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이 소설은 인간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그린 글인데, 내용이 너무 거창하게 되는 바람에 그것들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잘 써야 할텐데...
여기에 나온 ‘나’라는 사람은 독실한 기독교 부모님에 의해 인간만능주의에서 벗어나게 되어 평범한 사람이 되지만, 다시 예전처럼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답으로 ‘신의 음성’을 듣고 크나큰 죄값을 받게 되면서 ‘끝’을 맺게 됩니다.
우리 현실 속에서도 남들과 경쟁해서 반드시 이기려고 하는 ‘경쟁주의’나 항상 모든 것들이 완벽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엘리트 주의’ 같은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1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희생자가 되어 배척 되어 버리고 1등인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면 이것이 진정한 우승자의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선의의 경쟁이라든지, 최선을 다해 이기게 되는 우승자야말로 진정한 우승자입니다. 그리고 만약 어떠한 경우에서 아래로 밀려날 경우,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우승자의 기질이 엿보이는 사람입니다.
즉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진정한 인생의 우승자는 1등이 아닌, 선의의 경쟁으로 인해 깨끗하게 이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우승자라는 것을 깨우쳐 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줄거리> 어렸을 때부터 엘리트 주의에 사로잡힌 ‘나’는 독실한 기독교적인 부모님으로부터 한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세상에는 만능적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그 후로 나는 사회에 나가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그러나, 항상 엘리트 주의만 내세우며 엘리트적으로만 살아가던 나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알았다.
가정 불화로 아내와 이혼하고 자식들 얼굴조차 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 한 때에는 자신의 옛 일을 회상하며 다시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힐 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예전처럼 돌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느 날, 어떤 여인에게서 모든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말에 교회에 오라는 팸플렛을 받게 되어 교회에 오게 되지만, 그들이 보여준 신의 능력이 한낱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비웃게 되지만, 그들에게서 저주를 받게 된다.
하지만, 깨어나보니 그것들은 한낱 악몽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일로 인해 지난 일들을 회상하게 되면서 다시 엘리트 주의에 사로잡혀 7년이란 세월 끝에, 그는 세계적으로 정상의 자리에 우뚝서게 되는 벤처기업에 사장이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과정’이 아닌 ‘결과’를 중시하는 이른바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어버리고, 지난 일을 용서해 달라며 찾아온 아내와 아들들을 자신의 앞날을 위해 없애버리기로 결심하게 되는데...
요즘 들어 온통 머릿 속이 혼란스럽다. IMF 경기불황 때 보다 더 살기 힘들어 졌다고 다들 입을 모으는 바람에 내 직장 동료들도 언제 잘려나갈지 노심초사하곤 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이렇게 되면, 종교를 믿는 사람이 느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나 역시도 여태껏 인생을 30년 동안 살아왔어도, 이렇게 힘든적은 처음이었다. 몇 달 전, 아내와 부부 싸움을 벌여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후부터 말이다... ...
후즐근한 셔츠 앞 주머니 속에 타다 남은 꽁초와 라이터를 꺼내어 제법 노련하게 불을 붙여가며 담배를 피웠다. 이제 나에게 더 큰 문제는 당장에 벌어먹고 살 수 있을 만한 ‘돈’이었다... 아내가 나를 ‘구타죄’로 고소하는 바람에 1심에서 완벽하게 승소 한 뒤 나에게 몇 천만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 거기다가 장차 자기가 돌볼 아이 ‘양육비’와 위자료까지 더해 버리는 바람에 거의 허리가 휠 정도로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평일에는 회사일을 다니고 공휴일에는 공사판에서 전전하며 돈을 악착 같이 모아봤자 고스란히 아내에게로 돌아가는 바람에 나는 거지꼴도 간신히 면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집에 돌아와 아이들 전화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 여자가 재혼 한 뒤, 아이들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 가 버리는 바람에 그 아이들은 잠시 친정에 맡겨졌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정말로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부부 싸움 하던 도중, 아내의 몸에 피멍이 났다는 이유만으로도―내 몸도 성치 못했다.― 구타죄로 고소당해 엄청난 합의금까지 줬는데 거기다가 ‘양육비’까지 요구하는 바람에 내 몸은 예전처럼 성치 못했다. 거기까지는 내가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
정말 독한 여자였다. 나랑 연애 하던 시절만 해도, 그 여자 성깔은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알아줘야 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이혼 하고 나서도 끝까지 사람 미치게 만들어버리는 여자였다.
