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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8일
130년 만의 우주쇼, 금성 ‘미니 일식’
우리나라에서 130년 만에 금성이 태양을
지나가는 우주쇼가 펼쳐진다. 한국천문
연구원은 3일 “오는8일 오후2시12분부터
금성이 태양 앞면을 가로질러 통과한다”고
밝혔다. 달이 태양을 가려 태양의 일부가
검게 변하는 일식과 같은 원리이지만, 금성
의 크기가 워낙 작아 작은 점이 태양
표면을 지나가는 ‘미니 일식’이 될
전망이다.
천문연 김봉균 박사는 “금성의 겉보기
크기는 태양의 약 32분의 1로, 플로피
디스켓 속의 필름과 같이 태양빛을 차단할
수 있는 필터를 이용하면 태양에 작은 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망원경에 직접 눈을 대고 보면 실명(失明)
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금성의 미니 일식은 태양과 금성, 지구가
일직선이 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금성은
584일마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하지
만, 실제로 미니 일식은 약 243년에 4번
정도 일어나는 희귀한 현상이다. 김 박사는
“이는 금성의 궤도면이 지구의 궤도면과 약
3.4도 정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874년 12월 9일 이후
130년 만에 처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130년 만에 금성이 태양을 지나가는 우주쇼가 펼쳐진다. 한국천문연구원은 3일 “오는 8일 오후 2시12분부터 금성이 태양 앞면을 가로질러 통과한다”고 밝혔다. 달이 태양을 가려 태양의 일부가 검게 변하는 일식과 같은 원리이지만, 금성의 크기가 워낙 작아 작은 점이 태양 표면을 지나가는 ‘미니 일식’이 될 전망이다.
천문연 김봉균 박사는 “금성의 겉보기 크기는 태양의 약 32분의 1로, 플로피 디스켓 속의 필름과 같이 태양빛을 차단할 수 있는 필터를 이용하면 태양에 작은 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망원경에 직접 눈을 대고 보면 실명(失明)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금성의 미니 일식은 태양과 금성, 지구가 일직선이 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금성은 584일마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하지만, 실제로 미니 일식은 약 243년에 4번 정도 일어나는 희귀한 현상이다. 김 박사는 “이는 금성의 궤도면이 지구의 궤도면과 약 3.4도 정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874년 12월 9일 이후 130년 만에 처음 일어나는 현상이다.
▶2015년 통 대통령·굽타 박사
‘선학평화상’ 첫 수상자로
▶2015년 이윤자 주부교실
중앙회 명예회장 별세
▶2009년 가봉의 오마르 봉고
대통령 사망
▶2009년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쓰지
노부유키, 반 클라이번 국제콩쿠르 공동우승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일본의 스무 살 피아니스트 쓰지 노부유키(20)가 2009년 6월 8일(한국 시각) 미국 텍사스주의 포트워스에서 폐막한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1962년 시작돼 올해 13회를 맞은 이 콩쿠르는 4년마다 열리며 미국 최고의 피아노 경연대회로 꼽힌다. 시각 장애 연주자가 이 콩쿠르 본선에 진출한 것은 1973년 주디스 워커(Walker)가 마지막이었지만 그는 당시 2차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6일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쓰지는 지휘자 제임스 콘론의 부축으로 천천히 무대 위로 입장했다. 이 날 그의 연주는 콩쿠르 결선이 열린 바스 홀(Bass Hall)을 가득 메운 2000여 청중뿐 아니라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 수십만명의 네티즌에게도 퍼져 나갔다. 청중은 기립박수를 보냈지만 그는 그 객석을 바라볼 수 없었다.
다음 날 결선 리사이틀에서도 그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 2악장에서 단순하고 소박한 선율로 출발해서 서서히 감동을 전파시켰다. 그는 콩쿠르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된 네티즌 투표에서 결선 진출자 6명 가운데 2위에 오를 정도로 강한 지지를 받았다.
