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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2장을 펼쳐 보라. 가장 위대한 사도가 거기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2절을 본다: "내가 십사 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나는 말할 수 없고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시느니라.) 그 사람이 셋째 하늘로 끌려 올라갔느니라." 이제 같은 장 6, 7, 그리고 8절로 가보라. 거기서 바울은 자신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다고 말한다. 10절을 보라: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기뻐하노니." 바울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었고 병자를 치유했으며 기도로 감옥문을 열 수 있었는데 이제 그는 자신마저 치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계속 몸이 아팠고 여생 동안 의사 누가를 데리고 다녀야 했다 - "사랑하는 의사 누가"(골 4:14). 바울이 참수당할 때가 가까웠던 딤후 4:11에 그는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썼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다니면서 항상 누가와 동행했었던 것이다!
여러분은 바울보다 더 위대한 치유 능력자를 아는가? 내가 알기로 바울처럼 대단한 치유의 능력을 받았던 사람은 역사에 없다. 바울의 몸에 닿았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에게 갖다 대도 병이 치유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자신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은사주의자들을 더러 보았지만 실제 그렇게 하는 경우는 전혀 보지 못했다.)
왜 바울의 병은 낫지 않은 것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고 계신 동안 표적들이 역사했고 하나님께서는 사도행전 기간 중에 그렇게 하고 계셨다. 나는 하나님께서 바울의 병을 고치실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그 때 치유의 능력이 떠났다는 것이다. 왜 그랬는가? 그것은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치유와 함께 방언의 표적도 사라졌다. 왜 그랬는가? "방언들은....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이지만." 여러분은 이 말 뜻을 이해하는가? 이해했다면 여러분은 주요 기독교 대학의 교수들보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다. 그 교수들은 거짓 방언을 바로잡기 위해 고전 13장으로 간다 - "온전한 것이 오면 그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라." 그들은 은사주의자들을 훈계하려다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만다.
기독교계에는 항상 짝퉁들이 출몰하고 있다. 여러분은 어디서나 사도 모방자들을 볼 수 있다. 살후 2:9을 보라. 여러분이 성경을 공부했다면 그 본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적그리스도에 대해 다루고 있다. 1절에서 3절까지 읽고 다시 9절로 내려가라. 거기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나타날 현상들을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모든 능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함께 온다고 말씀한다. 그것을 잘 보라. 적그리스도는 거짓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함께 나타난다. 잘 보았는가? 거기서 표적이라는 말을 잘 보았는가? 적그리스도는 사도의 표적들을 동반해서 나타난다.
이제 고후 11장을 보도록 하라. (내가 항상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입증할 때 성경을 사용하라고 충고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성경을 펴서 보여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여러분이 자기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경을 믿지 않는 자들인 것이다!) 고후 11:4을 보라. 보았는가? 거기에 "다른 예수"와 "다른 영"이 언급된다. 잘 보라. 다른 예수가 있고 다른 영이 있다.
이제 13절에서 15절까지를 보라: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들이요, 기만하는 일꾼들이요,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하는 자들이라.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니 이는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사탄의 종들(ministers)이 의의 종으로 가장한다 하더라도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이니라."
이해했는가? 사탄에게는 그의 종들(ministers - 목사, 사역자라는 뜻)이 있다. 거짓 목사 말이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운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들은 거짓 목사들이 행하는 거짓 표적들을 보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사도의 표적들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사도들이 전혀 아니다.
성경을 펴고 계 2장을 보라. 계 2:2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자칭 사도라 하지만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찾아낸 것과" 이것 참 놀라운 일이 아닌가? 여러분 중 어떤 이들이 성경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어떤 사람이 사도의 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사도라고 말했는데, 주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그런 사람을 시험해 보고 그들이 사도들이 아닌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낸 것을 칭찬하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자신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다면 그에게 방언을 좀 해 보라고 하라. 그가 방언을 하거든 그에게 방금 했던 방언을 통역해 보라고 하라. 그가 해석할 수 없다고 하면 성경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기도하는 것이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음을 상기시켜주도록 하라. 나도 여러분 앞에 서서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할 말로 얼마든지 떠들어댈 수 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 필요한 능력은 알지 못하는 방언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성경을 가르치는 능력이다.
