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루카1,37~38)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hoti; for)로 시작되는 루카 복음 1장 37절은 의학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자에게 임신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즉 하느님의 모든 말씀은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다.
원문의 '말씀'에 해당하는 '레마'(rema)는 일차적으로 '생생한 목소리로 선포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루카 복음 1장 37절에서 이 단어는 예수님 탄생에 관해 예언된 모든 말씀을 의미하며, 이러한 예언들이 마치 생생한 목소리로 선포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불가능한 일이 없다' 라는 뜻으로 번역된
'아뒤나테세이'(adynatesei; is impossible)는 '아뒤나토스'(adynatos)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아뒤나토스'(adynatos)는 '능력있는', '강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뒤나토스'(dynatos)에 부정 접두사인 '아'(a)가 붙어서 '능력없는', '약한'이란 뜻을 갖는 단어이다. 따라서 '아뒤나테세이'(adynatesei)는 앞의 '우크'(ouk; nothing)와 연결되어 이중 부정의 의미를 갖고서 매우 강한 긍정의 의미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능력과 권세가 있어서 마리아에게 선포된 모든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지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은 노쇠하여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던 아브라함에게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며 아들 이사악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말씀(창세18,14)을 연상하게 한다.
한편 루카 복음 1장 38절은 하느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순수하게 믿는 마리아의 순수한 신앙을 잘 보여주며, 이러한 신앙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즉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고 잔치집 일꾼들에게 지시함으로써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여기서 마리아가 자신을 지칭한 단어인 '둘레'(doule; servant)는 '종'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노예'를 뜻하는 '둘로스'(doulos)의 여성 명사로서 '결코 주인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하녀(계집종)'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것은 '주인', '주님'을 의미하는 '퀴리오스'(kyrios)의 소유격 '퀴리우'(kyriu)와 연결되어 철저하게 주님께 예속된 능력없는 계집종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따라서 마리아가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완전하게 맡기겠다는, 철저한 순종과 겸손의 표현인 것이다.
또한 본문 서두에 기록되어 있는 '보십시오'에 해당하는 '이두'(idu)라는 단어는 마리아의 이러한 마음을 잘 드러내 준다.
'이두'(idu)의 용법은 이야기의 생기를 돋우어 주거나, 듣는 이나 읽는 이의 주의를 환기시킬 때, 그리고 좀 더 깊은 생각을 촉구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루카 복음 1장 38절에서는 이 단어가 동사없이 명사와 함께 사용되어 마리아 자신의 '종'으로서의 존재를 천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줌으로써, 자신의 겸손함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말씀하신 대로'에서 '대로'에 해당하는 '카타'(kata)라는 전치사는 목적격과 연결되어 뒤에 오는 명사의 내용이나 본질이 조금도 훼손되는 일이 없이 '그대로 유지되는' 상태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에 해당하는 '게노이토'(genoito; may it be)는 '발생하다'는 뜻의 '기노마이'(ginomai)의 희구법으로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마리아의 염원을 담고 있다.
비록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들었지만, 그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보증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었기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믿고 바라는 위대한 순종의 신앙을 보여 주었다.
바로 이 순간이 마리아가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구세주의 모친으로서의 성소를 허락하는 순간이며,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피와 살을 취하고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는 강생(육화; Incarnatio)의 순간이기에,
우리는 사도신경과 삼종경을 바칠 때 고개를 숙여
구세주로 오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흠숭의 예를 드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