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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좋은 활약을 다짐하는 밝은 모습과 아래는 2005년 재활 중에 공에 맞아 뼈가 부러진 부위를 보여주는 봉중근. |
미국 진출의 계기가 된 청소년 대회
1997년 8월 봉중근은 청소년 대표팀의 일원으로 캐나다에서 벌어진 제17회에 세계 청소년대회에 참가했습니다. 투수 겸 타자였던 그는 첫 경기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홈팀 캐다와 벌인 개막전은 치열한 난타전. 봉중근은 홈런을 치며 활약했고, 16-15로 쫓긴 9회말 1사 주자 2,3루의 위기에 등판해 연속 삼진으로 승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대회에서는 타자로서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4게임 연속 홈런을 쳤어요. 타율도 5할이 넘고, 심판의 오심으로 사이클링 히트를 놓치기도 했지요.” 그는 대회 올스타에 뽑힌 것은 물론 타격왕 타점왕과 함께 MVP까지 수상했습니다. 팀은 5위에 그쳤지만 대회는 봉중근을 위한 무대였고, 그해 10월 고교 2학년이던 그는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7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타자냐 투수냐? 첫 마이너 시즌
1998년 2월 봉중근은 플로리다의 마이너리그 캠프에 참가했습니다.
그때까지도 브레이브스는 봉중근을 타자로 키울지 투수로 키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날 봉중근에게 파란색 훈련복이 지급됐습니다. 파란색은 야수들, 빨간색은 투수들의 훈련복. 구단은 일단 그를 타자로 테스트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첫 날부터 타격 훈련을 하는데 영 쉽지가 않은거에요. 그전까지는 알루미늄 배트를 썼는데 갑자기 나무 배트를 사용하니 공도 제대로 안 맞고 파울볼이 많이 나고 그랬죠.”
봉중근은 바로 다음날부터 빨간 훈련복으로 갈아입었고, 그 후로는 계속 투수 수업을 받았습니다. 걸프코스트리그의 루키팀에 배속된 봉중근은 11게임(10선발)에 나가 48이닝을 던지면서 삼진 56개를 빼앗고 자책점은 8점밖에 내주지 않으며 평균자책점 1.50의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애틀랜타 산하 루키 리그 MVP로 뽑혔습니다.
매덕스의 기억
브레이브스는 매년 시즌 막판에 자체 마이너리그의 MVP들을 홈구장 터너필드로 초대해 시상식을 갖습니다. 봉중근이 시상식에 참석한 것은 1998년 빅리그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그 전에 텅 빈 터너필드를 본 적은 있지만 관중이 꽉 들어찬 운동장은 봉중근에게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날 선발이 브루스 첸이었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경기를 보면서 나도 꼭 저 마운드에 서고 말겠다고 각오를 다졌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봉중근은 그렉 매덕스를 처음 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추억이 있습니다. 마이너리그 유망주들이 쭉 클럽하우스로 들어서자 매덕스는 무엇하러 왔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래서 마이너리그에서 MVP를 받은 선수들이라고 하자 갑자기 마구 욕설을 섞어가며 소리를 지르면서 “그럼 너희들이 내 자리를 빼앗아갈 놈들이구나.”라며 화를 버럭 내더라는 겁니다. 어린 선수들이 어리둥절하고 어쩔 줄 몰라 하자 매덕스를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열심히들 하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장난을 친 것이었습니다.
“아주 점잖고 위대한 투수로만 알았는데 농담도 잘 하고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내게도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열심히 해서 빅리그에서 보자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첫 시즌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봉중근은 신일고로 복학해 2학기를 마치고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1999년 스프링 캠프에 참가하느라 졸업식에는 어머니와 누나가 대신 참석했습니다.
고교 2년생 봉중근의 미국 프로야구 진출은 국내에서도 큰 뉴스였습니다. |
다음날 터너필드에 도착해 라커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고 너무 신기해하던 봉중근에게 치퍼 존스가 다가오더니 “넌 참 운도 없다. 하필이면 실링이란 맞붙다니. 우린 1점 정도나 뽑을 수 있을테니 최선을 다해봐라.”라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그러나 봉중근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못해도 본전이고 잘 하면 큰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1회에 마운드로 걸어가는데 대형 전광판에 내 모습이 크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경기를 초반부터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마운드에서 포수를 바라보는데 사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짜 큰일났다 싶었지요.” 톱타자 토니 워맥에게 연속 4개의 볼넷을 내주는 등 1사에 주자 2,3루의 위기에 몰리자 마조니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가 봉중근에게 ‘주자, 실점 그런거 신경 쓰지말고 타자만 상대하라’며 안정시켰습니다. 그리고 4번 루이스 곤잘레스를 삼진으로 잡고 이어진 만루에서 다시 삼진으로 투아웃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포수 밀러가 친 공을 좌익수 치퍼 존스가 놓치는 바람에 싹쓸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정쩡한 플레이는 실책이 명백해 보였지만 루키 투수에게 내려진 기록원의 판정은 안타. 모두 자책점이 됐습니다. “그럴 경우 루키에겐 백발백준 안타가 기록된다면 선배들이 위로를 해주더군요.”
