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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혹청(眩視惑聽)
보는 것을 흐릿하게 만들고 듣는 것을 헷갈리게 한다는 뜻으로, 상대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여 자신의 욕구를 성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眩 : 어지러울 현(目/5)
視 : 볼 시(礻/8)
惑 : 미혹할 혹(心/8)
聽 : 들을 청(耳/19)
왕조시대는 임금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데, 후대로 가면 갈수록 임금들이 멍청이가 된다. 나라 안에서 최고 뛰어난 학자들을 뽑아 정성을 들여 교육을 하는데도 왜 그럴까? 왕을 계승하는 사람들이 책에서만 지식을 배울 뿐,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생활을 해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 어떤 문제를 만나면 대처할 줄을 모른다. 현실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은 거의 바보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상태인데 국가의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지극히 중요하고 어려운 현안을 책임지고 처리해야 하니, 처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럴 때 기댈 사람을 찾는다. 대개 주변에 있는 환관(宦官)에게 물어서 처리한다. 환관의 힘이 대신보다 셀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자녀들도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고 어떤 일을 처리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이미지 관리를 잘 했던지, 여당 사람들이 잘 봐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되고 대통령에까지 당선됐다. 청와대에 살아서 세상 경험이 없겠지만, 뭔가 능력이 있고 소신이 있는 줄 알았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진정으로 이야기 상대가 되고 충고를 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때 나타난 이가 최순실씨다. 젊은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여자다. 박 대통령은 최씨를 믿고 모든 일에 자문을 하고 도움을 청했다. 최씨가 정상적으로 잘 한다 해도, 국가 대사를 일개 아녀자에게 물어서 처리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더구나 최순실씨가 곳곳에서 갑질을 하고 행패를 부리고, 부정한 방법으로 인사에 개입하고 이권을 노리는 등 온갖 나쁜 일을 해 나라의 근본을 흔들어 놓았다.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맞아 죽을 뻔한 왕비 민씨가 충주 장호원에 가서 숨어 지냈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당에게 점을 치게 하니, 8월 며칠 날 반드시 돌아간다고 이야기했다. 과연 하루도 틀리지 않고 예언한 그날에 왕위에 복귀할 수 있었다. 너무나 고마운 그 무당을 진령군(眞靈君)에 봉했고 모든 일을 그녀에게 물어서 처리했다. 국가의 대사는 물론이고, 조정의 인사까지 물어서 처리했다. 관원들 대부분이 진령군에게 붙어 출세를 도모했다.
1889년 바른 선비 수파(守坡) 안효제(安孝濟) 선생이 진령군의 목을 베라고 상소했다. 고종은 그를 추자도(楸子島)로 귀양 보냈다. 청물개의제소(請勿改衣制疏)는 1888년(고종 25) 의제개혁(衣制改革)에 반대하는 상소이다. 청참북묘요녀소(請斬北廟妖女疏)는 민비(閔妃)의 총애를 받아 궁중을 출입하면서 요망을 부리던 무당 진령군(眞靈君) 이씨(李氏)의 폐해를 지적하고, 그를 죽여 요얼(妖孽)을 깨끗이 없애야 한다고 주청한 상소이다. 당시 민비의 비호 때문에 누구도 발설하지 못하던 진령군을 직접 규탄한 필봉으로, 저자의 간관(諫官)으로서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승정원일기 고종 31년 갑오(1894, 개국503) 7월 5일(기묘)
간신 민영준과 진령군을 효수하여 백성의 원통함을 풀어 줄 것 등을 청하는 전 형조 참의 지석영의 상소 중에서
신이 온 나라의 만백성을 대신하여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정권을 전횡하고 임금의 총명을 가리며, 백성들을 착취하고 오직 자신을 살찌우고 윤택하게 함을 일삼으며, 백성들을 핍박하여 소요를 초래하고 구원병을 불러 난리를 빚어냈으면서도 외국 군인들이 궁궐 안으로 침범해 들어오자 장차 먼저 도망하려 하였으니, 간신(奸臣) 민영준(閔泳駿)은 온 세상 백성들이 그의 살점을 먹고 싶어하는 자입니다.
