 氣和慈慈』
조을시구 기화자자
격암유록(格菴遺錄) 농궁가(弄弓歌) Ⓟ61에는,
『陰陽相親 하고보니 十五眞主 鳥乙矢口 亞亞倧佛 十數之人 萬人苦待 眞人이라』 ***
음양상친 십오진주 조을시구 불아종불 십수지인 만인고대 진인
기화자 조을시구는 「氣和者 肇乙矢口」 또는 기화자 조을시구「氣和慈 鳥乙矢口」로 표현을 하였으니, 그 의미는 기화자(氣和者) 즉 천지음양(天地陰陽)의 기(氣)를 하나로 화하게 하는 것이 조을(肇乙) 또는 조을(鳥乙)임을 알라고 한 것이다.
즉 좋은 세상(世上)으로 화(和)하게 하는 것이 십오진주(十五眞主)인 조을(鳥乙)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곧 경신사구(庚辛四九)는 새(鳥)인 비둘기(鳩)이고, 갑을삼팔(甲乙三八)은 짐승(獸)인 토끼(兎)인데, 다시 말하면 새(鳥)는 비둘기를 말한 것이고, 을(乙)은 음목(陰木) 즉 묘목(卯木)을 말한 것으로 묘(卯)가 짐승으로는 토끼가 되는 것이다.
이 비둘기와 토끼를 합한 분이 천지음양(天地陰陽)의 기(氣)를 하나로 화(和)하게 하는 진인(眞人) 정도령이라고 한 것이다.
즉 조을(鳥乙)이라는 말은, 금목(金木)을 짐승으로 표현(表現)을 한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인데, 금목(金木)이란 다름 아닌 태극(太極)을 표현(表現)한 말이다.
그래서 기화자「氣和者」 또는 기화자「氣和慈」 라고도 하는데,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미륵불(彌勒佛)을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전통민요(傳統民謠) 속에, 구세주(救世主)이신 진인(眞人) 정도령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마귀(魔鬼)를 박멸(撲滅)하시고 천지(天地)의 기(氣)를 화(和)하게 하여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을, 노랫말 속에 숨겨 전(傳)해 준 슬기를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숨겨진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은 의미(意味)를 조금도 알지 못하면서, 단순(單純)한 의미(意味)로만 노래를 불러 왔던 것이다.
계속해서 삼역대경(三易大經)의 경대가인가(鏡坮佳人歌)Ⓟ352를 보면,
『호시절(好時節)을 알려거든 자녀합덕(子女合德) 태양중(太陽中)에 용(龍)자가 정녕(丁寧)하니 춘삼월(春三月)을 찾아와서 좋을 호(好)자 다시배워 ...... 승강(昇降) 습도 왕래간(往來間)에 천기지기(天氣地氣) 합덕(合德)되니 좋을 호(好)자 무궁조화(無窮造化) 좋을좋을 좋을 시(時)라 을목류척(乙木柳尺) 손에들고 삼신산(三神山)을 찾아보세』
이 말은 우리가 평소(平素)에 좋은 일이 있을 때 「기분이 좋다」, 「기화자 좋구나」 하는데 그 말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지 이제 쉽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한자(漢字)의 좋을 호(好)자는 음(女)과 양(子)이 서로 합하여진 글자인데, 이는 곧 천지음양(天地陰陽)이 잘 조화(造化)가 되면, 태양(日)이고 용(龍)인 정도령이 나타나서 무궁(無窮)한 조화(造化)를 일으키니 세상은 좋은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좋다고 하는 호(好)자의 의미를 다시 알고 배우라고 하는 말이다.“
“앞에서 말씀하신 천지(天地)의 기(氣)가 불균형(不均衡)을 이루고 있다고 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천지(天地)가 불균형(不均衡)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까?”
【※※※】
“격암유록(格菴遺錄) 도부신인(桃符神人)Ⓟ103에,
『천지상쟁(天地相爭) 혼돈시(混沌時)에 천신부(天神負)이 지귀승(地鬼勝)을 차연유(此然由)로 인(因)하여서 승리자(勝利者)의 노름으로 천지반복(天地反覆) 할일업서 지상권(地上權)을 일엇다네』
천지(天地)의 혼돈(混沌)시에, 천신(天神)이 지귀(地鬼)인 마귀(魔鬼)와의 싸움에서 지상권(地上權)을 잃으셨기 때문에, 천지(天地)의 균형이 깨져서 문왕팔괘(文王八卦)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행(五行)이 상극(相剋)의 원리로 짜여지게 된 것이다.
이런 우주(宇宙) 상극(相剋)의 형태를 물형(物形)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문왕팔괘(文王八卦)인 것이다.
이러한 천지간(天地間)의 불균형이, 인간 세상에서 온갖 부조리(不條理)가 판을 치는 죽음의 문명(文明)으로 화(化)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너무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되니, 장차 앞으로 신선세계(神仙世界)가 도래(到來)한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를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구세주(救世主)인 미륵(彌勒) 정도령이 나타나서, 이 세상을 한순간에 바꾸는데 그렇게 되면,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사고(思考)에 젖어있던 중생(衆生)들의 사고(思考)도 하루 아침에 바뀐다는 것이다.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4권 8장 16편을 보면,
선생하대인(先生何代人) 초옥창해시(草屋滄海是) ***
람각만고심(攬却萬古心) 잠위창생기(暫爲蒼生起) ***
광음불가시(光陰不可恃) 진퇴아당의(進退我當義)
문여호수랑(問汝晧首郞) 상화유하미(霜靴有何味)
어초야외반(漁樵野外伴) 구로강변희(鷗鷺江邊戱)
지락자유지(至樂自由地) 조우언천귀(趙盂焉賤貴)
오당시불훤(吾當矢不諼) 설여송운기(說與松雲記)
선생이시여! 대를 잇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초옥(草屋)의 창해(滄海)로다.
