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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한국의 경찰, 검찰, 그리고 법원> - 2
(1회에 이어)
(사진은 경찰청에 출두하며)
[경찰에 처음으로 출석하기로 한 2014년 12월 14일 오후 3시. 원래 경찰은 15일 월요일에 출석하길 원했지만, 이날 변호사는 다른 사건으로 재판정에 나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일요일로 날짜가 정해졌다. 주일이지만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 사이 텔레비전에서는 내가 소환에 불응해서 출국정지가 내려졌다는 뉴스가 나온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는 '질긴놈(서울지방경찰청 경위의 ID)'으로부터 메일을 받고 바로 변호사에게 전화해 이를 알렸고, 변호사는 '질긴놈'과 협의해 출석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소환 불응'이라니…(후일 경찰은 내가 '소환에 불응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12월 14일이 밝았다. 독자분들과 통일 토크콘서트 주최 측의 경호를 받으며 약속된 시각에 변호사와 함께 청와대 인근을 지나 광화문 쪽에 있는 경찰청으로 향한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어린 시절 매일 같이 지나던 길을 따라서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청와대와 붙어있는 궁정동에 살았다. 우리집 담 너머에는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나는 가끔 우리집에서 함께 살며 집안일을 도와주던 언니의 심부름으로 음식을 접시에 담아 담 넘어 군인들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이 집을 '경무대집'이라고 불렀다. 당시에도 박정희 대통령이 기거하는 곳을 청와대라 불렀지만, 우리 식구들은 그곳을 이승만 대통령 시절 이름이었던 경무대라 불렀다. 아마도 자유당 국회의원으로 경무대에 자주 출입하셨던 외할아버지가 사셨던 동네라서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경찰청으로 향하며 이 동네를 지나치니 만감이 교차한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추억의 길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나가고 있다. 차 안에서 변호사님이 말을 꺼냈다.
"신 선생님, 가급적이면 수사관의 질문에 짧게 대답하시고 답하기 곤란한 질문에는 묵비권을 행사하세요."
'잘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왜 질문에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대답하면 안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곤란한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하라니…. 대체 내게 곤란한 질문이란 무엇이며, 왜 묵비권을 행사해야 하는 걸까. 변호사가 주의사항을 계속 말한다.
"신 선생님, 그 사람들의 질문에 까딱 잘못 대답하면 없는 죄도 만들어지지요."
"아니, 없는 죄가 만들어지다니요?"
"신 선생님은 모르세요. 질문에 길게 대답하다간 '아'를 '어'로 둔갑시켜 꼬투리를 잡힐 수도 있답니다. 그리고 경찰청에 도착하면 기자들이 많이 몰려들 겁니다. 그들이 질문을 할 텐데 그 질문에도 간단히 답하시거나 아니면 아무런 답도 하지 마시고 그냥 들어가세요. 없는 사실도 기사로 둔갑시킬 수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대체 경찰이 무슨 질문을 하기에 짧게 대답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란 말인가. 게다가 길게 대답하면 '없는 죄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그렇지만, '없는 사실도 기사로 둔갑할 수 있다'는 말은 백번 이해한다. 지금까지 몸소 경험하고 있으니까.
경찰청에 들어서자 건물 앞에 기자들이 몰려있다. 현관을 지나 바닥에 표시가 돼 있는 곳에 서니 기자들의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져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 방한 기자회견 당시 질문 기회가 있었는데도 멍하니 앉아있던 기자들이 오늘은 마구 질문한다. 순간 나는 변호사의 조언을 무시하고 묻는 말에 모두 대답해버렸다.
한 기자가 "또 북한에 갈 거냐"라고 묻는다. 당연히 "또 갈 것"이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북한에는 사랑하는 내 수양가족들이 있고 그들이 보고 싶어서 분명 또 갈 것이기 때문이다. 대답을 하는 순간 북한의 수양딸과 수양조카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간다.
경찰청 로비가 마치 기자회견장처럼 돼 버렸다. 내가 기자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응답해 시간이 지체되자 경찰은 인터뷰를 끊고 변호사와 나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한다. 엘리베이터 속에서 변호사의 얼굴을 보니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내가 기자들의 질문에 자세하게 대답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마음속으로 '변호사님, 죄송해요, 저는 경찰의 질문에도 똑같이 하고 싶은 말 다할 거예요'라고 속삭였다. 나는 아무런 죄도 저지른 게 없기 때문이다.
