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에게 차를 줘 버리고 나니 출입이 고약하다.
바보의 출근시각에 같이 나가 차를 끌고 주변늘 돌아다니다가
그의 퇴근 시각에 맞춰 사무실 앞으로 가는 일도 썩 즐겁지 않다.
버스 정류장에 걸어가 군내버스를 타고 동강이나 벌교터미널에 나가
주변의 산이나 명승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주변의 아는 사람을 길에서 인사나누기도 걷는 걸 설명하기도 귀찮은 일이다.
시간에 매어 처리해야 할 일도 없으면서 차분히 걷지도 못한다.
바보가 연차를 내었다고 오전에 늦잠을 자고 오후엔
조성공중목욕탕에 들르고 복지회관에서 사람을 만나기로 했단다.
후다닥 '보성 복수초'로 검색을 하니 초암산 금화사지 부근이 나온다.
몇년전의 일이고 시기도 이르지만 기대를 갖고 가보기로 한다.
정성을 들여 차려주는 점심을 먹고 그를 조성시장에 내려준다.
겸백으로 올라가 사곡마을로 들어선다.
죽천 박선생의 화산사를 지나 신도비 앞에 차를 세우고 길가의 산지도를 확인한다.
저수지 둑을 보고 오르니 집 몇 채 남아있는 초암마을이다.
감나무 등이 보이는 작업로 뒤로 등산로가 보일 듯도 한데 자신이 없어
샘 옆에 차를 세운다.
임도를 오르니 함양박씨 산소가는 길이라는 쇠푯말이 서 있다.
사람 다닌 흔적은 없고 참나무 잎사귀가 폭신하다.
드러난 흙도 깊이 발자국이 생긴다.
등산로는 보이지 않고 산소 안네판만 가끈 쭈그러져 나타난다.
길은 길게 기울어져 남쪽으로 휘어지다 다시 북으로 구부러진다.
40분이 지나도 등산로를 만나지 못한다.
거친 오르막이 아니지만 낙엽에 무른 흙, 잡목 거친 임도는 힘들다.
고속도로를 내려다보고 주변의 산을 살피는데 힘센 가시를 단 엄나무 작은 게 보인다.
배낭에서 호미를 꺼내 찍으니 금방 손으로 뽑힌다.
작은 나무를 비닐에 넣고 배낭에 넣으니 비닐이 찢어진다.
능선에서 작은 짐승의 길을 만나 따라가니 금화사지 삼거리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정상에서 수남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났다.
겨우 한시간에 가까워지지만 내 몸은 온통 땀이다.
철쭉 나무 봉우리에 우뚝 선 검은 바위들이 반갑다.
바위 사이를 돌아 너른 공터로 서니 새로 정상석이 서 있다.
BAC 인증을 하러 셀카를 찍고 제단을 지나 겸백면소재지쪽으로 내려간다.
잠깐 내려가자 마애불 배틀굴 가는 길이다.
베틀굴은 두고 마애불로 내려가 거친 바위에 새겨진
둥근 미소를 만난다.
줄을 따라 시누대밭을 할키며 내려가니 금화사터다.
물기가 바위 사이에서 나와 포근해 복수초가 있을 것 같아 두리번거려도
안 보인다. 사곡마을 이정표는 오른쪽으로 올라가는데 난 바로 내려간다.
길의 흔적조차 없고 빨간 칠을 한 나무들을 베어 넘어뜨리 오래전 잦ㄱ업의 흔적만 보인다.
나무를 잡은 왼쪽 어꺠가 통증을 보내온다.
발은 빠지고 몸은 흔들린다. 넘어지진 않는다.
이끼 가득한 바위를 건너뛰고 넘어진 썩은 나무들을 넘는다.
그래도 그런 건 편하다.
정작 잎을 가로막아선 넝쿨에 가시달린 관목들이 섞여 틈이 없는 숲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도 내 한몸 빠져나갈 틈이 없으랴. 막 꽃대가 나온 춘란을 두 뿌리 캐 넣는다.
골짜기를 따라 땀을 흘리며 내려오니 감나무밭이 보인다.
계곡 옆에 예전 등산로의 흔적도 보인다.
4시 10분을 지난다.
화산사에 들르지 못해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군머리 주유소에 들른다.
바보에게 전화해 목욕하고 나올 예정 시각을 말한다.
목욕하고 나와도 바보는 나오지 않는다.
화를 누르고 돌아와 비가 내리기 전에 엄나무를 심으러 범재등으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