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 미터 이상 태백산맥 준봉들이 병풍처럼 둘려
있고, 그 계곡들 사이로 유리알처럼 맑은 물들이 흘
러 낙동강을 이루는 곳, 예로부터 참나무 장작불에
이밥을 해 먹던 곳, 봉화에서도 구불구불 한참을 더
들어가면 아름다운 비경을 감추고 있다가 수줍게 그
자태를 드러내는 그곳, 내 고향 석포이다.
초가집 몇 채 옹기종기 모여 소박하게 살던 산골
마을, 그곳에 갖가지 유독물질로 자연을 파괴하는 제
련소가 들어선 지 50년이 되었다. 바로 영풍 석포제
련소이다.
영풍의 50년이 변화시켜 온 고향의 모습은 참으로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아름답고 울창했던 나무들은
죽어 가고, 산들은 힘을 잃고 무너져 내리고 있으며,
그 맑고 곱던 낙동강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강이 되어버렸다. 그 많던 자라들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물고기들, 민물조개와 다슬기는 모두 다 어디
로 사라진 것일까?
80여 년 전, 일제의 1급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가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봉화군 소천면 연화산에서 아
연과 납 채굴을 시작하였다. 전쟁 후 1961년, 조광권
을 넘겨받은 ㈜영풍산업은 영동선 철길이 지나는 석
포 일대에 연화광산이라는 국내 최대 아연광산을 운
영하다가, 일본에서 이타이이타이병의 여파로 아연
제련산업이 어려워지자 1970년에는 석포에 아연제
련소까지 짓게 된다. 이후 울산에 고려아연이라는 자
매회사까지 설립한 ㈜연풍산업은 비철금속 분야에
서 세계적인 큰손으로 성장하여 지금의 영풍그룹으
로 거듭나게 된다. 연화광산은 채굴할 원광석이 없어
서 1998년에 이미 폐광되었지만, 석포제련소는 해외
에서 원광석을 들여와 아연을 생산하며 지금까지 남
아 있다.
오늘도 제련소 90여개의 굴뚝에선 알 수 없는 각
종 가스들이 구름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인체에
치명적인 중금속인 카드뮴도 제련소 부지 내 지하수
에서는 기준치의 33만배가 검출되었고, 우리가 먹고
마시는 낙동강 강변에서는 허용기준대비 무려 1만
6870배의 고농도로 흘러들고 있다.(2020년 환경부
특별점검 결과)
석포면 대현리 한틔골과 태백시 동점동 고수골에
는 청산가리 등 온갖 독극물과 뒤섞인 400만톤 이상
의 엄청난 광미(鑛尾 광물찌꺼기)가 이 두 골짜기를
모두 메우고 있고, 1공장 안쪽에는 지난 50년 동안
쌓아둔 약 50만톤의 폐기물도 침전 저류되어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언제 어떤 재앙으로 낙동강을 뒤덮을
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강과 산이 망가지면 사람이 망가지게 되어 있다.
낙동강이 영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의 젖줄이
라는 생각을 하면 더욱 가슴이 답답하다. 낙동강이
석포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석포 역시 석포만의 것이
아니다. 석포는 낙동강을 따라 사는 모든 사람의 것
이다.
무너져가는 고향, 무너져 내리는 고향 산천, 그리
고 따라서 무너지는 고향 사람들, 무너져가는 나의
고향은 언제 다시 기운을 내고 일어설 수 있을까?
이상식 대건 안드레아
춘양 본당 두음공소 회장,
석포영풍제련소 공동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
※천주교 안동교구 사회사목협의회에서는 석포 영풍제
련소의 낙동강 오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하
기 위해 지난 3월 1일에 “낙동강 살리기를 위한 참회
미사”을 계획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된 바 있습
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한 지역민들의 지속적인 관
심과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기 위해 앞으로
4회에 걸쳐 관련 내용을 게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