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민준, 채민혁, 정승현, 김정훈 |
"적어도 세 명 이상은 이겨야 참가 의미가 있다"
이미 프로를 지향하는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은 프로들과 겨루는 통합예선 공식대회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더러는 '한 판이라도 이기도록 하겠다'는 겸손함을 보이기도 했지만, 속에 있는 마음을 감추지는 않았다. 공식대회에 진출해서 프로를 '많이 이기지 못하면 올라간 의미가 퇴색한다. 적어도 세판 이상은 이기겠다는 것이 아마추어 대표선수들의 각오였다.
6월 17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제40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아마추어 대표선발전이 열렸다. 64강 토너먼트 3회전으로 열린 이날 대회에서 총 8명의 선수들이 명인전 아마추어 대표로 선발됐다. 오후 4시부터 대표가 하나 둘 확정되기 시작했고 8명의 선수들에게 프로 예선에 참가하는 소감을 물었다. 8명중에는 처음 프로대회 통합예선에 참가하는 신민준 군(99년생 양천대일도장)도 끼여 있었다. 아마대표 8명은 최우수, 최현재, 이현준, 박창명, 채민혁, 신민준, 김정훈이다. 인터뷰 순서는 대국이 끝난 순서대로다.
14살 신민준 "어렵겠지만 3승 정도가 목표다"
신민준 선수는 99년생, 14살이며 아마대표중 최연소며 명인전 통합예선 참가자중에서도 최연소를 기록하게 됐다. 14살 소년의 프로대회 통합예선 진출은 이날 17일이 처음이다. 소년은 "뿌듯하고, 약간 기분이 이상하다. 설렌다"고 소감을 말했다. 정작 명인전 통합예선보다 7월 초 열리는 영재입단대회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 같았지만 그래도 "적어도 3승 이상은 올리겠다"는 아주 얌전한(?) 패기를 선보였다.
아침엔 지도사범인 옥득진 8단으로부터 '자기 바둑만 두면 된다'는 응원을 받았다. 그래서 자기바둑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싸움바둑"이라 한다. 실리파로 알려진 같은 도장의 이동훈 초단이 신민준 보다 한살 많다. 기풍을 이동훈과 비교해서 묻자 "자기가 훨씬 약할 것"이라고 겸손해 한다. 가장 좋아하는 프로는 이세돌 9단이며, "얼마나 잘 두는 지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어 가장 두고 싶은 상대 또한 이세돌 9단"이다.
군입대 채민혁, "최대한 많이 이겨놓고 가겠다"
14살 소년의 각오는 말 그대로 재미있지만, 그보다 나이가 더 든 '이무기' 아마추어 선수들은 당장 군문제와 입단으로 머리가 조금 아프다. '이무기'란 말은 입단병목현상으로 프로입단을 하지 못해 나이가 든 채 연구생을 나온 아마추어 기사들을 주로 뜻한다.
채민혁 선수도 그렇다. 채민혁(91년생 양천도장 출신)은 일단 군대를 갔다 오기로 했다. 다음달 17일에 군대에 간다. 그렇다면 이 번 명인전 통합예선은 앞으로 2년간 군대생활동안 마지막 공식대국이 된다. 두터운 기풍의 채민혁은 "최대한 많이 이기고 가겠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 입단을 목표로 하고 있었을텐데, 이제 마지막 통합예선이라 각오도 남다를 것 1같다 "올해까지로 생각하고 군입대를 결정했다. 일단 군대를 다녀오고나서 다시 입단을 준비할 지 생각해 보겠다. 오늘은 별 기대없이 왔는데 마음을 비워서인지 통합예선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기약이 없으니까 통합예선에서 최대한, 될 수 있는대로 최대한 많이 이기고 가야겠다."
 ▲ 아마선발전 최종결승 모습, 오른쪽 채민혁이 이겨 통합예선에 진출했다. 김정훈, "경솔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김정훈은(92년생, 충암도장) 올해 두 번째의 프로아마 통합예선 진출이다. 올해 나름대로 괜찮은 컨디션인 것 같다. "올해 첫 번째는 BC카드배였다. 김승준 9단을 만나 아깝게 졌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나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엔 차가운 투지도 느껴진다. 주위에서 평가하는 스타일은 "균형을 잘 맞추는 바둑"이다.
목표는 일단 '3승'이다. 이제 아마추어 선수들도 '1승'으론 만족하지 못한다. '1승'만 해서는 프로입단 포인트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수들도 프로-아마 통합예선제도가 몇 년간 실시되면서 이점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것 같다.
- 연구생을 나왔는데, 기분이 어떤가? 현재는 군대 문제도 고민이 될 때에 왔는데. "처음엔 홀가분했다. 연구생 시절에 스트레스가 나름 심했기 때문이다. 지금 연구생들을 보면 나도 저 때 더 열심히 했어야 했구나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러나 즐겁게 둘 참이다.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다."
정승현, 이길 수 있을 만큼 이기겠다
전승연(94년생, 유재성 도장)은 나이가 찬 한국기원 연구생이다. 연구생에 들어 왔을 때는 성적이 괜찮았는데 이후에 슬럼프를 오래 겪었다. 통합예선 진출도 이번이 처음이고, 그래서 이번기회를 긴 슬럼프를 벗어나는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
아직까지는 별 느낌이 없지만, 얼마나 이기겠냐는 질문에는 "이길 수 있을 만큼은 모두 이기고 싶다"고 말한다. 승리에 굶주려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주위에선 '유연한 바둑'이라고 평가해주지만 정승현 본인 스스로는 그 말에 딱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창명, 최우수, 최현재, 이현준 처음엔 통합예선에 들기만 해도 좋아했지만 요즘엔 많이 이겨야 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일반인 입단대회는 내년 1월에 있으니 그동안 텀이 많이 남아 있어 이번 통합예선에 집중해야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앞으로 남은 통합예선은 삼성화재배 정도가 남아 있다. 박창명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어 통합예선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창명, 4강까지 올라가 입단했으면 한다!
