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영화도 악랄한 왜곡을 했던 허진호
대마도 번주였던 소 다케유키 백작은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는 가슴 따뜻한 영문학도(도쿄제국대)였다.
그런 소백작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식민지 이왕가의 막내 덕혜옹주와 결혼하라는 덴노와 정부의 명령이었다.
소백작은 덕혜가 1930년 5월 의학적으로 조현병 진단을 받은 상태임을 알면서도 1931년 5월 결혼한다.
이후 딸이 태어났지만 산후우울증까지 겹치면서 덕혜의 병세는 악화되었고 소백작의 아내 간호는 혹독했다.
하지만 역사왜곡 전문 영화감독 허진호가 영화에서 그를 악마화한 것과는 정반대로 그는 진심으로 아내를 살폈다.(일기와 간호사 증언 등)
"환하게 웃는 그대 모습/ 기억 속에 여전히 아련한데/혼을 잃어버린 그대를 지키며/흘러가는 세월이 슬프다"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을 담은 소백작의 자작시가 남아있다. 정신병자 아내에 대해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학대라니 당치 않다.
소백작은 영문학 교수가 되었고 종전이 찾아왔다. 하지만 미GHQ의 화족 폐지 정책으로 파산 상태가 된 소백작은 아내 건사가 큰 문제였다.
그는 영친왕 부부와 종실과 상의한 후에 아내를 국립병원에 입원시킨다. 당시로서는 덕혜에겐 최선의 방책이었다.
10년후 덕혜는 결핵에 조현병 증세가 악화되면서 영친왕과 조선 왕실의 요구로 1955년 정식 이혼을 한다.(처음엔 소가 이혼을 거부했었다)
이후 1962년 박정희의장의 선처로 덕혜는 귀국해 낙선재에서 올케 이방자여사와 함께 생활하다 세상을 떠난다.
1970년대말 어느날 전 아내가 그리워진 소 다케유키는
낙선재를 찾지만 밴댕이 소갈머리 이씨 왕실의 거부로
얼굴도 못보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화가 나는 장면이다)
누가 봐도 이 결혼의 피해자는 덕혜가 아니라 소 다케유키 백작이다. 그럼에도 소백작은 정신병자 소 다케코를 아끼고 사랑하고 보살폈다.
이걸 역사왜곡 전문가 허진호는 어떻게 조작했을까?
정신병자 덕혜는 항일독립정신 투철한 애국지사로,
조선노동자들 앞에서 감동적 연설을 하고, 망명을 기획하기까지 한다.
반면 소 다케유키는 내선일체를 위해 결혼을 하고,
틈만 나면 학대하고, 종전후엔 멀쩡한 덕혜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비열한 냉혈한으로 그렸다.
이쯤되면 감독의 상상력이라 부를 수 없다. 그냥 악의 그 자체다.
어쩌면 이번 '암살자들' 파문은 이미 예정되었던 거다.
그렇게 역사를 왜곡해서 짭짤하게 돈 끌어모으던
그 달콤한 기억을 쉽게 잊을 수는 없었을 거다.
온갖 왜곡과 거짓 서사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씹고 일본만 까면 돈이 되는 부끄러운 대한민국 영화계다.
앞뒤 문맥 맞는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못만드는 무식한 딴따라들이, 감상적 단어 몇개 나열하면서 깨어있는 행세하면서 대중들 가르치려 드는 이 더러운 풍토.
이번 기회에 이 못되먹은 버르장머리 못고치면 대한민국 영화 미래 없다. K컬쳐? 좆까라 그래.
/윤종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