‘따르르르릉---’
“여보세요...”
“아빠!”
첫째 아들 민철이의 목소리였다. 그 아이는 항상 쾌활하고 명랑한 아이였다. 내 얼굴을 안 본 지 좀 되었어도 그는 내 목소리를 안 잊어버렸다. 그리고 꼭 나와 만날 것을 언제나 기대하면서 내가 퇴근 하고 집에 돌아오면, 꼭 한번씩 전화를 하곤 했다. 나 역시 첫째아들 민철을 보고 싶은 마음에 일찍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게 내 인생의 희망이자 전부였다.
“민철아. 오늘도 유치원 잘 갔다 왔니?”
“응... 아빠 있잖아. 기쁜 소식인데, 엄마 동생 가졌대...”
“정...말?”
“그런데 엄마 요즘 내 얼굴 안 보려고 해... 동생 가진 후부터인데... 아마 나 싫어하나봐...”
나는 민철이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에게 위로라도 해줄 양으로 무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민철이가 더욱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그의 뒷말은 나로써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엄마 배가 정말 이---만--- 했어... 할머니가 그랬는데, 다음 달에 병원 가서 동생 낳는다고 했어... 아빠도 갈거지? 그렇지? 그런데 엄마가 동생 낳구... 나 좋아할까...?”
나는 그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잠시 멍하게 앉아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민철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녀와 잠자리를 안 한 지 족히 1년이 됐는데, 그럼 그 사이에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단 말인가? 그리고 돈을 가로챌 요량으로 나에게 시비를 건 다음 엄청난 위자료와 함께 돈을 가로챘던 것이란 말인가?
나는 그녀의 ‘엄청난’ 꾀에 된통 당한 것이다. ‘순진 했던’ 나는 2심도 해 보지 않고 모조리 그녀에게 나의 전재산을 거저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버릇처럼 다시 내 셔츠 윗주머니로 손이 올라갔다. 내 손에는 라이터와 꽁초가 들려있었다. 습관처럼 입에 물고 한 모금 담배연기를 내 뿜으려는 순간 나는 황급히 꽁초를 방바닥에 던져 버린 다음, 재빨리 재를 꺼버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장기들이 담배연기로 인해 썩을 대로 썩어 수술까지 몇 차례 받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실히 ‘담배연기’를 필요로 했다. 담배 없이는 죽을 것만 같았다...
이제는 담배조차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주량이 남보다 적은 편이었던지라, 술을 입에 달고 살았던 적은 없었다. 방귀퉁이에 전에 아내에게 선물 받은 양주 한 병이 생각났다. 그 양주 한 병을 꺼내들어 병에다가 콸콸 쏟아부은 뒤, 입에다가 거하게 한잔 부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술을 먹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우웨엑---’
한 잔밖에 안 했는데, 위장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폭발할 듯 솟아올랐다. 한참동안 오바이트를 하고 난 뒤, 양주 껍데기를 보았다. ‘알코올 농도 40도’
“이 여편네가!”
마치 아내가 주량 한 잔도 못한 나를 ‘골탕 먹일려고’ 일부러 알코올 농도가 엄청 짙은 양주를 선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홧김에 나는 양주를 방바닥에 집어던졌다.
‘쨍그랑---’ 그 유리 파편들이 마치 나를 공격하기라도 하는 듯, 몸에 콱 박고 들어오는 바람에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됐다. 흰 셔츠에는 꽃처럼 발그스름하게 물들어갔다. 나는 결국 며칠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성탄절이 다가오자, 온 세상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기라도 하는 듯 거리에는 온통 캐롤송과 구세군 냄비들로 가득했다. 그 날 하루 종일 쏟아지는 업무일로 인해 나와는 무관하리라 생각하고 무심코 거리를 지나갔다. 그 때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슬쩍 다가오더니, 팜플렛을 건네며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
나는 그 팜플렛을 들고 슬쩍 한번 훑어보았다. 맨 꼭대기 위에 늘 그렇듯 ‘예수 믿으면 천당...’ 이라는 글귀로 시작되어 있었다. 나는 이런 거 안 믿는다고 하면서 그 아주머니에게 도로 팜플렛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나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져요. 내 말이 거짓말 같다고요? 교회가 거짓말 하는 것 봤습니까? 그러니 한번쯤 꼭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TV를 보던 나는 한동안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귓 속에서 왱왱 울렸다. 특히 ‘모든 소원이 이루어져요...’ 라는 말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충분했다. 결국 나는 한번쯤 속는 셈 치고 일요일 날 시간을 내어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다.
