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상파 TV 화려함 뒤 음습한 '왕따'...인기 기상캐스터 그 유서가 밝힌 직장의 어둠 / 2/2(일) / 세부투
◾️인기 캐스터 갑자기 사망
한국에서 인기 있는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지상파 방송국 MBC(문화방송)에서 기상 캐스터로 있던 오요안나 씨는 2024년 9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사인 등 자세한 경위는 가려져 있었으나 1월 들어 고인의 휴대전화에 유서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에는 동료 기상캐스터로부터 받은 괴롭힘 내용이 원고지 17장 분량, 2750자에 걸쳐 적혀 있었다.
또 선배로 보이는 인물이 오 씨를 향해 반복적으로 공격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녹취록과 오 씨를 괴롭혔던 동료 4명의 단톡방 등도 발견됐다.
"너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야?" "선배에 대해 예의가 없다. 정말 반성하고 있나" "너 때문에 이젠 참을 수 없는 한계야"
오 씨가 사과해도 질책은 집요하게 이어진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려던 오 씨를 회사로 불러들여 설교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필사적으로 버티던 오 씨였지만 점점 더 궁지에 몰렸다.
"무리한 비판을 받고 폭력적인 말투로 비난받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순수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게 싫어" "내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돕기 위해 고생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다"
유서에는 이런 고뇌가 담겨 있었다.
◾️화면 뒤에서 왕따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직업이다. 오 씨는 2021년 5월 MBC 기상캐스터 채용에 지원해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채용됐다. 방송국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 형태지만 MBC 전속으로 뉴스 프로그램 속 날씨 코너를 담당한다.
오 씨는 아이돌 연습생 경험도 있다. 귀여운 얼굴로 금세 인기인이 되었다. 2022년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지상파 3사 기상캐스터들이 모였을 때는 MBC를 대표해 출연했다. 하지만 이게 선배 캐스터들의 질투를 사면서 왕따가 시작된 것 같다.
MBC 기상캐스터는 오 씨를 포함해 6명이다. 오 씨와 동기 1명을 둔 선배 4명의 단톡방이 만들어진 것도 이 무렵이다.
"아침 방송인데 술냄새" "샤워도 안 했어?" "치마가 짧다고 주의를 줬는데도 말을 안 듣는다" "후배 취급하지 말자"
오 씨는 어떤 식으로든 이 채팅방의 존재를 알고 다시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TV 화면에서는 밝고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기상캐스터들의 음해. 그것을 주도했다고 실명이 거론된 캐스터에게는 비판이 쏟아졌다.
◾️MBC 대응 비판
오 씨가 남긴 기록 중에는 오씨가 숨지기 전 MBC 관계자 4명에게 갑질 피해를 호소했다는 기술도 보였다. 그러나 MBC는 지난해 9월 현재 오 씨의 사망 사실을 사내에 알리지 않았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도 조사하지 않았다. 오 씨에 대한 괴롭힘이 보도되자 MBC는 "오요안나 씨가 담당 부서나 관리 책임자에게 직접 민원을 전달한 사실이 없다면서도 유족이 유서를 토대로 사실 확인을 요구한다면 진상조사를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 고 밝혔다.
더욱 사태를 꼬이게 한 것이 한국의 탄핵정국과 관련해 이 문제가 거론된 것이다. MBC는 지상파 방송사 중 혁신좌파로 꼽히며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보수 유튜브 등이 이 오 씨의 문제를 MBC 공격 카드로 사용하고 왕따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기상캐스터의 실명을 폭로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MBC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도록 지도했다. 이에 따라 MBC는 외부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오 씨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기상캐스터는 화면에서의 화려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급여도 싸고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주전 자리를 얻기 위해 캐스터 간 치열한 경쟁도 불가피하다. 방송사에서의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근본적인 직장 환경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괴롭힘에 가담한 가해자와 이를 묵인한 직장의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