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운동을 하다 보면, 늘 북두칠성을 쳐다본다.
오늘은 서쪽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달은 하현이었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은 후, 결론은 나를 내팽게치는 것이었다.
별 볼일 없다는 삶이라고 단정 짓고 마구 사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살자. 내가 내가 아닌채로 살자. 내 삶을 버리자. 목적을 가지지 말자.
혹시 내가 죽더라도 내 죽음이라고 슬퍼 하지 말자. 나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커다란 인류의 죽음 중에서 모래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자”
알콜에 빠지고 알콜 마저도 무의미해지고 우울증 마저 무시하고........
그 다음은 아무 생각 없어졌습니다.
나를 놓아 버린 후, 그 다음에 찾아온 것은 짜라투스트라 였습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산을 내려오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20 세기 말, 제국주의 후발 주자였던 독일은 젊은이들은 먹고 살기 힘들 때였습니다.
자본주의는 시작부터 과정부터 지금도 개판입니다.
젊은 짜라투스트라가 괴로운 것은 당연한 거였습니다.
니체는 성실한 크리스찬이었지만, 젊은이의 마음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니체는 유럽의 위대한 철학자인 겁니다.
어느 순간 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다가 혹은 책을 읽다가 1 층에 내려가서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밤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별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겁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저 별들 중에 지구는 우주의 한가운데서 티끌 만도 못하는 작은 존재라는 것을.
나는, 혹은 나의 죽음은, 또는 나의 삶은, 티끌 만큼도 못한 지구 속에서도 한 없이 작은, 더 작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라는.
나의 슬픔은, 나의 아픔은, 아내의 죽음은, 내 삶은, 내 죽음은, 그런 것이라는.
그래서 나는 우울증에서 탈출했던 겁니다.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난 것은 별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