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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飛龍비룡 辛鐘洙신종수 總務총무님 提供제공.
| 莊子 雜篇 第28篇 讓王 目次 장자 잡편 제28편 양왕 목차 |
| 01[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01. 外物외물에 끌려 自己자기 삶을 어지럽히지 마라(1/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22081174 |
| 02[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02. 百姓백성을 위해 百姓백성을 害해치지 마라(2/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22651832 |
| 03[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03. 삶은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重要중요하다(3/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23225464 |
| 04[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04. 근심을 만들어 삶을 損傷손상시키지 마라(4/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24128864 |
| 05[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05. 貴重귀중한 것으로 하찮은 것을 얻으려 하지 마라(5/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25022804 |
| 06[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06. 남의 말에 依의한 判斷판단은 옳지 못하다(6/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25519195 |
| 07[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07. 分數분수에 맞게 便편하게 지낼 줄 알아야 한다(7/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26691842 |
| 08[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08. 自己자기 分數분수에 따라 道도를 追求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8/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27358294 |
| 09[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09. 自己자기를 기르는 사람은 利益이익을 잊는다(9/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27884514 |
| 10[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10. 滿足만족하는 사람은 利益이익 때문에 스스로를 害해치지 않는다.(10/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28643978 |
| 11[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11. 마음이 이끄는 대로 自然자연스럽게 行動행동하라(11/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29508316 |
| 12[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12. 눈서리가 쳐야 송백의 꿋꿋함을 알 수 있다(12/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30411702 |
| 13[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 13. 自身자신의 本性본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다(13/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31134327 |
| 14[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14. 淸廉청렴함을 위해 목숨을 버리다(14/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31790887 |
| 15[장자(잡편)] 第28篇 讓王(양왕): 15. 굶어 죽은 伯夷백이와 叔弟숙제(15/15)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32571056 |
| [장자(잡편)] 제29편 盜跖(도척) - 1.공자, 도척을 설득하러 가다 (1/13) https://blog.naver.com/swings81/221019179407 |
=====第14章↓
| 莊子 雜篇 第28篇 讓王 第14章 장자 잡편 제28편 양왕 제14장 | ||
| 14. 淸廉청렴함을 위해 목숨을 버리다(14/15)(1/3) | ||
| 湯將伐桀 | 탕장벌걸 | 殷은나라의 湯탕임금이 夏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暴君폭군 桀걸을 征伐정벌하려고 할 적에, |
| 因卞隨而謀 | 인변수이 | 卞隨변수에게 依賴의뢰하여 計劃계획을 세우려 했다. |
| 卞隨曰 | 변수왈 | 그랬더니 卞隨변수가 말했다. |
| 非吾事也 | 비오사야 |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
| 湯曰 孰可 | 탕왈 숙가 | 湯탕임금이 말했다. “그러면 누가 좋겠소?” |
| 曰 吾不知也 | 왈 오부지야 | 卞隨변수가 말했다. 나는 모릅니다.” |
| 湯又因瞀光而謀 | 탕우인무광이모 | 湯탕임금은 또 務光무광이라는 隱者은자에게 依賴의뢰하여 그 일을 圖謀도모하려 하였다. |
| 瞀光曰 | 무광왈 | 務光무광이 말했다. |
| 非吾事也 | 비오사야 |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
| 湯曰 孰可 | 탕왈 숙가 | 湯탕이 말했다. “그러면 누가 좋겠소?” |
| 曰 吾不知也 | 왈 오부지야 | 務光무광이 말했다. “나는 모릅니다.” |
| 湯曰 | 탕왈 | 湯탕이 말했다. |
| 伊尹何如 | 이윤여하 | “伊尹이윤은 어떻습니까?” |
| 曰 | 왈 | 務光무광이 말했다. |
| 強力忍垢 | 강력인구 | “無理무리하게 힘쓰는 人物인물로 손에 때를 묻히는 것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
| 吾不知其他也 | 오부지기타야 | 그 밖의 能力능력에 對대해서는 나는 모릅니다.” 1 |
| * 湯(탕) : 紀元前기원전 1600年頃년경 商상나라(殷은나라)의 建國者건국자로, 이름은 履리이다. 天乙천을, 大乙대을, 太乙태을, 成湯성탕, 成唐성당이라고도 한다. 夏하나라의 마지막 王왕 桀걸을 追放추방해 夏하 王朝왕조를 滅亡멸망시켰다. 夏하나라의 마지막 王왕 桀걸은 暴虐포학한 政治정치를 해 人心인심은 夏하나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夏하나라의 臣下신하인 湯탕은 名臣명신 伊尹이윤의 輔佐보좌를 받아 桀걸을 攻擊공격해 滅亡멸망시켰다. 《書經서경》에는 桀걸을 滅멸할 때에 諸侯제후를 向향해 演說연설했다고 여겨지는 〈湯誓탕서〉篇편이 있다. 湯탕은 夏하나라의 禹우, 周주나라의 文王문왕, 武王무왕과 함께 聖君성군으로서 後世후세에 崇尙숭상되었다.〈위키백과〉 * 因卞隨而謀(인변수이모) : 卞隨변수라는 사람에게 依賴의뢰하여 計劃계획을 세우려 함. 因인은 依賴의뢰함. 就취의 뜻으로 보고 卞隨변수를 찾아가 相議상의했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見解견해(方勇방용‧陸永品육영품)도 있다. 卞隨변수는 人名인명. 成玄英성현영은 “姓성은 卞변이고 이름은 隨수이다[姓卞성변 名隨명수].”라고 풀이했다. * 務光(무광) : 人名인명. 〈大宗師대종사〉篇편과 〈外物외물〉篇편에 이미 나왔다. 陸德明육덕명은 皇甫謐황보밀의 말을 引用인용하여 “黃帝황제 때의 사람이며 귀의 길이가 七寸칠촌이었다[黃帝時人황제시인 耳長七寸이장칠촌].”고 풀이했고, 成玄英성현영은 “黃帝황제 때의 사람이며 身長신장이 七尺칠척이었다. 또 夏하나라 때 사람으로 藥약을 먹고 養生양생하였으며 거문고 演奏연주하기를 좋아했으며 湯탕이 天下천하를 禪讓선양했지만 받지 않고 스스로 돌을 짊어지고 廬水여수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黃帝時人황제시인 身長七尺신장칠척 又云우운 夏時人하시인 餌藥養性이약양성 好鼓琴호고금 湯讓天下不受탕양천하불수 自負石沈於廬水자부석침어여수].”고 풀이했는데, 務光무광을 言及언급하고 있는 大部分대부분의 文獻문헌에 湯탕임금과 同時代동시대의 人物인물로 記錄기록되어 있으므로 夏하나라 末期말기의 人物인물로 推定추정하는 것이 妥當타당하다(方勇방용‧陸永品육영품). * 伊尹(이윤) : 人名인명. 湯탕임금을 도와 革命혁명을 成功성공시킨 人物인물. 成玄英성현영은 “姓성은 伊이이고 이름은 尹윤이며 字자는 贄지이다. 世上세상을 도운 賢人현인이다[姓伊성이 名尹명윤 字贄자지 佐世之賢人也좌세지현인야].”라고 풀이했다. 〈庚桑楚경상초〉에는 “湯王탕왕이 料理師요리사의 職責직책으로 伊尹이윤을 새장에 넣었다[湯以庖人籠伊尹탕이포인롱이윤].”는 記錄기록이 나왔다. * 强力忍垢(강력인구) : 무리하게 힘쓰는 人物인물로 손에 때를 묻히는 것도 참아낼 수 있음. 伊尹이윤의 사람됨이 汚辱오욕의 行爲행위라도 기꺼이 참아낼 수 있음을 表現표현한 內容내용이다. 成玄英성현영은 “忍인은 堪耐감내함이고 垢구는 恥辱치욕이다[忍인 耐也내야 垢구 恥辱也치욕야].”라고 풀이했다. 底本저본에는 ’垢구‘자가 坵구로 表記표기되어 있지만, 金谷治김곡치의 主張주장과 垢구로 表記표기된 版本판본에 依據의거하여 고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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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晩霞만하 丁海崙정해륜 敎授교수 提供제공.
| 莊子 雜篇 第28篇 讓王 第14章 장자 잡편 제28편 양왕 제14장 | ||
| 14. 淸廉청렴함을 위해 목숨을 버리다(14/15)(2/3) | ||
| 湯遂與伊尹謀伐桀 | 탕수여이윤모벌걸 | 湯탕이 드디어 伊尹이윤과 함께 圖謀도모하여 桀걸을 征伐정벌하여 |
| 剋之 | 극지 | 勝利승리하고 난 뒤에 |
| 以讓卞隨 | 이양변수 | 卞隨변수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하였다. |
| 卞隨辭曰 | 변수사왈 | 卞隨변수가 拒絶거절하고 말하기를 |
| 后之伐桀也謀乎我 | 후지벌걸야모호아 | “임금께서 처음 桀걸을 치려 할 적에 나와 相議상의하려 하였으니, |
| 必以我為賊也 | 필이아위적야 | 이것은 반드시 나를 叛骨반골의 盜賊도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고, |
| 勝桀而讓我 | 승걸이양아 | 이제 桀걸을 이기고 나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 하니, |
| 必以我為貪也 | 필이아위탐야 | 이것은 반드시 나를 貪慾탐욕스러운 者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
| 吾生乎亂世 | 호생호란세 | 제가 只今지금 亂世난세에 태어난 바람에 |
| 而無道之人再來漫我以其辱行 | 이무도지인재래만아이기욕행 | 이 無道무도한 사람이 두 番번이나 나한테 와서 汚辱오욕의 行爲행위로 저를 더럽히려 하니, |
| 吾不忍數聞也 | 오불인수문야 | 저는 몇 番번씩이나 이런 辱욕된 말을 차마 들을 수 없습니다.” |
| 乃自投稠水而死 | 내자투주수이사 | 라고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椆江주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2 |
| * 自投椆水而死(자살주수이사) : 스스로 椆江주강에 몸을 던져 죽음. 椆水주수는 물 이름. 椆水주수의 椆주가 稠주로 表記표기된 版本판본도 있고 洞동으로 表記표기된 版本판본도 있다. 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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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石松석송 車憲奎차헌규 會員회원 提供제공.