쓰지는 4세 때 어머니가 건네준 쇼팽의 폴로네즈 음반을 듣고 장난감 피아노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루 4~8시간씩 연습을 거르지 않았으며 7세 때 일본 시각 장애 학생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12세에는 도쿄 산토리홀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2007년 일본의 에이벡스(AVEX)음반사에서 두 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음반사의 권유로 이번 콩쿠르에 출전했다. 이번 대회 연주자 소개에 “음악 앞에는 어떤 장벽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믿음” 이라고 썼던 쓰지는 인터뷰에서 “피아노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 즐거웠을 뿐 결선에 오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고 말했다.
이번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는 중국의 19세 피아니스트 장 하오첸이 쓰지와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했으며, 한국의 손열음(23)이 2위와 최고 실내악 연주상을 수상했다.
▶2003년 고대 이집트 ‘미(美)의 화신’
네페르티티 왕비 미라 발견
네페르티티 흉상에 한쪽 눙동자가 없는 이유?
네페르티티(Nefertiti· 기원전 약 1370~1330)는 이집트 제18왕조의 열 번째 왕으로 재위했던 아케나톤의 왕비다. 투탕카멘의 양어머니이자 장모였던 그녀는 아케나톤 사후에 파라오로 즉위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의 권력자였다.
'미인이 왔다'는 뜻의 이름에 걸맞게 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로 손꼽히는 네페르티티의 명성은 20세기 초에 발굴된 이 흉상<사진>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황갈색 피부, 탄탄한 윤곽의 긴 목, 날렵한 턱선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는 단순히 겉모습의 미모에 그치지 않고 지위에 어울리는 고상함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강인한 여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완벽한 미인인 그녀의 상(像)에는 특이하게도 왼쪽 눈동자가 없다. 조각가인 투트모세가 일부러 비워두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왕과 왕비는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았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육체가 죽더라도 영혼, 즉 '카'는 신들의 세계로 되돌아갈 뿐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따라서 무덤에 부장품으로 매장되는 상들은 오늘날처럼 박물관에 진열하고 감상하는 미술품이 아니라 영원불멸한 '카'가 깃들어 있는 신성한 존재였던 것이다.
투트모세의 작업실에서 발견된 이 상은 그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습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당연히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눈동자를 찍어 얼굴이 완성되는 순간, 이 상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신'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치 손을 대면 온기와 호흡이 느껴질 듯 생생한 이 상에 '화룡점정(畵龍點睛)'했더라면, 네페르티티는 그 자리에서 하늘로 날아올라 신들의 세계로 되돌아갔을지도 모른다.
▶2001년 일본의 30대 정신병 환자,
초등학교서 난동을 부려 학생 8명 사망
▶2000년 불교 조계종 원로회의장
탄성 스님 입적
불교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탄성 스님(70)이 2000년 6월 8일 충북 괴산 공림사 감인선원에서 참선 중 입적했다. 탄성 스님은 청계사-법주사 주지를 역임했고 지난 1994년 불교개혁 때 개혁회의 상임위원장 겸 총무원장을 맡았다. 탄성 스님은 1990년대 두 차례의 조계종 개혁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지난 1994년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3선 시도로 조계종이 분규에 싸였을 때 젊은 승려들에 의해 개혁회의 상임위원장 겸 총무원장으로 추대돼 개혁 과정을 이끌었다. 1994년 말 송월주 총무원장이 선출되자 산으로 돌아갔던 탄성 스님은 1998년 말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싸고 `정화개혁회의`가 총무원을 점거하자 전국승려대회 대회장을 맡아 다시 전면에 나섰다.
탄성 스님은 1945년 3월 계룡산 갑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세상을 떠난 월산 전 불국사조실과 월주 전 총무원장, 월탄 전 법주사주지, 설조 전 불국사주지 등이 그와 절 집안 형제로 조계종의 대표적인 문중 중 하나이다. 탄성 스님은 지난 1981년 폐사나 다름없던 괴산 공림사에 선원을 재건한 후 주로 이곳에 머물며 수행에 몰두했다. 그는 1997년 조계종 원로의원이 됐으며 1999년 혜암 원로회의의장이 종정으로 추대되자 그 후임으로 선임됐다.