사람들의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는 고정관념(萬古心)을 마침내 잡아서 한 순간에 바꿔 놓으니,
창생(蒼生)들은 새로운 사고로 계발(啓發)되는구나.
도시 세월(歲月)이란, 믿을 것이 못 되나니,
사람을 버리거나 쓰는 일(進退)을, 나의 임금은 마땅히 의(義)로써 한다네,
흰 머리를 한 그대에게 묻노니,
깨끗한 신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야외에서 땔나무와 고기잡이를 하는데
갈매기와 해오라기는 강변에서 서로 희롱하는구나.
지극한 즐거움이 또한 있는데,
조그만 밥그릇에 어찌 귀천이 있겠는가?
나는 맹세코 거짓을 말하지 않노니
이렇게 송운기(松雲記)에 기록하여 밝히는 바이다.
이 글은 해월(海月) 선생께서 하인인 노인의 의지할 곳을 꾸미며 이름을 지었는데, 그 이름을 이백(李白)의 시(詩)에서 나오는 「백수와송운(白首臥松雲)」 이라는 글귀에서, 송운(松雲)이라는 글귀를 따서 이름을 짓고, 그에 대한 글을 남긴 것이 이 송운기(松雲記)이다.
이 글 내용에서, 선생이시여 누가 대(代)를 잇는 사람입니까? 라고 하니, 초라한 집에 사는 푸른 바다(滄海)라고 한 것이다.
이 바다(海)란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인 정도령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이미 앞에서 밝힌 바가 있는 것이다.
이 바다가 되는 정도령이, 한없는 오랜 세월 동안 굳어진 사고방식을 한 순간에 바꾸어서, 창생(蒼生)들을 계발(啓發)시킨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오랜 세월이란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하였으며, 사람을 쓰고 버리는 일에도 정도(正道)를 따를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전(傳)하는 말은 남을 속이는 거짓말이 아니니, 그대로 믿어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해월(海月) 선생이 밝힌, 그와 같은 초라한 집에 사는 정도령(鄭道令)이 나타나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그 때가 바로 지금(只今)으로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과학(科學)을 실질적인 최고(最高)의 가치가 있는 학문(學文)으로 여기지만, 현재의 과학(科學)이란 철학(哲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과학(科學)이 현재보다 훨씬 더 발전하여서, 철학(哲學)의 원리(原理)를 증명하고 규정한다면,철학(哲學)도 또한 과학(科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격암유록(格菴遺錄) 갑을가(甲乙歌)Ⓟ116을 보면,
『哲學科學硏究者 一朝一夕退去日 疑問解決落心思』 ***
철학과학연구자 일조일석퇴거일 의문해결낙심사
과학(科學)이나 철학(哲學)을 연구(硏究)하는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물러가게 된다고 하였다.
의문(疑問)이 해결(解決)되니 소망(所望)이 없어져 낙심(落心)하게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토록 힘들여서 일생(一生)을 과학(科學), 철학(哲學)을 연구하고 공부해 왔지만, 정도령의 신선세계(神仙世界)가 오게 되면 하루 아침에 쓸모가 없는 학문(學文)으로 전락(轉落)하여 낙심(落心)하게 된다는 말이다.
또한 사람을 쓰는 일에도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 등이 통(通)하지 않고, 오직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높이 들여 쓰여지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자연(自然)의 질서(秩序)가 새로이 바뀌게 되는 해인시대(海印時代)에는 만사지(萬事知)가 되어, 지금의 자연질서(自然秩序)를 바탕으로 한 학문(學文)인 과학(科學), 철학(哲學)은 하루 아침에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고 하였으니, 깊이깊이 생각하여 깨달으라고 전(傳)하는 말인 것이다.
오늘의 세태(世態)를 본다면 우리가 현실(現實) 속에서 피부로 느끼다시피, 선(善)한 사람이 오히려 손해(損害)를 보고, 악(惡)한 자가 이득(利得)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불의(不義)가 더욱 극성(極盛)을 부리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自身)의 행복(幸福)을 위해서는, 타인(他人)이 불행(不幸)하게 되는 것 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태까지 이른 것이다.
이제까지 인간(人間)의 힘으로, 정치(政治)의 힘으로, 부조리(不條理)를 바로잡아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해 왔고, 또한 수많은 수도자(修道者)들이 산(山)속에 들어가서, 일생(一生) 동안 인간(人間)의 근본(根本)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써 보았지만, 확실(確實)한 방법(方法)은 제시(提示)하지 못한 채, 결국(結局) 자신(自身)들의 문제(問題)도 해결(解決)하지 못하고 다만 죽어간 것이다.
자신(自身)의 문제조차도 해결(解決)하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기대(期待)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구세주(救世主)가 필요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問題)를 풀 수가 없다 보니 결국(結局)은 타력적(他力的)인 구세주(救世主)가 이 세상엔 절실(切實)하게 필요(必要)한 것이다.
지금의 세상에 악(惡)이 극성(極盛)하는 것은, 하나님과 마귀(魔鬼)와의 싸움에서 지상권(地上權)을 마귀(魔鬼)에게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서 천지(天地)가 불균형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천지(天地)의 위(位)가 바로잡히기 위해서는, 먼저 마귀(魔鬼)한테 잃어버린 지상권(地上權)을 회복(回復)하기 위하여 광복(독립)운동을 하시는데, 마귀(魔鬼)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삼역대경(三易大經)의 삼극궁을영부장(三極弓乙靈符章) Ⓟ257을 찾아보면,
『우부우민(愚夫愚民)은 시이불견(視而不見)하며 청이불문(聽而不聞)하야 단지무위이화(但知無爲而化)하니 가탄가소(可歎可笑也)로다 불로자득(不勞自得)은 고금일무야(古今一無也)니 근근자자(勤勤孜孜)하야 불실천시(不失天時)하라』 *
대부분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보여 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들려 주어도 모르면서, 다만 때가 되면 다 저절로 되는 것으로 알고들 있는데, 어찌 가소롭지 않은가 라고 했다.