| 莊子 雜篇 第28篇 讓王 第14章 장자 잡편 제28편 양왕 제14장 | ||
| 14. 淸廉청렴함을 위해 목숨을 버리다(14/15)(3/3) | ||
| 湯又讓瞀光曰 | 탕우양무광왈 | 湯탕임금이 또 務光무광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고 하여 말했다. |
| 知者謀之 | 지자모지 | “知者지자는 天下천하를 爲위해 計策계책을 세우고 |
| 武者遂之 | 무자수지 | 武勇무용이 있는 者자는 그것을 完遂완수하고 |
| 仁者居之 | 인자거지 | 仁者인자는 天子천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 |
| 古之道也 | 고지도야 | 古來고래로 해오던 道理도리입니다. |
| 吾子胡不立乎 | 오자호불립호 | 그러니 어진 그대가 天子천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좋지 않겠소?” |
| 瞀光辭曰 | 무광사왈 | 務光무광이 辭讓사양하면서 말했다. |
| 廢上 非義也 | 폐상 비의야 | “윗사람을 廢폐하는 것은 義의로운 行動행동이 아니며 |
| 殺民 非仁也 | 살민 비인야 | 戰爭전쟁을 일으켜 百姓백성들을 몰아 죽이는 것은 仁인한 行動행동이 아니며 |
| 人犯其難 | 인범기난 | 남이 어려움을 무릅썼는데 |
| 我享其利 | 아형기리 | 내가 그 利益이익을 누리는 것은 |
| 非廉也 | 비렴야 | 廉恥염치를 아는 行動행동이 아닙니다. |
| 吾聞之曰 | 오문지왈 | 또 나는 듣건대 |
| 非其義者 | 비기의자 | ‘그 義의로운 사람이 아닌 者자에게서는 |
| 不受其祿 | 불수기록 | 祿녹을 받지 아니하고, |
| 無道之世 | 무도지세 | 無道무도한 世上세상에서는 |
| 不踐其土 | 불천기토 | 그 땅을 밟지 않는다.’고 합니다. |
| 況尊我乎 | 황존아호 | 그런데 하물며 나를 높여 天子천자의 地位지위에 올리려 하시니 어찌하겠습니까! |
| 吾不忍久見也 | 오불인구견야 | 나는 언제까지 오래도록 이런 狀況상황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
| 乃負石而自沈於廬水 | 내부석이자침어려수 | 그리고는 마침내 돌을 등에 짊어지고 스스로 廬水여수의 깊은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3 |
| * 人犯其難(인범기난) 我享其利(아형기리) 非廉也(비렴야) : 남이 어려움을 무릅썼는데 내가 그 利益이익을 享受향수하는 것은 廉恥염치를 아는 行動행동이 아님. 人犯其難인범기난은 다른 사람이 戰爭전쟁이라는 危險위험한 일을 무릅썼다는 뜻이다. 我享其利아형기리는 내가 아무 것도 한 일 없이 利益이익을 누림을 말한다. * 負石而自沈於廬水(부석이자침어려수) : 돌을 등에 짊어지고 스스로 廬水여수에 빠짐. 廬水여수는 물 이름. 陸德明육덕명은 "北平郡북평군의 境界경계 地域지역에 있다[在北平郡界재북평군계]."라고 풀이했고, 方勇방용‧陸永品육영품은 遼東城요동성 西서쪽 境界경계 地域지역에 있다고 풀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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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출처>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道家 -> 莊子 -> 雜篇 -> 讓王 |
| 湯將伐桀,因卞隨而謀,卞隨曰:「非吾事也。」湯曰:「孰可?」曰:「吾不知也。」湯又因瞀光而謀,瞀光曰:「非吾事也。」湯曰:「孰可?」曰:「吾不知也。」湯曰:「伊尹何如?」曰:「強力忍垢,吾不知其他也。」湯遂與伊尹謀伐桀。 剋之,以讓卞隨。卞隨辭曰:「后之伐桀也謀乎我,必以我為賊也;勝桀而讓我,必以我為貪也。吾生乎亂世,而無道之人再來漫我以其辱行,吾不忍數聞也。」乃自投稠水而死。 湯又讓瞀光曰:「知者謀之,武者遂之,仁者居之,古之道也。吾子胡不立乎?」瞀光辭曰:「廢上,非義也;殺民,非仁也;人犯其難,我享其利,非廉也。吾聞之曰:『非其義者,不受其祿;無道之世,不踐其土。』況尊我乎!吾不忍久見也。」乃負石而自沈於廬水。 |
| 湯將伐桀,因卞隨而謀,卞隨曰:「非吾事也。」湯曰:「孰可?」曰:「吾不知也。」湯又因瞀光而謀,瞀光曰:「非吾事也。」湯曰:「孰可?」曰:「吾不知也。」湯曰:「伊尹何如?」曰:「強力忍垢,吾不知其他也。」湯遂與伊尹謀伐桀。 1 |
| 剋之,以讓卞隨。卞隨辭曰:「后之伐桀也謀乎我,必以我為賊也;勝桀而讓我,必以我為貪也。吾生乎亂世,而無道之人再來漫我以其辱行,吾不忍數聞也。」乃自投稠水而死。 2 |
| 湯又讓瞀光曰:「知者謀之,武者遂之,仁者居之,古之道也。吾子胡不立乎?」瞀光辭曰:「廢上,非義也;殺民,非仁也;人犯其難,我享其利,非廉也。吾聞之曰:『非其義者,不受其祿;無道之世,不踐其土。』況尊我乎!吾不忍久見也。」乃負石而自沈於廬水。 3 |
| 殷은나라의 湯탕임금이 夏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暴君폭군 桀걸을 征伐정벌하려고 할 적에, 卞隨변수에게 依賴의뢰하여 計劃계획을 세우려 했다. 그랬더니 卞隨변수가 말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湯탕임금이 말했다. “그러면 누가 좋겠소?” 卞隨변수가 말했다. “나는 모릅니다.” 湯탕임금은 또 務光무광이라는 隱者은자에게 依賴의뢰하여 그 일을 圖謀도모하려 하였다. 務光무광이 말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湯탕이 말했다. “그러면 누가 좋겠소?” 務光무광이 말했다. “나는 모릅니다.” 湯탕이 말했다. “伊尹이윤은 어떻습니까?” 務光무광이 말했다. “無理무리하게 힘쓰는 人物인물로 손에 때를 묻히는 것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밖의 能力능력에 對대해서는 나는 모릅니다.” 1 |
| 湯탕이 드디어 伊尹이윤과 함께 圖謀도모하여 桀걸을 征伐정벌하여 勝利승리하고 난 뒤에 卞隨변수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하였다. 卞隨변수가 拒絶거절하고 말하기를 “임금께서 처음 桀걸을 치려 할 적에 나와 相議상의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반드시 나를 叛骨반골의 도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고, 이제 桀걸을 이기고 나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 하니, 이것은 반드시 나를 貪慾탐욕스러운 者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只今지금 亂世난세에 태어난 바람에 이 無道무도한 사람이 두 番번이나 나한테 와서 汚辱오욕의 行爲행위로 저를 더럽히려 하니, 저는 몇 番번씩이나 이런 辱욕된 말을 차마 들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椆江주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2 |
| 湯탕임금이 또 務光무광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고 하여 말했다. “知者지자는 天下천하를 爲위해 計策계책을 세우고 武勇무용이 있는 者자는 그것을 完遂완수하고 仁者인자는 天子천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 古來고래로 해오던 道理도리입니다. 그러니 어진 그대가 天子천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좋지 않겠소?” 務光무광이 辭讓사양하면서 말했다. “윗사람을 廢폐하는 것은 義의로운 行動행동이 아니며 戰爭전쟁을 일으켜 百姓백성들을 몰아 죽이는 것은 仁인한 行動행동이 아니며, 남이 어려움을 무릅썼는데 내가 그 利益이익을 누리는 것은 廉恥염치를 아는 行動행동이 아닙니다. 또 나는 듣건대 ‘그 義의로운 사람이 아닌 者자에게서는 祿녹을 받지 아니하고, 無道무도한 世上세상에서는 그 땅을 밟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나를 높여 天子천자의 地位지위에 올리려 하시니 어찌하겠습니까! 나는 언제까지 오래도록 이런 狀況상황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돌을 등에 짊어지고 스스로 廬水여수의 깊은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3 |
| 湯將伐桀,因卞隨而謀,卞隨曰:「非吾事也。」湯曰:「孰可?」曰:「吾不知也。」湯又因瞀光而謀,瞀光曰:「非吾事也。」湯曰:「孰可?」曰:「吾不知也。」湯曰:「伊尹何如?」曰:「強力忍垢,吾不知其他也。」湯遂與伊尹謀伐桀。 1 |
| 湯탕]이 將伐桀장벌걸]할새 因卞隨而謀인변수이모]한대 卞隨변수] 曰왈] 非吾事也비오사야]라 湯탕]이 曰왈] 孰可숙가]오 曰왈] 吾오]는 不知也부지야]로다 湯탕]이 又因務光而謀우인무광이모]한대 務光무광]이 曰왈] 非吾事也비오사야]라 湯탕]이 曰왈] 孰可숙가]오 曰왈] 吾오]는 不知也부지야]로다 湯탕]이 曰왈] 伊尹이윤]은 何如하여]오 曰왈] 强力忍垢강력인구]하나니 吾不知其他也오부지기타야]케라 湯탕]이 遂與伊尹수여이윤]으로 謀모]하야 伐桀벌걸] 1 |
| 湯탕]이 將伐桀장벌걸]할새 因卞隨而謀인변수이모]한대 殷은나라의 湯탕임금이 夏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暴君폭군 桀걸을 征伐정벌하려고 할 적에, 卞隨변수에게 依賴의뢰하여 計劃계획을 세우려 했다. 卞隨변수] 曰왈] 非吾事也비오사야]라 湯탕]이 曰왈] 孰可숙가]오 曰왈] 吾오]는 不知也부지야]로다 그랬더니 卞隨변수가 말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湯탕임금이 말했다. “그러면 누가 좋겠소?” 卞隨변수가 말했다. “나는 모릅니다.” 湯탕]이 又因務光而謀우인무광이모]한대 務光무광]이 曰왈] 非吾事也비오사야]라 湯탕임금은 또 務光무광이라는 隱者은자에게 依賴의뢰하여 그 일을 圖謀도모하려 하였다. 務光무광이 말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湯탕]이 曰왈] 孰可숙가]오 曰왈] 吾오]는 不知也부지야]로다 湯탕]이 曰왈] 伊尹이윤]은 何如하여]오 湯탕이 말했다. “그러면 누가 좋겠소?” 務光무광이 말했다. “나는 모릅니다.” 湯탕이 말했다. “伊尹이윤은 어떻습니까?” 曰왈] 强力忍垢강력인구]하나니 吾不知其他也오부지기타야]케라 湯탕]이 遂與伊尹수여이윤]으로 謀모]하야 伐桀벌걸] 1 務光무광이 말했다. “無理무리하게 힘쓰는 人物인물로 손에 때를 묻히는 것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밖의 能力능력에 對대해서는 나는 모릅니다.” |
