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을 시작하며
1
폭이 넓고 깊이가 깊은 글이 있다. 폭이 넓은 글이라는 것은, 대하소설처럼, 다루는 주제나 내어놓는 주장이 다양한, 그런 글을 가리킨다. 깊이가 깊은 글이라는 것은, 글로 쓰인 것 뒤에 글로 쓰이지 못한 많은 것이 빙하의 뿌리처럼 도사리고 있는, 그런 글을 가리킨다. 까페 '경희고 12회'는 한 편의 긴 글이라거나 한 권의 두꺼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아주 긴 글이 되어있으며 지금도 계속 쓰여져 더욱 더 길어지고 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길기만한 것이 아니다. '경희고 12회'는 깊은 글이다. 깊고 깊어서 바닥이 없는 듯하다. 어째서 나는 그런 느낌을 받을까? 거기에 오르는 글들은 그냥 글, 글을 위한 글이 아니라, 생활이나 삶에 대하여 기록하고 보고하는 글로서, 글의 밑바닥에는, 따로 이루어지고 있는 생활이나 엄연히 존재하는 삶이 깔려 있다는 점을 내가 알기 때문일까? '경희고 12회'는 넓고 넓어서 테두리가 없는 듯하다. 거기에 오르는 글들은 한 편 한 편이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50평생을 살아 온 남자들의 글로서, 예측할 수 없는 주제, 예측할 수 없는 주장, 예측할 수 없는 개성을 보여준다는 점을 내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까페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와 있고 저런 이야기도 나와 있으며, 이런 삶도 실려 있고 저건 삶도 실려 있다.
금 요일(8월 1일) 저녁에 천식이가 삼례에 내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삼례가 아니라 익산이다. 원박사는 새 학기부터 원광대에서 강의를 하게 되어 있어서 이곳에 거처를 마련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친구, 예의 그 즉흥성을 발휘하여, 첫 번째 집에서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두어 주 전에는 자동차를 타고 진부를 지나가는 길에 읍내에 들러 아파트를 한 채 덜컥 계약하였다고 한다. 나는 이 친구의 이런 즉흥성이 못마땅하다. 그렇다면, 이리 재고 저리 재다가 끝내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내 방식이 좋은가? 물론 나는 내 방식이 더 싫다. 우리는 경산회 산행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토요일 새벽, 삼례에서 출발하는 첫차를 탔다. 양재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니 버스는 서울의 값비싼 건물들에 둘러쌓였다. "이 나이가 되도록 저런 건물 한 채 가지고 있지 못하다니...... 저런 것 한 채만 있으면 인생이 얼마나 즐거울까?" "그런 생각하지 마. 그런 생각이 정말로 좋지 못한 생각이야. 복권 사는 것하고 말이지." 약속된 10시까지 집결지(청계산 옛골)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천식이게 전화를 해 놓으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천식이 핸드폰에는 덕영이 전화번호이외에는 저장된 것이 없었다. 나는 천식이의 이런 면이 정말로 못마땅하다. 나는, 비가 올 것 같아, 우산을 준비하지 않을 것을 후회하며 조바심을 내었지만, 천식이는 천하태평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미리미리 꼼꼼하게 준비하고 모든 과정을 철저히 계획해 놓아야만 하는 내 방식을 나는 좋아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2