또한 세상에는 공부(工夫)하지 않고 아는 방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없는 것이며, 노력(勞力)하지 않고 저절로 되는 것은 없으니, 부지런히 노력하여 천시(天時)를 잃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처절한 신(神)의 싸움을 알지 못하고, 안 보이고 안 들린다고 하여 단지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하며, 모든 것이 때가 되면 저절로 된다고 알지만, 이와 같이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모르는 동안, 숨어서 힘들이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어서 온다는 것이다.
온 세상이 다 그들의 은혜를 입어 좋은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사정을 깊이 깨달으라는 것이다.
세상에 힘 안들이고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상권(地上權)을 잃어버리셨기 때문에, 이 땅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사회정의(社會正義)가 바로 설 리가 없는 것인데, 모든 것은 정의(正義)의 신(神)이 주권(主權)을 회복(回復)할 때에,완전한 정의사회(正義社會)가 구현(具現)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정도(正道)의 신(神)이신 정도령(正道靈)께서, 잃어버린 지상권(地上權)을 회복할 때에, 건곤(乾坤)이 정위(正位)하고, 산택(山澤)이 통기(通氣)하고, 목화(木火)가 통명(通明)하며, 수화(水火)가 기제(旣濟)하고, 곤상건하(坤上乾下)인 지천태(地天泰)의 천정역(天正易) 시대, 즉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정도(正道)를 되찾을 때가 되면, 지기순환(至氣順還)하여 만사지(萬事知)가 된다고 한 것이다.
정북창(鄭北窓) 선생의 궁을가(弓乙歌)를 보면,
『天地定位 分野時에 弓弓乙乙 뉘가알꼬 ...... 終變始復開闢數는 道下地에 있는 배라.』
천지정위 분야시 궁궁을을 종변시복개벽수 도하지
이 글의 내용을 보면, 천지(天地)가 개벽(開闢)하는, 즉 천지(天地)의 위(位)가 바로잡히는 지천태괘(地天泰卦)가 되는 수(數)가 도하지(道下地)에 있다고 한 것이다.
즉 도하지(道下地)의 궁궁을을(弓弓乙乙)이신 정도령(正道令)이 한다는 것이다.
이 때부터가 바로 무위이화(無爲而化)가 되는 지상천국(地上天國)인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마귀(魔鬼)와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승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삼태극(三太極), 즉 황극(皇極)시대인 지상천국(地上天國), 미륵(彌勒)의 용화세계(龍華世界)인 지상불국정토(地上佛國淨土)라 한 것이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올 것을 깨우치기 위하여, 민요(民謠) 속에 그 뜻을 숨겨서 후손(後孫)들에게 알려 주신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마치자 뒤쪽에 있는 키가 큰 한 사람이 말하였다.
“격암유록(格菴遺錄) 갑을가(甲乙歌) Ⓟ114를 보면,
『孼離矢口 節矢口 孼蛇登登 迺思嶺』 이라는 말이 있는데 같은 의미입니까?“ 라고 질문하였다.
얼리시구 절시구 얼사등등 내사령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또 다시 쉬지 않으시고 설명을 하여 주셨다.
“이 말은 민요가사(民謠歌詞) 중에 「얼시구 절시구 얼사등등 내사랑아」라는 말인데, 이 얼사등등(孼蛇登登)을 살펴보면, 얼(孼)자는 요물 얼(孼)자요, 사(蛇)자는 뱀 사(蛇)자이고, 등등(登登)은 오른다 떠나간다 라는 뜻인즉,뱀인 요물 마귀(魔鬼)는 떠나간다는 뜻이다.
또한 내사령(迺思嶺)이란 말에서 내(迺)자는, 가다(往), 이르다(至), 당신(汝), 어조사의 뜻이 있고, 사령(思嶺)에서 사(思)는 생각하다 이고, 령(嶺)은 고개 령(嶺)자이므로, 이것을 해석(解釋)해 보면 고개가 무슨 고개인지 잘 생각해보고 찾아가라는 뜻이다
왜 고개를 잘 생각해보고 찾아가라 했는가?
그것은 그 고개에 내 사랑, 나의 사랑하는 님이 계시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그 아리랑이란 무슨 의미인가?
먼저 지금까지의 아리랑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학설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재, 신라(新羅)의 옛 서울 경주 석굴암 근방에 어영정(於英井)이란 우물이 있고, 또 불국사(佛國寺) 근방에는 어영천(於英川)이란 냇물이 있는데, 이 어영천(於英川)과 어영정(於英井) 사이에, 즉 불국사(佛國寺)로부터 석굴암까지 가는 고개 사이에 몹시 험악한 고개가 놓여 있다.
이 고개 이름이 아리랑 고개라 하면, 신라(新羅) 사람들이 한 번 넘나들려면 가진 애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석굴암의 어영정에서 물을 긷던 어떤 처자가, 불국사의 어영천 강변에 앉아 칼을 가는 무사(武士)를 몹시 사모하나, 화조월석(花朝月夕)에 만날 길이 없어서, 혼자 한숨 쉬며 님을 사모하던 나머지 부르게 된 노래가
아리랑이란 말이다.(三千里, 1970. 2, 편집자)
둘째 여리 아리랑(阿利那) 또는 아리(阿利)라는 말은 삼국사기를 위시하여 고사(古史)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고어(古語)에 아리(阿利)는 길다는 말이고, 또 나(那)는 물을 뜻하는 것으로서, 아리라는 긴 하천(河川)을 이르는 말이다. (姜舜鶴 저, 아리랑의 역사고찰, 野實社, 81. 7. 20)
셋째 아리랑→알리랑, 알리라 (언젠가는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아라리오→알알리오 (앎, 알음, 알게 된다)
알라리오→알리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아리랑→알리라
고개를 넘어간다→지금이 바로 고개 마루턱에 와 있는 것이다. (天符經, 민족의 뿌리, 崔載忠 저, 한민국사)
넷째 아리랑이 근래에 불려진 노래라는 설(任東權 著, 한국민요사)은, 대원군 때에 경복궁 고사에서 설명하고 있다.
