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약국을 들러 풍암동에 가 이사자료를 챙긴다. 운림동 동산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11시 반이 지난다. 점심먹기가 어중간해 가게를 찾아 한참 내려가 막걸리 한병과 빵 두개를 산다. 바람이 차다. 운동을 마치고 내려오는 이들이 더러 있다. 개천의 길을 벗어나 산아래 다님길로 들어간다. 침석대로 내려가 사진을 찍고 올라온다. 枕流漱石이라고 주석을 붙였으니 세상을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까? 조씨와 김씨는 어떤 사이였을까? 찬바람이 불지만 얼었던 길이 녹아 질척거린다. 혹시 바람꽃이 보일까 눈을 두리번거려도 안 보인다. 사람없는 호젓한 계곡을 걷는다. 새인봉삼거리에 이르러도 바람은 자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 나무와 바위가 붙잡고 선 사이로 물이 하얗게 흐르는 작은 소 앞에 자릴 잡는다. 막걸리를 따뤄놓고 빵봉지를 뜯는다. 먹을만하다. 등짝의 땀이 식어가 춥다 일어나 통행금지 프랑 아래로 끼어들어간다. 바닥을 온통 파헤쳐 놓았다. 사람은 아닌 듯한데 멧돼지일까? 복수초는 보이지 않는다. 노루귀 바람꽃 현호색도 안 보인다. 산자고 싹이 보인다.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다 복수초를 만난다. 활짝 피기보다 오무리고 있는게 더 많다. 대가 오른 복수초가 작은 몽우리를 오무리고 있다. 발을 조심히 띠며 몇 개의 복수초를 무릎꿇고 만난다. 커다란 나무 위로 찬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능선에 이르러 서인봉으로 올라간다. 바위에 앉아 흐린 남쪽을 내려다 본다. 화순 벌판은 흐릿하고 식산 봉우리 두개만 보이고 용암산 뵤족한 봉우리로 수레바위 능선 위로 살짝 보인다. 남은 빵을 꺼내 반쯤 먹으며 남은 막걸리를 비운다. 중머리재엔 사람이 없다. 서석대 위로 정상쪽은 하얗다. 올겨울엔 눈이 많았는데 자주 오르지 못했다. 새인봉으로 가 바람을 맞을까 옛대피소 쯤에서 복수초를 한번 더 볼까? 꽃피는 시절은 잠깐이니 당산나무쪽으로 내려간다. 고갤 숙이고 내려가다 대밭 부근에서 다시 거슬러 올라 대밭 뒤로 들어간다. 복수초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무리고 있는 걸 만나니 피어있는 것도 본다. 발을 옮기며 벗어나 당산나무를 지나 열려있는 신림기도원 안을 들여다 본다. 4시가 되지 않았다. 바보의 퇴근을 차 안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증심사와 문빈정사에서 보내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