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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주거 문제, 생명 위협
코로나로 인권 사각지대 살피기 더 어려워
농어촌 이주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주거환경이 한 이주여성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갔다.
지난 20일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출신 여성 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안 숙소에서 잠을 자다 숨졌다. 연일 맹추위에 기온이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져 한파경보가 발령된 상태였지만 고장 난 난방 장치는 며칠째 가동되지 않는 상태였다.
숨진 이주여성 노동자는 한국 체류 노동기간을 모두 채우고 다음 달 캄보디아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까지 사 놓은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빈곤사회연대 등 노동, 주거, 종교 단체들은 28일 성명을 내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과 재발 방지를 위해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농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는 농장에 설치된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같은 비주거용 시설이 대부분”이라면서 수해나 화재 등 재난, 재해에 취약하고 최저 주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주거환경에서 잦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소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주거실태부터라도 조사하고 적절한 주거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기존 이주노동자 주거복지 제도의 적용을 비롯한 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의 주거대책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2명이 매달 1인당 20만 원씩 숙소비를 내며 사는 숙소(.경기도 이천) (사진 출처 = 2018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 보고서)
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이영훈 신부는 “지금 필요한 것은 법과 제도를 정비해 실행함과 동시에 이주노동자를 생명을 지닌 존엄한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인식의 변화와 회개”라면서 “그렇지 못하면 오늘의 죽음은 잊히고 또 다른 죽음이 찾아올 것이고 우리는 습관적으로 추모하게 될 것”이라고 30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영훈 신부는 이 죽음에 관해 인터넷에 추모 메시지는 물론 혐오성 댓글과 함께 사망의 원인을 개인의 건강 문제로 보는 기사도 올라왔다면서 “이는 인권과 인간 생명의 문제이자 사회 구조와 인식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면 안 된다는 법 규정을 떠나 사람이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이주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기는커녕 생산을 위한, 우리 이익을 위한 한낱 부속품으로 여기는 우리 인식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인명 피해가 발생한 포천 지역을 관할하는 춘천교구 이주사목 담당 김학배 신부는(사회사목국장) “최근 더 심각해진 코로나로 사각지대를 살피는 등의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긴 일이라 무척 안타깝다”면서 “어려울수록 교회가 먼저 나서야 하는데 코로나로 다들 움츠러들 수밖에 없고, 뚜렷한 대안을 내놓기도 어려워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30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김 신부는 특히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는 겨울에는 일거리가 없어서 겨울을 나는 문제나 고용유지에도 마음을 써 줘야 하는데 코로나 상황이라 무척 안타깝다면서 “그럼에도 현장에서 추위나 기저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없는지 살피며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인당 숙소비 매달 40만 원, 여성 노동자 2명이 사는 숙소.(충남 논산) (사진 출처 = 2018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 보고서)
경기도 포천은 중소, 영세 공장과 농장이 밀집돼 있어 이주노동자가 특히 많다. 춘천교구는 교구의 서부지역에 몰려 있는 이주노동자를 위해 17년 동안 무료 진료센터(예리코 센터) 등을 운영하고 이들을 다방면으로 지원하는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의료계 봉사자로 운영되던 진료센터는 코로나19로 봉사자 활동은 물론 대면진료도 불가능해져 수도자들이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찾아 간신히 처방약만 전달해 주는 상황이다.
김학배 신부에 따르면, 작은 공장이나 비닐하우스 농장 등 이주노동자들이 곳곳에 퍼져 있는데다 코로나로 방문이나 대면을 꺼려 현재 실상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실태를 알기 위해서는 업주가 아닌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하는데, 이들을 찾아가기도 이들이 스스로 찾아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비대면 진료 방식도 고민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를 찾기 어려운데다, 행정 당국도 확진자 동선이나 백신 문제만 집중하다 보니 이주노동자 문제에 쓸 여력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 노동자 4명이 사는 1인당 20만 원짜리 비닐하우스 숙소.(경남 밀양) (사진 출처 = 2018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 보고서)
한편 2018년 ‘이주와 인권연구소’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른 업종 이주노동자에 비해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가 처한 노동조건과 주거환경은 훨씬 열악하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사는데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이 주로 고립된 지역에 있어 이들의 94.8퍼센트가 선택의 여지없이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지내야 한다.
이들은 조립식 널빤지나 컨테이너,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쓰면서도 업종별 평균보다 높은 숙소비를 낸다. 숙소비는 적게는 1인당 20-40만 원선에 이르고 90퍼센트 이상이 숙소비를 제외한 임금을 받는다.
숙소는 보통 여럿이 살기에는 좁고 대부분 에어컨이 없다. 실내 화장실과 욕실이 없거나 온수가 나오지 않고 난방 장치가 아예 없거나 고장이 나도 사업주가 수리해 주지 않기도 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의 조건 및 상태. (사진 출처 = 2018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 보고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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