경복궁을 짓는 큰 역사를 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팔도의 많은 백성들을 부역에 나서게 하였으며, 공사의 비용이 모자라자 원납전(願納錢)이라 해서 강제의 기부금도 거두어 갔다.
그래서 반가운 말은 없고 괴로운 말만 들려오므로,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아이롱(我耳聾)이란 말이 있었고, 여기에서 아리랑이 나왔다기도 하며, 또 그렇게 쇄국정책(鎖國政策)만을 썼지만 러시아, 미, 일, 영국의 외교기관이 들어왔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情神) 차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밀양 영남루의 아랑전설에서 나왔다느니, 신라(新羅) 박혁거세의 아내 알령부인의 알령(閼英)에서 아리랑으로 변했다느니, 혹은 고대(古代) 민족이동(民族移動)의 시기에 알고개에서 유래(由來)하였다는 설 등이 있어 여러 설이 구구한 것이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의 민요(民謠) 형성은 돌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을 두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다가, 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명되어 불려지는 것이 남아서 전승되는 것으로 미루어 아리랑은 근래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가 있는 것으로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불리워지고 있다 라고 하였다.
이상이 아리랑에 대한 세간의 일반적인 학설(學說)인 것이다.“ 라고
명산 선생님께서 설명을 하시자,
눈을 번뜩이며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질문을 하였다.
“이와 같이 아리랑에 대한 학설이 구구하고, 또한 우리 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으며, 해외 동포들까지도 눈물로 부르는 아리랑이란 노래에 나오는 아리랑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라고 묻자
명산 선생님께서 설명을 시작하셨다.
“이 고개가 무슨 고개인가 하면 바로 아리랑(亞裡嶺)인 것이며, 그 고개에 내사랑(迺思嶺)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리랑 고개란 무슨 고개인가?
격암유록(格菴遺錄) 갑을가(甲乙歌)Ⓟ115에,
『亞裡嶺 有停車長 苦待苦待 多情任』 ***
아리령 유정거장 고대고대 다정임
버금 아(亞), 속 리(裡), 고개 령(嶺)자로, 아(亞)자 속에 있는 고개라 한 것이다.
여기에 정거장(停車場)이 있는데, 그 정거장(停車場)에는 우리가 고대(苦待)하고 고대(苦待)하던 다정(多情)한 님이 계신다 한 것이다.
버금 아(亞)자란 무엇인가?
궁궁(弓弓)이 서로 등을 지면(背弓) 아(亞)자가 되는데, 아(亞)자인 궁궁(弓弓) 사이에 십(十)자가 나오니 바로
십승인(十勝人)인 것이다.
또한 아(亞)자는 메 산(山)자가 좌우로 등을 진 모습이기 때문에 양산(兩山), 또는 양백(兩白), 양궁(兩弓), 궁궁(弓弓)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양산(兩山) 사이에, 즉 고개 마루에 정거장(停車場)이 있는데, 그 정거장(停車場)에 우리의 다정한 님(多情任)이 계신다는 것이다.
정감록집성(鄭鑑錄集成) 서계이선생가장결(西溪李先生家藏訣)Ⓟ591~592에,
『山仙之間 飢饉不入 小山小溪 藏踪何如 若入其地 俠字村尋 八物長生 扶人救命』
산선지간 기근불입 소산소계 장종하여 약입기지 협자촌심 팔물장생 부인구명
신선(神仙)이 계신 곳은 기아(飢餓)가 들어 오지 않는데, 조그마한 산 계곡 사이에 숨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 신선(神仙)을 찾아가려면 끼인 촌(집)이라고 하여 협자촌(俠字村)이라고도 한다.
그 곳에는 장생(長生)시키는 팔물(八物)이 있어 사람을 살린다 하는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궁을론(弓乙論)Ⓟ50에,
『弓弓不和 向面東西 背弓之間 出於十勝 人覺從之所願成就』 ***
궁궁불화 향면동서 배궁지간 출어십승 인각종지소원성취
또한 양궁(兩弓) 양산(兩山) 사이에 십승인(十勝人)이신 진인(眞人) 정도령이 계시는데, 사람들이 깨달아서 따르면 소원성취(所願成就)한다 한 것이다.
십승인(十勝人)이란 무엇인가?
즉 자신과 마귀(魔鬼)를 이기었다는 말이다.
마귀(魔鬼)는 사망(死亡)의 신(神)인데, 그 사망(死亡)의 신(神)인 마귀를 이기었다 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말은 곧 죽음을 이긴 바 되는 것이며, 바로 선각(先覺) 성현(聖賢)들이 그렇게 바라고 꿈꿔왔던 것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실현(實現)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고 하였다.
이론(理論)만이 아닌 참다운 진짜 해탈(解脫)을 이루는 때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성현(聖賢)들은, 스스로 해탈(解脫)했다고 말만 하고는 다 죽어 갔다 하나 이제 하나님의 아들인 이긴자이며, 승리자이신, 십승인(十勝人) 정도령으로 말미암아, 많은 수가 해탈(解脫)할 수 있는 길, 즉 사망(死亡)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도부신인(桃符神人) Ⓟ104를 보면,
『삼백수도(三百修道) 통리설(通理說)로 극기사망(克己死亡) 전(傳)했으니 역천역리(逆天逆理) 탈겁중생(脫劫重生) 영생론(永生論)을 전(傳)했으나 상고선지(上古先知) 예언론(預言論)을 어느누가 신임(信任)했노.』
전에 박태선(朴泰善) 하나님께서, 과거(過去) 전생(前生)에 300년 동안 수도통리(修道通理)하여, 인간의 몸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장생법(長生法)을 실험을 통하여 성공하셨다고 이미 밝힌 바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생론(永生論)을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전(傳)했으나, 상고시대(上古時代)에 먼저 알고 예언(預言)한 선각자(先覺者)의 말을 어느 누가 믿었는가. 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을 맡아서 끝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모든 준비를 한 다음, 그 마무리를 하나님의 아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만이 진정한 해탈(解脫)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진인(眞人) 정도령이, 진실로 만인(萬人)이 고대(苦待)해 온 바로 구세주(救世主)인 것이다.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3권 26장 117편을 보면,
산림일로숙쟁선(山林一路孰箏先) 자소오생미료연(自笑吾生未了緣)
수간명천조고슬(水間鳴泉調古瑟) 월단창회열구선(月壇蒼檜列癯仙)
막언필가방유악(莫言畢嫁方遊嶽) 영학휴량영탁선(寧學休粮永托禪) ***
회수진환진일해(回首塵寰眞一海) 이명갱참기인전(利名坑塹幾人顚) ***
숲속의 길에서, 누가 잡아 끌기에 보니 웃으면서 나는 아직 세상의 인연을 끝내지 못했다 하네.