결국 그 경기에서 봉중근은 6이닝 5실점(4자책)을 기록했고 실링은 삼진 13개를 잡으며 8이닝 1실점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병현이 형의 칭찬도 듣고 랜디 존슨과 병현이형 사인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봉중근은 다시 더블A행 통고를 받았습니다.
타자의 자질 발휘
봉중근은 그러나 빅리그 데뷔전에서 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은 기억도 있습니다. 커트 실링을 상대한 첫 타석에서 펜스 앞까지 날아가는 장타를 때렸는데 호수비로 잡히자 팬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쳐준 것이었습니다. “당시 볼카운트 2-2에서 패스트볼이 들어오길래 힘껏 때렸는데 펜스 바로 앞에서 아쉽게 잡혔습니다. 그런데 4구째 실링의 특기인 떨어지는 포크볼을 내가 골라내자 선수들은 더욱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상대 2루수는 내가 포수 사인을 훔쳐본 것 아니냐는 제스처까지 했습니다.”
그 해 가을 로스터가 확대되면서 봉중근은 다시 빅리그에 합류했지만 한번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마침내 불펜에 있던 봉중근을 찾는 전화가 울렸습니다. 몸을 풀려고 글러브를 잡는데 불펜 코치는 빨리 덕아웃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보비 콕스 감독이 대타로 봉중근을 내보낸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트랙슬이라는 투수를 상대로 11구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삼진으로 물러났는데 그래도 칭찬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2003 시즌
2003 캠프가 시작되면서 브레이브스 로테이션은 한 자리가 비어있었습니다. 봉중근과 함께 친구인 호라시오 라미레스가 경합을 벌이는 구도였습니다. “그런데 조를 짜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상황은 제가 불리했습니다. 그래서 코치님에게 나는 매일도 던질 수 있다고 말했죠. 당시 불펜에는 레이 킹 한명만 왼손 투수였거든요. 또 마조니 코치님은 신인들이 많이 열심히 던지는 것을 좋아해 거의 매일 불펜 피칭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봉중근은 구원 투수로 빅리그 로스터에 진입했고, 초반에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10게임 무실점 행진을 벌이는 등 초반에 행운을 몰고 다니며 5연승 가도를 달리기도 했습니다. “시즌 초반에 매덕스와 오티스 등 선발들이 아주 안 좋아 계속 등판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가면 타자들이 경기를 뒤집는 등 행운도 따랐습니다. 짧은 이닝을 집중해서 던지니 공도 94마일까지 나오고 구위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봉중근은 부진했습니다. 선발들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등판 기회도 자주 오지 않았고, 가끔 한번씩이나 겨우 나가면서 밸런스와 감각도 떨어졌습니다. 8월엔 단 3게임만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42게임에 나가 6승2패의 성적으로 첫 빅리그 시즌을 순조롭게 마쳤습니다.
2003년 좋은 활약을 펼치던 브레이브스 시절.ⓒ GettyImages/멀티비츠/나비뉴스 |
갑작스런 트레이드와 불운의 연속
2004 캠프가 막바지를 치닫던 3월말 봉중근은 아침 7시에 슈홀츠 단장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신시내티의 크리스 리츠마와 2대1 트레이드가 됐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상대팀 에이스랑 트레이드가 된 만큼 가면 선발 기회도 오고 할테니 열심히 하라고 하더군요.”
