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으로
모레가 처서다. 하루가 다르게 더위 기세가 꺾여 가고 있다. 남녘 해안으로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는 빗나가고 있다. 이틀째 하늘은 흐렸다만 비는 내리질 않았다. 어제는 퇴근 후 와실로 들어 저녁밥을 해결하고 산책을 나섰다가 버스를 타고 연하해안로를 일주했다. 연초에서 하청 간 진동만 내해 해안선을 따라 뚫린 도로가 연하해안로다. 와실로 들어 옷차림만 바꾸어 산책을 나섰다.
연사삼거리에서 들길을 따라 연초교로 나갔다. 거제대로에서 연사와 임전 사이 연초천을 건너는 다리가 연초교다. 연초천이 고현만으로 유입되는 하류다. 민물과 바닷물에 섞이는 지점이라 염도가 낮은 데다. 기수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이 사는 곳이다. 조수 간만의 차로 물때에 따라 하천의 수위가 달라짐이 확연하다. 연초천 천변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주민들이 즐겨 이용한다.
나는 가끔 연초천 산책로를 따라 고현으로 나가 생필품을 사 오기도 한다. 연사에서 고현까지 연초천을 따라 걸으면 1시간 이내다. 퇴근 후 내가 고현으로 나가는 1차 목적지는 시외버스 터미널 곁 의원이다. 혈당이 높다 해서 당뇨 약 처방전을 받는 내과다. 즐기는 술만 줄이거나 끊으면 아무렇지도 않으련만 주치의 앞에 자존심이 구겨진다. 코가 한 번 꿰면 봉이 된 나이롱환자다.
연초천이 끝나고 고현만 매립지가 가까워질 때부터 흐린 하늘에 비가 주룩 내려 우산을 펼쳐 썼다. 올봄 거제로 건너와 몇 차례 두 차례 들린 내과다. 혈당 수치가 경계선 근처에 머물러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였다. 접수를 끝내고 혈당을 체크하니 경계선 근처였다. 의사는 별다른 문진도 없이 혈압과 체중을 재고 가라면서 처방전을 끊었다. 혈압은 언제나 정상치였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들려 약을 탔다. 내리던 비는 일시 멈추었다. 버스터미널로 바로 가질 않고 근처 골목 실내 포장마차를 찾았다. 전에도 한 차례 찾았던 골목집이었다. 가게 문을 들어설 무렵 그쳤던 비가 다시 세차게 내렸다. 나와 동시 늙수레한 사내 둘이 함께 들어섰다. 그들을 김치찌개로 소주를 들면서 공기 밥을 시켰다. 나는 파전에다 생탁을 한 병 시켜 자작해야 했다.
창밖은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렸다. 잠시 뒤 주인이 차려온 부침개는 오징어를 잘라 넣은 부추전이었다. 비오는 날에 딱 어울린 서민 안주였다. 젓가락을 들기 전 부침개를 폰 카메라에 담았다. 몇 지기에게 퇴근 후 고현으로 나와 저녁 한 끼를 대신하는 곡차를 자작한다는 문자와 사진을 보냈다. 한 친구는 운치 있고 먹음직한 모습이라는 회신이 왔다. 잔을 권하지 못해 유감이었다.
실내 포장 빈 탁자엔 단골 주당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옆 자리서는 병원을 다녀온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잔을 채우고 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이가 제법 들어 뵈는 사내들인데 백수가 아닌 현역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비우던 생탁이 바닥을 보여 한 병 더 시켰다. 안주로 드는 부추전은 식사를 건너뛰어도 될 정도였다. 어둠이 내린 골목엔 비가 여전히 내렸다.
비가 그친 틈새에 실내 포장에서 일어났다. 버스 정류소로 가기 전 수협 마트로 향했다. 고현은 지역 특성상 농협 마트도 있지만 대형 수협 마트가 있었다. 생각이 났던 몇 가지 생필품을 사야 했다. 욕실 비누와 주방용 세제가 필요했다. 찬거리로 어묵과 김과 참치 캔을 샀다. 어묵은 다음 주중 김치를 넣어 찌개로 끓이고 김과 참치 캔은 유통기한이 길기에 훗날 여유분으로 마련했다.
수협 마트를 나와 와실로 가는 버스정류소로 갔다. 내가 머무는 연초는 북동부로 다니는 모든 버스들이 지나는 길목이다. 터미널을 출발해 옥포를 지나 능포로 가는 10번 버스가 왔다. 시내를 벗어나니 금세 연사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는 다시 세차게 내렸다. 잠시인데도 와실이 있는 골목으로 드는 사이 바짓단은 비에 젖었다. 비는 밤새 내렸다가 그치길 반복했다. 가을장마가 되려나. 19.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