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녀처럼 길쭉한 순백의 꽃… '토지'엔 '옥잠화 같은' 여인 나오죠
옥잠화
공원·화단에서 여름꽃 옥잠화가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곧 피는 꽃 중에서 꽃이 길쭉하면서 하얀색이고 잎은 넓은 달걀 모양이라면 옥잠화가 맞을 것입니다. 옥잠화는 중국이 원산지인 원예종으로, 흰색 중에서도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순백의 꽃이 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꽃잎 사이로 암술과 수술이 길게 나와 끝부분만 살짝 하늘을 향해 올라간 모습이 귀엽기도 합니다. 굵은 땅속줄기를 가진 여러해살이풀이라 해마다 같은 곳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옥잠화에 꽃이 핀 모습(위). 아래 사진은 옥잠화와 비슷하게 생긴 비비추예요. /김민철 기자
꽃줄기의 높이는 40~60㎝ 정도입니다. 꽃줄기 끝에 꽃봉오리들이 맺혀 있다가 하나씩 차례로 피어납니다. 옥잠화라는 이름은 길게 나온 꽃 모양이 옥비녀(玉簪·옥잠) 같다고 붙인 것입니다. 특히 꽃 피기 직전 모습이 꼭 비녀처럼 생겼습니다.
옥잠화 꽃은 해가 지는 오후에 피었다가 아침에 오므라드는 야행성 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시든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다 밤에 옥잠화 꽃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싱그러운 모습으로 꽃이 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밤에 피는 꽃답게 향기도 매우 좋습니다.
대하소설 ‘토지’에 옥잠화가 인상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박경리 작가도 이 꽃을 눈여겨본 모양입니다. 소설 후반부(4~5부)에서 서희, 유인실, 양현 등을 이어주는 임명희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작가가 빼어난 미인으로 묘사하는 등 애정을 갖고 쓴 여성 인물 중 하나입니다. 한여름 임명희 집 뒤뜰엔 꽤 여러 포기 옥잠화가 무리지어 피어 솔솔 좋은 향기를 풍깁니다. 작가는 이 대목에서 “옛날의 임명희가 저 옥잠화 같았지”라는 대화를 넣어 임명희에게 옥잠화 같은 순백의 이미지와 좋은 향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옥잠화와 비슷하게 생긴 꽃으로 비비추가 있습니다. 옥잠화는 순백의 꽃이지만 비비추 꽃은 연보라색입니다. 비비추는 또 작은 나팔처럼 생긴 연보라색 꽃송이가 꽃대에 줄줄이 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옥잠화는 원예종이지만, 비비추는 원래 산이나 강가에서 자라는 자생종 식물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화단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으니 원예종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야생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비추와 옥잠화는 잎 모양으로도 구분할 수 있는데, 비비추 잎은 길고 뾰족한 편이고 옥잠화 잎은 둥근 편입니다. 잎 색깔도 옥잠화는 연두색에 가깝고 비비추는 진한 녹색인 점도 다릅니다. 비비추라는 이름은 봄에 새로 난 잎이 ‘비비’ 꼬여 있는 취 종류라는 뜻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비비추, 옥잠화를 포함한 비비추 집안 속명(屬名)이 ‘호스타(Hosta)’입니다. 그래서 개량한 비비추·옥잠화 종류를 뭉뚱그려 그냥 호스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옥잠화·비비추가 피기 시작했으니 올여름 내내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뽐낼 겁니다.
김민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