| 殷은나라의 湯탕임금이 夏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暴君폭군 桀걸을 征伐정벌하려고 할 적에, 卞隨변수에게 依賴의뢰하여 計劃계획을 세우려 했다. 그랬더니 卞隨변수가 말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湯탕임금이 말했다. “그러면 누가 좋겠소?”卞隨변수가 말했다. “나는 모릅니다.” 湯탕임금은 또 務光무광이라는 隱者은자에게 依賴의뢰하여 그 일을 圖謀도모하려 하였다. 務光무광이 말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湯탕이 말했다. “그러면 누가 좋겠소?” 務光무광이 말했다. “나는 모릅니다.” 湯탕이 말했다. “伊尹이윤은 어떻습니까?” 務光무광이 말했다. “無理무리하게 힘쓰는 人物인물로 손에 때를 묻히는 것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밖의 能力능력에 對대해서는 나는 모릅니다.” 1 |
| 剋之,以讓卞隨。卞隨辭曰:「后之伐桀也謀乎我,必以我為賊也;勝桀而讓我,必以我為貪也。吾生乎亂世,而無道之人再來漫我以其辱行,吾不忍數聞也。」乃自投稠水而死。 2 |
| 剋之극지]하고 以讓卞隨이양변수]한대 卞隨변수] 辭曰사왈] 后之伐桀也후지벌걸야]에 謀乎我모호아]하니 必以我필이아]로 爲賊也위적야]오 勝桀而讓我승걸이양아]하니 必以我필이아]로 爲貪也위탐야]로다 吾오] 生乎亂世생호란세] 而無道之人이무도지인]이 再來재래]하야 漫我以其辱行만아이기욕행]하니 吾오]는 不忍數聞也불인수문야]라하고 乃自投椆水而死내자투주수이사]하니라 2 |
| 剋之극지]하고 以讓卞隨이양변수]한대 湯탕이 드디어 伊尹이윤과 함께 圖謀도모하여 桀걸을 征伐정벌하여 勝利승리하고 난 뒤에 卞隨변수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하였다. 卞隨변수] 辭曰사왈] 后之伐桀也후지벌걸야]에 謀乎我모호아]하니 必以我필이아]로 爲賊也위적야]오 卞隨변수가 拒絶거절하고 말하기를 “임금께서 처음 桀걸을 치려 할 적에 나와 相議상의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반드시 나를 叛骨반골의 도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고, 勝桀而讓我승걸이양아]하니 必以我필이아]로 爲貪也위탐야]로다 이제 桀걸을 이기고 나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 하니, 이것은 반드시 나를 貪慾탐욕스러운 者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吾오] 生乎亂世생호란세] 而無道之人이무도지인]이 再來재래]하야 漫我以其辱行만아이기욕행]하니 제가 只今지금 亂世난세에 태어난 바람에 이 無道무도한 사람이 두 番번이나 나한테 와서 汚辱오욕의 行爲행위로 저를 더럽히려 하니, 吾오]는 不忍數聞也불인수문야]라하고 乃自投椆水而死내자투주수이사]하니라 2 저는 몇 番번씩이나 이런 辱욕된 말을 차마 들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椆江주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2 |
| 湯탕이 드디어 伊尹이윤과 함께 圖謀도모하여 桀걸을 征伐정벌하여 勝利승리하고 난 뒤에 卞隨변수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하였다. 卞隨변수가 拒絶거절하고 말하기를 “임금께서 처음 桀걸을 치려 할 적에 나와 相議상의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반드시 나를 叛骨반골의 도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고, 이제 桀걸을 이기고 나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 하니, 이것은 반드시 나를 貪慾탐욕스러운 者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只今지금 亂世난세에 태어난 바람에 이 無道무도한 사람이 두 番번이나 나한테 와서 汚辱오욕의 行爲행위로 저를 더럽히려 하니, 저는 몇 番번씩이나 이런 辱욕된 말을 차마 들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椆江주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2 |
| 湯又讓瞀光曰:「知者謀之,武者遂之,仁者居之,古之道也。吾子胡不立乎?」瞀光辭曰:「廢上,非義也;殺民,非仁也;人犯其難,我享其利,非廉也。吾聞之曰:『非其義者,不受其祿;無道之世,不踐其土。』況尊我乎!吾不忍久見也。」乃負石而自沈於廬水。 3 |
| 湯탕]이 又讓務光우양무광]하야 曰왈] 知者謀之지자모지]코 武者遂之무자수지]코 仁者居之인자거지]호미 古之道也고지도야]니 吾子오자]는 胡不立乎호불립호]오 務光무광]이 辭曰사왈] 廢上폐상]이 非義也비의야]며 殺民살민]이 非仁也비인야]며 人犯其難인범기난]이어든 我享其利아향기리] 非廉也비렴야]니라 吾聞之오문지]호니 曰왈] 非其義者비기의자]는/로부터는 不受其祿불수기록]이오 無道之世무도지세]에는 不踐其土불천기토]라호니 況尊我乎황존아호]따녀 吾오]는 不忍久見也불인구견야]라하고 乃負石而自沈於廬水내부석이자침어려수]하니라 |
| 湯탕]이 又讓務光우양무광]하야 曰왈] 知者謀之지자모지]코 武者遂之무자수지]코 湯탕임금이 또 務光무광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고 하여 말했다. “知者지자는 天下천하를 爲위해 計策계책을 세우고 武勇무용이 있는 者자는 그것을 完遂완수하고 仁者居之인자거지]호미 古之道也고지도야]니 吾子오자]는 胡不立乎호불립호]오 仁者인자는 天子천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 古來고래로 해오던 道理도리입니다. 그러니 어진 그대가 天子천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좋지 않겠소?” 務光무광]이 辭曰사왈] 廢上폐상]이 非義也비의야]며 殺民살민]이 非仁也비인야]며 務光무광이 辭讓사양하면서 말했다. “윗사람을 廢폐하는 것은 義의로운 行動행동이 아니며 戰爭전쟁을 일으켜 百姓백성들을 몰아 죽이는 것은 仁인한 行動행동이 아니며, 人犯其難인범기난]이어든 我享其利아향기리] 非廉也비렴야]니라 吾聞之오문지]호니 남이 어려움을 무릅썼는데 내가 그 利益이익을 누리는 것은 廉恥염치를 아는 行動행동이 아닙니다. 또 나는 듣건대 曰왈] 非其義者비기의자]는/로부터는 不受其祿불수기록]이오 無道之世무도지세]에는 不踐其土불천기토]라호니 ‘그 義의로운 사람이 아닌 者자에게서는 祿녹을 받지 아니하고, 無道무도한 世上세상에서는 그 땅을 밟지 않는다.’고 합니다. 況尊我乎황존아호]따녀 吾오]는 不忍久見也불인구견야]라하고 그런데 하물며 나를 높여 天子천자의 地位지위에 올리려 하시니 어찌하겠습니까! 나는 언제까지 오래도록 이런 狀況상황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乃負石而自沈於廬水내부석이자침어려수]하니라 3 그리고는 마침내 돌을 등에 짊어지고 스스로 廬水여수의 깊은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
| 湯탕임금이 또 務光무광에게 天下천하를 물려주려고 하여 말했다. “知者지자는 天下천하를 爲위해 計策계책을 세우고 武勇무용이 있는 者자는 그것을 完遂완수하고 仁者인자는 天子천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 古來고래로 해오던 道理도리입니다. 그러니 어진 그대가 天子천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좋지 않겠소?” 務光무광이 辭讓사양하면서 말했다. “윗사람을 廢폐하는 것은 義의로운 行動행동이 아니며 戰爭전쟁을 일으켜 百姓백성들을 몰아 죽이는 것은 仁인한 行動행동이 아니며, 남이 어려움을 무릅썼는데 내가 그 利益이익을 누리는 것은 廉恥염치를 아는 行動행동이 아닙니다. 또 나는 듣건대 ‘그 義의로운 사람이 아닌 者자에게서는 祿녹을 받지 아니하고, 無道무도한 世上세상에서는 그 땅을 밟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나를 높여 天子천자의 地位지위에 올리려 하시니 어찌하겠습니까! 나는 언제까지 오래도록 이런 狀況상황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돌을 등에 짊어지고 스스로 廬水여수의 깊은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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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莊子(內篇, 外篇, 雜篇)의 總 33篇 장자(내편, 외편, 잡편)의 총 33편 | |
| 內篇 내편 01 ~ 07 (7 篇편) | 01. 逍遙遊(소요유, 휠휠 날아 自由자유롭게 노닐다.) 02. 齊物論(제물론, 事物사물을 고르게 하다) 03. 養生主(양생주, 生命생명을 북돋우는 데 重要중요한 일들) 04. 人間世(인간세, 사람 사는 世上세상) 05. 德充符(덕충부, 德덕이 가득함을 表示표시) 06. 大宗師(대종사, 큰 스승) 07. 應帝王(응제왕, 皇帝황제와 임금의 資格자격) |