"명인전에서의 목표?, 본선 4강까지 가서 입단했으면 한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빨리 입단하고 싶다. 이전까지 통합예선에 참가할 때보다 더 신경을 쓰고 더 힘을 다하려고 한다. 입단 포인트 점수를 최대한 많이 챙기는 것이 목표다."
박창명(91년생, 충암도장)은 아마추어 대표선수들이 가질 수 있는 목표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한 경우다. 다들 표현을 안했을 뿐이지 비슷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본인은 전투취향이라 생각하지만 주위에선 '침착한 면'도 상당히 있다고들 전한다. 박창명은 경험이 많아 이젠 특별히 긴장한다기 보단, "프로기사인 상대가 아무리 세도 내가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충암지도사범인 한종진(오로 감독)도 그런 면을 도와주는 편이다. 시합때마다 따라와 점심을 사주면서 부담주는 격려를 하는 것 보다 편안하게 대국에 임하도록 해준다. 제자의 걱정은 스승의 지갑이 너무 가벼워지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최우수, 기대안하지만 최선 다할 것
"워낙 많이 지다보면 기대를 안하게 된다. 오늘도 기대를 안했는데 제가 뽑힌게 신기하다. 기대도 없었으니 몇 승을 하자는 목표도 없다. 열심히 하지는 생각, 그냥 1승을 목표로 한 판, 한 판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 뿐이다."
최우수(90년 양천대일출신) 선수는 아마추어 내셔널리그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전국구 아마추어 강호다. 통합예선 진출 경험도 이미 여러 번이다. '여물지'않은 실력이라 성적을 못냈다고 겸손해한다. 약간 '득도'한 느낌인데,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선수들이 큰 '사건'을 내는 경우도 많았으니 기대할 만하다.
내셔널리그와 프로-아마 통합예선의 차이는 별 게 없다는 것이 또한 최우수의 입장이다. 기풍 또한 스스로 "평범"하다고 약간 깎아내리는 게 오히려 범상치 않다. 모든 대회를 편안히 두겠다고 한다. 역시 군입대 문제가 있어 내년 1월엔 입대할 생각이다.
 ▲ 아마선발전 최종결승 모습, 한국기원 2층 대회장이다. 맨 앞 왼쪽 정승현 선수가 이겨 통합예선에 진출했다. 이현준, 운이 따른다
이현준 선수(94년생 골든벨 도장)는 올해 아마추어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 나가 준우승했었다. 이번 통합예선 진출은 올해들어 첫 번째다.
작년 BC카드배에선 통합예선 결승까지 진출해 아직 듣도 보도 못한 신예프로기사의 느낌이 나던 당이페이와 마주쳤다. 이현준 스스로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판"이었지만, 이현준의 손이 빨랐다. 실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현준은 아직 프로 입단을 준비하고 있고, 당이페이는 올해에는 BC카드배 결승5번기까지 올라갔다.
이현준과 당이페이는 '동갑'이다. 통합예선에서 맞부딪쳤던 동갑내기의 중국선수는 프로 선수로 훨훨 날고 있는데, 이현준은 아직 입단을 준비하고 있으니 계속 차이가 벌어지는 느낌이라 입단문호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작 이현준은 낙관적이라 자신이 '운이 좋다'라고 말했다.
"운이 좋았다. 오늘 아마추어 선발전 대진표를 보고 상대들이 너무 강해서 올라가기 힘들다고 봤다. 게다가 마지막 판은 반집승부였는데 상대가 약간 흥분했었는지 패를 두 번 따내 반칙으로 승리했다. 누가 이길 지 모르는 상황에서 운이 따른 것이다"
목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잡았다. 이번 명인전에서는 "입단 포인트를 20점 이상 획득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3판 이상을 이기는 것이 필수다.
한편 '동화'속 청년으로 불리는 최현재 선수는 다른 선수들의 인터뷰가 길어져 응하지 못했다. 현재 내셔널리그 전승을 하고 있는 아마추어 강자로, 성격은 '잠자는 숲속의 왕자'처럼 내성적이다.
- 제40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은?
전통의 기전 제40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이 오는 26일 프로 아마 통합예선 1회전을 시작으로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의 막을 올린다. 이번 대회에는 국내 프로기사 240명과 아마선발전을 거친 아마추어 대표 8명을 포함, 모두 248명이 참가해 40번째 명인 타이틀의 주인을 가릴 예정.
지난 기에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통합예선에 출전해 본선 진출에 성공한 조인선 초단이 특별 입단의 행운을 얻었,고 최정 초단이 여자기사 최초로 명인전 본선에 오르는 진기록이 작성되기도 했다. 또 이번대회는 아마추어 대표로 14세 신민준이 선발되어 이번 대회 최연소 참가자의 기록을 세웠다.
1967년 창설된 명인전은 그동안 고 조남철 선생을 비롯, 김인 서봉수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영훈에 이르기까지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기사들이 정상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박영훈이 백홍석을 누르고 우승, 명인 2연패를 달성했다.
명인전의 총규모는 5억원, 우승 상금 8,000만원, 제한시간은 2시간이다.
 ▲ 빨간 티셔츠를 입은 14세의 신민준이 보인다. 7월에 열리는 영재입단대회를 준비중이다. 영재입단대회에선 2명의 프로를 뽑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