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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영을 새롭게..... |
오늘을 행복하게...
가정을 지키는 힘
모세 오경에 따른 제사법이 예배를 주관하기 전에 최초의 인류인 아담의 후손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가정예배를 드려 은혜를 받고 인류 역사에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제사를 실패한 이유로 살인자가 되었고 광야를 헤매며 유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아벨의 예배 계승은 셋에게 이어졌습니다(창 4:26).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 하였습니다.
그 믿음이 노아에게 이어졌고 그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와 정결한 짐승을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창 8:20) 하나님이 받으시고 무지개 언약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7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릴 때 쪼갠 고기 사이로 불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순종의 제단을 쌓음으로써 하나님이 임재하셨습니다.
이 믿음의 전통을 이어받은 유대인들은 문설주에 메주자(mezuzah)라는 작은 가죽상자에
신명기 6장 4∼9절 쉐마의 말씀을 기록한 것을 넣어 두고 절기 때마다 꺼내서 둘러앉아
쉐마의 말씀을 읽습니다. 각 가정 호주는 본문에 나타난 것처럼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해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라”고
부지런히 가르칩니다. 가정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쉐마의 말씀을 읽습니다.
호주가 출타할 때도 오른손을 메주자에 대어 입맞추고 갑니다.
들어와서는 자녀들이 잠들 때까지 침대 옆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줍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자녀의 영적 교육에 대해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지
반성해야겠습니다. 우리나라 거실에는 대형 TV가 떡 버티고 있습니다.
지나친 컴퓨터 게임으로 정부에서 대책을 세워야 될 정도가 됐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가정 거실은 마치 도서실처럼 책들이 가득하여 세대주를 중심으로
세대 차 없는 대화가 활발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보다 상상의 세계를
넓혀가는 행위가 큰 사람을 만듭니다. 유대인들이 적은 인구로 노벨상 받은 사람이
전체 수상자의 30%를 차지하고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을 위한 가정 예배는 백 마디 훈계가 따라갈 수 없는 값어치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바로 자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새벽기도 후
선교 지역에 전화를 합니다. 선교센터에서 공부 중인 5명의 유학생들을 깨워서
아침 6시30분, 저녁 7시30분에 성경을 읽어주며 가정예배 훈련을 8년 동안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유학하고 있는 러시아에도 아침마다 하늘 양식으로 5분 설교를 해주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바빠서 할 수 없고 멀어서 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가정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만 있으면 어떤 모양으로든 가능합니다.
유대인들의 영적 보물인 성전의 법궤와, 가정의 작은 법궤인 메주자 양가죽에 쓴
하나님 제일주의인 말씀에 정신을 새기듯 한국교회 성도들 역시 이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의 가장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철저히 돌아와야 합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시는 음성이 실종된 가장을 찾으시는
하나님 말씀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죄는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정의 갈등이 대화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노아와 롯의 때와 같은 이 세대 속에 가정을 지키며 믿음을 물려줄 수 있는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하여 가정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모든 가정에 메주자를 펼치시기 바랍니다.
이이규 목사(군산한사랑교회)
겨자씨
시험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테스트(test)요, 둘째는 템프테이션(temptation)이다.
테스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으로써 이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세워준다. 반면 사탄이 주는 시험인 템프테이션은 우리로 하여금 넘어지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다.
어느 성도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경우 이는 틀림없는
마귀의 시험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나오지 않겠다는 따위의 시험은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집사님이 고민을 안고 찾아왔다.
“목사님, 그 사람 도움만 받으면 일은 쉽게 풀리는데 사과 한 상자를 보내야 합니다.”
그런 경우 대개는 하나님의 시험이다. 이땐 기도하며 극복해야 한다. 이후 그 집사님은
“목사님, 기도했더니 더 좋은 길이 열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유익한 시험이 있고
무익한 시험이 있다. 잘 분별하고 시험을 이기는 지혜와 능력이 필요하다.