신령스러움을 빙자하여 지존(至尊)을 현혹시키고 기도를 핑계로 국가의 재산을 축냈으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여 농간을 부리고 방백(方伯)과 내왕하며, 화복(禍福)으로 백성을 무함하고 총애로 세상에 방자하였으니, 요사스런 여자 이른바 진령군(眞靈君)은 온 세상 사람들이 그의 살점을 먹고 싶어하는 자입니다.
아, 저 일개 간신과 일개 요녀는 나라에 해독을 끼친 원흉이고 백성을 좀먹은 대악(大惡)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안치(安置)하고 하나는 죄를 따져 묻지 않으시어 마치 사랑하여 보호하듯 하셨으니, 백성의 원통함이 어떻게 풀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최순실씨는 꼭 진령군과 같다. 그러나 그때는 진령군의 목을 베라는 안효제 선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주변에서 최씨를 처벌하라고 건의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최씨만 대통령의 눈을 흐리게 하고 귀를 혼란하게 한 것이 아니라, 장관이나 비서들도 같이 동조한 셈이다.
현시혹청(眩視惑聽)
보는 것을 흐릿하게 듣는 것을 헷갈리게 하다,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다.
‘가랑잎으로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눈을 가려 어린애를 속인다고 해도 천진한 애가 넘어갈 리가 없다. 엄이투령(掩耳偸鈴) 성어와 같은 ‘귀 막고 방울 도둑질하기’란 것도 있다. 제 귀만 막으면 다른 사람도 듣지 못하는 줄 안다.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는 뜻으로 쓴다. 하지만 어린애에게도 통하지 않는 이런 일이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힘을 쓰는 세계에서 자주 일어나 어지럽게 한 일이 많았다. 보는 것을 흐릿하게 만들고(眩視) 듣는 것을 헷갈리게 한다(惑聽)는 말은 상대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뜻했다.
이렇게 네 글자로 풀어 쓴 성어는 중국 청(淸)나라의 혁명 운동가이자 국학자로 이름난 장병린(章炳麟)의 ‘정명잡의(正名雜義)’란 글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나오니 의외로 역사가 짧다. 하지만 어지럽거나 아찔하다는 뜻의 현(眩)은 오래된 유교 경전 중용(中庸)에 ‘대신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는다(敬大臣則不眩/ 경대신즉불현)’라는 구절부터 사용돼 아득하다.
두 글자로 줄인 현혹(眩惑)은 정신을 빼앗겨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거나 그렇게 되게 하는 행위로 대표하는 용어가 됐다. 우리나라의 고전 시문집이나 실록(實錄)에도 수두룩하게 검색되는데 몇 가지만 보자.
세종(世宗)때 요승 신미(信眉)는 스스로 生佛(생불)이라며 ‘겉으로는 선을 닦는 방법을 하는 체 하고, 속으로 붙여 사는 꾀를 품어서(陽爲修善之方 陰懷寄生之謀/ 양위수선지방 음회기생지모), 인심을 현혹(其眩惑人心/ 기현혹인심)’시켰다고 나온다.
중종(中宗) 때의 문신 이언적(李彦迪)은 조정에 봉황과 꿩조차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려 ‘군주 마음 이로 인해 현혹된다(君心以之而眩惑/ 군심이지이현혹)’고 한탄했다.
임금의 눈과 귀를 가려 바른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 제 욕심만 채운 간신배들은 시대마다 있었고, 몰랐거나 막지 못한 어리석음도 혼군(昏君)이라 욕을 먹었다.
오래전부터 이름을 떨친 중국 간신은 조고(趙高)나 양기(梁冀), 이임보(李林甫), 진회(秦檜) 등 수두룩하다. 우리나라도 왕이나 권력자의 눈과 귀를 가려 나라를 어지럽힌 사람이 적지 않다. 고려 말의 신돈(辛旽)이나 조선 초기 유자광(柳子光), 한명회(韓明澮) 등은 왕의 신임을 업고 권세를 휘둘렀다.
‘인(人)의 장막’을 둘러 눈귀를 가리고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21세기의 민주국가에서도 이어져 최순실이 비선으로 농단할 때는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기도 했다. 문고리 권력이 배타적으로 암약하는 것은 어느 때라도 없을까.
