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gious values and theological worldviews evolve with the changing times."
(종교적 가치관과 신학적 세계관은 변하는 시대와 함께 진화한다.)
▪︎거의 대부분의 카톨릭 선교사들은, 침략과 학살에 동조했다.
▪︎그게 그 시대의 인간차별의 관한, 그 시대의 신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가치관에 부합 했었기에 ..
●The vast majority of Catholic missionaries condoned the aggression and massacres, as that aligned with the Religious Values & Theological Wirld View regarding human discrimination prevalent in that era.
■특히 중세 기독교 세상이던 서구의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시작된, 침략지 원주민 학살 .. 거의 대부분의 카톨릭 선교사들은, 침략과 학살에 동조했다.
▪︎예수 가르침을 실천하는 선교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대세에 순응했습니다.
▪︎교황들도 마찬가지로 부패(음란)한 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모르는 군요, 지금도 그렇구요.
●서구기독교 예찬론자 아닙니다.
▪︎서구 기독교나 가톨릭 교회를 미화하거나 예찬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제 답변이 그렇게 느껴지셨다면, 역사적 참상과 교회의 과오를 충분히 무겁게 다루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적해 주신 대로 당시 지배적인 '대세(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수많은 성직자와 교회가 순응하고 동조했던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조금 더 직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대세에 순응'한 구조적 폭력
구조적으로 대다수의 선교사와 현지 교회는 침략자들의 지배 체제 속에서 안위를 누렸습니다.
▪︎원주민들의 고유한 정신과 문화를 악마화하여 말살하는 데 앞장섰고,
▪︎정복자들의 강제 노동과 수탈을 '하느님의 섭리'나 '미개한 이들을 교화하는 과정'이라며 종교적으로 합리화해 주었습니다.
▪︎선교자, *라스 카사스 같은 인물들이 목소리를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평범한 성직자들은 거대한 제국주의의 흐름에 묵인하거나 편승했습니다.
*○인디언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룰 써서, 스페인의 식민지 착취 실상을 폭로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던,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1474~1566)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권을 옹호하고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비판한 도미니코회 수도자이자 선교사입니다.
▪︎그는 초기 정복 전쟁에 참여했으나, 잔혹한 학살을 목격한 후 '인디언의 수호자'로 거듭나 평화적 선교와 인권 보호를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2. 교황청의 부패와 타락
▪︎지적하신 대로, 대항해 시대 전후의 교황청은 영적 지도자라기보다 세속적인 권력과 쾌락을 좇는 정치 집단에 가까웠습니다.
▪︎알렉산데르 6세(보르자 가문)처럼 교황의 신분으로 여러 첩을 두고 자녀들을 권력 요직에 앉히며 음란하고 부패한 삶을 살았던 교황들이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이 시기의 교황청은 신대륙 원주민의 영혼 구원보다, 유럽 열강(스페인, 포르투갈) 사이의 이권 다툼을 중재하고 교황청의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는 데 더 몰두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1537년, 교황 바오로 3세의 인권 칙령이 있었음에도, 현장에서는 열강의 눈치를 보느라 이를 강제하지 못하는 무력함을 보였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비극 앞에서는 소수의 의인들보다, 시스템 전체가 저지른 죄악과 다수의 방조가 더 큰 상처를 남깁니다.
▪︎가톨릭 교회가 대항해 시대라는 침략의 역사에서 제국주의의 강력한 동반자이자 도구였다는 점은 결코 지울 수 없는 과오입니다.
▪︎결코 특정 종교나 문명을 두둔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밝히며, 역사를 바라보는 날카롭고 균형 잡힌 시각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