▶1997년 시인 박재삼씨 별세
▶1994년 구총독부건물 해체결정
▶1990년 이츠하크 샤미르가 주도하는
리쿠드당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우익연정 구성
▶1990년 제14회 월드컵
이탈리아서 개막
▶1989년 소련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
작품, 15년 만에 소련에서 해금
▶1986년 쿠르트 발트하임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당선
▶1985년 헝가리에서 최초의
복수입후보제에 의한 의회선거
▶1984년 일본 법원, 지문날인 거부한
한국인과 미국인에 유죄판결
동경 지방법원이 1984년 6월 8일 외국인등록법이 정한 지문날인을 거부한 한국인과 미국인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요코하마 지방법원도 6월 14일 지문날인을 거부한 미국 국적의 대학강사에 벌금 1만엔의 유죄판결을 선고했다.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문을 날인하는 것은 개인의 존엄을 인정한 헌법 13조에 위배되며, 범죄용의자처럼 지문을 채취하는 것은 국제인권규약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지문날인은 1952년에 공포-시행된 외국인등록법에 근거하고 있다. 그 법은 1년 이상 체류하는 16세 이상의 재일외국인에게 외국인등록증을 휴대케 하고 5년마다 교체토록 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만엔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일외국인에 대한 일본의 지문날인 제도가 국제인권규약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1982년 이스라엘군 베이루트이남
전해안 장악
▶1981년 이스라엘기, 이라크 원전 폭파
▶1979년 이란 전은행을 국유화
▶1976년 한국 신무용이 형성되는데 많은
영향을 준 무용가 조택원 사망
▶1972년 베트남 소녀 킴 푹 양, 미군
네이팜탄에 전신 3도 화상
1972년 6월 8일 베트남전 당시 네이팜탄
에 의해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채 알몸으
로 달아나던 9세 소녀 킴 푹 양(가운데)의
울부짖는 모습.
1972년 6월 8일, 미군 전투기가 베트남 사이공 근교 트랑 방 마을에 네이팜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쓰러졌고 마을은 불바다가 됐다. 그때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채 알몸으로 울부짖으며 달아나던 벌거숭이의 한 소녀가 카메라 앵글에 포착됐다. 사진은 전 세계에 전송돼 전쟁의 공포와 고통을 절절히 전했다. 소녀의 이름은 판 티 킴 푹이었고 당시 9세였다. 네이팜탄에 등과 목덜미, 왼팔을 부상당한 소녀는 사이공 인근 코레이 병원으로 후송돼 17번에 걸친 피부이식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날 미군이 네이팜탄을 무차별 투하한 배경은 이랬다. 전날 밤 12시경 베트공 `해방전선` 병사들이 트랑 방 마을을 급습, 점거하자 베트남 정부군과 베트공 사이에 마을 쟁탈전이 벌어졌다. 정부군은 중화기로 마을을 포격했고 베트공도 완강하게 저항했다. 전투가 길어지자 오후 4시 정부군의 레반투 여단장이 마을을 폭격하기로 결정하자 미군은 함상 공격기 스카이 레이더기를 동원했다. 폭격은 시작됐고 마을은 불타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 당국은 소녀가 공포에 질려 걸었던 고난의 길을 `식민지 보유국`인 미국을 상대로 싸운 영웅적 행위로 추켜세우며 소녀를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로 유학을 보냈다.