▶️ 眩(어지러울 현, 요술 환, 돌아다니며 팔 견)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눈 목(目=罒; 눈, 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玄(현)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眩(현, 환, 견)은 ①어지럽다 ②아찔하다 ③어둡다, 눈이 침침하다 ④현혹(眩惑)하다, 속이다 ⑤어지럽히다, 그르치다 ⑥눈부시다, 그리고 ⓐ요술(환) ⓑ마술(환) 그리고 ㉠돌아다니며 팔다(견) ㉡돌다(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지럽게 하여 홀리게 함을 현혹(眩惑), 정신이 어찔어찔 어지러움을 현훈(眩暈), 정신이 어지럽고 황홀함을 현황(眩慌), 어찔하고 혼미함을 현혼(眩昏), 현기가 나서 어질어질 함을 현선(眩旋), 눈이 부시어 어지러움을 현안(眩眼), 정신이 혼미하여 어지러움을 현요(眩撓), 병으로 말미암아 정신이 어지럽고 허함을 현허(眩虛), 정신이 어지러워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을 현환(眩幻), 눈이 아찔하고 머리가 어찔어찔한 기운을 현기(眩氣), 눈이 부심이나 눈이 빙빙 돎을 현목(眩目), 눈이 캄캄한 모양을 현연(眩然), 정신이 헷갈려 어수선하고 얼떨함을 현란(眩亂), 눈부시고 찬란하게 빛남을 현요(眩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함을 명현(瞑眩), 피곤하여 정신이 어지러움을 비현(憊眩), 뱃멀미를 이르는 말을 선현(船眩), 정신이 헷갈리어 갈피를 못 잡아 어지럽고 어수선함을 미현(迷眩), 의심스러워 마음이 어지러움을 의현(疑眩), 놀라서 눈이 아찔함을 진현(震眩), 보는 것을 흐릿하게 만들고 듣는 것을 헷갈리게 한다는 뜻으로 상대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여 자신의 욕구를 성취한다는 말을 현시혹청(眩視惑聽) 등에 쓰인다.
▶️ 視(볼 시)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볼 견(見; 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示(시)는 신이 사람에게 보이다, 見(견)은 눈에 보이는 일이라는 뜻으로 視(시)는 똑똑히 보이다, 가만히 계속하여 보다, 자세히 조사함으 말한다. 見(견)은 저쪽에서 보여오는 일, 視(시)는 이쪽에서 가만히 보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視자는 '보다'나 '보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視자는 示(보일 시)자와 見(볼 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示자와 目(눈 목)자가 합한 형태였다. 여기서 示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그린 것으로 '보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보이다'라는 뜻을 가진 示자에 目자가 결합한 視자는 '신이 보이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한 의미에서의 '보다'나 '~로 여기다', '간주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視(볼 시)는 ①보다 ②엿보다 ③보이다 ④간주하다 ⑤맡아보다 ⑥본받다 ⑦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살필 찰(察), 살필 심(審), 조사할 사(査), 검사할 검(檢), 볼 감(監), 벼슬 감(監), 바라볼 조(眺), 보일 시(示), 볼 견(見), 볼 람(覽), 볼 관(觀), 볼 열(閱), 나타날 현(顯)이다. 용례로는 빛의 자극을 받아 눈으로 느끼는 것을 시각(視覺), 눈이 가는 방향을 시선(視線), 눈으로 봄과 귀로 들음을 시청(視聽), 눈의 보는 힘이 미치는 범위를 시야(視野), 눈이 보는 힘이 미치는 범위를 시계(視界), 돌아다니며 실지 사정을 살펴 봄을 시찰(視察), 물체의 존재나 형상을 인식하는 눈의 능력을 시력(視力),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를 시정(視程), 사무를 봄을 시무(視務), 존재나 있는 값어치를 알아주지 아니함을 무시(無視), 경계하기 위하여 미리 감독하고 살피어 봄을 감시(監視), 주의해서 봄이나 자세히 눈여겨 봄을 주시(注視), 가볍게 봄이나 가볍게 여김을 경시(輕視), 착각으로 잘못 봄을 착시(錯視), 가까운 데 것은 잘 보아도 먼 데 것은 잘못 보는 눈을 근시(近視), 먼 데 것은 잘 보이고 가까운 데 것은 잘 보이지 않는 시력을 원시(遠視),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내쏘아 봄을 직시(直視), 간섭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음을 좌시(坐視), 눈길을 주어 한동안 바라보는 것을 응시(凝視), 돌아다니며 보살핌을 순시(巡視),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을 이르는 말을 백안시(白眼視), 안중에 두지 아니하고 무시한다는 말을 