| 外篇 외편 08 ~ 22 (15 篇편) | 08. 騈拇(변무, 仁義德性인의덕성의 尊重존중과 論理논리는 쓸데없다.) 09. 馬蹄(마제, 自然자연에 맡겨 되는대로 내버려두어라.) 10. 胠篋(거협, 防備방비가 逆역으로 남을 돕게 된다.) 11. 在宥(재유, 天下천하는 人爲的인위적으로 다스려서는 안된다.) 12. 天地(천지, 君子군자란 어떤 사람인가) 13. 天道(천도, 고요히 마음을 비워야 올바른 삶을 누린다.) 14. 天運(천운, 狀況상황이란) 15. 刻意(각의, 便安편안하고 間斷간단하고 淡淡담담히 살면 근심 걱정이 없다.) 16. 繕性(선성, 人爲的인위적인 智慧지혜로 世上세상은 混亂혼란에 빠졌다.) 17. 秋水(추수, 눈앞의 對象대상에만 執着집착하는 것은 잘못이다.) 18. 至樂(지락, 絕對的절대적인 價値가치란 없는 것이다.) 19. 達生(달생, 肉體육체를 保養보양하는 것은 삶을 기르는 것이 아니다.) 20. 山木(산목, 執着집착 없이 變化변화하며 中間중간에 處처한다.) 21. 田子方(전자방, 完全완전한 德덕 없이는 모든 外物외물이 災害재해의 原因원인이 된다.) 22. 知北遊(지북유, 道도를 말하는 사람은 道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
| 雜篇 잡편 23 ~ 33 (11 篇편) 총 33 篇편 | 23. 庚桑楚(경상초, 至極지극한 사람은 自身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24. 徐无鬼(서무귀, 사람의 괴로움은 富貴부귀에 依의한 것이 아니다.) 25. 則陽(칙양, 智慧지혜에 依支의지하면 근심만이 생긴다.) 26. 外物(외물, 믿지 못할 世上세상일에 사로잡히지 마라.) 27. 寓言(우언, 親친아버지는 아들의 仲媒중매를 설 수가 없다.) 28. 讓王(양왕, 百姓백성을 위해 百姓백성을 害해치지 마라.) 29. 盜跖(도척, 公子공자 盜跖도척을 說得설득하러 가다.) 30. 說劍(설검, 天子천자의 칼, 諸侯제후의 칼, 庶民서민의 칼) 31. 漁父(어부, 自身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일.) 32. 列禦寇(열어구, 사람들이 따르도록 하는 것은 좋지 않다.) 33. 天下(천하, 道도는 元來원래 하나이다.) |
=====第14章↑
*****(2026.09.15)
* 昊天호천 金春植김춘식 會員회원 提供제공.
| ※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2346〉 |
| ■ 침묵이 말을 한다 ■ |
| - 박노해(1957 ~ ) - |
| 때로 침묵이 말을 한다 사람이 부끄러운 시대 이상이 몸을 잃은 시대에는 차라리 침묵이 주장을 한다 침묵으로 소리치는 말들, 말이 없어도 귓속의 귀로 마음속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목숨의 말들 아 피 묻은 흰옷들 참혹하여라 아직 말을 구하지 못한 이 백치울음 그러나 살아 있는 가슴들은 알지 삶은 불을 잉태하고 있다는 걸 진실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침묵 속에 익어가고 침묵 속에 키워지고 마침내 긴 침묵이 빛을 터트리는 날 푸른 사람들, 소리치며 일어설 것이다 침묵이 말을 한다 침묵이 소리친다 |
| - 1993년 시집 <참된 시작> (창작과 비평사) * 때로는 말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고, 춘추전국시대의 현인 한비자(韓非子)도 ‘모든 화근은 입에서 비롯된다’라며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어쩌면 이 詩에서처럼, 무거운 침묵이 가벼운 웅변보다 더 많은 것을 시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까지 고교 교과서에 수록된 이 詩는, 불합리한 사회에서 침묵하는 민중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뜨거운 소망에 대해 노래한 작품입니다. 이 詩에서는 사상과 표현이 억압당하는 시대 상황을 ‘사람이 부끄러운 시대’라고 말합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독재 세력에 아부하여 입지를 챙기려 하고, 언론 탄압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에서는 차라리 침묵이 올바르게 말을 한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런 시절에도 ‘침묵으로 소리치는’ 뜨거운 소망은 가슴 속에 살아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민중들의 소망은 가슴 속에 뜨겁게 살아 있는 까닭에 희망이 있고, 마침내 소리치며 일어날 것이라고 말이죠. |
| ※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2349〉 |
| ■ 산 산 산 ■ |
| - 신석정(1907 ~ 1974) - |
|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다웁다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 산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더 아름다웁다 언제나 나도 산이 되어 보나 하고 기린같이 목을 길게 늘이어 서서 멀리 바라보는 산 산 산 |
| - 1956년 시집 <빙하> (정음사) * 산지가 70%인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산들이 많습니다. 월악산을 품은 여기 충주는 특히 강폭이 넓은 남한강을 끼고 있어, 주변 풍경이 수려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 까닭에 올해도 햇살 맑은 10월이 되니, 인근의 산을 찾아 주말이면 수많은 차량과 멋진 복장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도로마다 넘치더군요. 이 詩는 높으면서도 넉넉한 산의 자태를 조용히 바라보며, 산을 닮고 싶은 소망을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여기서 중간쯤 인용한 ‘에레나’라는 단어는, 꽃이 아니라 Elena라는 이름의 여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詩에서 산은 크고 작은 온갖 새들과 짐승들, 철 따라 피고 지는 예쁜 꽃들과 나무들, 그리고 그 어떤 존재라도 배제하지 않고 모두 포용하며 감싸주는 아름다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과 같은 넉넉한 사람이 되고픈 간절한 마음에, 기린처럼 목을 길게 빼고 멀리 솟아있는 산들에 눈길을 돌리고 아련히 바라보며 그것을 닮고 싶어 하는 것이겠지요. |
| ※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2350〉 |
| ■ 강 ■ |
| - 구광본(1965 ~ ) - |
|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것 오랜 날이 지나서야 알았네 갈대가 눕고 다시 일어나는 세월 가을빛에 떠밀려 헤매기만 했네. 한철 깃든 새들이 떠나고 나면 지는 해에도 쓸쓸해지기만 하고 얕은 물에도 휩싸이고 말아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것. |
| - 1987년 시집 <강> (민음사) * 어제 모처럼 내린 가을비는 한동안 메마르던 대지를 촉촉이 적시며, 늙은 농부들의 주름진 얼굴을 미소 짓게 하였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는 요즘은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을 따라 길게 펼쳐진 갈대밭이 멋진 풍광을 보여줍니다. 우리 동네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달래강 지류 요도천변도 그중 하나인데. 빼곡한 갈대숲에서 느껴지는 고적한 가을의 정취가 나름 매력적이라 하겠습니다. 이 詩를 읽어보면, 스산한 가을 저녁 언덕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인생을 반추하는 모습입니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시인은 바람에 따라 갈대가 누웠다가 일어나듯, 자신도 부딪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또 떠밀려 헤매이며 살아온 그런 인생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詩는 이처럼 쓸쓸한 가을 강을 통해, 우리의 인생은 결코 혼자 건널 수 없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전해주는군요. |
| ※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2351〉 |
| ■ 산문(山門)에 기대어 ■ |
| - 송수권(1940~2016) - |
|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山茶花)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 물속에 비쳐 옴을. |
| - 1980년 시집 <산문에 기대어> (문학사상사) * 10월도 중순. 쌀쌀한 날씨와 함께 가을 단풍이 짙어지면서 많은 이가 산을 찾아다닙니다. 집에서 가까운 월악산 송계계곡에는 평일에도 등산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사계절 중 가장 운치가 있고 아름다운 건 역시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산이기 때문이겠지요. 이 詩는 가을의 산을 배경으로 죽은 누이를 독백의 형식으로 회상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다소 철학적이며 주관적인 감정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중심어인 산문(山門)은 절의 바깥문을 말하는 것이면서, 단순한 장소가 아닌 과거와 현재의 삶의 기억이 깃든 공간을 포함한다 하겠습니다 시인은 가을날 어느 사찰의 산문에 쓸쓸하게 기대어 연못 속에 비친 산의 그림자(그리메)를 보며, 이미 죽어서 없지만 가을 산에서의 추억이 오롯이 남은 누이 생각에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먼저 떠난 누이를 그리워하며 후세에 다시 만날 것을 쓸쓸히 기원하는 모습이군요. 함께 자란 누이나 형제를 먼저 보낸 사람들에게는 이 詩가, 이 가을을 더욱 시리게 하지 않을까요? |
* 雲林운림 朴弘用박홍용 敎授교수 提供제공.
