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22.
히11:1-16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아 경건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구별이 없어지던 시대가 노아의 시대였다.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인 아벨의 후손이 가인의 계보에 속한 자들과 한데 섞여 세속성과 죄악으로 길을 잃고 심지어 변절하여 악을 악으로 여기지도 못한 상태에 빠져 버렸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면 마땅히 하나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였으나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상대적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심을 후회하신다는 표현까지 쓰시며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듣고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했다.
‘경외함’이란 그저 두려워서 떠는 것이 아니다.
경외함이란 희미하고 흐릿하게라도 하나님의 정결하심과 거룩하심 그리고 신실하심이 얼마나 크고 분명한지 아는 것이다.
경외함이 없이 어떻게 경건한 자가 될 수 있겠는가!
‘두럽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로 우리는 분명히 구원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와 악을 보고 두렵고 떨어야 한다.
내 속에 들어있는 마음의 생각과 상상 그리고 욕심과 욕망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악을 보고 두렵고 떨려야 한다. 그리고 심판하실 주를 얼핏이라도 보고 납작 엎드려 주의 보혈로 덮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이것이 경외함이며 경건함이 아닐까?
경외함이 상실된 기독교에서 경건함은 희미해졌다.
이미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인의 세상과 섞여 살며 그것이 주는 짜릿함의 맛을 이미 알아버렸고 하나님의 말씀은 드라마나 영화보다 못한 고전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아의 시대에 경외함으로 행한 노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심판하신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주를 경외하는 또 다른 노아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홍수 속에서 건져내실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다시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주를 경외함으로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