도외시(度外視), 따뜻하고 친밀한 마음으로 본다는 말을 청안시(靑眼視), 백성을 제 자식처럼 여긴다는 말을 시민여자(視民如子), 죽음을 삶같이 여기고 두려워하지 아니한다는 말을 시사여생(視死如生), 죽는 것을 고향에 돌아가는 것과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한다는 말을 시사여귀(視死如歸), 보고도 보지 못한 체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시약불견(視若不見), 보기는 하되 보이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시이불시(視而不視), 우물 속에서 별을 본다는 뜻으로 우물 안에서는 겨우 몇 개의 별밖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사사로운 마음에 가리우면 견해가 한 편에 치우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정중시성(井中視星), 열 사람의 눈이 보고 있다는 뜻으로 세상 사람을 속일 수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십목소시(十目所視), 범이 먹이를 노린다는 뜻으로 기회를 노리며 형세를 살핌을 비유하는 말을 호시탐탐(虎視眈眈), 눈으로 먹고 귀로 본다는 뜻으로 맛있는 것보다 보기에 아름다운 음식을 좋아하고 몸에 맞는 것보다 귀로 들은 유행하는 의복을 입음을 이르는 말을 목식이시(目食耳視) 등에 쓰인다.
▶️ 惑(미혹할 혹)은 ❶형성문자로 或(혹)과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마음 심(心=忄;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혹시, 혹은의 뜻을 가진 或(혹)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惑자는 '미혹하다'나 '의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惑자는 或(혹시 혹)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을 지키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혹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혹시라도 적이 쳐들어올까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心자가 더해진 惑자는 성을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며 수상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惑자는 그런 의미에서 '의심하다'나 '미혹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惑(혹)은 정도(正道)의 장해(障害)가 되는 일이나 마음에 혹시, 혹은 하고 생각하다의 뜻으로, ①미혹하다 ②미혹케하다, 현혹시키다 ③의심하다, 의아스럽게 여기다 ④미혹(迷惑), 의혹(疑惑), 현혹(眩惑) ⑤번뇌(煩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미혹할 미(迷), 미혹할 영(覮), 의심할 아(訝)이다. 용례로는 어떤 것을 너무 지나치게 즐김을 혹기(惑嗜), 사람을 홀리는 말이나 주장을 혹설(惑說), 어지러운 세상을 혹세(惑世), 반하여 꼭 믿는 믿음을 혹신(惑信), 끔찍이 사랑함을 혹애(惑愛), 사람을 미혹하는 술책을 혹술(惑術), 미혹되어 어지러움을 혹란(惑亂), 몹시 반하여 제 정신을 잃고 빠짐을 혹닉(惑溺), 수상하게 여김을 의혹(疑惑), 나쁜 길로 꾐을 유혹(誘惑), 어지럽게 하여 홀리게 함을 현혹(眩惑), 마음이 흐려서 무엇에 홀림을 미혹(迷惑), 곤란한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을 곤혹(困惑), 생각이 막혀서 어찌할 바를 모름을 당혹(當惑), 어떤 일에 즐겨 빠짐을 익혹(溺惑), 매력으로 남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매혹(魅惑), 남을 아첨하여 유혹함을 영혹(佞惑), 남을 속이어 홀림을 광혹(誑惑), 남을 꾀어 속임을 고혹(蠱惑), 속이어 미혹하게 함을 기혹(欺惑), 망령되이 혹함을 망혹(妄惑), 놀랍고 의아로움을 경혹(驚惑), 크게 반함을 대혹(大惑), 미쳐서 혹함을 광혹(狂惑), 의혹을 풀어 버림을 파혹(破惑), 의혹을 풀어 버림을 해혹(解惑), 미혹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나이 마흔 살을 일컫는 말을 불혹(不惑),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것을 이르는 말을 혹세무민(惑世誣民), 후처에게 홀딱 반함을 일컫는 말을 혹어후처(惑於後妻), 글자가 잘못 쓰였다는 뜻으로 여러 번 옮겨 쓰면 반드시 오자가 생긴다는 말을 어시지혹(魚豕之惑),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지자는 도리를 깊이 알고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미혹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지자불혹(知者不惑) 등에 쓰인다.
