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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콩 달 콩 교단 반세기 그 26(몸으로 말 하는 여자)
제대 복직한 대송국민학교에서 3년 동안 나는 항상 교장 눈 밖에 나 있었다. 아웃사이더였다. 교장은 일제시대 교사로 근무하다 해방과 동시에 교원이 모자라 이십대 후반에 교장으로 승진하였다고 했다. 그래선지 일제시대 식민지잔재가 머리에 똬리를 틀어 독단적이고 불도저였다. 학교는 가히 교장의 왕국이었고 안하무인 유아독존이었다.
그 하나 예를 들어 보자. 학교 회식 때 교사들은 막걸리였지만 교장은 더러 맥주나 정종이었다. 원로 교사나 경리가 부추긴 면도 있었지만 교장은 으레 그러려니 했다. 한번은 교장이 회식 자리에서 말단에 앉아 있는 나를 불렀다.
“한잔 하지.”
“못합니다.”
“왜?…”
“맥주 마시면 입술이 부르터서요.”
그러기에 나하고는 생리적으로 물과 기름이었다. 나 또한 ‘고집’ 하면 한가락 하는 처지라 3년 동안 시도 때도 없이 티격태격 했다. 나는 원초적으로 나보다 약하면 대충 넘어가는데 강한 사람에게는 발을 거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3년차 되는 해, 2학기 개학을 한지 며칠 되지 않아 교장이 나를 호출했다.
“구룡포동부학교에 자리가 하나 비었다는데 그리 가겠소?”
또 무슨 일인가 전의를 불태우며 교장실에 들어선 나에게 교장이 던진 말이었다.
“그러죠.”
“나가 보소.”
그것이 끝이었다.
훗날 그 분이 내 장인 어른이 됐지만 말이다. 내가 싹수가 있어 보인다나? 보시는 안목도 역시 명태 눈이셨다. 사실은 내가 먼저 꼬드겼는데….
1965년 10월 1일자로 나는 구룡포동부국민학교 근무 명을 받았다.
구룡포 정류장에 내리자 농촌과 판이한 풍경들이 나를 매료 시켰다. 부두에 정박한 수 십 척의 배들은 대낮인데도 오징어를 유인하는 수많은 백열등을 찬란히 켜고 서로 뱃전을 부딪치며 일렁이고, 경매인들이 웅성거리며 몰려있는 어판장에서는 무더기무더기 쌓인 생선 경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고, 부둣가에서는 멸치 어망을 터는 뱃군들의 신나는 노랫가락에 은빛 멸치가 춤을 추고,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바닷가 사람들의 입에 달고 사는 구수한 욕지거리, 산처럼 퍼질러진 오징어 배를 따는 아낙네들, 오징어 먹물로 얼굴에 황칠을 했으면서도 허연 이를 드러내고 시시닥거리는 그녀들의 질펀한 육담들, 그 사이로 얼쩡대는 개들은 요사이 돈으로 만 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여사로 돌아 다녔다.
나는 그런 사람들 냄새가 너무 좋아 학교에 착임신고도 잊은 채 수캐처럼 킁킁거리며 부둣가를 어슬렁거렸다. 비릿하고 사각거리는 바다 내음은 왜 그리도 좋던지….
올해도 구룡포에 가 보았지만 생동감이, 47년 전 흥청거리던 그때에 비하면 반에 반도 되지 않았다.
퇴근 시간에 겨우 맞추어 학교로 향했다. 구룡포동부는 일제시대에 일본인 학교여서 구룡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있었다.
