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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담을 것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 독립하기 위해 준비할 것은 많아졌다.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는 남들보다 못 해준 것 같고 자녀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렇지만 해주려는 조바심을 참는 것, 자녀를 어른으로 대하고 자녀의 실패를 겪어야 할 경험으로 여기는 것, 자녀의 인생에서 내 인생으로 무게중심을 조금씩 옮기는 것이 부모와 자녀 모두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자 최선의 태도다. 그래야 자녀도 마음이 자라 어른이 될 수 있고, 부모도 평온한 마음으로 만족스러운 인생의 후반기를 살아갈 수 있다.
_pp.9~10 〈들어가며〉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은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가 좋은 부모라고 말한다. 누구나 완벽한 부모가 되길 원하지만, 완벽한 부모는 자녀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자신이 부모를 뛰어넘는 상상을 하고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데, 완벽한 부모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껴져 아이가 부모의 그늘 안에 안주하게 만든다. 인생의 모든 질문과 문제에 부모가 정답을 제시하니 혼자서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책임지는 태도도 기르지 못한다.
아이가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려면 아이가 자라면서 ‘안전감a sense of security’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세상을 믿을 만한 곳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감이란 곁에 있지 않더라도 부모가 언제나 든든하게 자신을 받쳐주고 있다는 감각이다. 자신이 넘어져도 부모가 받쳐줘서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부모가 내 손을 잡고 일으켜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안전감을 습득한 아이는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_pp.24~26 〈‘배 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은 거야’란 말이 실감난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부모가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는 심리에는 자녀가 낙오하면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에 더해 내 인생도 경쟁에서 낙제하는 것이라는 불안과 노후가 비참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이런 마음은 자녀가 스무 살이 넘어 어른이 된 다음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더 좋은 대학에 갔으면 하는 바람은 대기업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어진다. 좋은 기업에서 인턴을 하거나 워킹홀리데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오거나 자격증을 따거나 공모전에 입상하는 등의 스펙을 쌓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한다. 조금 애가 타더라도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풀어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도 있겠지만, 거리를 두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 내 욕망이 자녀를 통해 실현되기를 오랫동안 바라온 탓이다.
머리로는 ‘이제 다 컸으니 자기 인생은 스스로 살아야 한다’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욕구와 욕망이 찰싹 붙어 있어서 생각처럼 행동하지 못한다. 욕구와 결합된 욕망의 추구가 실패할 때 오는 좌절은 욕망이 충족되지 못해 실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존과 직결되는 욕구까지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 욕구가 위협받는 불안은 상당히 강렬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불안에 사로잡혀 자녀교육에 인생을 갈아넣는 것은 의도와 달리 좋은 결말을 기대하기 어렵다.
_pp.59~60 〈불안과 실망에서 벗어나는 길: 욕망과 욕구를 구별하기〉
자녀가 얼른 자리 잡아야 한다는 걱정 때문이든 도와달라는 부탁이나 힘들다는 호소 때문이든 노후 대비를 소홀히 하며 자녀를 도와주는 것은 ‘산소마스크를 아이에게 먼저 씌워주는 것’과 같다. 게다가 사회초년생 시기나 결혼생활을 시작할 때 크게 지원해주어도 감사의 마음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으며, 무리하게 지원해준 부모가 자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노년을 보내게 된다면 오히려 자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부모가 산소마스크를 먼저 써야, 즉 노후 대비를 우선하고 어른이 된 자녀에게는 필요한 만큼만 지원해줘야 둘 다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_p.114 〈경제적 지원은 어디까지?〉
많은 부모가 내 자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여긴다. 맞는 말이면서 틀린 말이다. 아이가 7살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소아과를 찾아가면 의사도 자녀에게도 증상을 묻긴 하지만, 부모의 말을 더 신뢰한다. 자녀가 10대가 되어 방문을 닫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면서 부모가 모르는 것들이 늘어나지만, 여전히 아이의 체질, 버릇, 성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모르는 부분이 생겨도 잘 아는 부분도 있으니 아이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7살 때 아이에 대해 100% 알고 있다고 가정하면, 20대 이후에는 40% 이하로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는 적어도 70%, 80%는 알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런 착각을 하는 이유는 자녀가 자신의 세계를 전부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_p.129 〈자녀와 좋은 관계를 위해 필요한 마음〉
청년이 회사를 다니면서 성장한 덕분에 부모의 모습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청년은 회사에 들어가 가족이 아닌 어른들과 처음으로 긴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족과 비교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일상적인 모습, 부모의 성격에서 비롯된 말투와 행동거지가 눈에 다르게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하고 보통이라고 여기던 것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불편해지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불편함이 쌓이자 부모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리며, 결국 부모와 대화도 줄어들었다.