한 여름의 우중산행(雨中山行) -- 말만 들어도 시원하지? 일회용 우의를 사 입었더니 군대에서 판초 우의를 입고 행군을 하던 생각이 나더구만. 군대에서건, 사회에서건, 비옷을 입어보는 것은 신선한 느낌을 주지?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시원하게 빗방울이 튕기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복장은, 그게 그것인 일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일지 모른다. 빵카 속에 들어간 듯 안전한 비옷 속에 들어가 빼꼼히 눈만 내놓은 채 짙푸르고 싱싱한 여름 숲을 뚫고 나가면서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여름 흙산을 밟는 것은 참으로 근사한 경험이다. 폭우가 쏟아진 것은 잠깐일 뿐 비가 많이 오지도 않았으며 그나마 곧 그쳐버렸다. 우리는 비 그친 후에도 짙게 서려있는 뿌연 운무 속을 걸어 이수봉 정상에 도착했다. 이수(二壽)? 두 목숨이라...... 조선조에 어느 선비(김종직? 김굉필?)가 사화를 피하느라 이곳에 숨어지냈는데, 그 덕분에 두 번이나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최소한 정상에서는 사진을 한 방 찍었어야 했는데...... 공교롭게도 요번에는 찍사가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아 사진은 찍지 못했다. 누군가가, 지나가는 아줌마 등산객의 카메라를 빌려 찍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였고, 그렇다면 누가 나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 하는 질문이 제기되었으며, 몇 몇 선수가 추천되었고, 심지어 2인 1조의 작업조가 거론되기까지 하였다. "혼자 작업을 할 일이 아니야. 신수가 훤한 병진이가 얼굴을 내밀고, 그 뒤에서 언변이 좋은 승일이가 멘트를 날리는 거야." 이러한 작업조가 정말로 편성되었다면 함락하지 못할 것이 없었을텐데...... 우리는 벤치에 음식을 늘어놓은 채 서서 식사를 하였다. 보잘 것 없는 삼례 김밥(일명 깨순이 김밥)을 비롯하여 김밥 집에서 사온 김밥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항상 먹는 장수 막걸리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약간 다른 음식도 섞여 있었다. 경복이는 어부인이 싸주신 일명 '사제 김밥'과 부침개에, 디저트로 바게트 빵까지 내어 놓았고, 병진이는 소시지 반찬을 준비하였을 뿐 아니라 17년산 발렌타인을 한 모금씩 돌렸다. 먹을 것 다 먹었으니, 이제 내려가면 된다. 올라갈 때도 그러더니 내려갈 때도 기현회장과 홍표가 앞장을 섰다. 기현이의 산행 경력이야 잘 알려져 있지만, 홍표도 상당한 수준의 고수인 것 같았다.
아, 참, 먼저 하산한 사람도 있다. 은이는 우리가 산정에서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하산하였다. 오후에 성남에 가서 단식에 관한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이는 복부 비만을 해결하고자 단식을 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산에 오르는 길에 한참 이야기하였지만, 사실은 나도 10 여 년 전에 상당히 세게 단식을 한 경력이 있다. 그것이 내 몸을 좋게 하였는지, 도리어 나쁘게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단식할 사람은 단식하고, 배불리 먹을 사람은 배불리 먹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어제 낮에는 배불리 먹을 사람 편에 끼어 실컷 먹고 실컷 마셨다. 물론 산에서만 먹은 것은 아니다. 우리 일행은 하산하여 이수산장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이곳이 바로 '경산회 구테타'가 일어나 회장 교체를 이룬, 역사적인 장소라고 한다. 구테타 세력은 감개무량한 듯 구테타와 관련된 일화를 늘어놓다가 멈칫하였는데, 전임 회장의 최측근 한 사람이 눈에 띠었기 때문이다.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다 말다 하는데, 우리는 깔깔 낄낄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한창 젊은 시절 접대 술 마실 때의 불량무용담을 경쟁하듯 털어놓기도 하였고, 로맨스라고 불러야할지 스캔들이라고 불러야할지를 알 수 없고, 정말로 있었던 것인지 날조해낸 것인지를 알 수 없는, 불량연애사건을 경쟁하듯 털어놓기도 하였다. 우리끼리는 그런 불량한 이야기를 해도 되니까. 선생님 몰래 말이야. 그럴 때면 모범생이거나 모범생인 척 하는 녀석들이 나타나게 마련이지? 