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도 답사기
처서가 지나자 아침저녁 기온이 서늘해졌다. 주말에 창원으로 복귀해 선산 벌초를 다녀온 팔월 끝자락이다. 주중 퇴근 후 곧장 와실로 들어 우두커니 시간을 무료하게 보낼 수 없어 산책이나 산행을 다님이 일상이다. 팔월 넷째 월요일 일과를 끝내고 와실로 들어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곧바로 저녁을 지어 먹기엔 밤이 너무 길어서 어디로 산책을 다녀올 요량이다.
연사삼거리로 나가 칠천도로 가는 35번 버스를 탔다. 고현을 출발해 연초와 하청 면소재지를 지나 칠천도로 건너가 섬을 일주하는 버스였다. 배차가 뜸해 2시간 간격이었다. 거제는 통영과 대교가 진작 놓여졌다. 근래 부산 가덕도와 거가대교가 생겨 고립된 섬이 아니다. 육지에서 섬을 잇는 교량을 연륙교라 그런다. 그 섬에 또 다른 섬과 연결되면 연도교라 이름을 뒤늦게 알았다.
거제의 연도교는 칠천도와 가조도와 산달도에 있었다. 칠천도는 내가 머무는 연초와 인접한 거제 북부다. 진동만 내해에 뜬 섬으로 바다 건너 저편은 창원이라 거리감이 더 가까웠다. 나는 이미 칠천도에 두 차례 다녀왔다. 임진왜란 당시 뼈아픈 패전의 역사가 서린 곳이라 칠천량해전기념관이 있었다. 물안마을 곁 물이 아주 맑은 옆개해수욕장 모래밭에도 내 발자국을 남겨 놓았다.
버스는 연초 면소재지에서 다공리를 지나 덕치고개를 넘으니 하청 면소재지였다. 칠천도는 하청면에 딸린 섬이다. 장목으로 나누어지는 실전삼거리에서 칠천도다리를 건너갔다. 장곶마을에서 일주도로를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옥계를 지나니 칠천도 출장소와 초등학교가 나왔다. 칠천도는 옥녀봉 산자락이 넓어선지 농지가 적었다. 해안을 따라 작은 포구는 고기잡이와 양식업이었다.
호수 같이 잔잔한 바다 저편은 앵산 아래 연초 해안으로 돌아가는 하청 유계와 덕곡이었다. 연구마을을 지나니 가조도 옥녀봉이 보였다. 연구마을을 지난 대곡부두에서 내렸다. 산자락이 내려앉은 곳에 최근 적합성 여부 논란의 중심에 선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이 재학하는 부산대학병원 연수원이 보였다. 건물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선지 아직 공식으로 개관을 하지 않은 듯했다.
대곡부두에서 저만치 보이는 작은 섬과 이어진 또 다른 연도교가 보였다. 내가 일과 후 자투리 시간에 답사를 나선 황덕도였다. 대곡마을 앞에서 황덕도로 가는 길로 들었다. 한적한 마을에 젊은 부부들과 함께 아이들 소리가 들려와 살피니 교회 뜰이었다. 아마 외지에서 수련활동으로 모여든 교회 신도들인 듯했다. 야외 테이블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오순도순 얘기꽃을 피웠다.
황덕도로 건너기 전 지명 유래를 살폈다. 섬에 나무가 없을 때 황토가 누런 등처럼 보여 누런 섬이라 불렸단다.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 장수 섬 또는 노인덕도라고도 했다. 육칠백 미터 남짓한 다리를 건너 북쪽 해안을 따라 걸었다. 진동만 내해로 건너편은 마산합포 구산면 원전과 구복인 듯했다. 더 깊숙한 데는 진해 시가지가 보였고 뒤로는 장복산 산등선이 불모산으로 이어졌다.
바닷가에 네댓 가구가 살았다. 끝에는 아주 작은 교회가 나왔다. 내가 들렸을 때 목사인지 전도사인지 모를 한 사내가 사립문을 열고 나오면서 반가움에 악수를 청해 왔다. 자라목과 같은 낮은 산등선을 넘으니 남향에는 여남은 가구가 사는 본 동네가 나왔다. 모두 양식과 어로로 생계를 잇는 주민인 듯했다. 방파제에는 바깥에서 들어왔을 낚시꾼이 그들이 몰아온 차와 함께 보였다.
산책로가 끝난 곳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참깨를 털고 있던 할머니께 오래 전 여기도 학교가 있었을까요 여쭈니 저기 모롱이를 돌면 민박 펜션이 분교장 터라고 했다. 해안을 따라 황덕도다리로 올랐다. 날이 저무는 무렵이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바다였다. 대곡 방파제에선 한 낚시꾼이 갈치를 낚아 올려 얼굴에 희색이 가득했다. 대곡부두로 나와 섬을 일주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19.08.26
첫댓글 오랜만에 고향이야기 들으니 눈에 선 합니다 ^^* 많이 변했겠지요 ᆢ
칠천도와 황덕도에서 진동만 건너가 마산 구산면 구복 원전인 듯했습니다.
진해도 빤히 건너다 보이고 징복산과 안민고개에서 불모산 시루봉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