청년은 우울증을 앓던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니 증상이 악화되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가 바람직한 성장의 궤적을 걷고 있다고 보았다.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청년의 고민이 눈에 환하게 들어온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부모의 말과 행동이 불편한 것은 시야가 급격히 확장한 결과물이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부모가 어른의 기준이었고, 가족의 기준이 곧 나의 기준이었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 낯선 어른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시간이 생겼고, 청년은 적응하기 위해 상대를 관찰하고 타인의 기준을 이해하고 일부 받아들이면서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이는 성인이 된 기념할 만한 순간이고, 사회적 성숙의 징표로 해석할 일이다. 청년이 갑자기 예민해진 것이 아니라 가족의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_pp.137~138 〈부모의 말에 까칠해지는 이유: 스트라이크존의 변화〉
손주를 돌보는 것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한 일이면서 자녀가 사회적 지위와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귀중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부모의 의무가 되어 부모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면 손주를 돌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녀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워주기 위해 부모의 건강이 악화되면 자녀에게 육아보다도 큰 부담이 되고, 자녀가 힘들어지면 손주도 위험해진다. 위험신호가 왔을 때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무리하기보다, 적절한 시점에 산소마스크를 쓰듯이 ‘계속 손주를 돌보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 어른의 지혜일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손주 돌봄의 스트레스를 책임과 의무의 마음으로 이고 지고 가다가 다 타버리기 전에 “여기까지다”라고, 내 한계를 인정하고 선을 그어주는 것이다.
손주 돌봄은 인생의 행복한 변환점이 될 수 있지만, 부모가 희생하면서 노후의 족쇄를 차는 마음으로 손주를 돌보는 건 슬픈 일이다. 자녀와 손주를 위해 마음을 열어두되,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선이 어디인지를 잘 살피면서 가족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
_pp.216~217 〈손주 돌봄, 행복인가 노년의 족쇄인가〉
자녀가 떠나가는 중노년기에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자녀와 나 사이의 무게중심을 바꾸려는 노력이 우선이다. 지금까지 ‘자녀 70, 나 30’의 무게중심으로 살아왔다면, 서서히 나에게 쏟는 무게를 늘려 ‘자녀 30, 나 70’ 정도로 조정하는 것이다. 무게중심의 변화가 있어야 자녀에게 쏟던 에너지가 방향을 잃는 것을 예방하고, 자녀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다. 자녀 양육의 ‘성과’가 내 인생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아님을 깨닫고, 내가 이뤄온 것으로, 내 가치관과 선택으로 내 인생을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빈둥지를 마주하고서도 건강한 자아와 충분한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생활과 마음에서 자녀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 낯설겠지만 그것이 건강한 삶의 방향이다.
‘버킷리스트’는 나에게 집중하기 위한 실용적인 방법이다. 육아를 위해 미뤄왔던 것을 정리해보고, 지금부터 이뤄나갈 수 있는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보자. 배우고 싶었던 취미, 가보고 싶었던 장소, 해보고 싶었던 일 등 무엇이든 좋다. 앞으로 10년, 20년에 걸쳐 천천히 이루고 또 수정해나간다는 마음으로 부부가 같이 작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함께 버킷리스트를 이뤄나가며 자녀를 키우며 엉켜 있던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도 있을 것이다.
_pp.234~235 〈졸육아, 이제는 내 인생에서 행복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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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부모의 불안을 견디고 자녀에게 삶의 선택권을 넘겨주자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는 불안을 느낀다. 갓 태어난 아이를 키우는 조마조마함, 학교에 들어갔을 때의 걱정, 사춘기의 반항심과 무서운 눈빛 등을 거쳐오며, ‘행여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쌓인다. 그래서 부모에게는 문제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먼저 ‘정답’을 제시하려는 욕망이 생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 자녀 대신 최선의 선택을 내리며 자녀의 삶을 이끌려 한다. 이런 마음은 자녀가 어른이 된 후에 오히려 강해질 수 있는데, 취업, 주거, 결혼 등 훨씬 중대한 선택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한 부모’가 되어 자녀를 대신해 선택을 내리게 되면, 자녀는 부모의 그늘에 안주한다. 어른으로 성장해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은 완벽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부모가 나를 받쳐주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안전감’을 주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의 불안을 다스리며 자녀가 극복할 수 있는 실패의 경험을 쌓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 때, 자녀는 자기 일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어떤 실패로 자신의 삶이 망가지는 것은 아님을 깨닫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원하는 삶을 그려나갈 수 있다. 그러니 자녀가 성인이 되었다면, 부모는 조언을 건네는 위치에서 자녀의 결정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산소마스크는 부모가 먼저 써야 합니다”
-부모가 위태로워지면 자녀도 위험해진다
그러나 자녀가 어른이 되었다고 모든 일을 혼자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정은 스스로 내리더라도 취업 준비, 결혼, 손주 돌봄 등에서 부모의 지원이 절실한 순간이 온다. 이때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노후 자금으로 경제적 지원을 하거나, 무리하게 손주 돌봄을 맡기도 한다. 자녀가 안정적인 삶을 꾸리도록 돕거나 손주를 돌보는 일은 부모에게 커다란 기쁨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자녀를 헌신적으로 지원하다가 부모의 노년이 위태로워지면 자녀의 삶에 오히려 커다란 부담이 생긴다. 자녀의 상황마저 어려워지면, 부모의 헌신은 자녀와 함께 침몰하는 선택이 되어버린다.