* 智登지등 辛鐘遠신종원 敎授교수 提供제공.
| 🎎 불교 경전[雜阿 含經잡아 함경] ✨ |
| 남자가 피할 수 없는 먼 길(저승길)을 떠나게 되었을 때, 네 명의 아내에게 각각 동행을 부탁하자 각 아내가 남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아내 (비유: 육체 / 가장 아끼고 늘 곁에 두었던 아내) "가고 싶으면 당신이나 혼자 가든지 하지, 남까지 가자고 할 게 무어란 말이요? 나는 모르니 혼자 가든지 { 평생 동안 가장 애지중지하며 돌보던 육신이지만, 막상 죽음이 찾아오면 단 하루도 함께 가줄 수 없음을 뜻합니다 }. 2. 둘째 아내 (비유: 재물 / 치열하게 고생하며 얻은 든든한 아내)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내가 왜 당신을 따라간단 말이오?" { 피투성이가 되어가며 악착같이 모았던 재산과 부귀영화 역시 죽음의 길에는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음을 뜻합니다 } 3. 셋째 아내 (비유: 일가친척 및 친구 / 늘 다정하게 어울리던 아내)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는 없습니다 { 평소 마음을 나누고 가깝게 지내던 가족이나 친구, 친척들도 슬픔을 함께하며 무덤가(장례식장)까지는 배웅해 주지만, 저승길을 대신 건너줄 수는 없음을 뜻합니다 }. 4. 넷째 아내 (비유: 마음과 생전에 지은 업/카르마 / 평소 박대하고 하녀처럼 대했던 아내)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 살아생전에는 눈여겨보지 않고 소홀히 대했으나,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의 곁을 지키고 저승까지 동행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과 평소에 쌓은 '업적(행실)'뿐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 |
| 나쁜 사람"이라는 말의 어원은 "나뿐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
| 요즘 우리 세상은 나만 좋으면. 우리끼리만 좋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세상살이 쉽지 않다고 하지만, 나만이라도 미소에 여유가 있는 사람, 헤어짐에 아쉬워하는 사람, 원칙보단 예외가 있는 사람, 이기적인 것보단 양보가 있는 사람, 등의 좋은 사람으로 언제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남은 인생 중 가장 짧고 젊은 날입니다. |
| 충고는 쉬워도 경청은 어렵다. |
| 듣기도 전에 가르치고, 묻기도 전에 판단한다. 친구가 하나 둘 떠나는 것도 세월 때문만은 아니다. 내 말만 남고 남의 말은 사라질 때 인연도 조용히 등을 돌린다. 기억하라. 입은 하나지만 귀는 둘이다 하늘이 우리에게 두 배 더 많이 들으라고 준 선물이다. 노년의 품격은 재산이 아니라 듣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끝까지 말을 들어주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모이고, 끝까지자기 말만 하는 사람 곁에는 침묵만 남는다. 이기려고 말하지 말고, 품어 주기 위해 들어라. 당신의 한마디보다 당신의 따뜻한 침묵이 누군가의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많이 아는 사람이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눈물을 끝까지 들어 준 사람이 기억된다. 귀를 열면 사람이 보이고, 마음을 열면 세상이 달라진다. "저 사람은 말을 잘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들어 준 사람이다." |
| 항상 있는 것에 감사하면.. |
| 당신이 누구보다도 행복 하다는 걸 깨닫게 될것입니다. 구두 없는 발을 원망하지 말고 발 있는것에 감사하십시요. 오늘도 내가 건강함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숨 쉴수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누군가를 만남에 감사하고 감사가 넘치다 보면 우리의 삶도 저절로 행복해 집니다 |
| ★ 감동의 글! ★ |
| 인생은 걷는 것으로 시작하여 걷는 것을 멈추면서 마감한다. 1. 나는 걸을 때 명상을 한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장 자크 루소 2. 걸으면 앉아 있을 때 보다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것은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고, 책으로도 얻지 못하는 무언가를 가득 채워주며 버릴 것은 버리게 해준다. 🔹임마누엘 칸트 3.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 🔹프리드리히 니체 4.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 🔹장 폴 사르트르 5. 나는 걸으면서 가장 풍요로운 생각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은 없다. 🔹키에르 케고르 6. 아침 산책은 생각을 일깨워주고 선명하게 확장시킨다. 걸으면서 하는 대화는 이해력을 높이고 사고를 명료하게 만드는 반면 저녁 산책은 마음을 진정시킨다. - 아리스토텔레스 7. 걸어서 여행하는 방법보다 더 매력적 여행은 없다. 🔹빅토르 위고 8. 우리의 나날들을 연장시키는, 즉 오래 사는 최선의 방법은 끊임없이 목적을 갖고 걷는 것이다. 🔹찰스 디킨즈 9. 내 삶을 축복 속에 보내고 싶다면 아침에 일어나 걸어라. 🔹헨리 D. 소로우 10. 모든 운동 중에서 걷기가 최고다. 🔹토머스 제퍼슨 11. 나는 천천히 걷는다. 하지만 절대로 뒤걸음치지 않는다. 🔹에이브러햄 링컨 12. 좋은 약 보다 음식을 먹는 게 더 낫고, 좋은 음식보다 걷는 것이 더 낫다. 🔹허준 그러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요? 사망률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일일 걸음 수는 하루 8763보며, 하루 2600보 걸음 사망 위험 줄인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신체기능이 예전 같지않다. 그러다보니 일부는 산으로, 일부는 헬스장으로, 또 일부는 골프장으로 달려간다. 통상 '하루 만보를 걸으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반갑게도 구체적인 수치로 정리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즉 사망 위험을 줄이는 하루 걸음 수가 몇 보인지 간단하고 구체적인 수치로 정리한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그동안 정설이라고 믿고 있던 1만보 보다 약 1/4정도 적은 2600보만 걸어도 사망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가장 사망률이 크게 감소하는 최적 건강 걸음 수는 의외에도 만보가 아니라 8800보였다. 🔹감동의 글: 인생은 걷는 것으로 시작하여 걷는 것을 멈추면서 마감한다. |
| ♡ 오늘은 어제 사용한 말의 결실이고 내일은 오늘 사용한 말의 열매다. ♡ |
| 말은 뇌세포를 변화시킨다. 말버릇을 고치면 운명도 변한다. 아침에 첫마디는 중요하다. 밝고 신나는 말로 하루를 열자. 밝은 음색(音色)을 만들자. 소리 색깔이 변하면 운세도 변한다. 칭찬은 덕담 중에 덕담이다. 칭찬 습관을 길들이자. 날마다 덕담을 12번씩 해보자. 100일이면 기적이 나타난다. 감사와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하며~ 베풂과 배려로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 曉潭禪師효담선사 李起仁이기인 會員회원 提供제공.
* 李眞國이진국 會員회원님 提供제공.
