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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와 일본해녀 비교 & 사진으로 보는 제주해녀
2015년 당시 일본해녀 아마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경쟁할 때
스크랩해 놓았던 기사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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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문화’가 지난해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 대상
한국대표 종목으로 선정되면서 해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녀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인적 문화 자원으로
산소호흡장비 없이 바다 밑으로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나잠(裸潛) 어업 종사자이다.
일본 해녀들은 스티로폼 부표를 띄운 뒤 부표와 자신의 몸을 2~3m 길이의 줄로 연결하고 잠수하지만
제주 해녀는 부표와 몸을 끈으로 고정하지 않고 수심 10~20m이내에서 자유롭게 잠수할 수 있다.
제주 해녀문화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 해녀 ‘아마’의 등재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어
자칫 하다가는 해녀의 세계적인 공식 명칭이 아마로 쓰여질 위기에 처해있다.
오랜 역사를 제주 바다와 함께 해온 우리 해녀문화의 유네스코 등재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전승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만큼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2011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문화보존 및 전승위원회를 구성해
제주해녀문화 세계화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국민들의 공감대 조성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일 양국이 '해녀'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경쟁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2007년부터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반면 일본은 올해 뒤늦게 나서고 있다.
'해녀'는 한국과 일본만 있어 한쪽이 먼저 등재하면, 다른 쪽은 올리기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은 제주도가 '해녀'의 발상지라고 보고 있으며
기량도 앞서기 때문에 원조 지위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제주해녀는 나잠어업으로 해산물을 채취한다.
나잠어업은 산소호흡장비 없이
수심 10~20m이내의 바다 밑으로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말한다.
제주도의 여자들은 7,8세 부터 헤엄치기 연습을 시작해 15,16세에 독립된 해녀가 되고
40세 전후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며 60세 전후까지 해녀생활을 한다.
하지만 젊은 해녀 들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고령화가 빨라지고 있다.
10~20년 뒤에는 더 이상 해녀들을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일본 해녀 ‘아마(海女)’의 잠수문화
제주일보 좌동철 기자
2016.05.03
일본도 해녀 2000여명...제주해녀와 물질 '비슷'
▲ 일본 아마(海女)들이 이소오케(磯桶)라 불리는 부력기구에 의지해 물질에 나서고 있다(일본 바다박물관 제공).
제주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오는 11월 28일
에티오피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 제11차 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유산 등재에 낙관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 역시 자국의 해녀를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본지는 2차례에 걸쳐 양국의 해녀와 일본 현지의 반응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일본 도바시에 있는 바다박물관에서 발행한 책자에 따르면 산소 호흡장치 없이 잠수를 해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는 지구상에 제주와 일본 열도 2곳에만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일본은 해녀를 ‘아마(海女)’라 부른다. 일본에는 18개 현에 2000여 명의 해녀가 있다.
이 중 미에현(三重縣) 시마반도에는 761명으로 가장 많다.
일본 학계는 3000년 전 미에현 도바시 시라하마 유적에서 다량의 전복 껍질과
사슴뿔로 만든 빗창(채취 도구)이 출토돼 선사시대부터 해녀가 존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 왕실 법도인 엔기시키(延喜式·927년)에는
‘시마국에 해산물을 진상하는 가즈키메(潛女)는 30명이다’라고 기록하는 등
8세기에 잠녀(潛女)라는 글자가 문헌에 등장했다.
고대 헤이안(平安)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해녀들은 일본 3대 신궁(神宮)의 하나인 미에현에 있는 이세신궁에 전복 등 해산물을 진상해 왔다.
반면 우리나라 해녀의 존재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왕 13년(503년) 문헌을 통해 처음으로 등장했다.
여러 정사(正史)에서 해녀는 ‘진주 캐는 사람’으로 묘사돼 왔다.
제주와 일본 해녀는 장비와 복장에 큰 차이가 없다.
제주는 테왁, 일본은 둥근 나무통인 이소오케(磯桶)라는 부력 유지 기구를 사용했다.
그런데 물질 방법은 서로 다르다.
제주해녀는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지 않고 자유롭게 잠수해 10~20m를 들어가는 등
누구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않는다.
반면 일본 해녀는 ‘후나도’(舟人·뱃물질)와 ‘가치도’(徒人·갓물질)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후나도는 부부가 배를 타고 나가서 작업을 하는데 해녀가 해산물을 채취하면
남자는 해녀 허리에 연결된 생명줄을 끌어당긴다. 남자도 해녀문화의 한 부분인 셈이다.
가치도는 해녀 홀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부표에 7~8m의 밧줄을 허리에 연결해
부표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작업을 한다.