비행기 안전 교육에는 “산소마스크는 어른이 먼저 써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위급상황이 닥치면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먼저 산소마스크를 씌우는데, 그러다가 부모가 정신을 잃으면 아이도 함께 위험해진다. 그러니 부모가 안전을 확보한 후에 자녀를 돌보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성인 자녀를 대하는 태도도 이와 비슷해야 한다. 자녀를 도와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노후를 위협하지 않는 선까지다. 게다가 부모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인간관계가 원만하다면, 자녀는 노년의 부모를 돌보기 위해 시간을 쏟지 않아도 된다. 그런 면에서 부모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는 것은 곧 성인 자녀를 지원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성인 자녀와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방법
: 평가와 조언은 멀리하고 호기심을 갖자
부모의 태도와 마음가짐만큼 중요한 것이 소통하는 방법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자녀는 부모를 가족이 아닌 한 사람의 어른으로 바라보게 되고, 부모의 말은 예전만큼 권위를 지니지 못한다. 그런데 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평가하고 교정하는 데 익숙하고, 여전히 어릴 때 버릇이 눈에 띄어 잔소리를 참기 어렵다. 부모의 조언과 도움이 필요했던 시절처럼 자녀와 대화한다면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다.
부모가 성인 자녀를 평가하고 조언을 건네면 다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자녀의 삶이 성공적으로 흘러가든 역경에 부딪히든, 이제는 자녀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시간이다. 대신 순수한 호기심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한 사람의 어른으로 존중하며 자녀의 마음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녀도 자신의 일을 편하게 이야기하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의견을 물으며 필요한 답을 얻기도 한다. 부모도 자녀가 새로운 세상에서 경험한 것들을 배우고, 자녀의 속마음을 들으며 자신의 안 좋은 감정적 습관을 보완하기도 한다. ‘가르치는 부모-배우는 자녀’의 관계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지탱해주는 어른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육아 졸업, 이제는 내 인생에서 행복을 찾자
: ‘빈둥지’는 내 삶의 행복으로 채워야 한다
지금 성인 자녀를 둔 부모 세대는 자녀가 나온 대학, 다니는 직장, 결혼 여부 등이 ‘인생의 성적표’로 여겨지는 시대를 살아왔다. 자녀의 성공이 곧 내 삶의 성공이었으니 자녀를 인생의 1순위로 두고 살아온 사람이 많다. 그런데 자녀가 어른이 되어 내 곁을 떠난다면? 갑자기 커다란 빈자리가 생겨 삶의 균형이 무너져버리는 ‘빈둥지증후군’이 찾아올 수 있다. 자녀 양육에 전념해온 삶이 허망하게 느껴지고, 이미 독립한 자녀에게 사사건건 간섭하려 하고, 외로운 마음에 자녀를 ‘베스트프렌드’로 삼으려다가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정신분석가 파울 페르하에허는 “부모 역할에 얼마나 성공했는가는 자녀가 부모를 떠날 수 있는 능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자녀의 독립은 곧 자녀를 질 키웠다는 증거다. 그러니 뿌듯한 마음으로 이제는 내 인생에서 행복을 찾는 데 집중할 시간이다. 육아를 위해 미뤄두었던 일들을 버킷리스트로 정리해 이뤄나가거나 반려동물이나 식물을 기르거나 친구와 운동, 취미 모임을 만드는 등,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일상을 꾸리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 행복한 일을 발견하다 보면 어느새 ‘빈둥지’가 내 삶의 행복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