▶️ 聽(들을 청)은 ❶형성문자로 聴(청)의 본자(本字), 听(청)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귀 이(耳; 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呈(정, 청)의 생략형과 나머지 글자 덕(세우다)으로 이루어졌다. 소리가 잘 들리도록 귀를 기울여 듣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聽자는 ‘듣다’나 ‘받아들인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聽자는 耳(귀 이)자와 壬(천간 임)자, 悳(덕 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耳자에 두 개의 口(입 구)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누군가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후에 口자는 생략되었고 대신 눈과 심장을 그린 悳자와 壬자가 더해지면서 ‘보고(直) 듣고(耳) 느끼는(心) 사람(壬)’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획이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단순히 ‘듣는다’라는 뜻에서 ‘듣고 용서하고 살핀다.’까지 모두 표현하려다 보니 이렇게 다양한 글자들이 결합한 것이다. 그래서 聽(청)은 ①듣다 ②들어 주다 ③판결하다 ④결정하다 ⑤다스리다 ⑥받아 들이다, 허락하다 ⑦용서하다 ⑧살피다, 밝히다 ⑨기다리다 ⑩따르다, 순종하다 ⑪엿보다, 염탐하다 ⑫맡기다 ⑬마을 ⑭관청(官廳) ⑮염탐꾼, 간첩(間諜) ⑯이목(耳目)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소리를 듣는 감각을 청각(聽覺), 방송이나 진술 따위를 자세히 들음을 청취(聽取), 강연이나 설교 등을 듣는 군중을 청중(聽衆), 퍼져 돌아다니는 소문 또는 설교나 연설 따위를 들음을 청문(聽聞), 강의를 들음을 청강(聽講), 귀로 소리를 듣는 힘을 청력(聽力), 명령을 들음을 청령(聽令), 송사를 자세히 듣고 심리함을 청리(聽理), 듣고 봄을 청시(聽視), 소리가 귀에 들리는 범위를 청야(聽野), 이르는 대로 잘 들어 좇음을 청종(聽從), 죄의 고백을 들음을 청죄(聽罪), 몰래 엿들음을 도청(盜聽), 눈으로 봄과 귀로 들음을 시청(視聽),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 것을 경청(敬聽), 주의를 기울여 열심히 들음을 경청(傾聽), 듣기 기관의 장애로 듣는 힘이 낮아지거나 없어진 상태를 난청(難聽), 듣지 아니함이나 청하는 것을 들어 주지 아니함을 불청(不聽), 참여하여 들음을 참청(參聽), 소문을 들음 또는 그 소문을 풍청(風聽), 공손한 태도로 조심성 있게 들음을 근청(謹聽),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들어도 들리지 않음을 청이불문(聽而不聞), 듣고도 못 들은 체함을 청약불문(聽若不聞),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뜻으로 거리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함을 도청도설(道聽塗說), 거문고 소리가 하도 묘하여 물고기마저 떠올라와 듣는다는 뜻으로 재주가 뛰어남을 칭찬하여 이르는 말을 유어출청(遊魚出聽),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뜻으로 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을 비유하는 말을 이시목청(耳視目聽),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시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음을 겸청즉명(兼聽則明), 남의 말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귀담아 듣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세이공청(洗耳恭聽),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남을 꾸짖지 않음을 내시반청(內視反聽), 여러 사람을 거쳐 전해 오는 말을 들음을 전지전청(傳之傳聽)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