산골물과 떨어지는 물소리가 하늘의 거문고를 타는 듯 한데, 높다란 언덕 위 푸른 노송나무에 파리한 신선(仙)이 있어
조용히 말을 마치자 또한 산속으로 자적(遊)하는구나.
무사히 신선되는 법(休糧)을 가르치고는, 영원히 선위(禪位)를 맡기는구나(托禪).
머리를 돌려 티끌 세상을 바라보니, 경기고을(환寰) 진인(眞人)이신 일(一 : 太乙)이 바다(海: 불로초,불사약 )인데, 명예와 이익(利名)을 구덩이 속에 묻은 그 사람이, 도(道)의 근원(顚)이구나.
이 시(詩)를 보면 해월(海月) 선생이 신선(仙)을 만나서, 미래에 대한 말을 듣고 전(傳)하는 말인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이 숲속의 길을 지나가다가 누군가가 잡아당기기에 보니, 신선(神仙)이라 하였다.
이 신선(神仙)이 하시는 말씀이, 나는 아직 딱하게도 세상(世上)의 인연(因緣)을 끝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신선(神仙)이 무사히 휴량(休糧)을 가르치고, 또한 자리를 양위(讓位)하고는 산속 깊이 들어가신다는 것이다.
휴량(休糧)이란 신선(神仙)이 되기 위하여 곡식을 끊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선가(仙家)에서 벽곡(辟穀)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곡식을 피한다는 말은, 신선(神仙)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인데, 무사히 신선(神仙)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고는,
그 자리를 선위(禪位)하고 깊은 산속에 들어간다 하는 것이다.
산속에 들어간다 함은, 사실은 화천(化天)하신다는 말이다.
이미 해월(海月) 선생은, 하나님께서 산속으로 몸을 피한다는 말이 돌아가신다는 말이라고, 다른 시(詩)에서 풀어 밝힌 바가 있다.
확실하게 신선(神仙)이 되는 법을 무사히 가르치고 떠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恨)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생(一生)동안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떠난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나머지 일은 그 아들에게 맡기고 돌아가시면서 머리를 돌려 돌아보는데, 경기 고을에 사는 진인(眞人)이신 일(一) 즉 태을(太乙)을 바다(海)라고 했던 것이다.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1권 22장 111편에,
가소진황구해고(可笑秦皇求海苦) 봉래지시재인환(蓬萊只是在人寰) ***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진시황(秦皇)이 그렇게도 찾던 그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 바다(海), 또는 봉래(蓬萊)라고 한 것이다.
그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가, 바로 경기고을의 한 사람(一: 太乙)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밝힌 바가 있는 것이다.
그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인 경기고을에 사는 그가, 세상(世上)의 명예(名譽)와 이익(利益)을 모두 땅에 묻어 둔 채 초연(超然)하게 지내는 사람인데, 바로 그 사람을 전(顚)이라고 하였다.
이 전(顚)이라고 하는 글자의 뜻을 보면, 근본, 근원, 꼭대기, 목, 고개, 뒤집다, 무너뜨리다, 이러한 뜻인 것이다.
그가 바로 도(道)의 근본이요,
만물(萬物)의 원(元)이요,
모든 것을 뒤집어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며, 대두목(大頭目)이라는 말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말이며,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고 하나님은 몸을 피하셨다고 하는 것이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14장 60편 2수에,
둔산원합둔옹거(遯山元合遯翁居) 원학운림락유여(猿鶴雲林樂有餘)
천의인심난가만(天意人心難可挽) 잔춘함구문하여(殘春含口問何如)
산속으로 숨는다는 것(遯山), 근본적으로 은퇴한 아버지가 거(居: 무덤)하는 곳을 말하는데,
원학(猿鶴: 돌아가신 군자, 즉 하나님)이 운림(雲林) 속에서 또한 즐거워하는데,
하늘의 뜻(天意)과 인정(人心)사이에 어찌할 수 없으니,
남아 있는 봄(春: 하나님의 아들)이 눈물을 글썽이니, 무슨 말로 위로 하겠는가?
이 글에서 산속으로 몸을 피한다고 하는 말은,
근본적으로 자리를 물러나 은퇴(隱退)하여 거(居)하는 집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였다.
즉 무덤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원학(猿鶴)이라는 말은 원숭이와 학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군자(君子)로서, 돌아가신 분을 일컫는 말인 것으로, 화천(化天)하신 하나님이 운무(雲霧)가 끼어 있는 숲속에서, 한가로이 즐거웁게 지내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화천(化天)하셨지만, 사람의 인정(人情)으로 본다면 크게 슬픈 일인 것이다.
그러니 하늘의 뜻(天意)과 인정(人情) 사이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말릴 수도 없고 말리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셨지만, 남아 있는 춘(春) 즉 하나님의 아들은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데, 무엇을 어떻게 위로하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 글 속을 잘 들여다 보면, 하나님은 뜻이 있어, 먼저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신다 하신 것이다.