재떨이로 술을 퍼 먹은 이야기, 마담 고무신에 술을 따라 먹은 이야기까지는 참고 듣더니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 국보는 혀를 끌끌 차면서 이야기를 제지하였고, 연애 사건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없이 부러워하는 아저씨들을 향해 병진이는 “이제 철들 때도 되지 않았느냐”면서 일침을 가하였다. 심각한 의견충돌이었지만 우리 중에 그 충돌을 심각하게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이수산장에서 의형제를 맺기도 하였다. 우리끼리 의형제를 맺은 것이 아니라 이수산장 사람들과 맺은 것이었다. 상대는 두 명이었고 그 중 한 사람은 여자였다. 그러니까 그 경우는 의형제가 아니라 의남매라고 말했어야 하나? 오래된 단골이라서 그랬는지 그 여자는 영중이에게 친절하였으며 우리 일행에게도 친절하였다. "아가씨, 영중이가 아가씨를 뭐라고 부르지요?" "......" "공연히 물어 보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가 다음에 왔을 때 아가씨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를 몰라서 말이예요." "......" 이 때 누군가가 '동생' 아니 '동상'이라고 소리쳤다. "아, 예, 그러십시오. 동상이라고 하시라요." 동상은 부끄러운 듯 달아나며 그렇게 대답했고, 그래서 그녀는 동상이 되었다. 우리는 음식을 시킬 때마다 “어이, 동상” “어이, 동상” 하고 소리치면서 재미있어 하였다. 나중에 잠시 앉혀놓고 물어보았더니, 심양에서 온 조선족이라고 한다. 쾌활하고 서구적인 마스크를 지닌 30대 아줌마. “이 집에서만 5년이 되었다고? 그렇다면 이 집 주인이 아주 좋은 사람이든지, 아가씨가 아주 좋은 사람이든지, 둘 중 하나인데?” “사장님이 좋은 사람이야요.” 영중이 등 친구들이 팁을 만들어서는 나보고 전달하라고 해서 내가 생색을 내고 말았네. (팁은 한 장을 줘서는 안 된다네. 오천원짜리를 쓸지언정 두 장 이상을 내놔야 한다네.) 또 한 사람은 30대로 보이는 청년이었으며, 역시 홀에서 써빙을 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웃고 있다. 웃는 것이 조금 지나친데, 그 웃는 얼굴만 보아도 알아차릴 수 있다. 지능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물론 써빙 일을 하는 데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음식을 시키면 "뭘 그렇게 자꾸 먹어. 이제 그만 먹고 가."라고 말한다. 한번은 쏘주 한 병, 막걸리 한 병을 시켰는데, 쏘주 두 병에 막걸리 두 병을 가지고 왔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가져오는 모양이다. 우리는 이 청년도 '동상' 혹은 '동생'이라고 불렀다. “동상, 그러지 말고 파전 한 접시만 더 갔다 줘.” (여기까지만 일단 올리고, 나머지는 저녁에 올릴게.)
첫댓글 저녁에 올리는 글은 "동상"에서 "자기" 뭐 이렇게 되는거겠지?? 기대만땅!! 근데 "원광대"하고 "원천식"..하고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네 ㅎㅎ
역시 영태가 산행에 동참하니 이야기 거리가 풍성하네 !! 수위 조절을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간 얘기는 슬쩍 흘려 보내고 ㅎㅎㅎ 카메라를 준비 못했지만 내 핸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올려야겠네 그 날의 웃음의 충돌을 보여주기 위해....ㅎㅎ
역시 교수님들은 가방끈이길어서 예리하고 글을잘쓰네~~근데영태는죽을때까지 조교수만하는거아냐~~~성을바꿔서 정교수/석좌교수가돼야하는데~~~~ㅋㅋㅋㅋ
핸펀 카메라 찍었다고? 홍표군, 반가왔네. 그런데 그 놈의 '조교수' 타령,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지 ㅋㅋㅋ 정교수는 좋겠네.
아 '자기"? 동상에서 자기로 가는 것 말이지? 쿡쿡쿡
영태가 부르면 동상이 얼굴 빨개지면서 어쩔줄 몰라하던데 ... ㅎㅎ
학실히 남녀칠세 지남철이구만!
영태가 여자들이 좋아 할 스타일이잖아 !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