교무실에 들어서자 퇴근 때라 토요일인데도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술은 막걸리였다. 안주는 아예 바게쓰에 물가자미를 손바닥만 하게 넉넉하게 썰어 넣고 미역과 양파를 섞어 초장으로 버무려 엄버지기였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사발에 떠서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나는 그날부터 구룡포동부에서 내 젊은 날 황금기 8년을 꿈같이 보냈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에겐 읽을거리가 교과서 외에는 거의 없었다. 흑백 TV도 방영되지 않던 시절이라 아이들은 꿈과 낭만이 메말랐다. 그래서 제대 후 내가 짜 낸 것이 ‘이야기 교실’이었다. 일주일에 화·금 두 번씩 방과 후 전교생 중 희망자에 한해 이야기 교실을 열었다. 처음에는 내 교실에서 열었으나 몰려드는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어 졸업식 때나 뜯던 강단교실 칸막이를 열고 수용했다. 물론 학교 아저씨와 교실 담임은 오만상을 찡그렸지만 대포잔으로 달랬다.
지금 생각해도 ‘이야기 교실’은 아이들에게는 짱이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옛날 제자들을 만나면 이미 4·50년이 흘렀는데도 이야기 줄거리, 풍경, 대사, 그리고 당시 내 몸동작까지 흉내들을 낸다. 나에겐 이미 물레방아를 돌리고 흘러 간 물인데 말이다.
‘삼국사기’, ‘이순신’, ‘삼총사’, ‘장발장’, ‘플란다스의 개’, ‘철가면’, ‘톰소여의 모험’ …등등. 하루 60분 정도 이야기 해주었는데 내가 주인공과 등장인물에 맞게 목소리와 몸짓으로 동화를 구연하였으니 그때 아이들 오줌을 더러 쌌을 게야. 게다가 당시 나는 인물 잘난 총각이라 아이들에게만은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었으니까. 60분이면 이야기 길이를 8폭 병풍에 비하면 한 폭이라 아이들은 안달이 나 다음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는 했었다.
그날도 ‘이야기 교실’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서는데 전화가 왔다고 했다.
“고 선생님인교? 1학년 미진이 애비시더.”
투박한 사내의 음성이었다.
“…! 그런데요?”
“샌님은 날 모르께시더. 우짯든 퇴근하는 길에 등대 다방으로 오이소. 내 빼고도 기다리는 사람 더러 있구마. 약주 한잔 하이시더.”
나는 어정쩡했다. 그러나 60분간 지껄인 탓인지 목이 말랐다. 약주란 말에 귀가 솔깃해 축항 옆에 있는 등대 다방으로 향했다. 다방에 들어서니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깍짓동 같은 사내 일곱이 일어나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
“내가 아까 전화한 백화일이시더. 야들은 마카 선주들인데 내카는 계원 간이시더. 니거들 인사해라.”
“내는 선생님 학교 3학년에 다니는 석구 애비 박 형식이라 카니더. 근데 선생님, 이바구를 우째 그리 잘 하는교? 아-들이 학교 가는 기 아이라 선생님 이바구 들으러 가니더. 매주 화, 금요일을 지 생일날보다 더 꼽니더.”
사연은 이러했다. 이들 일곱은 배 선주로서 자녀들이 대체로 저학년이었다. 아이들이 ‘이야기 교실’에 하도 흥미 있어 하니 부모 된 마음에 고맙다고 술이나 한잔 대접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던 모양이었다.
“자, 밍만 짤게 아이고 가입시더."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선지는 요정 ‘향원’이었다. 요정 향원은 구룡포에서 딱 하나있는 방석 까는 집이었고 언감생심 월급쟁이는 발걸음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하루 밤을 즐기려면 접장들 한달 봉급으로는 명함도 내밀 처지가 못 되는 요정이었다. 시설과 음식이 고급일 뿐 아니라 아가씨들은 그 수준이 서울 요정 아가씨들 뺨을 친다고 했다. 오징어 철이면 돈이 요동을 치니 아가씨들도 일류만 데려왔다.