팜플렛에 적혀 있는데로 교회를 찾아갔는데, 서울 한복판에 있다고는 했지만, 인적이 드문 외딴 곳에 있었다. 그리고 교회라고는 하지만, 마당도 좁아터진 데다 외관상 많아봤자 백 명 정도밖에 수용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보니 엄청 커다란 광장과도 같은 곳에 수 천명의 신도들이 목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빈 자리를 찾아, 이리 저리 돌아다닐 때 그들의 눈빛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하거나, 취한 것 같았다.
설교의 내용을 간략히 줄이자면 ‘예수는 도탄에 빠진 그대들을 구원할 구세주입니다’ 였다. 초등학교 때 교회성탄절이나 달란트 시장이 있던 날만 골라 교회와 성당을 찾아갔던 적이 기억났다. 그 때도 설교의 내용은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설교의 내용과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그 나물의 그 밥’ 이었던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목사의 그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닿았을 지는 몰랐지만, 나 같은 ‘불신자’ 들에게는 학교 선생님들의 ‘잔소리’와 같이 지겹게 들릴 수 밖에 없었다.
거의 예배가 끝마칠 즈음엔, 나는 거의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반 쯤 잠에 취해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목사가 우렁차게 외치는 바람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어찌나 깜짝 놀랐던지, 다른 신도 몇 몇이 나를 쳐다보았으나 이내 목사의 말에 귀를 귀기울였다.
“여기에 오신 분들 중에서는 예수를 의심하는 자들도 몇 몇 있을 터!! 그래서 제가 그 증거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그러하신 분들은 제 설교가 모두 끝마치면 모두들 맨 앞자리로 와주십시오! 그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더욱 놀랄 것은 그대들에 소원도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목사의 말을 들은 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내가 교회에 온 목적이자, 고대하고 고대했던 말이었다.
설교 시간이 모두 끝나자, 약간 미심쩍어 하는 몇 십 명의 사람들이 맨 앞자리로 나왔다. 그들 무리 틈 속에는 나도 끼어있었다. 20분쯤 지나자, 사람들이 모두 교회를 빠져나갔다. 그러자 목사가 뜸을 들인 뒤, 느릿느릿 말을 이어나갔다.
“여러분들... 정녕... 예수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하십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 자신들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머쓱해했다. 목사는 호탕하게 웃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아 제 말은... 이 자리에서 지금 당장 예수님의 힘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사는 희미하게 웃더니 성큼성큼 커다란 십자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는 우리 일행을 마주보고 선 뒤, 팔을 힘차게 뻗었다. 잠시 후, 그의 몸 곳곳에서는 피가 흘렀다. 나는 잠시 그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 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오... 성흔이다! ”
나는 속으로 콧웃음을 쳤다. 저게 예수의 능력이라고?.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갑자기 목사의 눈이 충혈하기 시작하더니, 피눈물이 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남자의 몸과 눈에서도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어...어...”
“그대는... 나의... 능력을... 시험하기에도 모잘라... 나의 능력을 부정하였으니... 그 죄... 지옥에 가서도 씻을 길이 없노라... ”
‘쿵’
남자는 피투성이가 된 체, 쓰러졌다. 우리는 놀라 서로를 멀뚱멀뚱히 쳐다보았다. 이내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더니, 그 웅성거림은 더욱 크게 번져서 목사에게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저 자는... 나의... 능력을... 시험한... 죄 값으로... 저리 된 것이다... 만약 다른 자 역시 날 또 시험하게 든다면... 그 때는 모두 용서치 않으리라.... ... 처음이라서 그런 것이니... 이번 한번만은... 용서해 주도록 할 것이다...’
