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1942~2016)의 라이벌로 일세를 풍미했던 전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 조지 포먼이 21일(현지시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고 유족이 고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사망 원인을 알리지 않았는데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유족은 전했다.
야후 스포츠의 블로그 '무관의'(Uncrowned)에 따르면 고인은 평균적인 복싱 명예의전당 헌액자들과 다른 유산을 남겼다. 그가 거둔 통산 성적은 81전 76승(68KO) 5패로 알리 전적의 곱절이었다. 그만큼 복싱 역사에 드물게 그는 링 위에서 오래 버텼다. 영국 BBC는 전 세계 복싱 팬들이 고인을 추모한다며 문자들을 중계했다.
그는 1974년 복싱 역사에 가장 유명한 대결이었던 알리와의 헤비급 타이틀 매치에서 져 알리를 일약 영웅으로 만든 역사적 패배로 유명했다. 챔피언 벨트를 내준 뒤 은퇴하고 목사로 일하다 10년 뒤 전설적인 복귀전을 치른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아무나 못하는, 엄두도 못 내던 일이었는데 챔피언 벨트를 다시 두른 뒤 은퇴해 케이블 채널 HBO 해설위원으로 활약했다. 복싱 팬이 아닌 사람이라도 그를 알고 자석에 이끌린 듯 응원했다.
1949년 1월 10일 텍사스주 마셜에서 철도 건설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인이 된 뒤에야 친부가 리로이 무어헤드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어린 시절 남을 괴롭히고 길거리 강도 짓을 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공개했다. 학교를 중퇴한 후 열일곱 살에 권투를 시작했다.
처음 대중의 눈에 들어온 것은 1968년 멕시코시티 하계올림픽 헤비급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기량을 뽐내며 금메달을 땄을 때였다. 결승에서 소련 대표 이오나스 세풀리스를 캔버스에 뉘어 버렸다. 이듬해 프로로 전향해 3년 넘게 37연승을 내달린 끝에 처음 타이틀 매치에 나섰다.
상대는 프레지어로 전성기 정점이었다. '스모킹 조'는 금방 "세기의 대결"에서 알리를 격퇴한 상태로 재대결이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알리를 누른 켄 노튼을 만나 역시 물리쳤다. 포먼은 2라운드에서 프레이저를 여섯 차례나 캔버스에 누인 다음 TKO 승을 거뒀다.
포먼은 무패를 달리고 있어서 1974년 자이르의 킨샤샤(지금의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열린 타이틀 매치에서 무난하게 알리를 누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알리보다 일곱 살 어려 힘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리는 화려한 쇼맨십을 겸비하고 있었고 포먼을 요리조리 피하며 로프를 이용하고 엉기는 전술을 구사해 챔피언이 스스로 지치게 만들어 약점을 보이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알리가 8회 KO로 이겼다.
프로 첫 패배를 당한 포먼은 이를 갈며 재대결을 꿈꿨지만, 알리가 은퇴해 버렸다. 포먼은 1977년 지미 영에게 패배하자 은퇴했다.
라커룸에서 죽음과 비슷한 쓰라림을 맛본 포먼은 다시 태어나 전도사가 됐다. 그는 휴스턴의 주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며 새로운 삶에 행복해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1987년 충격적인 복귀 소식을 전했다. 서른여덟 살로 당대 챔피언들의 삼촌이나 아버지 나이였다. 에반더 홀리필드, 토미 모리슨과 격돌했지만 연거푸 지고 말았다.
해서 자신이 챔피언 벨트를 내준 마이클 무어러와 맞붙어 WBA와 IBF 벨트를 되찾았다. 이때 나이가 마흔다섯이었다. 역대 최고령 복싱 챔피언이었으며, 버나드 홉킨스(2011년 마흔여섯 살)에 이어 모든 체급을 통틀어 두 번째로 나이 많은 타이틀 보유자였다. 그렇게 해서 마흔여덟 살에 진짜 은퇴를 했다.
HBO 해설위원으로 링사이드를 지키면서 그는 전기 그릴로 더욱 이름을 알렸다. 자신이 기름기를 쫙 빼는 전기 그릴을 발명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의 이름을 넣은 조지 포먼 그릴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복서로 벌어들인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모았다. 1999년 샐튼 사는 그릴에 포먼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전 세계 권리에 1억 3750만 달러(약 2000억원)를 지불했는데 그는 이 중 약 75%를 챙겼다.
고인은 또 ABC가 방영한 시트콤 ‘조지’에서 은퇴한 권투 선수를 연기하며 문제가 있는 청소년을 도왔다.
여섯 씨붙이 중 한 명으로 태어난 고인은 네 차례(다섯 차례란 기록도 있다) 결혼해 열두 자녀를 둔 것으로도 이름짜 했는데 아들들 모두 '조지 주니어'부터 '조지 6세'까지 본인 이름이 들어가게 지었다. 고인은 공통점이 많아서라고 이유를 대면서 "녀석들에겐 '우리 중 하나가 일어나면 우리 모두 함께 일어선다. 누구 하나가 앉으면 우리 모두 함께 앉는 거다'라고 얘기했다"며 껄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