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37-52 누구든지..
37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초막절의 마지막 날을 큰날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40년 광야에서의 고난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일주일동안 초막을 짓고 온가족이 생활하고,.마지막 날에는 실로암 못에가서 물을 길어 제단에 부었습니다. 이는 반석에서 물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또한편으로는 이렇게 물을 넉넉히 주셔서.. 일년 내내 농사가 잘되기를 기도하므로 절기 행사가 다 끝납니다. 이 마지막 날에는 성회로 모여 즐거워하며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절기를 지키기 위해.. 기쁨과 기대감을 가지고 왔던 모든 이들은.. 큰 기쁨으로.. 절기 행사를 마치고 초막을 이제.. 다시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제단에 물을 뿌리고, 절기를 지키며, 기쁨으로 축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무리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사람들은 절기를 지키고, 초막도 짓고, 실로암물을 제단에 뿌리면서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반석을 깨뜨려 샘물나게 하셔서.. 광야에서 그들의 목마름문제를 해결하시고, 만나를 통해.. 떡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께서 이 절기를 기념하며.. 가르쳐 주시고자 하신 것은.. 바로. 진정한 떡이 되시고, 샘물이 되시는 예수님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심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절기는 지키면서도.. 예수님이 바로 곁에 계신데. 모세보다도 더 크신이,, 반석에서 터져나오는 샘물보다도, 만나 보다도.. 더 크신 영원한 구주가 바로 곁에 계신데.. 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크게 외치십니다. 제발 들으라고.. 서서 크게 외치셨습니다.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이라 하시며..영적인 갈증 목마름을 깨닫고. .. 주께 나아와.. 광야에서 바위를 깨뜨려 주시는 생수처럼..콸콸 쏟아져 나오는 생수를 마시기 원하셨습니다.
생수의 강은.. 이 물은 에스겔 47,9절 처럼.. 소성케 하는 물.. 흐르는 곳마다 살아나는 역사를 일으키는 물입니다.
39절에서 이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십니다.
배는 사실 욕심,,, 탐심이 자리하는 곳입니다. 먹어도 먹어도채워지지 않는 욕심이 가득한 곳이 바로 배입니다. 이 배에.. 매일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갈급함, 갈증에서 벗어서.. 생수의 강으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기쁨과. 평강과 소망으로 가득채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배에서라는 것은.. 외부, 외적인 요인이 아닌.. 마음에서, 심령에서..생수가, 기쁨이 솟아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감격하고, 설렘과 기쁨이.. 우리 심령에서 넘치게 될것을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는 외적인 조건이 맞아야..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기쁘고,, 갈급함, 갈증이 사라지는.. 그런… 한사발의 냉수가 아니라.. 생수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마르지 않는.. 생수를 부어 주실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생수를 누구에게 주시냐면.. ”나를 믿는 자는..“이라 하십니다.
7장에서 유난히도.. 예수님이 누구신가.. 많은 이들이.. 수근거리고.. 어떤 이들은 좋은 사람이라, 어떤이는 미혹하는 이라 말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조언을 해 주는 것 같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이라 하십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미워하여,, 잡고자, 죽이고자 합니다.
종교적인 행사, 절기, 초막적을 지키지만. .. 정작.. 예수님을 곁에두고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이들, 서서 외치셔도.. 주의 말씀을 듣고.. 어떤 이는 그는 선지자라,, 어떤 좀 안다하는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냐.. 베들레헴에서 나오지.. “하며.. 변론하였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을 모를 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냐는.. 주제로..힘써 아는 지식을 다 활용하여 변론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아오랬더니.. 빈손으로 돌아와..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며 결코 예수님을 잡을수 없는 영적인 권위, 아우라에 눌려.. 종교지도자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자신들의 본분도 잊고 ..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그들을 보며. . 종교지도자들은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하며. 예수님의 미혹하는 힘으로 여깁니다.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들이나 예수님을 믿는 것 처럼 여기며.. 종교지도자들 중에, 성경에 능통한 바리새인들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하며.. 자신들이 갖고 있는 율법의 지식의 우월함, 판단의 우월함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무지한 자들, 미혹된 자들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니고데모입니다.
그는 ”우리“.. 율법에 능통한자, 성공하고, 권위있는 자라 여기는. ”우리”인데. 언제부터 우리가. 그의 말과 행위도 알아보지 않고.. 심판하고, 이미 죄인, 미혹하는 자.. 라고 여기는지.. 그들의 헛점을 찌릅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예수님께서 불법적인 일,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신 일을 행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하며.. 예수님의 출신을 들먹거리며.. 예수님의 그리스도 이심을, 부인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 행하신 것을 보고, 듣고, 겪으며. 예수님이 누구신가…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 느끼고 생각하는 것, 유익을 기준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예수님은 생수가 아니라.. 미워하고 잡아야 할 분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며.. 성령충만함으로 채워지지만.. 믿지 않는자..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끊임없이 변론만 할뿐.. 예수님이 정작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목마름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때.. 예수님은 성령충만함으로.. 만족함을, 기쁨과 평안을 채워 주십니다.
이사야. 12,3절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2절 ”주께서 전에는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니리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이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말씀을 통해.. 전에.주께서 진노하셨던 자들.. 그러나 회개하고, 주가 누구신지.. 어떤분이신지를 알고.. 주를 나의 구원, 신뢰하고 두려워할 이유 없으신 분,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심을 노래하는 이들이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을 길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드디어 주가 어떤 분이신지 알고, 고백할 때.. 쏟아져 나오는 기쁨을, 성령충만함을..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나를 믿는 자는...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자들, 구원자로 알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이요, 은혜요, 기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저의 삶을 돌아보니.. 왜 믿는데.. 목마를까, .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 이 채워지지 않는 갈증, 부족함과.. 어려운 마음은..뭐지?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매일을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주를 따르고자, 말씀대로 살고자.. 애를 쓰는데.. 기도하는데.. 시원케 하는 생수를 마시는 날보다.... 어려운 일들, 비난들, 허물들, 변하지 않는.. 죄악된 본성들만..마주하며.. 쓰디쓴.. 날들, 초라하고, 절망스러운 날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나의 신앙의 현주소 같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누구든지 목마른 자들.에게 와서 마시라.. 하시며 누구에게나 제공하지만.. 이 물을 마실 수 있는 자들은 오직 “믿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척 하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른채.. 그저.. 초막절을 지키며, 제사, 절기. 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