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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용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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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특별한 용모을 가지셨다 한다. 32상이 그것이다. 특히나 그분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피부를 가졌었다는 문구가 본인을 자극해서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마저 들게 한다.
책에서 대하는 부처님 상이나 혹은 절간에서 볼 수 있는 부처님 상에서도 그분은 항상 곱슬머리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분이 태어나신 나라가 네팔이니 그것은 당연한 묘사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팔은 히말라야 산맥 턱 밑에 자리하고 있어서 북쪽의 몽고족과 남쪽의 아리안 족이 모여 평화롭게 살고 있는 나라로 알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나셨으니 아리안 계통의 혈통을 받아 머리털이 곱슬한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부처님 상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그분의 머리 정수리가 마치 상투를 튼 모양처럼 둥글게 도드라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두라진 부분은 아마 머리를 올려서 묶어 앉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불교의 기초경전이라고 하는 아함경에는 부처님이 태어나셨을 때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갖 태어난 태자의 장래가 어떠한 지 관상가들을 불러다가 물었다는 부분이다. 관상가들이 묘사한 어린 부처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우선 발 모양이 안정되고 고르며 발바닥이 평평하고 두둑하여 편안하게 땅을 디딜 수 있고, 발바닥에는 1천 개의 바퀴살을 가진 바퀴무늬가 각각 있어 밝게 빛나며, 손가락과 발까락 사이에는 명주실로 짠 것 같은 얇은 막이 있어 마치 거위왕과 같습니다. 또 손과 발은 매우 부드러워 마치 하늘옷과 같고, 손가락과 발까락은 가늘고 길며, 발꿈치는 원만하여 보기 좋습니다. 또 넙적다리가 사슴처럼 둥글고 곧으며, 뼈마디가 사슴처럼 연결되어 있고, 남근(男根)이 몸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습니다. 또 똑바로 서서 팔을 내리면 손이 무릎을 지나고, 몸의 털구멍 하나하나 마다 털이 한 개씩 나 있는데, 그 털의 색은 감청색(곤색)으로 오른쪽으로 구부려진 상태에서 위로 향하여 쏠려 있습니다.
온 몸이 황금빛이고, 피부는 곱고 매끄러워 먼지나 오염물이 묻지 않으며, 양쪽 어깨가 가지런하고 곧고 풍만하며, 가슴에 만(卍)자 모양이 있습니다. 또 신장이 보통사람의 배나 되고, 두손과 두발 그리고 목이 고르고 풍만하며, 신체의 모양이 마치 니그루슈(느티나무)처럼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또 뺨이 사자의 뺨 같고, 상체 또한 사자와 같이 중후하며, 치아가 40개나 되고, 이가 모두 고르고 빽빽하여 빈틈이 없으며 희고 깨끗합니다. 또 목구멍이 청정하여 먹는 음식마다 맛있고, 혀는 좌우 귀를 핥을 정도로 길고 넓으며, 깨끗한 음성은 맑디 맑아 난(鸞)새와 같습니다. 또 눈동자는 감청색이고, 위 아래 눈꺼풀을 동시에 깜박이는 것이 마치 소의 눈과 같으며, 양미간에는 부드럽고 가늘며 광택이 나는 흰 털이 소라 모양처럼 오른쪽으로 감겨 진주형상을 하고 있는데 펴면 여덟 자나 되고, 정수리가 상투 모양으로 돋아나 있습니다. 이것이 32상입니다."
임금 앞에 나아와 어린 왕자의 몸을 요리조리 관찰하여 아뢴 거짓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목소리가 난새처럼 아름답다든가 무엇이든 먹으면 맛있게 먹을 것이라는 말 등은 작의적인 찬사일 수 있겠지만 그 밖의 묘사는 사실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특이한 몸체를 타고난 왕자였든가?!!
우선 피부가 황금색으로 빛났다는 문구가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석가세존은 바로 황색인종으로 태어난 것 아닌가?!! 그분의 두형도 마치 우리 조상들이 했듯이 상투를 튼 것 같은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다. 현재 우리가 부처님 상에서 보는 모습은 분명 곱슬머리인데, 아함경의 묘사에는 그 이야기가 없다. 그러나 몸의 털들이 오른쪽으로 구부러져서 다시 위로 향했다는 것과 양 눈섶 사이에 난 하얀 털이 소라처럼 돌돌 말렸다는 묘사에서 그분의 머리털도 분명 곱슬머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어린 왕자의 눈동자가 감청색이고 몸의 털도 감청색이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감청색이라면 짙은 청색이니까 동양인들처럼 흑색에 가까운 눈동자와 털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몽고족과 아리안족의 혈통을 반반씩 가지고 태어나신 것 아닌가?