그 당시 오징어 철이 되면 넥타이 족속은 수준이 아무리 낮은 술집이라 하더라도 아가씨 있는 집에서는 받아 주지 않았다. 우리네 접장들이 술 먹는 스타일이 어떠한가. 잘 시키면 안주는 셋 정도, 주전자에 술은 정량으로 들어왔나 매번 뚜껑 열어 확인하다 술 취하면 속을까 벽에다 고무줄 저울까지 달아 놓고 중량을 체크한다. 게다가 마치고 나올 때쯤이면 깐깐한 분이 한 둘은 꼭 있어 열 세 대니 열 네 대니 하고 술 주전자 수를 놓고 승강이 벌리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그 당시 오징어 철의 뱃군 들은 어떤가. 오징어를 만선하는 날이면 배당금이 우리 한달 봉급의 곱이었다. 그런 날은 선주가 술을 쏜다. 그러니 뱃군들은 술값에 신경 쓸 일이 없다. 먹어 주기만하면 되니까. 안주는 비싼 것이 들어올수록 땡이고, 술이야 주전자에 차거나 말거나, 빈 주전자가 왕복하건 말건 알바 아니다. 다만 뱃군의 머리에는 오로지 객고를 풀 수 있는 참한 아가씨를 꾀어 하루 밤 몸을 담글 궁리뿐이다. 그러기 위해 뱃군은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으면 주머니에 든 두둑한 지폐를 둘둘 말아 그녀의 가슴이나 치마 밑으로 마구 쑤셔 넣는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삐라처럼 허공에 날렸다. 아가씨들은 비린내가 대순가 뱃군들이 엉덩이나 가슴팍을 떡 주물리듯 해도 코를 박고 돈을 주워 버선발에 쑤셔 넣었다. 그러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술집 주인이나 아가씨들은 쩨쩨한 봉급쟁이들을 발톱의 때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넥타이 맨 접장들이 그들과 게임이 되는가? 일찌감치 링에서 내려 와 후미진 외곽 대포 집에서 오징어 철이 끝나고 시마(농촌 같으면 춘궁기)져 권토중래의 그날을 기다리며 울분의 칼을 갈고는 했다.
그런데 이 오징어 철에 향원이라니! 나는 겉으로는 대범한척했으나 속으로는 긴장 반 기대 반으로 그들을 따랐다. 향원은 집 구조나 시설, 분위기가 여느 술집과 그 품격 자체가 다르고 노는 물도 달랐다. 손님도 관내 유지나 선주들이었고 뱃군은 아예 사절이었다.
미리 주문을 해둔 듯 열 평 정도의 큰 방 중앙에 이미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요리사의 손길에서 예쁘게 아니면 도발적으로 디자인 되어 입에 춤이 고이게 하였다.
선주들은 듬성듬성 거리를 두고 앉았다. 쭈뼛거리고 서 있는 나에게 백 선주가 말했다.
“고 선생님은 오늘 주인공인기라. 이리 앉으소.”
중앙 자리를 가리켰다. 그때 아가씨들이 한복을 차려 입고 나비처럼 날아들었다. 문이 열리고 방에 들어 와 한 사람 한 사람 큰 절을 하며 자신을 소개하였다.
“송다혭니다. 귀엽게 봐 주세요….”
“나송압니다. 사랑 없인 못 살아요….”
여덟 번째 아가씨가 인사를 했다.
“홍소희라 불러 주세요.”
홍 양이 절을 하고 일어섰을 때 나 뿐 아니고 좌중의 남자들은 모두 굳어 졌다. 그녀는 진공청소기처럼 남정네의 혼을 사정없이 빨아 들였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낭창한 허리와 얄편한 얼굴, 짝진 보조개가 파이며 살짝 치켜뜨는 눈꼬리가 차라리 새초롬했다. 살짝 쳐든 턱 선마저 도도하기 그지없었다. 앞선 아가씨들도 내노라 했지만 그녀 앞에선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주선하던 백 선주가 술자리의 머리를 틀었다.
“니 시방 홍 양이라 켔나? 새물 뽁찡어네. 니 자리는 조오기 미남 총각 선생 곁이다. 한 눈 팔지 말거라, 알았제…. 팁은 내가 줄꺼시 신경 꺼뿌레라!”