조사실에는 속기를 하면서 질문을 하는 수사관과 여경 한 명이 있었다. 수사관이 "지금부터는 모든 게 동영상으로 촬영된다"라고 알려준다. 완벽한 기록으로 남을 테니 되레 안심이 된다.
경찰의 질문은 주로 강연에 관한 것이었다. 경찰도 강연 동영상과 녹취록을 다 갖고 있을 텐데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어이없었던 것은 사실 관계의 확인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갖고 그런 말을 했냐는 것이다.
경찰은 "'대동강 맥주가 맛이 좋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경찰은 '사실 맛은 없지만 신은미가 북한을 선전하기 위해 일부러 맛이 있다고 거짓말했다'고 믿기 때문일까.
대동강 맥주에 대한 호평은 북한을 방문했던 많은 유럽 관광객들, 특히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 관광객들도 이구동성으로 내놨던 이야기다. 게다가 <동아일보>도 '어? 대동강맥주에서 유럽의 향기가...'라는 제목의 기사로 대동강 맥주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던가. 설사 대동강 맥주가 맛이 없다고 해도 이는 개인의 기호에 관한 문제다. 내가 맛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 아닌가. 개인의 기호도 죄가 될 수가 있단 말인가.
어이없는 질문은 그치지 않는다. "북한에 휴대전화가 250만 대가 넘는다고 했는데, 그걸 정말 믿는가." 이 정도 정보는 대한민국 통일부 누리집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다.
"북한의 강물이 깨끗하다고 했는데 거짓 주장이 아니냐" "멋을 낸 여성들끼리 맥줏집에서 술 마시는 모습이 사실처럼 믿어지는가" 등의 질문을 한 수사관들이 내가 본 오늘날 북한의 모습이 정말로 믿어지지 않아 그런 질문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된 세상에서 그분들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게다. 그들은 나로부터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구실을 찾기 위해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후 10시께 경찰 조사의 첫 일정이 끝났다. 수사가 길어진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경찰의 질문에 너무 길게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짧게 대답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라"고 하던 변호사도 안심을 했는지 쉬는 시간에 내게 "원하는 대로 마음껏 모두 대답하시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수사 녹취록 각각의 페이지에 서명하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이날 작성된 녹취록 두께가 족히 책 한 권은 되는 듯하다. 첫 페이지부터 자세히 읽어봤다. 그런데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아주 많은 부분 누락된 채 짧게 기록돼 있었다. 나는 일일이 잘못 기록된 부분을 지워가면서 내가 대답했던 그대로 적어넣었다. 이 수정 과정이 몇 시간 소요되는 바람에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에 경찰청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첫 조사를 받으면서 국가보안법에 대해 생각해봤다. '누군가가 간첩죄 등 반국가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면, 형법에 따라 처벌하면 될 것을 왜 국가보안법이라는 게 별도로 필요한 걸까'라는 의문이 수사를 받으면서 풀리고 있었다.
'실제로 국가 안보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았어도 북한 또는 사회주의 사상에 동조하는 듯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을 하기 위한 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 수사관은 '나의 생각'을 끄집어내고자 어이없는 질문을 연거푸 반복한 게 아닐까.
대표적인 조작 사건 중 하나인 '아람회' 같은 사건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는지를 이제야 실감하게 된다. '아람회 조작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한 독자 한 분은 오죽하면 "고문에 못 이겨 북한 노래를 지어서 불렀다"라고 했겠는가.
게다가 북한에 관한 어떤 긍정적인 것도, 그것이 설사 사실이라고 해도 있는 그대로 표현할 경우 '고무 및 찬양'에 해당하며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대동강 맥주가 정말 맛있다고 생각하는가' '북한의 휴대폰 수가 정말 250만 대를 넘는다고 생각하는가' 등의 '한심한' 질문을 하는 것 아닐까.
첫 경찰 조사를 통해 나는 이 법이야말로 천하의 몹쓸 법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게 됐다. 이 법이 존재하는 한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이 감옥에 가는 것은 물론 엉터리 보수단체의 준동과 종북몰이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정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아가 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 살다 보면 한국전과 월남전에 동시 참전했던 어르신들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그분들 말에 의하면 월남전은 한국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 민족의 희생이 컸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렇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 전쟁을 치른 우리에게 제대로 된 전쟁 문학 작품 하나라도 존재하는지….