이와 비교해 제주해녀는 철저한 여성 문화로서
물질 기술에 따라 상·중·하군으로 위계질서가 나뉘는 잠녀회가 자리 잡았다.
여성에게는 버거운 노동의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해녀 노래가 발달했다.
제주해녀는 타고난 잠수기술과 작업의 효율성 덕분에
일본과 중국, 러시아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행동반경을 넓혔다.
1930년대 국내·외 출가 해녀는 500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제주해녀와 일본해녀를 경쟁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물질을 끝낸 아마(海女)들이 아미고야(부뚜막)에서 모닥불을 쬐며 언 몸을 녹이고 있다.
일본 해녀 역시 메이지유신(1868년) 전까지 상반신이 나체인 상태로 물질을 하는 등
생명을 걸고 바다에서 고된 노동을 했다.
이들은 물에 들어가기 전 바닷물을 맛보고 ‘쯔이쯔이’ 라며 주문을 외웠고,
‘세만’이라는 부적을 챙기는 등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소망은 제주해녀와 다를 게 없다.
또 힘든 작업 후에 지치고 언 몸을 모닥불로 덥히는 아미고야(부뚜막)는 제주의 불턱과 유사하다.
일본 해녀들도 남획을 막기 위해 ‘슨보’(전복의 크기를 재는 자)로 10.6㎝ 이하의 전복은 채취하지 않고 있다.
또 미에현 지방은 산란기에 맞춰 9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복 채취를 금지하고 있다.
해녀문화의 유네스코 등재에 앞서 양국의 공통적인 문제는 고령화와 후계자 감소, 해산물의 심각한 고갈에 있다.
또 양국의 공통적인 걱정은 20년 뒤 해녀 유입이 중단돼 명맥이 끊기는 위기감에 있다.
♦이시하라 요시카타 바다박물관장 인터뷰
▲ 이시하라 요시카타 바다박물관장
일본 미에현 도바시에 있는 바다박물관에선 일본 해녀 ‘아마’의 역사와 삶을 소개하고 있다.
이사하라 요시카타 바다박물관장은
“해녀문화를 유네스코 등재하기에 앞서 후대까지 해녀문화를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시하라 관장은 “일본 해녀의 평균 나이는 65세로 후계자 육성이 가장 필요하다”며
“해녀는 자연과 어울려 생계를 이어갔지만 고령화로 인해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게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그는 “2009년 일본에서 열린 해녀 포럼에 제주해녀들을 초청했고,
그동안 양국의 해녀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며 “제주대학교와 미에대학이 자매결연을 체결,
교류와 연구를 통해 해녀문화를 발전, 계승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2007년 양국의 해녀를 유네스코에 공동으로 등재하자고 제주도가 먼저 제안했다”며
“일본은 지금도 제주와 일본 해녀가 공동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시하라 관장은 “일본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해녀를 문화재(유산)로 지정하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사라져가는 해녀문화를 먼 후대에도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을 맺었다.
출처 : 제주일보(http://www.jejunews.com)
일본 해녀, ‘아마’
강원도민일보 김영희 기자
2017.10.27
진주 채취 해녀와 진주산업 연계 관광상품 되다
유네스코문화유산 등재 세계 홍보
감소하는 해녀 보존·계승에 노력
바다박물관 아마 역사·현황 전시
연 30만 방문객에 아마 물질 선봬
세계에서 호흡기 장치 없이 바다에서 물질하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가 있는 곳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 해녀는 ‘아마’라고 불린다.
‘아마’가 많이 활동하고 있는 미에현 토바시는
해녀를 지역의 진주 산업과 결합한 관광상품으로 진화시켰다.
토바시 마을 주민들은 ‘아마’를 어업 자체로서의 중요성과 함께 지역사회와 밀착,
감소하는 ‘아마’를 전승,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일본은 ‘아마’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세계를 상대로 ‘아마’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점차 사라져가는 동해안 해녀와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미에현 미키모토 진주섬은 매시간마다 아마 물질시범을 통해 아마 홍보에 노력하고 있다.
■ ‘아마’현황·역사
일본 ‘아마’는 미에현 토바시·시마시를 비롯해 지바현 남보소,시즈오카현 이즈,도쿠시마현 아베,
아마구치현 오우라,후쿠오카현 가네자키,나가사키현 쓰시마 등 해안가 전반에 걸쳐 분포돼 있다.
그 수는 일본 바다박물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국에 1800여명이 있으며,미에현이 756명으로 가장 많다.
하지만 일본도 ‘아마’의 수가 점차 감소, 40여년 전 최대치에 비하면 현재 8분의1 수준에 그친다.
