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도구
세실리아 헤이즈 저자(글) · 고현석 번역
형주 · 2023년 08월 15일
생각의 문화적 진화 : “무엇이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가?”
지구상의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때 우리 인간은 매우 이상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주변 환경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생존을 위해 협력에 의존하고, 그 과정에서 기술, 농사, 과학, 종교, 법, 정치, 무역, 역사, 문학, 음악, 스포츠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능력을 구축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이렇게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 특별한 능력은 무엇일까? 영국의 심리학자이자 옥스퍼드 대학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인 세실리아 헤이스는 본인의 저서 〈Cognitive Gadgets: The Cultural Evolution of Thinking〉에서 그 정답이 바로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어 진화한 “인지 도구(cognitive gadget)”에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인간은 문명이 태동한 이래 도르래, 덫, 수레, 내연기관 같은 물리적인 기계장치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정신적 기계장치, 즉 인간의 마음이 다른 모든 동물의 마음과 비교해 더 멀리, 더 빠르고 다양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인지 도구”도 신경계 내부에서 만들어냈다. 인간 특유의 이런 인지 장치의 종류는 인과관계 이해, 일화 기억(episodic memory), 모방, 마음읽기, 언어, 규범적 사고 등을 비롯해 수없이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사고방식들을 저자가 인지 “본능”이 아니라 인지 “도구”라 일컫는 이유는 다른 수많은 물리적 장치들처럼 인간이 “타고난” 유전적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발달시킨” 문화적 진화의 결과, 즉 사회적 작용을 통해 후대에 전달된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인지 도구의 사례 중 하나로 언급된 모방은 관찰자가 모델(모방 대상)의 행동의 형태(topography)를 똑같이 따라 함으로써 이뤄진다. 관찰자는 모델의 몸의 부분들이 서로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몸이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지난 100년 동안 심리학계는 모방이란 개념을 특별하게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능력이 다른 모든 동물에서보다 인간에게서 훨씬 더 고도로 발달되었고 다른 종류의 학습에는 포함되지 않는 메커니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방의 기원에 관련된 부분에 관한 독창적인 이론과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실험적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이 특별한 인지 도구가 유전자가 아닌 사회문화적 경험을 통해 습득된다고 주장한다.
모방뿐만 아니라 인지 도구의 다른 사례들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읽기는 자신 또는 다른 개체에게 믿음이나 욕구, 생각이나 느낌 같은 정신적 상태를 부여하는 능력, 즉 다른 개체가 어떤 정신적 상태에 있는지를 추론하는 능력이며, 언어는 단어나 기호를 체계적이고 관습적인 방식으로 이용하는 의사소통 규칙을 구축하고 응용하여 사용하는 능력이다. 저자에 의하면 인간의 일상에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이런 능력 또한 선천적으로 타고난 뇌와 그 안에 잠재된 생물학적 기능 못지않게 후천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 촉진되고 발전된다고 본다.
이러한 “인지 도구 이론”에 기반한 문화진화심리학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인간의 마음이 더 기민하지만, 동시에 더 취약하다고 본다. 우리는 석기시대인의 마음을 가지고 홍적세에 갇혀 살고 있지 않으며 목표가 분명한 교육적 개입을 통해 인지 발달 과정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현재의 우리는 잃을 것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전쟁과 전염병은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뿐만 아니라 인류가 그 노하우를 습득한 방법들도 모두 없애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수만 년 동안 발달시킨 새로운 사고방식들 중 일부는 인류 전체로 퍼졌지만 일부는 사라지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인지 도구가 단지 “자손”이 많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문하생”이 많아야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화진화적” 관점은 기존의 주류 심리학자들의 “진화론적” 관점과는 달리 인간의 마음과 삶에 대한 모든 연구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근거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러한 새로운 시각을 접하기에 이 책은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