여러분의 성경을 펴서 고전 14장을 보라. 이제 우리는 방언 문제를 정리해 보겠다. 우리는 방언들에 대해 논해 볼 것이다. 14장 전체가 방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침례라는 단어는 이 장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여러분에게 잠시 진지하게 이 장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고전 14장의 어디 한 군데에서라도 성령 침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라. 14장에 그런 구절이 있는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어떤 자들이 행 2장을 고전 14장에 곧장 이어 붙이면서 가르쳤고 그들은 여러분을 혼란에 빠뜨린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럭크만 형제, 저는 침대맡에 있는데 갑자기 방언이 터졌습니다. 그때 내가 느낀 황홀한 기분은 말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거짓된 것에 온 마음을 쏟고 있다면 어떤 성경적인 권면을 해도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도 안다. 여러분 중 어떤 이들은 성경을 거짓으로 만들지언정 자기 체험을 포기하고 싶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들으라, 나는 여러분의 체험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실제 놀라운 체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을 때 어떤 체험을 하고 엉엉 울기도 하는데 그것은 자신만의 체험이다. 나는 그런 것까지 부인하지는 않는다. 나는 여러분의 모든 체험이 다 거짓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여러분이 자신의 체험을 근거로 성경을 해석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반대로 여러분은 성경을 근거로 자기 체험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왜 마지막 때에 거짓 방언을 하는 자들이 이렇게 많이 나타나는지 아는가? 그런 체험을 하는 젊은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 상당수가 구원받기 전에 마약을 복용했던 사람들이다. 사람이 마약을 복용하면 중추 신경계가 어지럽혀지고 손상을 입는다. 여러분의 언어 구사는 중추 신경계가 주관하고 있다. 여러분 중 어떤 이들은 구원받을 때 감정적인 격동이나 쇼크를 경험하곤 하는데 그런 중에 언어 신경계에 잠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방언 비슷한 것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런 체험을 근거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여러분 중 어떤 이들은 방언을 하지 못하면 구원받은 증거가 없는 것이라는 식의 말을 구원받기 전부터 계속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다시 고전 14장을 펴고 이제 방언에 대해 마무리짓도록 하자. 고전 14:27-28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누가(If any man)..." 잘 보았는가? 숙녀 여러분? 여러분의 교회에서 여인들이 방언들로 말하고 있는가? 34절을 보라. "여자들을 교회 안에서 조용히 하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분명히 이해했는가? 들으라. 이 14장은 방언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장은 사업상 미팅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아니다. 14장에서는 여인이 교회에 와서 일상적인 대화도 전혀 하지 말라는 명령을 한 것이 아니다. 성경은 "주께 구속받은 자들은 그렇게 말할지니"(시 107:2)라 말씀한다. 성경은 여인들이 복음을 증거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고전 14장 문맥상에서 여인들에게 교회 내에서 조용히 하라고 한 것은 방언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무엇을 배우고 싶어하면 집에서 자기 남편들에게 물을지니라"(그들이 방언에 대해 뭔가 배우고 싶다면). 여러분들의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방언을 하고 있는지 보라. 이 나라의 교회들에서 뭔가 비성경적인 일들이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여자들을 교회 안에서 조용히 하게 하라." 이것 보라! 성경이 어떤 자들의 종교 행위를 정면으로 책망하고 있지 않은가? 보라!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 성경은 거리끼는 책인 것이다. 그런데도 성경을 더 쉬운 말로 개정함으로써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웃기는 소리!
27, 28절로 돌아와서. "누가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려면 두 사람이나 많아도 세 사람이 차례로 하고 한 사람은 통역하라. 그러나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그렇다면 그 사람들에게 교회에서는 방언을 떠들어대지 말고 닥치고 있으라고 하라(이것이 럭크만식 헬라어 표현이다)!
바울이 어떻게 가르쳤는가? 그는 최대 세 사람까지 차례로 방언하고 한 명은 통역하라고 했다. 여러분의 은사주의 교회들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방언을 하는가? 그들은 성경의 지침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정말인가?
37절을 보라: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영적인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내가 너희에게 쓰는 글들이 주의 명령들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 여러분이 성경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영적인 체 하려고 생각하지 말라. 37절에서 바울은 누구든 영적인 사람이라면 그는 바울이 한 이 말이 "주의 명령들"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영적인 체 하면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자랑하지 말라. "입을 좀 닥치고 있으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입을 다물라고 하신 것이다! 그것이 주의 명령들이고 여러분이 영적인 사람이라면 그 명령들에 복종할 것이다. 그 자들이 얼마나 경건한 체 가식을 부리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나는 속여넘길 수 없다.