| ☆ Severance의 유래! (세브란스) ☆ |
| 미국에서 은행에 다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1859년 세계 최초로 석유갱이 발견 되자 친구 Rockefeller(록펠러)와 함께 석유회사를 세웠습니다. 사업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고 그는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고향 '클리블랜드'로 돌아온 그는 새로운 사업을 벌였습니다. 도시 곳곳에 건물을 세우기 시작하였는데, 누구나 갈 수 있는 학교, 병원,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완공된 건물을 시에 기증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Severance(세브란스)입니다. 그는 빈민과 고아를 돌보았던 부모님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평생 자선 활동에 헌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900년의 어느 날 그는 뉴욕 '카네기 홀' 에서 연설을 듣게 되었는데 연사는 당시 조선(대한민국)에서 의료봉사 활동중이던 의사 Avison(에비슨) 선교사 였습니다. 에비슨 선교사는 이렇게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조선에 있는 병원들은 병원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빈약합니다. 간호사도 없이 한 명의 의사가 모든 것을 운영합니다." 이 연설을 들은 세브란스는 흔쾌히 기부했고 4년 후 경성(서울)에 조선 최초의 종합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이 세워졌습니다. 현재 서울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의 모체이며 당시 기부한 금액은 현재 가치로 약 5,000억원 이상 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왕부터 백성까지 누구나 진료 받을 있는 자선병원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세브란스 자신의 주치의 였던 lrving Ludlow(어빙 러들로)도 조선으로 보냈습니다. '어빙 러들로'는 26년 동안 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낙후된 조선의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어빙 러들로'가 미국 본국에 입국한 이듬해, 세브란스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낡은 수첩에는 기부금을 약속한 여러 곳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기금까지 마련해 두었으나, 정작 자신 명의의 집은 한 채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생전에 기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 했다고 합니다. "받는 당신보다 주는 내가 더 행복합니다." 이 얼마나 가슴이 져려오는 감동의 모습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교훈을 몸으로 실천한 성자의 모습이 아닙니까? 은둔의 나라 조선에 세워진 의술의 초석은 이렇게 자신을 비우고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힘이 생기고 커지면서 점점 물질의 바벨탑을 쌓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눔, 섬김과 찾아감을 뒤로한 채 힘, 모음, 움켜쥠에 매달리면서 자기의 성(城 )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
| 🍂 귀한 벗에게 드리는 가을편지 🍂 |
| 살아온 세월(歲月)을 돌아보면 햇살 같던 열정(熱情)도, 가슴 뛰던 사랑(愛情)도 언젠가부터 조금씩 잔잔해집니다. 찬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물드는 지금, 우리의 마음도 자연(自然)처럼 한결 느긋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젊은 날엔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멈춰 서서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그립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사람의 온기(溫氣)는 남습니다. 같이 웃고,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런 벗(朋友)이 있다면 삶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가을 하늘 아래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고, 걷는 길 위에서 바람의 냄새와 낙엽의 속삭임을 듣는 순간, 그 곁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지요. 나이가 든다는 건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이 느낄 줄 알게 되는 것. 이해(理解)가 많아지고, 말보다 눈빛으로 마음을 전하게 되는 것. 그래서 진짜 친구(親舊)는 멀리 있어도 마음이 닿고, 오랜 침묵 속에서도 서로를 알아봅니다. 함께 늙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익어가는 존재(存在)이지요. 혹시 지금,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것 같아 아쉽다면 그건 아직도 마음이 젊다는 뜻입니다. 이 가을, 서로의 이름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감사(感謝)의 인사를 전해봅니다. 남은 날들은 덤(贈증)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두 번째 봄일지도 모릅니다. 🍁 좋은 아침, 당신이라는 귀한 벗에게 가을빛처럼 따뜻한 마음을 보냅니다. 오늘은 그대 마음에도 고운 단풍 한 잎이 내려앉기를— — ‘가을을 닮은 인연(因緣)’ 中 |
| 다나카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은 1965년 봄이었습니다. |
| 한일 국교 정상화 협정이 체결되던 바로 그해였습니다. 서울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그가 받은 인상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가난했습니다. 길거리에는 흙먼지가 날렸고 아스팔트 도로보다 비포장 흙길이 훨씬 많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12년이 지났음에도 도심 곳곳에 허물어진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 남짓, 아프리카 가나보다도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일본 외무성 동료들 사이에서 한국은 이렇게 불렸습니다. "아무리 도와줘도 스스로 일어서지 못할 나라." 다나카 자신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세월이 흐른 뒤 보게 된 풍경은 전혀 다른 나라였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전국을 잇고 있었고 포항에는 세계가 인정하는 거대한 철강 공장이 연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울산 바닷가에서는 세계 최대급 유조선이 바다로 미끄러져 나갔고 서울 도심에는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1965년에 그 흙먼지 날리던 나라가 맞는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2026년, 그 나라의 반도체 기업들이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부품을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 한 기업이 전 세계 인공지능 서버에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의 절반 이상을 만들어냅니다. NVIDIA의 그래픽 처리 장치 안에 들어가는 메모리도 한국산입니다. OpenAI의 ChatGPT가 대답을 내놓을 때마다 그 연산의 핵심을 한국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나카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기적의 씨앗이 어디서 뿌려졌는지를. 그것은 경부고속도로만도 아니었고, 한국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훨씬 더 은밀하고 훨씬 더 결정적이었던 선택들이 있었습니다. 다나카는 만년필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첫 문장을 써 내려갔습니다. "나는 한국에 대해 틀렸다. 일본도 틀렸다. 미국도 틀렸다. 세계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을 그들은 해냈다. 이 기록은 내가 직접 목격했던 그 비밀을 세상에 남기는 고백이다." 빗소리가 조용히 서재를 가득 채웠습니다. 1965년 6월 22일, 도쿄 일본 총리 관저의 한 회의실에서 조인식이 열렸습니다. 한일 기본 조약 그리고 대일 청구권 협정. 식민지배 36년에 대한 한국의 공식적인 청산이 이루어지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의 분위기는 묘하게 엇갈렸습니다. 일본 측 외교관들은 속으로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총 5억 달러의 자금으로 36년의 빚을 정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받아서 뭐라 하겠어요. 먹고 사는 데 쓰다가 다 없어지겠지." 신참 외교관 다나카 겐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조인식 뒤풀이 자리에서 선배 외교관이 건넨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이걸로 한국 문제는 한 세대는 조용해질 거야. 저 돈 다 쓰고 나면 또 와서 손 내밀겠지." 다나카는 그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국 국내 사정은 더 복잡했습니다. 서울 거리에는 협정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대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굴욕 외교'라는 구호가 거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독립운동의 피 값이 고작 5억 달러냐는 분노였습니다. 야당은 협정 무효를 외쳤고 지식인들은 민족의 자존심을 팔았다고 박정희를 맹비난했습니다. 박정희는 그 모든 비판을 침묵으로 견뎠습니다. 그리고 협정이 체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조용히 한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청와대 경제 참모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결정이었습니다. 세계은행도, 미국 국무부도, 심지어 협정을 체결한 일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선택이었습니다. 제철소를 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
| 당시 한국에는 변변한 철강 공장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술도 없었고 인력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습니다. 세계은행은 한국의 제철소 건립 타당성 조사를 의뢰받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국은 철강 산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투자 대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은행은 차관 제공을 거부했습니다. 일본 철강 업계의 반응은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제철 업계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이 제철소를 짓겠다고? 우리도 수십 년 걸린 일인데 지어 봤자 고철 덩어리 될 거야." 그게 일본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었습니다. 다나카도 당시 외무성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고 회고했습니다. "청구권 자금의 제철소 투자 계획은 현실성이 희박하며 한국 정부의 무리한 욕심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박정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청구권 자금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 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이미 마음속에 정해두고 있었습니다. 박정희가 참모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이 돈을 먹는 데 쓰면 한 번 먹고 끝이다. 그러나 공장을 세우면 그 공장이 영원히 돈을 만들어 낸다." 철강은 모든 산업의 쌀이었습니다. 자동차를 만들려면 철이 필요하고, 배를 만들려면 철이 필요하고, 건물을 세우려면 철이 필요합니다. 박정희는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진짜 산업 국가가 되려면 제일 먼저 철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없으면 나머지 모든 것이 모래 위의 집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는 포항을 선택했습니다. 바다와 인접한 입지, 원료 수입과 제품 수출에 유리한 항구 조건. 박정희는 이미 지형을 보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공장 하나를 짓겠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국 산업화의 심장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다나카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때 우리는 박정희가 단순히 돈을 쓰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돈이 아니라 나라의 구조를 설계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5억 달러 중 상당 부분이 포항 한 곳에 집중됐습니다. 주변에서는 무모하다고 했고 전문가들은 실패를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단이 옳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에 온 세상이 확인하게 됩니다. 1970년 4월 1일 경상북도 포항 영일만 바닷가, 갈대밭과 모래사장밖에 없던 황량한 해변에서 포항제철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습니다. 단상에 선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습니다. 축제 분위기라기보다는 전쟁터에 나서는 장수의 얼굴에 가까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었습니다. 세계은행은 이미 차관을 거부했고 당초 협력하기로 했던 서방 철강 기업들은 하나둘 손을 떼고 있었습니다. 자금도 빠듯했고 기술도 없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수근댔습니다. "저 나라 망한다." 바로 그 시점에 박정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냈습니다. 일본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공식 외교 채널이 아니었습니다. 조용하고 은밀한 방식이었습니다. 박정희의 지시를 받은 박태준은 일본 제철 업계의 퇴직 기술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이미 현장 경험을 쌓은 숙련 기술자들, 정년퇴직을 앞두었거나 이미 퇴직한 엔지니어들이 대상이었습니다. 제안은 단순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제철소를 함께 지어달라." 처음에는 거절이 많았습니다. 아직 전쟁의 기억이 생생한 시절이었고 한국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박태준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설득하고 조건을 높이고 다시 찾아갔습니다. 결국 수십 명의 일본인 기술자들이 포항행을 결심했습니다. |
