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을 멸(滅)해야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 부처님의 차제설법과 람림의 3단계
윤리 시험 시간, 고집멸도의 유쾌한 착각
고등학교 시절에는 불교의 불자도 몰랐습니다. 사실 제 종교가 불교라는 것조차 자각이 없던 시절이죠. 유일하게 불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윤리 시험 시간에 달달 외웠던 고집멸도 정도일까요? 물론 뜻을 전혀 몰랐기에 '고집을 멸하는 길?' 이 정도로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자유는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내려놓음으로써 얻어진다." -에픽테토스
나 혼자의 해탈인가, 모두 함께 가는 열반인가
드디어 <람림> 4년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어제 첫 수업을 공부하며 메모했던 내용을 오늘 소개하겠습니다. <람림>은 부처님의 차제설법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마치 바다의 깊이가 차례로 깊어지고 갑자기 깎아지른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이 법과 율에서도 단계적 공부와 단계적 실천과 단계적 나아감이 있을 뿐, 결코 한순간에 완전한 앎을 꿰뚫는 일은 없다." -파하나경
본래 열반에 이르는 길을 교육하시는 부처님의 방식은 차제설법이니 열반도차제라고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람림>의 큰 틀을 처음 세운 아티샤 존자는 이를 보리도차제로 이름을 달리 붙였으나 그 목적은 '열반'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럼 굳이 왜 이름을 달리 했을까요?
붓다가 중생에게 알려주신 도차제는 개인의 열반을 우선합니다. 반면 <람림>의 도차제는 일체중생의 열반을 염두에 둡니다. 추구하는 열반의 범위가 다른 것입니다. 전생의 어머니셨던 일체중생과 모두 함께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리심 수행을 완성해야 하기에 보리도차제라는 표현이 등장하게 됩니다. 보리도라고 썼지만 그 내용은 '모두의 열반'인 것입니다.
람림을 여는 세 권의 열쇠
아티샤 스님이 처음 제안한 <보리도등론>은 68개의 짧은 게송입니다. 이후 약 350년 뒤 쫑까파 대사에 의해 <보리도차제광론>이라는 상세한 주석이 등장합니다. 대사는 이어 광론의 핵심을 담은 <보리도차제론>을 추가로 집필하셨으니 이 3권이 <람림>의 교과서가 됩니다.
3대 교과서는 상중하 삼사도라는 공통의 구조를 공유합니다. 이는 범부가 보리심을 완성하는 순서로써 하사도에서 중사도 그리고 상사도로 나아가는 구조입니다. 그렇기에 보리도차제를 가장 짧게 외워두려면 삼사도만 기억해도 무방합니다.
하사도: 악습을 내려놓고 선을 향하는 발걸음
흥미로운 점은 부처님의 열반도차제는 역시 매우 짧다는 것입니다. 시계생천과 욕환출리 그리고 삼전십이행상과 전법선언만 외워두면 됩니다. 그럼 보리도와 열반도를 간단히 비교해볼까요?
부처님께서는 처음 열반도를 시작하는 범부에게 악을 그치고 선을 추구하는 향선심을 교육하셨습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 수행법이 시계생천으로 베풀며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선업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날 수 있음을 교육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사도가 추구하는 수행과 일치합니다.
중사도: 나라는 집착을 끊고 자유를 얻는 길
부처님께서는 다음으로 출리심을 교육하셨습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 교육 과정은 욕환출리로써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삶의 위험성을 알려주시고 출리심을 일으키도록 교육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청정해진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열반에 이르는 길의 본수행인 삼전십이행상을 교육하셨습니다. 이는 사성제를 아는 시전과 닦는 권전 그리고 완성하는 증전으로써 무아를 깨치고 족쇄를 풀며 열반에 도달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하는 수행법인데, 중사도가 추구하는 수행과 일치합니다.
상사도: 혼자만의 평정을 넘어 세상 속으로
"세상의 모든 안락은 남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생겨나고, 세상의 모든 고통은 오직 나 자신의 안락만을 바라는 마음에서 생겨난다." -샨티데바
부처님께서는 아라한들에게 깨침 이후의 과제를 주셨는데 바로 보리심입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 교육 과정이 바로 전법 선언입니다. 자아가 사라진 아라한들은 특별한 서원이나 부처님의 명령이 없다면 대부분 세상을 떠나기 마련입니다. 혹시 세상에 남더라도 열반락을 즐기며 안주할 뿐이죠. 부처님은 인간과 천상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이 하나의 길로 나아가 법을 전하며 세상에 이익을 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전법선언의 정신이 후대에 보리심 수행의 뿌리가 되는 것이고 상사도 수행으로 꽃 피운 것입니다.
의식의 거처를 옮기며: 남의 소만 세는 목동을 넘어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고집을 멸하는 길이 사성제라는 오해는 일견 진실입니다. 하사도의 과정에서는 악습에 대한 고집을 멸함으로써 향선심을 일으킵니다. 중사도에서는 자아에 대한 고집을 멸하고 출리심을 일으키죠. 상사도에서는 열반의 즐거움에 대한 고집을 멸하고 보리심을 실천합니다. 그 무엇도 고집하지 않고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열반을 추구하는 것이 도차제의 핵심입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뗏목과 같은 법을 설했다. 그것은 건너기 위한 것이지 붙들고 집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건넜다면 마땅히 법조차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겠는가." -뱀의 비유경
4년간의 <람림> 공부를 통해 고집을 버리고 향상을 추구하는게 어떨까요? 그러할 때 범부에서 하사도의 수행자로, 중사도와 상사도의 의식으로 이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의 소만 세는 목동의 고집에서 벗어나시길.
9월 서울 법회 일정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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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른 것 같은데 다 하나로 통하고 있었네요. 고집을 멸하는 길^^;로 이끌어 주시는 가르침, 4년간 잘 공부해서 따라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
4년간의 람림 공부를 기쁜 마음으로 따라가겠습니다. 람림과 함께 한 4년 후의 제가 어떻게 변화해 있을지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_()_
우와~~~어제 열심히 들었는데도 스님의 글을 읽으니 우등생의 필기노트를 보는 것처럼 쉽고 명쾌합니다. 앎이 짧은 저는 어제 필기하면서 들었는데도 머릿속이 정리가 안되고 있었거든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잘 따라가 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안락은 남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생겨나고, 세상의 모든 고통은 오직 나 자신의 안락만을 바라는 마음에서 생겨난다."
나무아미타불 _()_
차근차근 단계단계 따라가겠습니다. 일상 속 실천과 가르침의 연결고리로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수업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기회를 열어주신 원빈스님 감사합니다_()_
람림 첫 법문 자리에서, 인연따라 했던 공부가 결국은 도차제의 길위에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불법승 삼보의 위대한 가르침에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_()_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