“어 어...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목사의 ‘저주’로 인해 쓰러졌던 그 자가 ‘멀쩡하게’ 일어났다. 그러더니 목사의 발 밑으로 기어가더니 처량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들을 너무 믿기 힘들었다. 솔직히 정신이 나가지 않는 사람 치고는, 그런 사실들을 당장에 믿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의 능력이 ‘전지전능’ 해도 어쨌든 요즘 시대는 과학 지상주의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결론 짓는 시대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은 미확인 비행물체(UFO) 가 지구 상공에 포착하여 발견된 것만큼이나 믿기 힘든 사실들이다. 더욱이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똑똑히 봤다해도 세상살이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식이므로, 더욱 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믿기 힘들었다. 잠시 뒤 목사가―제 정신으로 돌아왔는지― 우리들에게 설교하는 투의 목소리로 자못 진지하게 말했다.
“아까... 보신 광경들은 모두 다 예수님의 능력이십니다... 물론... 믿기 힘드실 분들도 계실테지만요... 워낙에 주 그리스도를 흉내내는 자들이 많아서죠... 그리고 요즘 시대에는 과학 시대이니까... 더욱 못 믿을테죠... 하지만... 이 능력은 ‘약과’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전지전능한 것이니까요...”
목사의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와 목사와 마주보았다. 목사는 하던 말을 마저 하지 않고, 거기서 멈췄다. 그리고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체 나와 마주보았다. 그의 그런 태도가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으나, 나 역시도 그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잠시 후, 그는 조금 멋쩍었던지 아니면, 내가 할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지 않아서, 답답했던지 먼저 나에게 물어왔다.
“그 능력들... 다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 물론이지요...”
나는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까 성흔을 흘리고, 쓰러진 사람은 분명 목사와 짠 한 패가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짐승의 피를 몸에 숨겨두었다가, 약간의 폭약을 가하는 트릭은 영화 같은 곳에서나 쓰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주 순진한 사람들―아니면, 정말 멍청한 사람들―은 그것을 정말로 예수의 ‘성흔’으로 보았을 것이 자명했다.
그런데 ‘다 보여줄 수 있다니’... 이번에는 ‘모세’처럼 뱀을 지팡이로 변신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팔,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똑바로 걷게 할 것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하늘에서 비라도 내릴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뱀을 지팡이로 변하게 하는 것은 흔한 마술의 트릭 중 하나 일테고, 팔,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걷게 하는 것은 ‘짜고’ 하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는 것은 관측소에 전화만 하면 다 알 일이었다.―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기예보에서 오늘 오후에 비가 온다고 예보했고, 적중률은 80%였다. ―
“왜... 웃으십니까?”
나는 내가 웃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을 배꼽을 움켜 쥐어가며 설명했다. 그러자 그 역시도 웃음이 나왔던지,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리어 내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려드리지요!”
다시 이 곳 저 곳에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러한 반응으로 보아 모두들 목사의 말을 믿지 않은 듯 했으나, 그들 중 한 사람이 대표로 나와 내 옆에 서서 그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항변했다.
“장난 합니까? 지금? 이 사람이 지금 한 말을 들어보니, 그럴 듯 하군요! 지금 창 밖에 비가 오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습니까? 왜요? 제 말을 듣고 화라도 내실 작정이십니까?”
“우리를 속였어!”
“그래, 맞아! 목사는 거짓말을 했어!”
정말로 목사의 목에는 핏줄까지 곤두 서 있었고, 안면 근육은 푸들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제히 사람들은 목사에게 항의했다. 몇 몇 목사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말리려고 했지만, 겉잡을 수 없었다. 결국 그 들 중 한 사람이 크게 다치고 나서야 사태는 조금 진정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별안간 하늘에서 커다란 번개가 치더니 교회 안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내 이-노-옴-들--->
어찌나 큰 소리였던지, 우리는 모두들 두려움에 떨었으나 이내 목사의 ‘자작극’임을 눈치채고 일제히 항변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정말이지 진정할 기미가 안 보이는 듯했다. 그 때... ...
‘콰콰쾅’
‘우르르꽝’
뇌우(雷雨)와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이 일제히 내리쳤다. 일순간, 교회 안은 정전이 되었고 어둑어둑해서 앞 뒤가 잘 분간이 되질 않았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비가 오는 바람에 으슬으슬할 정도로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천둥 벼락 같은 음성...
... 그 말이 내 귓 속을 파고 들어왔다. 뒤 이어 알 수 없는 혼란감이 엄습해왔다. 그리고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이 나에게 찾아들었다... 내 동공은 터질 듯이 팽창했고,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
“하...아... 하...아...”