| 다나카 겐지는 이 사실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습니다. 당시 그는 부산 주재 일본 영사관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상부로부터 이상한 보고를 접했습니다. 일본인 기술자들이 포항 공사 현장에 다수 투입되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나카는 직접 현장을 확인하러 포항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가 목격한 장면은 충격이었습니다. 공사 현장 곳곳에서 일본인 엔지니어들이 언어가 달랐지만 손짓발짓으로, 때로는 쪼그려 앉아 흙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기술을 전수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인 기술자들은 메모지가 부족하면 손바닥에까지 받아적었습니다. 다나카는 그 장면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회고했습니다. 경쟁심도 아니었고 적대감도 아니었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습니다. 일본이 수십 년에 걸쳐 싸워온(쌓아온) 기술이 바로 코앞에서 다른 나라의 것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일본인들의 손으로 직접. 그러나 그것이 박정희의 계산이었습니다. 단순히 설계도를 가져오는 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철강 기술은 도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물을 다뤄본 사람의 몸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수천 도의 열기 앞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설비가 삐걱거릴 때 어디를 먼저 봐야 하는지, 그것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기술은 사람 안에 있다. 그러니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 포항제철 현장에서 한국인 기술자들은 단순히 일을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인 기술자 한 명이 한국인 기술자 서너 명을 밀착 지도하는 방식으로 운영됐습니다. 일본인이 떠나고 나면 그 기술이 한국인 몸속에 완전히 남아 있도록 하는 구조였습니다. 박태준은 이것을 두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기술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결과는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1973년 포항제철 1기 설비가 완공됐을 때 전 세계 철강 전문가들이 경악했습니다. 세계은행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제철소가 예정보다 빠르게, 높은 품질로 완공되자 철강 업계 관계자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다나카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들이 기술을 흉내 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술을 소화했다. 흉내와 소화는 전혀 다른 것이다. 흉내는 따라 하는 것이고 소화는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포항에서 나는 그 차이를 처음으로 목격했다." 그리고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박정희가 포항제철에서 실험한 이 방식, 즉 외국의 기술자를 불러 현장에서 함께 일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인 기술자가 기술을 온몸으로 흡수하게 하는 방식은 이후 조선, 자동차, 전자 산업으로 그대로 이식됩니다. 그리고 훗날 반도체 산업에서도 같은 방식이 반복됩니다. 오늘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정상에 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천재가 나타나서 이룬 일이 아니었습니다. 포항 영일만 해변에서 한국인 기술자가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던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다나카는 펜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다음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아직 써야 할 이야기가 훨씬 더 남아 있었습니다. 1973년 1월 서울,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화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철강에 이어 조선, 자동차, 기계, 전자, 화학까지 한국이 이 모든 산업을 스스로 일으키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서울 주재 외국 외교관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습니다. 다나카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다들 황당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아직 포항제철도 완공되지 않은 나라가 무슨 중화학공업이냐는 반응이었습니다. |
| 워싱턴의 반응은 더 직접적이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즉각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한국이 중화학공업에 집중 투자할 경우 재정 불균형과 인플레이션이 심해져 경제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세계은행도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한국의 비교 우위는 저임금 경공업에 있다. 중화학공업은 한국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다." 일본의 속내는 더 복잡했습니다. 다나카는 당시 외무성 내부에서 오간 전문 내용을 회고록에서 조심스럽게 언급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무리한 산업화 계획에 우려를 표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국이 중화학공업에 성공한다면 일본의 핵심 수출 산업과 직접 경쟁하게 된다는 위기감이었습니다. 조선은 일본의 최대 수출 산업 중 하나였고 철강과 자동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이 잘 되면 일본에 위협이 된다.' 외교적으로 말할 수 없었던 속내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이 모든 압박을 정면으로 무시했습니다. 그에게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습니다. 경공업으로는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발과 가발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 봤자 그것은 영원히 하청일 뿐, 스스로 공장을 짓는 나라가 되어야 했습니다. 박정희가 당시 경제 참모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의 충고를 듣고 부자가 된 예는 역사에 없다." 그것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포항제철에서 검증된 자신감이었습니다. 세계은행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포항제철이 완공됐습니다. 일본이 비웃었던 한국 기술자들이 쇳물을 뽑아냈습니다. 박정희는 그 경험에서 하나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전문가들의 반대는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뚫고 나가야 할 장벽이다.' 중화학공업화는 속도전이었습니다. 울산에는 현대조선소가 들어섰습니다. 허허벌판이었던 울산 미포만이 세계 최대 조선소 부지로 변해갔습니다. 거제에도 조선소가 건설됐습니다. 창원에는 기계공업 단지가 조성됐고 여수에는 석유화학 단지가 세워졌습니다.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사판이었습니다. 다나카는 이 시기를 취재하기 위해 남부 공업지대를 직접 순회했습니다. 포항은 일본의 도움이라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현대조선소는 달랐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배 한 척 만들어 본 적 없는 상태에서 영국의 배 주문을 먼저 따내고 조선소 건설을 나중에 시작했습니다. 주문을 받아놓고 공장을 지은 것이었습니다. 다나카는 이 사실을 알고 한동안 말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오직 무서운 배짱과 속도로만 가능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짱 뒤에는 박정희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정부가 금융을 밀어줬고 인력 양성을 지원했으며 외교적으로 수출 시장을 개척해 줬습니다. 국가가 기업의 등을 밀고 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뛰어드는 구조. 다나카는 그것을 보면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산업화가 아니다. 이들은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반대했던 중화학공업 선언 후 1980년대 한국은 세계 5위권의 조선 강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본 조선업계는 한국의 물량 공세에 밀려 시장을 내주기 시작했습니다. 워싱턴의 경제학자들은 한국 사례를 설명할 새로운 이론을 찾아야 했습니다.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은 한국이 아니었습니다. 조언을 건넸던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1977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이 열렸습니다. 기능올림픽은 전 세계 청년 기능인들이 용접, 선반, 전자, 배관, 자동차 정비 등 수십 개 직종에서 기술을 겨루는 대회입니다. 올림픽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당시 국제사회에서 그다지 주목받는 행사는 아니었습니다. 선진국들도 형식적으로 참가하는 수준이었고 언론의 관심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상식이 끝나고 난 뒤 대회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
| "한국이 또 1위를 했다." '또'라는 표현이 핵심이었습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이미 우승을 수년째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압도적인 점수 차로. 선진공업국들인 독일, 일본, 스위스를 제치고 한국 청년들이 금메달을 쓸어담고 있었습니다. 다나카 겐지는 해마다 일본 대표단의 참관인 자격으로 위트레흐트에 와 있었습니다. 시상대에 태극기가 올라가는 장면을 보면서 그는 처음에는 단순한 의문을 품었습니다. '한국이 왜 이 대회에서 이렇게 강한 것인가?' 그런데 귀국 후 조사를 해보니 단순한 의문이 충격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국제기능올림픽을 국가 전략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대회가 열리기 수년 전부터 전국의 직업훈련원과 공업고등학교에서 선수를 발굴하고 합숙 훈련을 시키고 국비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이미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금메달리스트에게는 병역 혜택이 주어졌고 귀국 후에는 대기업 특채가 보장됐습니다. 기술자가 영웅 대접을 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박정희의 구상이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기능올림픽을 진짜 올림픽처럼 대했습니다. 금메달리스트가 귀국하면 카퍼레이드가 열렸습니다. 청와대에 초청되어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습니다. 신문 1면에 얼굴이 실렸습니다. 대학 진학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에 박정희는 '손으로 일하는 사람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온 나라에 던진 것이었습니다. 다나카는 이 구조를 파악하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대회 준비가 아니었습니다. 박정희는 기능올림픽을 통해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실제 산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최적의 기술 인력을 전국적으로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것, 또 하나는 기술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기술자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공부 못 하면 공장 간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박정희는 그 인식을 뒤집으려 했습니다. '국가가 기술자를 영웅으로 만들면 젊은이들이 기술을 선택한다. 젊은이들이 기술을 선택하면 공장이 돌아간다. 공장이 돌아가면 나라가 산다.' 그것은 단순한 포상 정책이 아니었습니다. 인력을 설계하는 국가 전략이었습니다. 다나카는 귀국 후 외무성 보고서에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한국의 기능올림픽 전략은 단순한 대회 성적 관리가 아니다. 이것은 산업 인력 양성 시스템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은 지금 미래의 공장 노동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술 엘리트를 키우고 있다." 그 보고서는 외무성 서랍 속에서 잠들었습니다.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나카는 알았습니다. 기능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스무 살 한국 청년들이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자리에 서 있을지를. 그들이 포항제철의 현장 공장장이 되고, 현대조선소의 기술 책임자가 되고, 그리고 언젠가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공정 엔지니어가 될 것이라는 것을. 기능올림픽 금메달이 반도체 공장으로 이어지는 그 길을 박정희는 1970년대에 이미 닦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정상에 선 배경에는 수십 년에 걸쳐 손기술을 연마한 수만 명의 현장 기술자들이 있습니다. 그 기술자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의 기적은 영원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나카는 그것을 위트레흐트 시상대 앞에서 처음으로 어렴풋이 감지했습니다. 태극기가 올라가는 시상대를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수첩을 꺼내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