노래만 하더라도 <그리운 금강산> 한 곡을 수십 년째 부르고 있는 실정 아닌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만일 국가보안법이 없었더라면 한글이라는 훌륭한 문자를 소유하고 감성마저 풍부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오래전에 노벨문학상을 받고도 남았으리라. 인간의 자유로운 사유와 표현을 억제하는 이런 법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창조적인 문화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서울에 있는 동안 '창조경제'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나는 지금도 '창조경제'가 어떤 경제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이 '부를 창조하는 경제'라면 나는 자신 있게 '북한에 창조경제의 기회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강연 때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남과 북의 경제 협력이 대규모로 이뤄진다면 아마도 남한에 비정규직이란 단어는 없어질 것이다. 북한은 그야말로 '황금 같은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이런 말도 '까딱' 잘못하면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하니, 경제에 있어서도 '창조'적인 발전은 기대할 수가 없다.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외설이 넘쳐난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이 외설을 좋아하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음란물을 허용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만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음란물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규제하는 데에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억압돼서는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국가안보를 구실로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려 든다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엔도 한국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말로만 '세계화' '선진국'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게 아니라 국제 수준에 맞춰 이런 '후진적인 법'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가 싱가포르나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한국의 무역량이 늘어나고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진다고 해서 한국을 선진국이라 보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추가 조사를 위해 다시 출두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조사실을 빠져나왔다. 새벽까지 기자들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 대체 뉴스거리가 그렇게도 없는 걸까. 통일 토크콘서트가 뉴스를 장식한 지 벌써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국내외 뉴스거리가 산적해 있음에도 한 해외동포의 '북한 여행담'이 그렇게 중요한 뉴스란 말인가. 나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한 뒤 차량에 올랐다.]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2016, 도서출판 말, 67~77쪽)) (다음 회에 계속)
<내가 경험한 한국의 경찰, 검찰, 그리고 법원> - 4(경찰편 마지막)
경찰편 마지막 회입니다. 5회 부터는 검찰 및 법원편입니다.
(3회에 이어)
(사진은 2013년 8월 통일부에서 다큐 동영상을 촬영하며)
[책과 <오마이뉴스> 연재 기사에서 북한을 고무·찬양한 혐의를 찾지 못한 경찰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이번엔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를 밝히기 위한 조사에 돌입했다.
수사관은 내게 "통일콘서트가 어떤 행사인지 다음 중 하나를 골라주십시오. 정치, 경제, 예술, 문화"라고 물었다. 나는 "문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수사관은 내 대답을 무시하고 '외국인이 무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통일 토크콘서트 같은 정치활동을 했으니, 이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인 동시에 강제 추방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수사관의 말 한마디에 문화 행사가 '정치 활동'으로 둔갑해버리는 순간이었다.
지난 2014년1월, 한 무리의 미국인들이 한국에 입국해 대북 전단을 날렸다. 이 미국인들이야말로 여차하면 남북 간에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정치 활동을 한 것이다. 요즘 수많은 외국인들은 나처럼 무비자로 입국을 하는데, 그 미국인들은 도대체 무슨 비자를 받고 한국에 입국했길래 그런 대담하고 위험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통일부는 "강제로 규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왜 이들에게는 '정치 활동'의 낙인이 찍히지 않았는지 법무부는 밝혀주기 바란다.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에 관련한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외국인이 무비자로 들어와 강연 활동을 하고 강연료를 받았으니 불법 취업'이란다. 나는 전국 순회 통일 토크 콘서트의 주최 측으로부터 강연료를 받지 않았다. 막상 한국에 와서 주최 측 사람들을 보니 형편이 너무나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돈마저 털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모국 방문 중에 2곳으로부터 강연료를 받았다. 한 곳은 서울의 한 자치단체였으며 또 다른 한 곳은 내가 신앙간증을 한 교회였다. 돈을 받았으니 이는 입국 목적에 위배되며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외국인이 다른 나라로 여행 오면서 한 번쯤 여행국의 출입국관리법을 읽어보고 와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말까지 했다. 내 대답은 이랬다.
"전 세계 수백만 해외동포들이 모국을 방문하면서 외국인이 관광을 오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한국에 방문하진 않을 것입니다. 마치 내 집에 오는 기분으로 입국을 하겠죠. 저도 그런 마음으로 입국했습니다. 하여간 좋습니다. 선생님(수사관)께서는 외국여행 갈 때 여행가는 나라의 출입국관리법에 관한 준수사항을 일일이 읽으시는지요?"
