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켐퍼, 몬티 러셀, 찰스 맨슨, 드와이트 테일러, 엘머 웨인 헨리, 제리 부르도스, 웨인 윌리엄스, 리처드 스펙, 대럴 진 데비어, 데이비드 버코위츠, 데니스 레이더(BTK) 등등.
2017년 시즌 1(10부작)이 공개됐고 2년 뒤 시즌 2(9부작)가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인드헌터'를 새삼 재미있게 돌려 봤다. 로튼 토마토의 신선도가 97%로 유지된다는 것도 놀라웠다.
탄핵 시국의 갑갑함을 대신 풀라고 OTT 플랫폼의 알고리듬이 안내한 결과였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장안의 화제인 영국 리미티드 시리즈 '소년의 시간'(Adolescence, 4부작)을 재미있게 봤으니 자연스럽게 이 작품을 추천하게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위 명단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연방수사국(FBI) 행동과학부 요원들이 연쇄살인 수감자들을 인터뷰하거나 수사한 연쇄살인범 명단으로 '마인드헌터'에 소개된 실제 연쇄살인범들이다. 굉장히 지적이며 차분하지만 냉혹한 킬러의 면모를 섬뜩하게 드러내는 켐퍼나 똘끼 넘치는 사이비 교주 같으면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내뱉는 맨슨 등등 연쇄살인마들의 캐릭터를 다층적으로 잘 그려낸 점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누구보다 살인마들의 배경에 공감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소시오패스처럼 윗사람이나 조직에 공감하지 못하고 심지어 연인과도 냉정하게 절연하는 홀든 포드(조너선 그로프)와 일 때문에 가정을 비우며 철부지 혼든과 관료주의에 찌든 상사들 사이를 중재하느라 바쁘고 지쳐가는 빌 텐치(홀트 매캘러니)가 서서히 무너져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일이 흥미롭다. 감옥에 갇힌 연쇄살인마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떳떳하고 당당한 반면, 수사하는 이들의 내면이 허물어지는 것으로 그려지는 점은 씁쓸하면서도 생각할 지점들이 많았다. 심리학자로서 행동과학부 예산 확대에 큰 공을 세우고 나중에는 두 요원과 애환을 공유하며 동성애자 면모로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웬디 카(애나 토브)도 아주 매력적이다. 세 사람의 연기 조화도 빼어나다. 홀든 포드는 원작('마음의 사냥꾼'으로 김영사 번역 출간)을 넌픽션 작가 마크 올세이커와 함께 쓴 존 더글러스 요원, 빌 텐치는 로버트 K 레슬러 요원, 웬디 카는 앤 버지스 박사를 실제 모델로 삼았으며 모든 등장인물이 실제 인물들에 기반해 그려졌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켐퍼나 맨슨, 보기 드문 흑인 연쇄살인범 윌리엄스 등과 홀든과 텐치, 카 박사가 벌이는 숨막히는 탁상 대결이다.
범죄학 교과서로 삼을 만한 얘기를 극화하면서도 상당히 생각을 기울이고 관심을 갖게 하는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은 데도 불행하게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 시리즈의 컬트 운명이다. 해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당초 다섯 시즌을 계획했는데 시즌 2까지 만족할 만한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말들은 무성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즌 3 제작 얘기가 들려오고 있지 않다.
하지만 종전에 드문드문 봤던 시리즈를 천천히 다시 본 결과, 언제 봐도 흥미진진한 클래식 시리즈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라건대 7년이 지나, 8년이 지나 어느날 문득 시즌 3 제작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이 시리즈에 소개된 연쇄살인마 말고도 70년대 체포되거나 사살된 이름 난 연쇄살인범으로 딘 코를, 폴 존 놀스, 테드 번디, 존 웨인 게이시, 로드니 알칼라 등이 있다. 60년대는 거의 없었던 연쇄살인마가 70년대 미국에서 갑자기 늘어났다가 80년대 들어 다시 현저히 줄어 들었고, 90년대에는 저녁 뉴스보다 영화관에서 대량 살인자 얘기를 더 자주 보게 됐는데 무엇 때문일까?
야후! 뉴스의 블로그 바이오그래피는 20일(현지시간) 이런 궁금증에 답하려 해 눈길을 끈다. 전문가들은 연쇄살인범 다수는 남성이며, 이름이 알려진 살인범 가운데 5~11%만 여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젠더 불균형이 왜 나타나게 됐는지에 대한 공통된 답은 없다.