킴 푹은 1994년 남편과 두 자녀와 함께 캐나다로 망명했고 1999년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네이팜탄 화염을 피해 알몸으로 달아나던 킴 푹 양의 사진을 찍은 당시 AP통신의 사진기자 닉 우트는 `전쟁의 공포`라는 제목으로 197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서 중성자보다
작은 새입자 파르촌 발견
▶1971년 칠레,
국가비상사태 선포(아옌데 대통령)
▶1969년 닉슨-티우 대통령
미드웨이회담 개회
▶1969년 영화배우 로버트 테일러 사망
1969년 6월 8일 영화배우 비비안리 와의 열연으로 많은 관객을 울린 ‘애수’의 로버트 테일러가 사망했다. 57세였다. 전세계 여성관객을 매료한 그의 멋진 얼굴, 우렁찬 목소리가 스크린으로부터 영영 사라지고 만 것이다.
영화 ‘애수’에서 비비안 리와 함께한
로버트 테일러.
춘희’ ‘애수’ ‘쿼바디스’ 등 우리나라 공개히트작품도 많은 테일러는 모두 60편의 영화에 주연했고, 180cm 키, 77kg의 체중, 물결치는 듯한 검은머리, 반짝이는 흰 이를 자랑하며 헐리우드의 가장 대표적인 스타 여배우들 그레타 가르보, 진 할로우, 에봐 가드너, 엘리자베스 테일러, 게더린 헵번, 그레어 가슨과의 공연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했다. 로버트 테일러는 MGM영화사에만 27년 동안이나 전속으로 있어 헐리우드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로버트 테일러는 1939년 바브라 스탠위크와 결혼, 1951년 이혼했고 1954년 어술라 디스와 재혼하여 아들, 딸 한명씩을 두었다.
프로급의 첼로솜씨와 전시중 비행기조종 교관도 지낸 로버트 테일러는 의젓한 인품과 변함 없는 외모로 오랫동안 스타의 자리를 지켰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선거,
부정선거 논란
1967년 6월 8일 실시된 제7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부정선거 시비가 제기된 가운데 민주공화당이 3선 개헌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했다. 총의석 175석(전국구 44석 포함) 가운데 민주공화당 129석(전국구 27석) 신민당 45석(전국구 17석) 대중당이 1석을 차지했다. 무더기표, 대리투표 등의 문제가 제기된 이날 총선거 결과를 3선 개헌의 전조라고 판단한 제1야당인 신민당은 6.8총선거를 부정선거로 단정하고 등원을 거부한 채 전면 재선거를 주장했다.
7월 3일 국회가 개원되었으나 신민당은 부정선거 전면 무효화 투쟁위원회를 구성해 원외투쟁을 계속했고 이에 동조하는 학생들도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 이에 정부는 30개 대학, 148개 고교에 대한 휴교조치로 맞섰다. 교착상태에 빠진 시국의 수습을 위해 여야가 전권회담을 개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개선과 선거법-정당법 개정, 부정조사특위법 제정 등에 합의하고, 신민당은 국회개원 142일 만인 11월 29일에 등원했다.
▶1965년 성업공사 발족
▶1964년 공수단 장교 8명
동아일보사 난입
▶1962년 제네바서 미국 소련이
우주의 평화적 공동연구 합의
▶1958년 제6회 월드컵 스웨덴서 개막
▶1956년 이기붕 국회의장 피선,
조경규-황성수 부의장 피선
▶1953년 한국전쟁 포로문제에 관한
협정 타결
▶1952년 휴전회담 가조인1949년영국
조지오엘의 소설 1984` 출판
▶1948년 일본, 독도 영유권 운운 파문
▶1941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
시리아와 레바논 진격
▶1937년 국제포경신협정 조인
▶1935년 파리에서
최초의 자동차 박람회 개막
▶1932년 한국-중국 연합토일군.
일본나남부대를 전멸
▶1925년 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설치
▶1921년 인도네시아의 정치가
수하르토 출생
▶1913년 베를린에 `독일스타디움` 개설
▶1906년 일본,
남만주 철도주식회사 설립 칙령 공시
▶1901년 러시아군 만주철군 개시
https://youtu.be/4K4MJKMGhlg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