그리고 선언하였다.
“남은 가스나들은 지 서방 찾아 가거라. 그라고 내 한마디 하는데 선주 니들 단디 듣거라. 홍 양 한데 늘 춤 흘리면 의리부도 난데이. 홍 양은 시방부터 고 선생 끼다.”
선주들이 듬성듬성 앉는 이유를 알겠다. 전부터 연분이 닿아 있는지 아가씨들은 용케도 그 사이사이에 끼어 앉았다.
술자리는 점점 무르익어 갔고 비례로 선주들과 아가씨들이 주고받는 스킨쉽도 짙어갔다. 맨송맨송하게 앉아있는 나는 곤혹스러웠다. 여자 싫어하는 남자 나서보라지만 나는 평소 술자리에서는 여자보다 술이 좋았다. 그러기에 반가운 친구를 만나면 대포집에 간다. 서로 눈을 보며 한잔 술에 정감을 나누는 것이 좋다. 이럴 때 아가씨를 곁들이면 헷갈린다.
게다가 그때 나는 약관을 겨우 지난 나이라 여자를 다루는(?) 것이 버거웠다. 지금이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통달하여 고수 반열에 올랐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날 나는 난생 처음으로 두 손의 사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고 곤혹스러워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다.
“야, 홍 양아! 니 뭐하는 기고? 오늘의 주인공 고 선생을 흐믈흐믈하게 녹여 보거라.”
아가씨와 스킨쉽에 정신없던 박 선주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한마디 던졌다.
그러자 홍 양은 낭패스러워하는 내게 눈꼬리를 말아 올리고 쌕 웃으며,
“선생님, 쑥이네!”
그리고는 내 왼손을 잡아 막무가내로 자기 허리 깊숙한 곳까지 감았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것이 말이다. 그러나 고마웠다. 나는 그렇게 왼 손으로 낭창거리는 그녀의 허리를 감은 채 술을 마셨다. 그녀가 노래하거나, 웃거나, 장단을 맞추거나. 안주를 집어 내 입에 넣어 주거나, 담배 불을 붙여 주거나, 할 때마다 그녀의 가는 허리의 리듬이 팔딱이는 생선처럼 손바닥에 느껴지고 팔을 통해 매양 다르게 전해왔다.
나는 지금도 여자의 낭창한 허리를 으뜸으로 친다. 여자들의 몸이야 어느 곳 할 것 없이 모두 신비하고 오묘하지만 나는 유달리 미끈한 허리에 집착한다. 아마 그것은, 50년 세월이 흘러 간 지금도 홍 양 허리를 감고 있던 팔에서 전해오던 그날의 신비한 감촉이 뇌리에 똬리를 틀고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첫댓글 오랫만에 자네 글 읽으니 3년 묵은 채증이 싹 가셔지네
50년이 다 되어가는 그때 구룡포에서의 교직생활.
패기 넘치고 인기 많았던 총각교사 고제홍의 면모를 잘 엿볼수 있는
또 한 편의 일기장을 보았네.
♬*♨ 무무 영원히 잠행 할까봐 걱정했는데... 드디어 모습 나타내니 짱 아니더냐 ㅎㅋㅎㅋㅎㅋ
구룡포 8년... (몸으로 말하는 여자 2편) 등등 생생한 글 학수 고대 한데이,...고맙구나!!! ㅡ義峰ㅡ
그때 그시절 가는곳마다 미남교사 고제홍님의 인기는 어디까지 였는지...는 훤히 보입니다.
줄줄이 줄섰던 미녀들을 어떻게 감당 하셨나요?....ㅎ
생생한 그 시절 이야기가 아주 구수하네.
고제홍! 자네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마력을 지녔네. 70대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자네가 부럽네. '교단 생활 수기 단편집' 발간하면 어떤가?
놀랍고 독특한 문장력에 늘 감탄이 절로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