수사관은 이에 대해서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내가 두 군데서 강연료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불법이라면 출입국관리법 위반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처벌도 달게 받겠다. 그러나 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강연료를 받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2013년 8월 대한민국 통일부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을 당시 나는 통일부가 주는 출연료를 받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외국인을 불법으로 고용한 게 되는 걸까. 경찰은 똑같은 혐의로 통일부도 수사해야 하는 게 아닐까. 통일부가 외국인에게 주는 출연료는 합법이고, 교회나 자치단체가 주는 강연료는 불법이란 말인가.
나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에 관한 조사를 받으면서 얼마 뒤 강제추방될 것을 직감했다. 강연 내용과 책을 아무리 살펴봐도 '종북 혐의'를 찾을 수 없었지만, 대통령(박근혜)마저 '종북 콘서트'라 지칭한 상황 아니겠는가. 그냥 내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강제추방의 구실을 찾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계속되는 수사관의 질문은 미국 내 강연활동과 지인에 관한 것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와 있는 미국 내 강연 동영상이나 기사를 놓고 '고무 및 찬양' 혐의를 찾아내려는 게다. 미국 내 강연이라 해봐야 한국에서 했던 강연들과 다를 게 없는데도 말이다.
내가 한국에서 한 활동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삶까지 조사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의 본국 내 활동까지도 수사한다는 말인가. 명백한 불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수사관에게 "조금 전에 제게 '왜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해 입국 목적에 위배되는 일을 했냐'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외국인인 내가 본국 내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는 왜 문제 삼나"라고 응수했다.
아무런 대꾸없이 수사관은 내가 미국 내 소위 '종북 인사'라 불리는 사람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펼쳐놓고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추궁했다. 그 사람은 내게 '칠순 잔치와 출판기념회에 참석해달라'고 물었고, 나는 이메일에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다'라고 답했다.
수사관은 내가 메일에서 그 사람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했으니 가까운 사이가 아니냐고 물었다. 나도 수사관을 '선생님'이라 호칭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수사관이랑 가까운 사이라는 말인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일부 언론은 이러한 수사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곧바로 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곤 나와 '종북 인사'라는 그분과의 관계를 두고 허위보도를 일삼았다. 이를 본 한 외신 기자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무슨 메일을 사용하시는지요?"
"미국 야후 계정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경찰이 이메일 내용을 알 수 있었을까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그 외신 기자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메일의 내용을 알 수 있었냐'고 물었다. 경찰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알아냈으며, 더 이상 말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한다.
당시 나는 한국 경찰의 이메일 해킹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던 것 같다. 후일 미국에 돌아와 들은 바에 의하면, 내가 '종북 인사'라는 그분께 보낸 메일을 그분이 자신이 운영하는 누리집에 올려놨다고 한다. 아마 경찰은 그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메일을 채집했으리라.
여하튼,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잘못 쓰면 고초를 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국가보안법 수사를 통해 터득하게 된 것 같다. 이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일 게다.
조사가 끝나고 녹취록을 점검하는 시간인 것으로 기억한다. 수사관이 "오늘도 일일이 다 고치실 거죠?"라고 말하며 연필 한 뭉치와 지우개를 가져다 준다. 또 다른 수사관은 나를 두고 대답을 잘한다면서 "선생님 이런 조사 처음인 것 맞아요?"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수사관의 농담에 미소를 보였으나 나는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한평생 경찰 조사는커녕 교통 순경과 이야기를 나눈 기억조차 없다.
돌이켜보니, 세 차례에 걸쳐 총 수십 시간에 이르는 밤샘 조사를 받는 동안 경찰 역시 참 수고가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한민국 엘리트 경찰인 그들이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고 했는데, 북녘에 흐르는 강물이 깨끗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따위의 수준 낮은 질문을 할만큼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직업일 뿐인 것이고, 그들은 그들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일 것이다. 이 생각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내가 조사를 받는 동안 수시로 차를 대접하고, 집에서 손수 키웠다는 과일을 가져다 주는 등 많은 친절을 베풀어준, 예우를 갖춰 대해준 수사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수사가 진행 중인 중간 중간에 "통일 토크콘서트에서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발언은 없었다" "신은미씨가 '소환에 불응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등의 사실을 언론에 확인시켜준 경찰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2016, 도서출판 말, 83~89쪽))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