깨어나보니 꿈이었다. 살다 살다 별 희안한 꿈을 꾼 것이다. 애초에 그 팜플렛 말이 귀에 거슬려 이런 악몽까지 꾸게 된 것이었다. 벌떡 일어나 사냥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열심히 책상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책상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소지품들이 너저분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잠시 뒤, 그 팜플렛이 내 손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팜플렛을 갈기 갈기 찢어버렸다. 그리고 휴지통에 버릴 찰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진 체 갈가리 찢겨져 있는 것이 내 눈에 확 안겨왔다.
‘헉...’
숨이 막혀왔다. 마치 그 예수가 날 지옥불에 태워죽일 양으로 고통에 일그러진 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얼른 그 팜플렛을 휴지통에 떨겨놓았다. 마침, 오늘이 쓰레기 수거차가 오는 날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쓰레기 봉지 버리기 귀찮아서 쓰레기 차가 오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쓰레기 차가 어서 오기만을 바랬다...
‘따르르르릉’
“민철이니?”
“아빠...”
“민철이, 오늘 유치원 안 가겠네? 아빠랑 오늘 어디 놀러가려고 전화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어제가 크리스마스였잖아. 아빠 하루 종일 전화 안 받았어... 그래서 섭하다... 아빠 지금 집이지?”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시침이 7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출근해야 할 시각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옷을 갈아입지 않은 체, 잠옷 바람인 것을 깨달았다. 황급히 수화기를 어깨에 짓누른 체,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셔츠를 집어들고 주섬주섬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 사이 민철은 그 사이 있었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재잘 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다 무시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민철은 내가 수화기를 놓을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말했다.
서둘러 회사로 차를 몰아, 겨우 지각을 면한 나는 잠깐 한숨을 돌리며, 컴퓨터 앞에 앉은 다음, 전원을 켰다. 그리고는 가뿐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런 나를 아까부터 죽 지켜 보고 있던 내 회사 동료인 윤희가 나의 어깨를 토닥거리더니, 방금 자판기에서 뽑은 듯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나에게 건네주며 격려해주었다.
“...힘내”
잔을 받은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일부러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러자, 쑥쓰러웠던지 얼굴까지 벌개지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회사 동료들에게도 인기가 아주 많았다. 성격이 내성적이긴 했어도, 회사 동료들 중에 누군가가 힘들어 하면 항상 커피잔을 내주며 항상 “...힘내” 라든지 “힘내세요” 라는 말을 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무리 업무가 피곤한다 할지라도, 언제나 힘이 났다. 그런데 아내와 이혼 한 뒤, 그녀를 보는 나의 낯빛이 많이 달라짐을 느꼈다. 그녀가 다가오기만 해도 가슴이 세차게 뛴다거나, 터질 것만 같았다. 이유는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남들은 내가 그녀를 좋아해서 그런다고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내 전 아내에게서조차도 못 느낀 것들이었다...
과다한 업무와 잡다한 일처리로 인해 금세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고픔을 절실히 느낀 나는 가깝게 지내는 직장 동료 몇 몇과 함께 부근에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그 곳에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뒤, 회사로 들어와 자판기 대 앞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뽑아 마셨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진 뒤, 잠시 신선이 된 착각 속으로 빠져들었던 나는 그러나, 게으름을 조금이라도 피우려거든 사직서를 내라는 욕쟁이 과장한테 ‘협박’ 예고장을 받은 다음부터 다시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을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덥부룩한 배를 움켜 쥐며 타자를 쳐내려가던 나는 전날의 ‘악몽’이 갑자기 내 머릿 속으로 싹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생생하게 느꼈던 악몽이라 아침 내내부터 그 점이 마음에 걸렸던 나는 약간의 두려움까지 느끼게 되었다.
‘어제 ... 그 꿈... 너무나도 생생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하지만 나는 잊기로 했다. 꿈은 꿈일 뿐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런 악몽을 꾸게 된 이유가 바로 삼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향이 매우 컸던 것 갔다. 어렸을 적 나는 독실한 기독교 집 안의 이남 일녀 중 둘째로 태어나 위로는 외할머니, 부모님, 아래로는 동생들의 신앙심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신앙심은 거의 광적 수준이었다. 일요일에 교회를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평일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에 참석해 꾸준히 신앙심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신앙심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선행상과 모범 시민상을 받았고, 어머니는 양로원과 고와원, 복지시설 등을 다니며 불우한 사람들을 도운 공로로 상을 수 차례 타오셨다. 우리 남매들 역시 평일 날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님들을 따라다니며 종종 불우한 이웃들을 돕곤 했다.