그 외에도 모든 신체적 조건이 하나같이 특이하다. 우선 신장이 보통 아이보다 두 배나 더 컸으며, 팔의 길이가 유난히 길어서 무릎 밑으로 내려올 정도였다. 발바닥은 평발이었으며 거기에는 둥근 수레바퀴 모양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몸의 털은 모두 위로 향해 쏠려 있었고, 털구멍 마다 하나씩의 털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보통사람보다 털이 유난히 많은 아기였든 것 같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이빨 40개가 모두 나 있었던 것이다.
또 우리의 눈꺼풀은 위엣것만 움직이는데, 어린 싯달타의 눈꺼풀은 마치 소의 그것처럼 아래 위가 함께 깜박였다 한다. 그뿐인가? 어린 왕자의 고추는 말의 그것처럼 몸속에 숨겨져 있었다 한다. 또 양미간에 나 있는 하얀 털은 소라처럼 돌돌 말려있는데, 그것을 잡아당기면 그 길이가 여덟자(2.4m)나 되었다 한다. 인도 여인들이 양 눈섶 사이 이마에 둥근 연지를 그리는 것이 부처님 이마의 하얀 털진주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뿐이 아니다. 어린 왕자의 손가락과 발까락 사이에는 비단처럼 얇은 막이 있어 마치 거위왕 같다고 했다. 물오리들의 발처럼 물갈퀴 형태의 손과 발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가슴에 만(卍)자 형태의 그림이 있었다는 것도 비범한 현상이며, 그 뺨이 마치 사자의 그것 같이 생겼고 그 어깨도 사자의 그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불경에서는 사자후(獅子吼=사자의 부르짖음)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고 사자보살, 사자의(獅子意) 보살이라는 보살 이름이 등장하는 것 같다. 모두 사자 같이 용맹스럽게 정진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어린 왕자의 두 다리는 좀 가늘었든 것 같다. 마치 사슴의 다리처럼 둥글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근육은 없고 둥근 뼈만 들어난 가는 다리였을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왜 어린 왕자의 귀가 보통사람보다 길었다는 예기는 쓰지 않았을까? 어느 부처님 상이나 길게 늘어져 턱의 수준까지 내려온 부처님의 귀를 묘사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마도 부처님은 중생을 가르치려 오셨지 누구에게 배우기 위해 오신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분의 귀가 유난히 컸다는 것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싶어서 후세인들이 그 이야기는 빼고 전한 것 아닐까? 아니면 어린 왕자의 귀가 자라면서 점점 길어진 것일까?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선지식(先知識)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귀가 길어진 것일까?.....
아무튼 부처님은 무척이나 특이한 용모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반짝이는 황금색 피부를 가졌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더구나 태어나자마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기발로 일어나 앞뒤로 일곱 발작을 걸은 후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즉 하늘아래와 땅 위에서 오직 나만 존귀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부처님답지 않은 자만의 말처럼 들리지만, 자만이 아니라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부처님을 임신하게 된 배경도 예수님과 비슷하다. 평범한 탄생은 아니었던 것이다. 종교적 행사를 앞두고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있을 때 한 꿈을 꾸었는데, 사천왕들이 나타나 자신의 침대를 떠메고 설산(히말라야)으로 가더니 그곳 궁전에서는 사천왕의 부인들이 나타나 마야부인의 몸을 씻긴 후 침대에 누이고,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한다. 사천왕들은 마야부인을 다시 가비라성으로 데려다 주었는데, 그후 14개월 만에 아기를 낳았고, 낳을 때도 사천왕들이 나타나 해산을 도왔으며 하체로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오른쪽 옆구리로 낳았다고 '본생경'이라는 경전에서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동굴에서 아이를 낳을 때 포도나무 같은 것을 붙잡고 서 있었으며 그때 빛의 아이가 몸에서 나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하체로 낳은 것 같지는 않아 마리아의 하체를 검사할 때 강한 빛이 산파의 손을 비춰서 놀라 움추렸지만 마리아가 하체로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한다. 그래서 성모 무오설(無汚說)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천왕들은 마야부인을 임신시킬 때 여러 가지로 유전학적인 고려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특별한 모습으로 탄생시킨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그 32가지의 특이한 용모 속에는 미래를 향한 무언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본인은 앞에서 요한계시록 12장의 '어린양'과 붓다의 탄생이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 했다. 