언젠가 내가 강단에 섰을 때 어떤 부인이 내게 말했다. "오, 럭크만 형제님," (나를 손으로 붙잡고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성령 침례를 주시라고 계속 기도해 왔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혼을 채우고 그리스도의 상냥한 영이 당신에게 넘쳐 흐르기를 말이죠. 형제는 이해 못하겠지만 우리는 주 안에서 당신을 사랑한답니다. 그러니 괜찮으시면...어쩌고 저쩌고." 그녀가 말을 마치자 나는 그녀의 손을 꽉 붙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자매, 저도 자매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좀더 성숙한 크리스찬이 되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같이 진정 더 훌륭한 은사들을 자매에게도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화를 벌컥 내는 것이었다! 저런, 그렇게 자상한 태도로 말하던 여인이 15초만에 평정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들으라, 성경은 어떤 사람이든 그가 영적인 사람이라면 이 구절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성경을 들고 고전 14:19-20을 보라. 여러분은 내가 이 짧은 소책자를 통해 전한 메시지가 이 나라의 모든 오순절파 목사들의 설교와 강해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성경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는가? 이것은 자랑하려고 꺼낸 말이 아니다. 19, 20절을 읽어보라: "일만 마디의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나의 지각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여." 그렇다면 내가 소책자를 통해 여러분에게 전한 이 말들이 이 도시의 모든 은사주의자들이 읊어대는 알 수 없는 옹알이보다 더 낫다는 뜻이다. 알겠는가, 내가 이 책에 쓴 다섯 마디의 말이 은사주의자들이 헤프게 뱉어내는 일만 마디의 헛소리 방언들보다 더 유용하다. 이런 말을 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자신을 어떤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기에 그렇게 말하는가?" 나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내가 꺼내는 다섯 마디의 말이 그들이 하는 알 수 없는 일만 마디의 헛소리보다 낫다는 것이다.
성경은 고전 14:8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뿐만 아니라 만일 나팔이 불확실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 준비를 하겠느냐?" 바울이 무슨 뜻에서 이렇게 말하는지 아는가? 그는 여러분이 알지 못할 소리를 듣고 있다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되느냐고 묻는 것이다.
내가 젊은 청년이었을 때 우리 또래들은 그때 세상에 휘몰아치고 있던 그 전쟁에 뛰어들고 싶어서 군대에 많이 지원했다. 우리는 사관 학교에 들어갔다. 우리는 세상을 호령하고 싶었다. 교관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명령은 분명하게 내려야 한다. 잘못된 명령일지라도 명령 자체는 분명해야만 한다." 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발성을 가다듬고 명확한 소리로 명령해야 한다." 훈련생도들은 명확한 음성을 내기 위해 연습을 하곤 했다. 그들은 "후, 후, 후" 하는 식으로 발성 연습을 했다. 가령 여러분이 "앞으로 갓!"(march)이라고 할 때 "march"보다 "harch"라고 발음할 때 더 발성이 쉽다. (내가 훈련받은 포트 레번워스에서 내가 속한 소대 지휘관은 그런 h-, 바람 소리를 말할 때마다 얼마나 세게 넣었던지 늘 감기에 걸려 있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각설하고, 우리는 사관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작대기를 달게 되었다. 우리가 작대기를 받던 그 날 훈련 교관이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명령을 내리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그는 일어서서 이렇게 명령했다. "Whatgumerip Whoward!" 여러분은 그런 식의 말을 한 번도 못 들어보았을 것인데 그것은 마치 연못에 앉았던 오리가 번갯불이 내리치자 퍼드덕거리며 날아가는 소리 같았다! 그 말이 떨어지자 어떤 훈련생은 어깨총을 하고 다른 훈련생은 앞에 총 자세를 하는가 하면 또 어떤 훈련생은 해산 구호인 줄 알고 자리를 떠나고 누군가는 자기 배낭을 고쳐 메고 그때 나는 아마 열중 쉬어 자세를 했던 것 같다. 훈련생들 사이에서 아마 여덟 가지 정도의 다양한 동작들이 속출한 것 같다. 혼란이 가라앉자 그는 그 명령을 알아듣게 다시 말해주었다. 그것은 "Montgomery Ward"(몽고메리사: 미국 시카고에 있는 통신사)였다.
그 때 받은 교훈이 여러 해 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오, 하나님께 영광을. 하스타 라 샨-다이, 블라, 블라, 블라...." 이런 소란은 다 쓸데없는 것들이다. 그런 말들은 누구에게 어떤 유익도 줄 수 없는 무의미한 짓들이다. 들으라, 그런 일들을 함으로써 여러분이 구원받게 된다면 나도 동참하겠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통해서는 구원받을 수가 없다.
여러분이 그런 소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면 속히 그만두라! 여러분 중 어떤 이들은 성경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 무척 어색하고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밥 존스 시니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공급할 힘의 절반을 덜어서 신실한 구령자들에게 나눠 주신다." 여러분은 크리스찬들에게 뜻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구령자가 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성경을 기준으로 여러분의 영적, 감정적 체험을 판단하라. 그렇게 하면 누구도 실족하지 않으며 여러분도 실족하지 않을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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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희한하게 성령의 사역을 거부하는 멋진 글이네요.
머리로만 믿어니까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제발 성령님의 사역을 훼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