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믿겠다고 고집 부리는 사람을 믿게 만드는 표징은 없다.
<연중 제6주간 월요일 강론>
(2024. 2. 12. 월)(마르 8,11-13)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마르 8,11-13).”
이 이야기는 루카복음에 있는 다음 이야기에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루카 11,14-16).”
여기서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라는 말과
‘시험하려고’ 라는 말은, 시비를 걸었다는 뜻입니다.
‘하늘에서 오는 표징’이라는 말은, 하느님만이 일으키실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기적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마도 탈출기에 나오는 기적들과 같은 일을 뜻할 것입니다.
앞의 6장에는 빵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가 있고, 8장에는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리사이들도 그 기적을 체험했거나,
직접 체험한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눈에는 ‘예수님의 빵의 기적’은 대단히 놀라운
기적이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인데, 바리사이들의 눈에는
그 정도의 일은 ‘하늘에서 오는 표징’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물 위를 걸으시는 일’이라면 바리사이들도
“그것은 하늘에서 오는 표징이다.” 라고, 즉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인정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일은(마르 6,45-52) 사도들만 목격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믿기 싫어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권능’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서 쫓아낸다.” 라고 말하거나, ‘하느님의 권능’으로
쫓아냈다는 것을 ‘표징’으로 증명하라고 요구한 것인데,
진짜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그런 요구를 한 것은 ‘인내심’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믿으려는 마음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일에 바리사이들이 요구한 대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놀라운 표징을 보여 주셨다면, 그들은 그것을
‘속임수’ 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요구를 더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그런 요구를
한 자들이 있었는데(마르 15,31-32),
그 말은 실제로는 비아냥거린 말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한 일도,
어느 정도는 비아냥거린 일이었을 것입니다.
<안 믿겠다고 고집부리는 사람을 믿게 만드는 것은
기적이나 표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뭔가를 계기로 크게 깨닫고 회개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안 믿는 자들만
바리사이들 같은 요구를 한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의 경우에도 비슷한 요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이 말은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요구할 때 한 말과 비슷합니다.
‘주님이시거든’은 ‘당신이 정말로 주님이시라면’이고,
이 말에는 주님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 일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에게도
바리사이들처럼 주님께 뭔가를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수도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지는 함정 같은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의 태도에 대해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구원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인간이 어찌 감히 구원하시는
주님께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세속에서는 신원을 증명하라는 요구는,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하느님께, 또 메시아께
감히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또 메시아께서 당신 자신의 신원을
증명하신 다음에 인간들이 믿게 된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신앙인들은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때
‘그냥’ 단순하게 믿고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넓게 생각해서, 신앙과 과학의 관계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의심하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검증하는 일은
과학에서는 당연하게 여기는 일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과학이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주어진 계시 진리를 ‘그냥’ 단순하게 믿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과학처럼 의심하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검증한다면,
계시 진리에서 점점 더 멀어지다가
결국 무신론자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신앙은 과학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의 내용에서 확실한 물증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될까?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도신경의 내용은 전부 다 진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안 믿겠다고 고집부리는 사람을 믿게 만드는 것은
기적이나 표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뭔가를 계기로 크게 깨닫고
회개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신앙인들은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때
‘그냥’ 단순하게 믿고 신앙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