| "한국은 지금 사람을 만들고 있다." 1971년 봄 서울, 박정희 대통령은 조용히 하나의 결정을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포항제철 기공식이 열린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제철소 건설에 매달려 있던 그때, 박정희는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쇳물을 뽑아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쇳물을 설계하는 사람, 공장을 설계하는 사람, 산업 자체를 설계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한국과학원, 훗날 카이스트(KAIST)로 불리게 될 기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대학원 하나를 세운 것처럼 보였지만 들여다보면 전혀 달랐습니다. 카이스트는 처음부터 일반 대학과 다른 원칙 위에 세워졌습니다. 등록금 전액 면제, 생활비 지원, 병역 혜택, 미국 수준의 연구 환경. 당시 한국 어디에도 없던 조건이었습니다. 박정희의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 과학자들을 데려오는 것.' 당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스탠퍼드 대학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 등에는 수백 명의 한국인 이공계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한국에는 변변한 연구 장비도 없었고 연구비도 없었으며 안정된 지위도 없었습니다. 박정희는 그 조건을 통째로 바꿨습니다. 직접 특사를 파견했습니다. 미국 현지에서 한국인 과학자들을 개별 면담했습니다. 설득이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반신반의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내건 조건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믿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실제로 귀국한 과학자 중 일부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것을 고려해 미국 영주권을 유지한 채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카이스트 초대 교수진에는 미국 유수 대학에서 연구하던 한국인 박사들이 대거 포함됐습니다. 연구실에는 당시 한국 일반 대학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최신 장비가 들어왔습니다. 정부가 직접 연구비를 지원했습니다. 학생들은 전원 장학금을 받으며 오직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다나카 겐지는 카이스트 설립 소식을 외무성 보고서를 통해 뒤늦게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개발도상국들이 흔히 하는 이공계 대학 설립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 카이스트 출신 연구자들이 실제 산업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다나카의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포항제철의 공정 개선에 카이스트 출신 연구자가 투입됐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엔진 개발팀에도 같은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단순히 외국 기술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선하고 독자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다나카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포항제철이 한국의 손을 만들었다면 카이스트는 한국의 머리를 만들었다. 손과 머리가 결합되는 순간 한국은 더 이상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카이스트 졸업생들은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현대자동차 기술연구원, 포항공과대학교 등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들이 쌓은 연구가 한국 산업의 기술 수준을 한 단계씩 끌어올렸습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나노 공정 반도체를 양산하고 SK하이닉스가 전 세계 인공지능 서버에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를 독점 공급하는 배경에는 이 인재들의 계보가 있습니다. 그 계보의 뿌리가 1971년 봄 박정희의 결단이었습니다. 다나카는 회고록을 쓰면서 한 가지 사실에 새삼 놀랐다고 했습니다. 박정희가 카이스트를 세운 것은 포항제철 기공식 이듬해였습니다. 중화학공업 선언보다도 2년이나 앞선 시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박정희는 공장을 짓기 전에 공장을 움직일 인재부터 만들고 있었습니다. 보통의 지도자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짓습니다. 도로를 깔고 공장을 세우고 건물을 올립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지식과 기술, 그것이 수십 년 뒤에 가장 강력한 국가 자산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
| 다나카는 펜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 주재하던 시절 박정희를 독재자로만 봤습니다. 철권통치, 유신헌법, 언론 탄압,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람은 다른 눈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의 손을 키우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두뇌들을 불러 모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미래를 조용히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그 두 가지가 한 사람 안에 있었다는 것이 다나카에게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1979년 가을 도쿄, 한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해 있었습니다. 14년, 그가 한국에 머문 시간이었습니다. 서른도 안 된 청년 외교관으로 첫발을 디뎠던 나라를 마흔 중반의 나이에 떠난 것이었습니다. 귀국 후 그는 아시아 담당 과장으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업무 중 하나는 한국의 산업 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보고서를 검토하면 할수록 다나카는 이상한 감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가 예상과 달랐습니다. 아니, 예상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일본 철강 업계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포항제철이 단순히 일본산 철강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품질과 가격 양쪽에서 일본 제품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업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대조선과 대우조선이 일본 조선소들의 수주 물량을 빠르게 잠식해 가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시장 지위가 불과 몇 년 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나카가 더 주목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일본의 산업 구조를 참고하되 한국의 방식으로 재설계하고 있다는 느낌이 보고서 곳곳에서 감지됐습니다. 일본은 산업을 키울 때 수십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올라갔습니다.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중공업에서 첨단 산업으로, 한 단계를 충분히 소화한 뒤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이 상식이었고 교과서였습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그 단계를 압축했습니다. 경공업과 중공업을 동시에 밀어붙이면서 이미 전자 산업과 반도체 산업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카이스트에서 키운 연구 인력이 반도체 분야에 투입되기 시작했고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1970년대 말의 일이었습니다. 다나카는 당시 작성한 내부 보고서 초안을 회고록에서 언급했습니다. "한국은 현재 일본 산업 구조의 복사본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일본이 올라온 계단을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넓게 오르려 하고 있다. 특정 산업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하는 시점이 반드시 온다." 그 보고서는 상부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외무성 분위기에서 그런 내용은 지나친 비관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설마 한국이…'라는 정서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다나카는 초안을 서랍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30년이 넘도록 꺼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초안대로 흘러갔습니다. 1983년 삼성전자가 64K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에 한국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습니다. 일본 반도체 업계는 처음에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 코웃음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반도체 기술은 믿기 어려운 속도로 일본을 추격했고 결국 추월했습니다. 다나카는 그 과정을 도쿄에서 지켜봤습니다. 그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기술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정체였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의 기술자들이 현장 공정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포항제철에서 쇳물을 다뤘던 경험이 반도체 공장의 정밀 공정 관리로 이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설계 아래 연결된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설계를 그린 사람이 박정희였습니다. |
| 다나카는 그제야 이해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두려워한 이유가 단순히 한국이 잘 따라와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일본이 진짜 두려워한 것은 한국이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따라오는 나라가 아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앞서가기 시작한 나라, 그것이 일본이 가장 두려워한 한국의 진짜 모습이었습니다. 다나카는 서랍에서 꺼낸 30년 전 보고서 초안을 다시 펼쳐봤습니다. 빛바랜 종이 위의 문장들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실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그는 그 초안을 회고록의 마지막 부록으로 첨부하기로 했습니다. 30년 전에 상부에 올리지 못했던 그 문장들을 이제 세상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2019년 가마쿠라, 비가 완전히 그쳤습니다. 서재 창문으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습니다. 다나카 겐지는 책상 위에 펼쳐진 원고지 묶음을 바라봤습니다. 몇 달에 걸쳐 써 내려온 회고록이었습니다. 빽빽하게 채워진 글자들, 그 안에는 그가 평생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장만 남았습니다. 다나카는 만년필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오래 생각했습니다. 그는 외교관이었고 평가는 역사학자의 몫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76세의 나이에 이르러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본 것에 대한 솔직한 판단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박정희는 독재자였다. 그 사실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자유를 억압했고 반대자를 탄압했으며 헌법을 자신의 뜻대로 바꾸었다. 그것은 역사가 기록해야 할 과오이고 피해자들이 잊어서는 안 될 상처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도 사실이다.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던 나라를 믿었다.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그는 가능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반대했을 때 전문가들의 논리를 넘어섰다. 철모를 다루는 기술자를 영웅으로 만들었고 두뇌를 가진 과학자는 조국으로 불러들였으며 손과 머리가 함께 움직이는 나라를 설계했다. 그 설계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다나카는 펜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창밖 멀리서 바람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마쿠라의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바람소리를 들으며 오래전 포항의 영일만을 떠올렸습니다. 갈대밭과 모래사장뿐이던 황량한 해변, 그곳에서 기공식 단상에 서 있던 박정희의 굳은 표정, 그리고 몇 년 뒤 그 자리에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용광로의 붉은 빛. 그 장면들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다나카는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회고록의 진짜 마지막 문장을 적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14년을 살았다. 처음에는 그 나라를 얕보았고, 나중에는 두려워했으며, 마지막에는 존경하게 되었다. 한 나라가 한 세대 만에 이런 일을 해낸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한국을 통해 처음으로 배웠다." 만년필이 원고지 위를 마지막으로 미끄러졌습니다. 다나카는 원고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의 낡은 봉투를 집어 서랍 안에 다시 넣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습니다. 회고록 안에 모두 담겼습니다. 세상에 내놓을 준비가 됐습니다. 그는 창가로 걸어갔습니다. 저녁 햇살 속에 가마쿠라의 지붕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손녀의 목소리가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 한국이 왜 이렇게 잘 살게 됐어요?" |
| 이제 그는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포항 영일만 해변의 흙먼지 속에서 시작됐습니다. 일본인 기술자의 손짓을 손바닥에 받아적던 한국인 기술자의 땀 속에서 자랐습니다. 위트레흐트 시상대에서 태극기를 바라보던 스무 살 청년들의 눈빛 속에서 단단해졌습니다. 미국에서 영주권을 손에 쥔 채 조국으로 돌아온 과학자들의 결단 속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 인공지능 서버 안에서 한국이 만든 반도체가 쉼 없이 연산하고 있습니다. 박정희라는 이름 앞에는 반드시 물음표가 따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역사의 공과는 하나의 자로 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아무도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을 때 그는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50년 뒤에 결실을 맺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들으신 여러분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만약 그 시절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세계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할 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셨겠습니까? 전문가들이 반대하고 우방국이 만류하고 국내에서도 반발이 쏟아질 때 그 외로운 결단의 자리에 섰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한마디가 이 채널을 이어가는 힘이 됩니다. 오늘 '해외 감동 사연'에서는 전직 일본 외교관 다나카 겐지의 시선을 빌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박정희의 네 가지 결정적 유산을 살펴봤습니다. 대일 청구권 자금 5억 달러를 소비가 아닌 포항제철이라는 산업의 심장으로 만든 결단 기술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 기술자를 직접 불러들여 한국인의 몸에 이식한 방식 국제기능올림픽을 국가 전략으로 운영하며 손으로 일하는 기술자를 영웅으로 만든 인력 설계 공장을 짓기 전에 카이스트를 먼저 세워 미국 유학파 과학자들을 불러들인 50년짜리 두뇌 설계 결정들이 오늘날 전 세계 인공지능 시대를 이끄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뿌리가 됐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시작됩니다. 감사합니다. |
* 晩霞만하 丁海崙정해륜 敎授교수 提供제공.
- 💥저작권등록💥 '장자의 텅 빈 마음, 그 쓸모에 대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1Modm7hFZMU
| 도쿄도 밀어낸 ‘여행하기 좋은 세계 최고 대도시’ 1위 주인공은 서울···“서로 다른 매력 누릴 수 있는 곳” https://www.khan.co.kr/article/202610080923001#ENT |
* 洞玄先生동현선생 南宇植남우식 會員회원 提供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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