그러니 만류(挽留)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와 같이 먼저 화천(化天)하셔서 즐거웁게 편안히 계신다고, 해월(海月) 선생은 밝히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없이 화천(化天)하시니 그 슬픔이 얼마나 큰지 또한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하게 되며,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인 춘(春)이 눈물을 글썽이는데, 차마 무엇이라고 위로의 말을 전하겠는가 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은 이미 미래(未來)에 되어질 일을 내다보고 전(傳)하는 시(詩)인 것이다.
하나님이 몸을 피하신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한다면은, 하나님이 화천(化天)한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무사히 아들에게 끝맺음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好條件)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하며, 따르는 사람들을 염려하여 위로(慰勞)하는 말인 것이다.“
그 때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몸을 피한다는 둔(遯)이란 말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둔(遯)이란, 숨다, 피하다, 물러나다, 사라지는 것, 은둔하다는 의미의 글자인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주역(周易)의 둔괘(遯卦)를 보면, 아랫괘(下卦)는 산(山)이고, 윗괘(上卦)는 천(天)이 있어 천산둔괘(天山遯卦)라 하는 것이다.
산(山)이 높기는 하지만, 하늘(天)은 산(山) 위에 무한히 높이 있는 것이다.
군자(天)는 하늘로 높이 올라 은둔(隱遁)하여, 소인(山)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象)인데, 이 괘(卦)를 보면 두 음(陰)이 아래에서 발생(發生)하여, 그 세력이 점점 왕성(旺盛)해지니 동시에 위의 사양(四陽)은 그 세력이 쇠약(衰弱)해지는 모습이다.
이는 소인(小人)은 왕성해지고, 군자(君子)는 물러나 피하는 상(象)이다.
즉 소인(小人)의 세력이 점점 왕성해지므로, 군자(君子)는 은둔(隱遁)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은둔(隱遁)하면 그 몸이 물러나 사라지더라도, 그 지키는 바 바른 도(正道)는 완수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소인(小人)의 기세가 점점 왕성해지는 때에는, 본디 군자(君子)의 바른 도(道)는 행해지지가 않는 것이다.
만약에 은둔(隱遁)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궁(窮) 즉 막히게 되고, 물러나야만 통(通)한다는 것이다.
둔괘(遯卦)의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遯亨 遯而亨也』
둔형 둔이형야
둔(遯)은 통(通)한다 함은, 은퇴(隱退)함으로 자신의 바른 도(正道)는 충분히 완수(頑守)된다는 것이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 물러나는 것을 모르면, 자신의 바른 도(正道)는 굽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시세(時勢)의 흐름에 따라, 물러나 소인(小人)과 대적하지 않는 것이 화(禍)를 면(免)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바른 도(正道)를 충분히 펼 수 있는 길이다.
송(宋)나라 대학자(大學者) 주희(朱熹)가 천자(天子)의 국사(國師)로 있을 때, 권력(權力)을 쥔 한차주(韓侘冑)의 횡포(橫暴)를 규탄(糾彈)하는 상소(上疏)를 제출했던 일이 있었는데, 이를 안 제자들이 스승의 안위(安危)를 걱정하여 말렸으나, 듣지 않음으로 점을 쳐서 결정하기로 하였는데, 그 때 나온 괘가 둔(遯)괘였기에, 주희(朱熹)는 묵묵히 물러나 상소문(上疏文)을 태워 없애고 은퇴(隱退)하였다고 한다.
둔(遯)이란 피해서 물러난다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돼지(遯)와도 통한다.
해월(海月) 선생은 그의 시(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과 인정(人情)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이 세상을 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도(道)를 이루는 것이라고 해월(海月) 선생은 그의 시(詩) 속에서 밝힌 것이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서 물러나셔서 무엇을 하시는 것인가?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35장 144편 2수에,
석아선군자(昔我先君子) 구원칠십년(丘園七十年) ***
기지추불식(豈知推不食) 금견경무전(今見慶無前) ***
진퇴수지분(進退須知分) 행장역청천(行藏亦聽天) ***
오당노견묘(吾當老畎畝) 저이호주선(竚爾好周旋) ***
옛날에 나의 선군자(先君子)가
화원언덕(丘園)에 70년 동안 있었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일(不食)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전에 없었던 일을, 기쁘게도 보게 될 것이네.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은, 필히 잘 판단해서 해야 하고,
세상에 나아가 도(道)를 행하고 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천명(天命)을 따라야 한다.
스스로(하나님)는 당연히 밭둑길에 물러나 숨어서,
그대를 기다리며, 즐겁게 일이 잘 되도록 보살펴 주겠노라.
이 글에서 선군자(先君子)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의미하는 말로, 이 시(詩)에서는 이미 오셨다가 화천(化天)하신 하나님을 이르는 말이다.
선군자(先君子)라 하면, 즉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세 차례에 걸쳐 오셨던 것이다.
첫 번째로 삼역대경(三易大經)의 육도삼략(六鞱三畧) 제3도인 54궁 도수의 수운(水運)으로, 최수운(崔水雲) 선생께서 오셨고,
두 번째는 제4도인 63궁 도수의 화운(火運)으로, 강증산(姜甑山) 상제께서 오셨고,
세 번째는 제5도인 72궁 도수의 목운(木運)으로, 박태선(朴泰善) 하나님께서 오셨던 것이다.
또한 최수운(崔水雲) 선생은 41세로, 강증산(姜甑山) 상제는 39세로 이 세상에서 화천(化天)하신 것이며, 이 세상에서 70년 이상 계셨던 분은 오직 72궁 도수로 오신, 목운(木運)인 박태선(朴泰善) 하나님밖에 없는 것이다.“
“먹지 않는 일(不食)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라고 묻자
“인간의 활동하는 에너지원은 음식물을 소화해서 얻기 때문에, 음식물을 먹지 않고 살 수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오는 세상은 음식물을 먹지 않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월(海月) 선생은 전에 없던 경사(慶事)스러움을 보게 되는 이유가, 먹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인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신(神)으로 화하신 하나님인 선군자(先君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인 정도령으로 하여금 하게 하고, 당신은 물러나서 아들이 하는 일을 잘 되도록 준비만 해 놓고 뒤에서 보살펴 주겠다고 한 것이다.