그러나 나는 내 가족들과는 매우 달랐다. 항상 야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모든 것을 경쟁으로 이겨버렸고 그러한 나의 ‘고집’들로 인해 항상 전교에서 수석을 차지했으며, 각종 대회에서도 우승 아니면 준우승을 여러 번 했다.
그러한 나를 내 부모님은 인정해주시기는 하지만, 항상 무언가가 만족에 차지 않는 눈빛을 했다. 나는 그러한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고자, 열심히 노력했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전교 수석이었던 내가 반 1등으로 밀려났고, 각종 대회에서 우승 아니면 준우승을 하던 내가 입상으로까지 밀려나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러한 부모님을 원망하며, 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서울에 있는 아는 친척 댁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때부터 나는 죽어라 남을 이기기에만 급급해 소히 ‘엘리트 주의’에 사로잡혀 버렸다. 1등이 아니면 그 아래에는 있을 수 없었고, 만약 그 아래가 되어버리면 밤 잠도 자지 못하고 죽어라 ‘1등’으로만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쳤다. 전교 1038명 중에 3등을 차지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그 날부터 오직 내 신념 하나로만 밀고 나갔다. ‘1등’ 아래에는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고...
그렇게 나는 몸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 결국은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를 찾아온 부모님들은 나를 요양시설에 보내버렸다. 그곳에서 감금되다 싶이 하는 바람에, 그렇게 공부와 대회 준비는 고사하고, 바깥 세상과 완전히 차단되어 모든 것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내 성적이 점점 광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고 3이 되어―거의 3년 만의 일이었다― 요양실에 나온 나는 많이 변해 있었다. 처음에는 ‘엘리트 주의’에만 미쳐 있던 내가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 하나가 나를 엘리트 주의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바로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완벽한 것이 없다’ 였다.
그 때 나는 처음 알았다. TV 나 각종 언론매체에서 떠들썩한 유명 인사들이나 이름이 저명한 박사들도 제 나름대로의 스캔들(추문)이 있다는 것과, 그들 역시 장단점이 있다는 거였다. 처음 나는 마냥 완벽해 보이는 그들도 단점이 있다는 것이 대해 모욕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나 역시도 단점이 있었다.
하도 엘리트주의만 외치는 바람에 내가 속한 집단에서 소외 당함을 느낀 적도 많았고, 공부와 각종 대회에서의 강박관념 때문에 내 몸 하나 건사할 능력조차 없던 것이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엘리트들만이 가지고 있는, 한마디로 남을 포용할 ‘리더십’ 마저도 나에게는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대인관계가 원만치 않아 결국에 약간의 언어장애에 걸리게 된 나는 내 발음에 대하여 남들이 뭐라든간에 신경 쓰지 않았으나, 부모님으로부터 만능주의에 대한 것을 깨달은 뒤로는 그렇게 심각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엘리트 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학교와 각종 대회에서만 나의 실력에 대해 알아줄 뿐, 그 외에는 두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가 ‘과연’ 엘리트 적인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어렸을 때에는 웬만큼 키가 컸지만, 하도 공부만 한 탓에 제 때 먹지를 못하여 키는 160을 겨우 넘었고, 누군가가 실수로 날 툭 치게 된다면 곧바로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내 몸은 허약했다.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혔을 당시에는, 공부처럼 운동도 죽자 사자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지만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전보다 몸이 더 홀쭉해 거의 산 송장처럼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운동에 많은 신경을 쓰는 바람에 성적도 1등에서 6등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 때 내가 당한 심정은 한마디로 하늘에 계신 님에게 ‘배신감’ 비슷한 것을 느꼈었다. 세상은 나 같은 사람을 원하고 있건만 정작 하늘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래서 전처럼 열심히 운동을 했다. 단,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예전처럼 죽자 사자 운동만 한 것이 아니었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체계적이고 내 몸에 맞는 운동만 골라서 했다. 그 결과 내 몸은 부쩍 살이 붙었고, 이두박근이 생겼다. 그리고 성적은 전보다 더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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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떤 내용이 펼쳐질까요?궁금하내요~개인적으로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위에 내용중에 저두 항상 그러는 부분이 많내요^^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