다만 전후 미국의 여건이 연쇄 살인을 불러들였다는 해석은 가능하다고 블로그는 지적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귀향한 이들이나 생환하지 못한 이들의 아들들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론이다. 역사 연구가 피터 브론스키는 저서 '케인의 아들들, 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연쇄살인범의 역사'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해해 심리적으로 손상된 이들이 넘쳐난 것은 2차 대전 때 그들이 해야 했던 살육에 의해 심리적으로 손상된 아버지들에게서 영향 받은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선을 넘은 주장처럼 비칠지 모르나,1970년대 시작해 1996년에야 완료된 무연 휘발유 교체 작업이 살인범은 물론 미국 내 모든 범죄를 감소하게 만드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가설이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모든 종류의 범죄는 1990년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아연 범죄 가설'(lead-crime hypothesis)이 유행했다.
사회경제적 변화 탓이란 풀이도 있다. 또 기술 격차가 연쇄 살인 현상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예를 들어 로드니 알칼라는 1980년에 일곱 건의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훨씬 더 많은 범죄를 저질렀을 수 있다. 그는 1978년에 버젓이 인기 TV 프로그램인 '데이팅 게임'에 출연했는데 성범죄자로 이름이 등록돼 있었던 상태였다. 당시만 해도 전국적인 범죄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지 않았고 출전자들의 배경을 완벽하게 체크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70년대 갑자기 연쇄살인범들이 폭발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로 경찰과 미디어들이 갑자기 주의를 기울인 때문으로 볼 수도 있겠다. 얼마나 많은 이전 10년씩의 미제 살인사건들이 한 명의 연쇄살인마에 의해 저질러졌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도 어느 누구도 그 패턴을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이런 패턴을 인지할 능력이 있으며, 심지어 가능한 살인자들의 프로파일을 갖고 있다. 넷플릭스 쇼 '마인드헌터'가 이를 널리 알리고 있다. 20세기 말년들에 미국에서 엽기적인 연쇄살인범들이 적어진 데 기여했을 수도 있다. 그 이론은 그저 간단히 우리가 일찍 살인자들을 더 잘 잡아낸 덕분이란 것이다.
FBI 행동과학부는 1972년 만들어져 10여년 현장 연구를 벌인 끝에 1985년 FBI 아카데미 산하 국립 과격범죄연구센터를 만들었다. 1996년에는 아동 유괴와 연쇄살인반을 만들었다. 이들 프로그램과 다른 유사한 것들은 범죄 분석 데이터와 산물을 다른 사법기관들에 넘겼을 뿐만 아니라 "관련 없어 보이는 범죄 수사를 연결하며 전국의 과격 범죄들로부터 나온 수사 데이터를 공유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이렇게 연쇄살인범들이 과거 그랬던 것 만큼 엽기적이지 않은지 설명할 수 있다. 사법 당국이 잠재적인 연쇄살인범 신원을 가려내며 그들을 제지하는데 더 잘 협력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본인이 깨닫는 것보다 훨씬 많은 디지털 족적을 남긴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현대 기술도 한몫 한다. 플로피 디스크가 있어 BTK 킬러는 2005년에야 붙잡을 수 있었으며, 가족 중 한 명이 온라인 DNA 유전 분석체계에 접근했기 때문에 골든스테이트 킬러는 2018년에야 검거됐다. 디지털 시대 익명성을 잃은 것이 이론적으로는 연쇄살인범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항상적인 디지털 감시가 연쇄살인범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위안을 삼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일상적인 디지털 감시 자체로도 많은 문제를 내포하기 때문),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알려진 연쇄살인범들이 1970년대보다 줄어든 것은 살인자들을 더 잘 잡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는 우리가 훨씬 못하기 때문이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다.
살인 책무 프로젝트(The Murder Accountability Project)는 1965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에서 해결된 살인사건 수를 뜻하는 살인 해결율 차트를 제공한다. 1965년에는 해결율이 91%로 나머지 9%만 풀지 못했다. 1983년 깜짝 반등한 것이, 1965년보다 살인사건 건수는 곱절 이상이었지만, 해결율은 76%로 형편 없이 떨어졌다.
2023년에도 깜짝 반등하지만 통계는 더 힘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살인사건 수는 40년 전과 비교했을 때 1000건정도 줄었지만 해결율은 57.8%로 추락했다. 그나마 2022년 52.3%의 역대 최저 해결율이 나아진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가 70년대 그랬던 것처럼 신문들에서 많은 연쇄살인범들을 보지 않게 된 이유는 그곳에 많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그들을 보지 않기 때문이란 얘기가 가능하다고 매체는 결론내렸다.
그러고 보니 한 미국 드라마 가운데 살인마가 딸이 보는 앞에서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며 "보고 있어"(Did you see it)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