【※※※】
그래서 격암유록(格菴遺錄) 성운론(聖運論)Ⓟ106에,
『無勿不食 過去事요 食不食의 來運事라』
무물불식 과거사 식불식 래운사
어떤 물질(物質)이 없으면 먹지 못하는 것은 과거(過去)의 일이고, 먹는다고 하면서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앞으로 오는 일(來運事)이다.
즉 앞으로는 어떤 식품(食品)을 먹는 것이 아니라, 성신(聖神)을 먹고 사는 세상이 된다는 말이다.
즉 먹지 않고 사는 세상이란 말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은비가(隱秘歌) Ⓟ56에,
『萬物苦待新天運 不老不死人永春 不耕田而食之 不織麻而衣之 不埋地而葬之 不拜祀而祭之 不乘馬而行之
만물고대신천운 불로불사인영춘 불경전이식지 불직마이의지 불매지이장지 불배사이제지 불승마이행지
不食穀而飽之 不流淚而生之 不飮藥而壽之 不交媾而産之 不四時而農之 不花發而實之死末.
불식곡이포지 불유루이생지 불음약이수지 불교구이산지 불사시이농지 불화발이실지사말
生初末運 雲王眞人降島 逆天者亡 順天者興 三人日而春字定』 ***
생초말운 운왕진인강도 역천자망 순천자흥 삼인일이춘자정
이 글의 내용을 보면 만물(萬物)이 고대(苦待)하던 새로 맞이하는 천운(天運)인데, 이 때에는 사람이 늙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한 봄만이 있으며, 밭을 갈지 않아도 먹을 수 있고, 옷을 짜지 않아도 옷을 입을 수 있고, 매장(埋)하지 않아도 장사(葬)지낼 수 있고, 절(拜)하며 제사 지내지 않아도 제(祭)를 지낼 수 있고, 말을 타지 않아도 갈 수 있고, 곡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며,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약(藥)을 먹지 않고도 장수(壽)할 수 있으며, 교구(交媾)함이 없어도 자식을 낳을 수 있으며, 사시(四時)가 아니라도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며, 꽃이 피지 않아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사말생초(死末生初)인 이 말운(末運)에, 하늘의 왕(雲王)이신 정도령이 동반도(島)에 강림(降)하는데, 천명(天命)을 받고 강림(降臨)한 정도령을 춘(春)이란 글자(字)로 정(定)했으니, 천명(天命)을 어기는 자는 망(亡)할 것이고,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이와 같이 새로 맞이하는 천운(天運)에는 먹지 않고도 사는 세상이라고 격암(格菴) 선생이 밝혔고, 덧붙여 해월(海月) 선생은 누가 이 의미를 깨달아서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였던 것이다.“
라고 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전생(前生)에 최수운(崔水雲) 선생으로, 강증산(姜甑山) 상제로, 박태선(朴泰善) 하나님으로 세 번이나 오셨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어떻게 증명(證明)할 수가 있습니까?
세 분 중에 어느 한 분이라도 최수운(崔水雲), 강증산(姜甑山), 박태선(朴泰善) 하나님으로 올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였다.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잠시 침묵하셨다가 이윽고 다시 설명을 시작하셨다.
“박태선(朴泰善) 하나님께서 재세시(在世時)에, 주위의 측근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전(前)에 강(姜氏)씨와 최(崔氏)씨로 왔었다고 말하니, 주위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한 한 번은 여러 측근 인사들과 함께 경주(慶州)에 들린 적이 있는데, 박태선(朴泰善) 하나님께서는 전(前)에도 이 곳에 있은 적이 있었다면서 감회(感懷)에 젖었다고 전하는 것이다.
또한 증산(甑山) 상제께서는 대순전경(大巡典經) 제3장 제자(弟子)의 입도(入道)와 교훈(敎訓) 22절에,
『상제(上帝) 경석(京石)과 공우(公又)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리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父母) 형제(兄弟) 처자(妻子)라도 모르는 일이니라.
나는 서천서역(西天西域)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階塔)에 내려 천하(天下)를 대순(大巡)하는 몸이라.
동학주(東學呪)에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으니 내 일을 이름이라.
내가 천지(天地)를 개벽(開闢)하고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어 인간(人間)과 천지(天地)의 혼란(混亂)을 바로 잡으려 하여 사계(四界)를 두루 살피다가 너희 동토(東土)에 그쳐 잔포(殘暴)에 빠진 민중(民衆)을 먼저 건지려 함이니, 나를 믿는 자(者)는 무궁(無窮)한 행복(幸福)을 얻어 선경(仙境)의 락(樂)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동학(東學)이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강산(朝鮮江山)이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 난다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신자간(東學信者間)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更生)하리라 고 전(傳)하나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니라.’
또 가라사대 ‘예로부터 계룡산(鷄龍山)의 정씨왕국(鄭氏王國)과 가야산(伽倻山)의 조씨왕국(趙氏王國)과 칠산(七山)의 범씨왕국(范氏王國)을 일러오나 이 뒤로는 모든 말이 헛된 소문(所聞)에 그치리라.
그러므로 정씨(鄭氏)를 찾아 운수(運數)를 구(求)하려 하지 말지니라’ 하시고 본명(本名) 차륜홍(車輪洪)을 경석(京石)으로 개명(改名)하여 부르게 하시니라』
동학신자간(東學信者間)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更生)하리라고 전(傳)하여 왔는데, 그 말인 즉 최수운(崔水雲)선생이 다시 오리라는 말인데, 죽은 사람이 생전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뜻으로, 그 최수운(崔水雲) 선생을 대신(代身)하여 증산(甑山) 상제께서 오게 되었다고 밝히신 것이다.
