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대사食事大事 생사대사生死大事
홀로 사시는 법정 스님은 늘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신다.
하지만 때로 끼니때가 번거롭기도 하신지 "식사대사가 생사대사랍니다."
하시면서 밥 먹는 일이 생사를 가르는 큰일이라는 말씀을 가끔 웃으면서
농처럼 하신다. 처음에는 스님이 그저 하시는 가벼운 농담으로 알았다.
하지만 조금만 곱씹어 살피면 그 말씀이 그저 단순한 농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넓고 깊게 따져보지 않더라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점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도 예외일 수 없다. 누구라도 먹어야 산다.
그래서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은 누구든지 자기 식솔들을 잘거두어 먹여야 한다
기업이나 사회, 그리고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도 결국 마찬가지.
잘 거두어 먹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몇 해 전 상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북한 장교로 나오는 정재영이 동막골 촌장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촌장님, 거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을 휘어잡을 수 있는
그 영도력 비결이 뭡네까?" 촌장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한다.
"뭐를 마이 멕여야지 머."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쓴
김훈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말한다.
"밥은 끼니때마다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것이다.
밥이란 쌀을 삶은 것인데, 그 의미 내용은 심오하다.
그것은 공맹노장보다 심오하다.
밥에 비할진대, 유물론이나 유심론은 코흘리개 장난만도 못한 짓거리다.
다 큰 사내들은 이걸 혼돈해서는 안 된다.
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윤기 흐르는 낟알들이 입속에서 개별로 씹히면서도
전체로서 조화를 이룬다.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떼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인륜 기초이며 사유 토대이다."
식사 대사를 제대로 해결해 바람 앞에 촛불 같은 나라를 구한 이가 있다.
앎이 바르면 삶이 바르다는 이치를 제대로 깨치게 해준 사람.
지금부터 400여 년 전에 이 땅에 태어나 난세를 올곧게 살다간 사람 이순신.
이순신은 기나긴 7년 전쟁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한산도에
통제영을 만든다. 그리고 그곳을 자기가 쓴 시에서는 수국水國이라고 표현한다.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지만, 나라에서 먹을 것, 병선, 무기를 공급해
주지 않았다. 함선도 만들고 무기도 만들어야 하고 병사를 먹이고 입히는 일을
알아서 해야 했다. 원균, 이억기, 권율, 의병장 곽재우 같은 당대 장군들
모두 7년 전쟁을 함께 치렀지만 그들은 전비 조달과 백성을 먹여 살리려고,
산업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달랐다.
이순신은 군대를 이끌고, 백성을 먹이려면 산업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순신은 바닷가 고을을 돌면서 그곳을 수군 전속으로 복속시켰다.
바닷가에 버려진 땅들을 아주 넓은 둔전屯田으로 일궈냈다.
둔전은 백성들에게 임자 없는 땅을 갈고 일궈서 이 땅에서 거둬들인
곡식을 절반은 백성들이 갖게 하고, 나머지는 군대에 바치게 한 제도다.
동시에 바다에서 전복이나 미역을따고 생선도 잡으며 바다와 육지 산물을 함께
개발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전쟁 한복판에서 국내외 해상무역에도 나섰다.
그 7년 전쟁 속에서 경제 기반을 확립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배경엔, '
통제영 수국'이 있었다. 조정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순신은
경제를 통해서 통제영을 이끌고, 전비를 충당하고, 병사들을 키우고, 백성들
배를 곯지 않게 했다. 이순신은 '군사전문가'인 동시에 '경제전문가'였다.
수군통제사 이순신 군정체제 아래서 거대한 농장, 어장, 공작소가
운영돼서 돌아갔고, 한산도 통제영 안에 있는 백성들은 밥걱정을 덜었다.
군사들은 식구들이 전쟁 와중에도 배곯지 않고 살게 된 데 대한
보답으로 죽기를 작정하고 싸웠다. 내 식솔들이 적들 손아귀에 떨어지게
된다면 다시 굶주릴 수밖에 없다는 시실을 군사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경제력 바탕에서 한산도 군영은 1593년 3년 5개월 동안 왜적을 완전하게
막을 수 있었다. 이순신이 한산도를 중심으로 서남해 여러 섬과 바닷가에 이룩한
수국水國, 이른바 '군· 산·정, 산업 정치 복합체제'야말로 나라에 견줄 만했다.
가난한 조선 수군이 막강한 일본군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경제력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그래서 백성들 민심은 언제나 이순신에게 있었다.
모름지기 리더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나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지닌 뜻을 헤아려야 한다. '식사대사=생사대사'
밥 먹는 일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큰일이다.
숨결 변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