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실 때 주시는 대로 심어야 거두리라.(눅4:16-21)
이재흔 목사 저. 24/11/24.
성경에 많은 글이 쓰여있어도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하시는 말씀은
성령이 내주 임재하시어 충만케 하시는 은총이 없다면 보지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한다.
육의 눈이 글자를 보고 듣고 말할 수는 있으되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뜻을 듣도 보도 깨달을 수도 없단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늘 성령 충만케 하시는 은총을 입어야 산다.
내 영이 살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영생 천국한다.
사람의 영이 살아 운동력을 나타내게 하는 능력은 오직 복음 순종의 능력 이외에는 없다.
1)기름 부음은 정결케 함이니 복음을 선포하게 함이다.
하나님께서 누가 됐든지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게 하실 때 그에 합한 정결한 입술이 필요하심이다.
이사야의 글에 제단 숯불로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케 하니 나를 보내소서 하였다.
당시 사람들의 입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변론하자 하실 만큼 제 생각들로 가득했었다.
그들 가운데 이사야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개탄하시는 뜻을 듣고 깨달을 은총을 입었다.
오늘날의 교회도 그와 마찬가지로 지식이 너무 차고 넘친다.
복음을 깨닫고 순종하게 하시는 성령의 자리가 그들이 마음 판에 자리할 곳이 없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대언케 하시려고 그의 입을 불붙은 숯으로 정결케 하셨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제한하고 받아들이거나 시인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기에 교회에서 영의 역사가 사라지고 은사를 부정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심이 분명하다.
치유 예언 방언 통변 분별 대언 모든 역사가 나타난 주의 은총이 회복된다.
그 역사를 모르는 부정하고 약삭빠른 자들은 그 틈을 공략하니 분명한 사탄의 공격이다.
정결한 영에 은사와 능력이 임하는 것을 확인해 주러 구주가 임마누엘 했으니 의심하지 말라.
2)주의 은혜의 해는 영적 복된 새 삶의 첫해를 말한다.
제 생각의 올무와 멍에를 벗어던져야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자유를 알게 된다.
사람의 학문은 배우는 자를 영원히 종속시키러 달려드니 탐욕에 갇히는 욕심의 종이 되고 만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듯하지만 살아 역사하심을 속박하는 학문의 올무를 못 벗으면 지식의 종이 되고 밤이 맟도록 기도해도 구별하여 버릴 죄악을 하나도 분별해내지 못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알아 제 생각의 포로가 되고 복음의 부르심을 못 보는 소경이 되게 한다
틀에 얽매어 성령이 동행하며 이끄시는 자유를 영원히 알 수 없다.
자유하지 못하니 영적 소경이 되어 성령의 인도하심을 보고 듣지 못한다.
나를 얽어매고 짓누르는 율법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영생을 주시는 율법에 저절로 순종이 이뤄져 복음 능력을 누리게 한다.
성경은 통전적 즉 전체를 다 아울러야 구원의 빛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있게 된다.
치유와 회복이 되어 자유자의 새 삶을 시작하는 은총이 바로 은혜의 햇빛을 누리는 복이다.
내 의로 따르고자 하면 욕심에 볼모 잡혀 순종은커녕
청종도 복종도 할 수 없고 굴종 끝에 실패자가 되어 타락할 수밖에 없다.
내 의가 죽으면 순종하게 되며 입술로 시인하는 말 속에 복음이 담기게 되어 은혜의 해를 누린다.
오늘의 말씀 : 주실 때 주시는 대로 심어야 거두리라.
이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다 했으니 오늘 내가 성령이 충만케 하시는 은총을 입는 복을 입는단 말이다.
우린 어떤 무엇이든 하나님께 받을 자격이 조금도 없다.
다만 베풀어 주심에 얻어 먹고 마시고 입을 열어 찬양하고 은혜를 누릴 수 있을 뿐이다.
교회는 성도들을 젖먹이의 자리에서 일으키고 달려가며 찬양하며 사명을 감당하게 하자.
일어서서 기쁨을 노래하는 자유 자가 되게 하여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하자.
오직 기쁨과 감사로 여호와를 찬양하며 순종하면 이루리라.
할렐루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