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618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 북한
추가령지구대
강원도 평강군 고삽면과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의 경계에 있는 추가령(楸哥嶺)은 해발 752미터의 고개다. 일명 죽가령이라고도 하는 이 고개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지질ㆍ지형을 구분하는 추가령지구대가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다. 추가령열곡, 추가령구조곡이라고도 한다.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제47권 「지리산변증설」은 한반도의 산줄기를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기록한 글이다. 그중에 “분수령이 되고, 철령이 되고, 흘러서 대관령이 된다”라고 하면서 추가령 부근을 분수령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1872년에 제작된 「삼방진도」에는 추가령과 분수령을 별개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는 추가령과 분수령을 다르게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김정호가 지은 「대동여지도」에는 분수령, 추포령, 철령, 추지령의 순으로 백두대간이 연결되어 있다.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 「평강군」 「산천」조에는 분수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분수령은 설탄령에서 뻗어 나온다. 백두산 줄기의 형세가 이곳에 이르러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회양부 철령의 으뜸이 되는 줄기를 이루고, 다른 하나는 평강 백빙산(白氷山)의 으뜸이 되는 줄기를 이룬다. 고개 위는 평평하고 널찍한 것이 마치 담요를 깔거나 자리를 펴놓은 듯하다. 관아에서 북쪽으로 49리에 있다.
고려 말의 문신인 김구가 이곳 분수령을 지나가다가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남겼다.
두견새 소리 속에 보이는 것은 청산뿐이로구나.
온종일 푸르고 빽빽한 산속을 뚫고 간다.
한 시내를 몇 굽이나 건넜던고,
잔잔한 물소리를 보내고 나면 또 졸졸 들려오네.
분수령에서 시작하여 서울을 거쳐 서해안까지 호(弧)를 그리며 전개되는 좁고 낮은 긴 골짜기다. 이 지대는 서쪽의 한북정맥과 동쪽의 백두대간 사이에서 발달하였다 하여 지형상, 지질상으로 남한과 북한을 양분하는 구조선을 이룬다. 예로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고,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경원가도(京元街道)가 통과하는 길목이었다. 근대에는 경원선이 개통됨으로써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추가령에는 통행하는 사람을 검문하는 3개소의 관방(關防)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삼방협곡(三防峽谷)이라는 이름이 유래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특수한 지형으로 알려진 추가령지구대를 두고 단층운동으로 생겼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지구대 양쪽에 있는 딱딱한 편마암 사이에 지반이 약한 화강암대가 함경도 안변군을 거쳐 동해로 들어가는 남대천과 남서쪽으로 흘러가는 임진강의 침식작용을 받아 이루어진 침식곡이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어느 때인지는 몰라도 이 일대에 화산이 터졌을 때 땅이 몇십 미터 폭으로 푹 꺼져 함경도에서 한반도를 가로질러 뻗어 내렸는데 이곳을 일컬어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부른다. 강물이 굽이쳐 돌고 물살이 빠른 것은 이 때문이며, 도처에 아름다운 명승지를 낳게 된 내력이기도 하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 수십 척 아래로 흐르는 한탄강을 이곳 사람들은 “천연적인 하수도가 워낙 좋아 결코 홍수 지는 법이 없다”라고 자랑한다.
백두산에서 비롯한 백두대간이 추가령에서 한북정맥이라는 이름을 달고 남서쪽으로 이어진다. 백암산과 법수령을 지난 한북정맥은 휴전선 인근의 철책선을 넘어 대성산을 지난다. 그 뒤 한북정맥은 백운산, 운악산을 지나 포천에서 의정부 길 옆에 있는 축석고개를 넘어 서울로 접어든다. 그 뒤 도봉산, 북한산(삼각산)을 거쳐 노고산, 고봉산을 지나 임진강과 한강의 합류 지점인 교하의 장명산에서 그 맥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