‘아마’의 수가 감소하고 있는 2014년 미에현 교육위원회는
“토바,시마의 해녀의 전통적 잠수기술은 문화적 가치가 높아 보존할 필요가 있다”며
현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리고 토바해녀보존회와 시마해녀보존회를 보유단체로 지정했다.
일본은 5000년 전 조몬시대 중엽에 이미 ‘아마’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
3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바시 우라무라의 시라하마 유적에서 대량의 전복껍질과 함께
녹각으로 만든 전복 따는 도구가 발굴돼 당시에 ‘아마’가 존재했음을 짐작하고 있다.
일본 시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7세기 시가집 <만엽집>에 여성‘아마’를 노래학 작품이 있어
일본은 그 이전부터 일본 곳곳에서 ‘아마’들이 활동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미에현 토바시의 바다의박물관은 아마의 역사,현황,도구들을 상세하게 전시해 놓았다.
■ ‘아마’의 모습·조업 방식
‘아마’의 모습은 우리나라 해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소오케(물위에 올라왔을 때 붙잡는 나무통·우리나라의 두렁박,테왁)와 망사리 같은 작업도구와
작업할 때 입는 흰 이소기는 ‘아마’들의 지혜에서 나온 산물이다.
이소기가 흰색이었던 것은 상어나 큰 물고기를 만났을 때 몸을 크게 보이게 해 위험을 피했다는 설과
여성들이 무난한 색깔을 선호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현재는 흰 이소기가 잠수복이나 검은 고무옷,이소오케가 스티로폼으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나라 해녀와 일본 ‘아마’는 호흡장치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같지만 조업 방식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두렁박에 자신의 몸을 끈으로 고정하지 않고 10~20m까지 자유롭게 잠수한다.
해안가 바위 근처에서 작업하든 배를 타고 나가서 물질을 하든 타인의 직접적 도움은 받지 않는다.
반면 일본 ‘아마’의 조업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후나도’는 배를 타고 나가 깊은 곳에서 물질을 하는 것으로 타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방법이다.
주로 부부가 같이 작업을 하게 되는데
여성이 ‘이노치즈나(생명줄)’라는 밧줄을 허리에 메고 10~15m까지 잠수한다(위 사진).
이후 신호를 보내 배 위의 선도가 끌어올려줘 도움을 받는다.
또 다른 방식인 ‘가치도’는 바로 나가서 하는 갓물질을 말한다.
이는 누구의 도움없이 이소오케에 7~8m의 밧줄을 허리에 연결해
멀리 떨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물질작업을 한다(아래 사진).
■ ‘아마’-지역 상생 발전
일본 ‘아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활동 거점은 ‘아마’의 수가 가장 많은 미에현이다.
특히 토바시에 위치한 ‘바다박물관’이 주축이다.
바다박물관은 ‘아마’의 국내외 홍보와 전시 기능을 하고 있다.
‘아마’의 역사,현황을 일목요연하게 게시, 작업 모습을 재현하고 채취하는 해산물 등을 만져볼 수 있도록 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아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박물관은 약 6만여점의 민속자료를 소장·전시해 ‘아마’만이 아니라 일본의 어로문화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바다박물관은 ‘아마’에 대한 기초조사를 실시해 보고서를 발행하고,유물 수집과 연구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 위치한 기프트숍은 ‘아마’들이 작업복이나 도구에 새겨
수중에서 마귀를 쫓는다는 부적 기능의 ‘도만(별무늬)’과 ‘세만(격자무늬)’으로
배지(아래 사진)나 손수건 등 다양한 소품에 활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토바시는 일본에서 진주의 생산지로 유명한 관광지다.
토바시의 관광전략에는 ‘진주’와 진주를 채취하는 ‘해녀’가 있다.
특히 진주를 생산,판매하는 미키모토 진주섬이 ‘진주와 해녀’라는 관광콘텐츠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미키모토 진주섬은 토바시를 방문한 대부분의 관광객이 거쳐가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매시 20분마다 전통의 하얀 히소기를 입은 ‘아마’들이 진주조개 채취 물질 시범을 한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아마’의 작업 모습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키모토 진주섬의 노보루 시바하라 총괄기획자는
“진주 판매 회사에서 전통 ‘아마’물질 시범을 매시간 할 필요가 있냐라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미키모토는 외국인 3만명을 포함 연간 30만명 이상이 방문한다.
이들에게 미에현은 물론 일본의 ‘아마’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한다”며
“앞으로도 감소하는 아마의 보존과 계승 그리고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희·송혜림
"이어도 사나, 어이야~" '제주해녀'의 모든 것
http://inside.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11/20131111007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