그 시대 상황(狀況)에서는 그렇게 밖에는 밝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순전경(大巡典經) 제6장 법언(法言) 136절을 보면,
『수운가사(水雲歌詞)에 새 기운이 갈머 있으니, 말은 소진(蘇秦) 장의(張儀)의 구변(口辯)이 있고 글은 이백(李白) 두보(杜甫)의 문장이 있고, 알음은 소강절(邵康節)의 지식(知識)이 들어 있으니 다 나의 비결(秘訣)이니라』
라고 하여 최수운(崔水雲) 선생의 동학가사(東學歌詞)는, 모두 다 증산(甑山) 상제의 비결(秘訣)이라고 하신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숨겨 놓은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그만하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니 충분히 납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수운(崔水雲) 선생과 증산(甑山) 상제와 박태선(朴泰善) 하나님보다
몇 백년 앞서 태어나신 해월(海月) 선생은 어떤 말씀을 남기셨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무슨 말씀을 남기신 것이 있습니까?” 라고하자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설명을 시작하셨다.
“해월(海月) 선생이 훨씬 먼저 태어나신 분이니, 그 일에 대하여 언급(言及)이 없을 것 같아서 그러는가?”
라고 하자 앞에서 질문하였던 그 사람은 “앞의 예를 보듯이 해월(海月) 선생은 틀림없이 언급(言及)하셨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 께서 계속하여 말씀을 이어 나가셨다.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1장 2절의 시를 보면,
영회시 김달원(詠懷示 金達遠)
천침미괄복맹우(千針未刮伏盲憂) 백련난위요지유(百鍊難爲繞指柔) *
출해안지종고락(出海安知鍾鼓樂) 함로오입망라수(啣蘆誤入網羅收) ***
참무직도공삼출(慚無直道空三黜) 행유여생가사휴(幸有餘生可四休) ***
가슴에 품은 것을 김달원에게 보이면서
깊이 잠복하여 있는 그 몽매(盲)함을 근심하여, 천 개의 침(千針)을 놓아도 도려낼 수가 없고,
백 번을 단련(鍛鍊)해도, 굽어진 마음을 부드럽게(指柔) 하기가 어렵구나.
술잔(鍾)이 바다에서 나오니, 기쁘게도 술잔이 진동(鍾鼓)하는 것을 알게 되고
(오리가) 갈대잎을 물고 (화살을 피하려고 한 것처럼) 잘못 들어감을 깨닫고, 모두 거두어 들이게 되는구나.
부끄럽게도 하늘이 세(三)번 보냈으니, 도(道)를 바르게 펼 수가 없었지만,
다행히도 가히 네(四) 번째는, 기쁘게 여생(餘生)을 쉴 수가 있구나.
이 시(詩)를 보면,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잠복하여 있는 무지(無知)함과 몽매(夢寐)함을 걱정하여 천(千) 개의 침을 놓아도 그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는 어리석음을 긁어 도려내어 치유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또한 백(百) 번을 불 속에 넣어 단련(鍛鍊)해도, 그 굽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순하게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다에서 술잔이 나오고 이제 곧 술잔이 진동하니 즐겁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오리가 갈대잎을 물고 화살을 피하려고 하는 것처럼(회남자에 나오는 이야기), 잘못 들어가서 일을 벌려 놓았지만, 때가 아닌 것을 알고는 모든 것을 정리(整理)하여 거두어 들인다고 하였다.
부끄럽게도 하늘이 세 번씩이나 내어 보내어서 사도(邪道)를 바로잡아 정도(正道)를 펴게 하려고 하였지만, 결국은 바로잡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네 번째는 바다에서 술잔 즉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사도(邪道)를 물리치고 바로잡아 정도(正道)를 세우니, 여생(餘生)은 가히 기쁘게 쉬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시(詩)는 해월(海月) 선생이, 하나님의 깊은 사정을 알고 글로써 밝힌 것이다.
하나님이 세 번씩이나 세상에 오셔서 바른 도(道)를 펴려고 애썼지만, 세상 사람들의 몽매(夢寐)한 마음을 치유할 수가 없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네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인 술잔이 바다에서 나오니, 이제는 마음속으로 즐거웁게 하나님은 편히 쉴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 내용으로 보아서 하나님께서 모든 어려운 상황을 홀로 떠 맡아 준비를 끝내시고는, 그 마지막 끝맺음을 술잔인 아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또한 종(鍾)자는 술잔, 쇠북인 종, 거문고를 뜻한다.
이 종(鍾)자는 쇠 금(金)자와 무거울 중(重)자의 합자(合字)로 그 뜻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이 중(重)자는 또한 아이 동(童)자로도 읽는 것이다.
즉 금신(金神)인 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종(鍾 , 鐘)자 또한 금신(金神)인 아이를 뜻하는 글자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해월유록p657~684말씀】
【上帝之子斗牛星 西洋結寃離去后 登高望遠察世間 二十世後今時當 東方出現結寃解】
【만사이황발(萬事已 黃髮 ) 잔생수백구(殘生隨 白鷗 )】
♧ 청림도사(靑林道士) 明(黃) 선생님 ♧
매화(梅花)는 청림도사(靑林道師) 정도령(鄭道令)의 별칭(別稱)
조선중기 대문장가인 해월(海月) 황 여일(黃 汝一) 선생의 시문이 들어있는 문집 목판본(7권14책)이 현재
고려대학교와 서초동 국립도서관에 있으며 필사본은 영남대학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도 또한 있음.
해월헌(海月軒) -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선생의 친필
한석봉(韓石峰)선생의 해월헌(海月軒)의 갈근필병풍(葛根筆屛風 : 무이구곡가)
해월종택(海月軒): 봉황이 알을 품는 형국으로 풍수학상 강릉 이남 최고의 명당(明堂)
경북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433 (해월헌길7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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