지나고 보면 며칠 전에 갑자기 신체검사를 받는 등 트레이드 조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트레이드는 충격이었고, 신시내티 캠프로 곧바로 이동했지만 일을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시범 경기 5게임쯤을 던지고 캠프가 끝나가자 신시내티 구단에서는 봉중근에게 어떤 자리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봉중근은 선발을 선호하지만 구원 투수로도 충분히 뛸 수 있다고 말했지만 팀은 트리플A로 가서 선발 수업을 쌓고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전 시즌에 구원으로만 뛰었기 때문에 선발 투수의 어깨를 다시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해 6월에 봉중근은 빅리그로 승격돼 3게임에서 선발로 나섰습니다. 오클랜드의 배리 지토, 텍사스의 케니 로저스, 그리고 세인트루이스의 맷 모리스 등 모두 에이스들과의 격돌이었습니다. 첫 게임은 망쳤지만 두 게임은 잘 던져 카디널스전은 승리 투수도 됐습니다.
그러나 다시 켄터키주 루이빌의 트리플A로 내려갔고 8월초에 어깨를 다쳤습니다. “경기 중에 커브를 던졌는데 어깨가 삐끗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이닝에 다시 던지는데 공이 힘이 하나도 없고 계속 안타를 맞고 해서 제가 트레이너를 불렀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어깨를 못 들 정도로 아팠고 검사를 받으니 왼쪽 어깨 회전근이 손상됐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플로리다에서 재활을 했는데 다시 패스트볼이 92마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트리플A로 가서 경기에 나섰는데 통증이 재발, 결국 2004년 9월11일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1시간 예정의 수술을 3시간이 걸릴 정도로 손상이 예상보다 심했고 1년에 걸친 길고 지루한 재활 기간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운동했고 예상보다 빠른 2005년 8월에 다시 재활 등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트리플A로 다시 가려고 짐까지 싸놓고 올라간 마지막 재활 등판에서 봉중근은 그러나 또 한번 악몽을 겪습니다. 타자가 친 라인드라이브에 왼손등을 맞아 뼈가 부러진 것입니다. 깁스를 하고 다시 한달여를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WBC와 국내 복귀
2005년 가을 도미니칸 윈터리그에서 재기를 다지던 그에게 LG가 접촉을 했습니다. 아직은 미국 야구의 도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봉중근이어서 진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WBC 대회가 확정되면서 선수 선발이 시작됐습니다. “겨울에 덕수상고에서 김인식 감독님께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감독님께서 직전 타석에 들어가 제 공을 유심히 살피셨습니다. 그 때 변화구가 상당히 좋았는데 그래서 선발된 것 같습니다.”
봉중근은 WBC에서 선후배들이랑 어울려 운동하고 경기를 벌이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국내 복귀의 마음은 그때부터 생기기 시작했고 시즌 초반에 더블A에서 뛰다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부인에게 다짐을 하고는 LG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규정상 국내 프로 경기는 2군에서도 뛸 수 없었기 때문에 2군 연습 경기만 뛰면서 운동을 하다가 2007 시즌에 드디어 국내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초반 연승 가도를 달리던 기세는 5월 들어 급격히 수그러들었습니다. “제가 원래 마이너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5월 징크스가 있어요. 작년에도 경헌이형 사건도 있었고 5게임 연속으로 정말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2군에 가서 다시 가다듬고 올라와 기아전에 승리하는 등 괜찮아졌는데 팔꿈치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양상문 투수 코치의 지도 아래 9월 들어 다시 정상 컨디션을 찾았고 호주 마무리 캠프에서도 아주 좋았습니다. 한국에서의 두 번째 시즌을 맞는 그의 각오는 결의에 차 있습니다.
“작년에는 큰 관심을 보여주셨는데 규정 이닝도 못 채우는 등 기대에 어긋나 죄송했습니다. 연봉도 1억이나 삭감돼 더욱 정신을 차리게 됐습니다. 올 해에는 (서)재응이형이랑 (김)선우형도 왔고 좋은 대결들을 펼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LG가 포스트 시즌에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사실 작년에 우리가 아깝게 탈락한 것은 제 책임도 큽니다. LG 팬들에게 반드시 좋은 시즌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봉중근은 메이저리그를 포기한 것을 진짜로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씩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국내에 돌아와 훈련도 많이 하고 그러니까 몸이 진짜 좋아졌습니다. 왜 생각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젠 한국 야구에 뼈를 묻어야지요. 팀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운동해서 10년은 더 뛰고 싶습니다. 올해 스물아홉이니까 서른아홉까지는 현역 투수로 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지도자의 길을 찾든지 야구를 떠나지 않을 생각입니다.”
첫댓글 엘지의 에이스로 우뚝 서주길 바랍니다 봉중근 화이팅!
직구스피드가 145정돈 나왔줬으면..140은 너무해
봉미미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