또 삼국유사의 전불(前佛)적인 설화들이 지구를 통째로 통치하는 거스를 수 없는 위덕(威德)의 존재들이 연출한 것이라고 했다.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소리라고 반박할 불교신자들이 많겠지만 차근히 생각해 보면 부처님의 용모에서도 많은 암시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기 붓다의 목소리는 코킬라 새소리 같고 그 혀는 무척이나 길다고 했다. 마지막 시대의 어린양과 어린 붓다는 노래와 말씀으로 세상을 밝힐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몰이해로 사슴처럼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아기붓다의 넙적다리는 사슴의 그것처럼 가늘었다. 그러나 아기붓다의 볼과 어깨는 사자의 그것처럼 중후하고 균형이 잡혔다고 했다. 사슴처럼 쫓기는 일이 있어도 자신의 임무를 의연하게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발바닥의 수레바퀴와 가슴의 만(卍)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앞에서 다뤘지만, 아기붓다의 손과 발이 거위의 그것처럼 물갈퀴를 하고 있다든가 아기붓다의 고추가 말의 그것처럼 몸 속에 감춰져 있다는 것도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격암유록, 증산경전에서는 한결같이 새들에 관한 이야기가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말도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 동물로 등장한다. 눈꺼풀이 소처럼 아래위가 함께 움직였다는 것도 증산의 태을주(소를 주제로 한 증산교의 기도문)를 연상케 한다.
황당무계해 보이는 신화적 이야기들 속에는 이 시대의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예언적 요소들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20세기의 예수님과 대사(大師)들이 다른 곳이 아닌 히말라야 산맥 속에서 미국의 탐사대를 만난 것도 계획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분들은 이 시대에 있을 '아기예수의 재탄생'을 고대한다고 했다. 아기예수의 재탄생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요한계시록 12장의 '어린양'의 탄생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어린양은 마치 붓다가 히말라야 산 속에서 잉태되고 탄생했듯이 그렇게 탄생할 것이다. 황색의 빛나는 피부를 가지고,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이 상투를 틀었듯이, 이 시대의 아기붓다와 어린양은 한국의 혈통으로 태어날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행동한 히말라야의 대사들 중에는 태벳사원의 승려 푸리지 대사도 있었다. 그는 탐사대에게 들려준 일장연설 중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여성은 여러 번 고립되었지만 우주의 궁극적인 계획 속에서는 남성과 일체가 될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성의 진정한 역할은 그리스도를 잉태하여 세상에 출현시키는 거룩한 제단에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여인이 자기 내면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자신이 그리스도가 될뿐만 아니라 태어나는 아기도 예수처럼 그리스도가 됩니다....여인이 남성과 여성을 하나로 결혼시키는 진정한 소명을 수행할 때 그녀의 순결한 육체는 그리스도라는 순결한 자를 세상에 출현시킬 준비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세상이 생겨나기 전에 이미 예비된 것입니다."
푸리지 대사의 연설은 '다루파티'라는 이상적 여성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다루파티의 여성성 속에는 남성성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요한을 특별히 아끼시며 너는 나의 사람이니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해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한다. 그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썼고 요한계시록 10장에서는 '너는 다시 예언해야 한다.'고 천사가 말했다. 요한이 다시 쓸 예언서, 또 한권의 계시록은 이 시대에 만들어질 것이며 그 책이 바로 '어린양'으로 태어날 '아기예수의 재탄생'인 것이다. 그런데 그 아기예수의 재탄생에 대해 왜 티벳불교의 승려인 푸리지 대사를 통해 말했을까? 아기예수의 재탄생은 동양에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지 대사가 말한 이상적 여성 '다루파티'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예언서 격아유록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여자가 아닌 여자, 남자가 아닌 남자(女女非女, 男男非男)가 이 시대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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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사진은 부처님이 입멸하시기 전 마갈다국을 둘러보신 후 한 돌위에 남겼다는 족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