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되다 보면 느리고 약한 자극에는 반응 안 하는 뇌로 바뀌어
문해력 저하의 주요 원인… 틱 유사 장애 나타나기도
2시간 이상 시청하지 않도록… 정부 제제도 고려를
일러스트=박상철 화백
1분 남짓 짧은 영상으로 이뤄진 ‘숏폼(short-form)’이 인기다. 최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틱톡 또는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 등 숏폼을 시청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 숏폼이 뇌발달과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해외에선 이미 숏폼의 부작용에 주목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8일 한 정신건강 관련 행사를 통해 “틱톡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지장을 주는 네트워크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틱톡이 정신건강을 위협한다는 의혹을 중심으로 틱톡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대체 숏폼 부작용이 어떻길래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걸까? 틱톡, 쇼츠 시청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을 알아봤다.
◇문해력 저하, 정신건강 악화 원인 될 수 있어
쇼츠, 틱톡 등 숏폼 시청은 문해력 저하, 정신건강 악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최근 '심심한 사과' 표현 등으로 청소년들의 문해력 저하가 SNS상에서 화제가 된 적 있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1년 5월 발표한 '피사(PISA)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만 15세 학생들의 디지털 문해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의 일부를 숏폼으로 보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이 지난해 4월 전국 초중고 교사 11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가 꼽은 문해력 저하 원인 1위는 '유튜브 등 영상 매체에 익숙해져서'였다. 청소년정책연구원 배상률 연구위원은 “1분 이내 짧은 영상은 웃음을 위주로 제작되다 보니 대개 맥락 없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며 “맥락을 이해하는 등의 노력 없이도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이 디지털 리터러시와 문해력 저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숏폼에선 폭력, 선정적 소재 등 자극적인 콘텐츠의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주목도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증, 불안, ADHD 등 정신건강이 악화할 위험이 존재한다.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영훈 교수는 "1시간 이상 디지털 미디어에 노출될수록 ADHD 발병위험이 10% 증가한다는 연구보고도 있다"며 "틱톡, 쇼츠 등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를 중심으로 한 명확한 연구 결과는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디지털 미디어가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기존 연구가 있는 만큼 더 자극적이고 짧은 영상으로 구성된 숏폼은 그에 대한 위험성이 더 클 것이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숏폼 콘텐츠 중엔 시청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챌린지' 스타일의 영상이 많다. 과거 유행한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긍정적인 챌린지도 있지만, 극단적 선택을 따라 하는 '나는 실패작이래 챌린지', 질식게임으로 불리는 '블랙아웃 챌린지' 등은 아이들에게 유해한 콘텐츠다. 실제로 미국에선 기절 챌린지인 '블랙아웃 챌린지'를 따라하다 아이들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배상률 연구위원은 "다소 폭력적인 콘텐츠에 지속해서 노출될 경우엔 폭력을 바라보는 폭력 허용성에 대한 시각이 넓어지고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며 "특히 청소년 시기엔 동조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챌린지가 또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게 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중독, ‘팝콘 브레인’ 유도하기도
자극적인 콘텐츠는 스마트폰 중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극적인 영상을 볼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이러한 자극은 내성이 생겨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팝콘 브레인을 유도할 수 있다. 팝콘 브레인은 빠르고 강한 정보에는 익숙하고 현실 세계의 느리고 약한 자극에는 반응을 안 하는 뇌를 말한다. 뇌 발달이 활발한 어린이들에게 팝콘 브레인 현상이 더 잘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김영훈 교수는 “숏폼을 몰입해 시청하는 습관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긴 분량의 다른 영상을 보기 힘들어 숏폼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간은 더 늘어난다"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더 자극적인 영상에 끌리게 하고 수동적인 집중력을 유지시켜 타 영상보다 숏폼 시청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부할 때 쓰이는 집중력은 능동적 집중력인 반면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집중력은 수동적 집중력이다. 수동적 집중력에 익숙해지면 우리 뇌는 반응적인 뇌로 길들여진다.
숏폼으로 인한 스마트폰 중독은 나이불문이다. 청소년 외 성인 심지어 중장년층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국융합학회에 게재된 '중장년층 모바일 숏폼 동영상 과다사용 행위의 영향요인 연구'논문에서 연구진은 "틱톡 매체 특성이 중장년층 사용자의 사용행위에 영향을 미쳐 몰입과 중독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숏폼 시청은 신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 숏폼 시청에 몰입하다 무의식적으로 틱장애와 유사한 증상인 기능성 틱 유사 행동증후군(functional tic-ike behavior syndrome)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능성 틱 유사 행동증후군은 틱은 아니지만 틱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증후군이다. 김영훈 교수는 "짧은 영상을 집중해서 몰입해 볼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으로 틱처럼 눈을 깜짝이거나 소리를 반복해서 내는 행동이 이에 속한다"며 "이는 대개 청소년기 여성에 주로 나타나며 우울증, 불안증 등의 기저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청 시간 정해두는 게 좋아
숏폼 시청으로 인한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선 사용 시간을 정해두고 시청하는 게 가장 좋다.
유아는 한 번엔 30분, 하루에 1시간 이상 보지 않고, 청소년은 하루에 2시간 이하로 시청하길 권한다. 성인 역시 필요시에만 시청하고 시청시간을 제한해도 숏폼 시청 시간이 여전히 많다면 숏폼 앱을 삭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숏폼을 보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어렵거나 숏폼을 보여주지 않을 때 자녀가 짜증을 내거나 폭력성·충동·과잉 행동을 보인다면 병원 방문을 권한다. 자녀가 미디어 이용 시간을 줄일 수 있게끔 부모차원에서 시간관리를 돕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배상률 연구위원은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콘텐츠를 전부 차단하는 등 기업의 자발적인 관리를 기대하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라며 "정부가 기업에 대한 엄격한 제재를 시행하는 것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강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