이광호 목사(도봉감리교회)
역경의 열매... 김인강 (12)
내 인생 등불이 돼 준 ESF… 그 멤버들 평생 못 잊을 것
기독대학인회(ESF)는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해줬다. 이 사회에 대해, 역사에 대해,
바른 신앙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울려 사는 삶이 무엇인지 일깨워 준 선교단체다.
나는 그곳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만났다.
그중에서 더벅머리 김회권(숭실대 기독학과 교수) 목자님은 내 인생의 구세주였다.
나는 그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고민하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시대의 자리에서 복음적 해결책을 찾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는 나에게 전인격적인,
초 인류적인 기독교인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누구에게서도 찾을 수 없었던
영성과 열정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본이 되었다.
그는 탁월한 성경해석과 해박한 지식, 개인의 삶에서부터 시대와 역사까지 분별하는 폭넓은
시각으로 복음주의의 한계를 넘어 사회의 치유에까지 뻗치는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해
그 당시를 살던 젊은이들의 가슴과 영혼을 달구었다. 66㎡(20평) 남짓한 작은 회관에서
우리는 복음을 들고 개인과 시대의 문제를 고민한 끝에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용사들로 거듭났다.
회관에는 항상 자신의 문제든지, 구조의 문제든지, 모든 진리에 목말라 하는 젊은이들로
가득 차 넘쳤다. 같은 시기에 회관에 있었던 형제 자매들 중 강학 해문 선 정국 정희
남권 윤희 원규 동규 은영 등이 생각난다. 또한 호태 달식 만수형 등은 우리의 좋은 본이
되었다. 강학, 정국형제와 정희자매는 학생복음사역의 역사를 계승하려 간사로 섬겼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내게 우산을 받쳐 줬던 윤희 누나는 특히 남을 돕는 일에 은사가
있어 후에 독일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지금도 장애우와 노인들을 돕는 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강학, 정국, 정희 형제자매는 훗날의 복음 사역을 위해 지금은 다 유학 중이다.
이제는 모두 40대로 엄마 아빠가 되었지만, 이들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훈훈해지고
그 최루탄 냄새 자욱한 신림동의 좁은 건물에서 성경공부하며 진리에 목말라 했던
그 시절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하리라.
그때 내가 특히 많이 도와주었던 칠성이와 현영이는 지금은 예수님을 영접했는지 궁금하다. 칠성이는 대전의 연구소에 근무하고 현영이는 결혼해 서울근교에 산다는 말만 들었다.
칠성이는 농대에 입학했던 시골아이였다. 순박해 보이는 그를 나는 형처럼 돌봐 주었다.
밥도 사주고 고민도 들어주고 성경도 읽으며 그가 견실한 대학생으로, 신앙인으로
자라기를 바랐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과외를 하느라 항상 시간에 쫓기었다.
그는 화학을 좋아해서 후에 다른 학교에 편입시험을 봐 학교를 옮겼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박사과정을 하러 다시 서울대로 돌아왔을 때였다. 이제는 교수와 학생의
신분으로 만났지만, 우리는 우리 인생에 대해, 미래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하였다.
첫아이를 잃었던 슬픈 이야기부터, 이제는 건강한 아이와 아내와 함께 성실히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제는 신앙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하였다.
항상 외로워했고 눈물이 많았던 현영이는 너무나 연약해보여 안쓰러웠지만 약대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 많은 이들의 걱정을 덜어줬다. 우리는 서로가 삶의 힘과 추진력을
얻도록 성경공부와 기도와 토론을 많이 했다. 혼자서 넘을 수 없었던 수많은 고비와 산을
우리는 함께 넘었다. 지금도 캠퍼스에는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고 외로워하며
절망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다.
나는 매일 밤 그들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오늘의 예배
(水) 주제를 잊지 마십시오
찬송 : ‘주의 진리 위해’ 358장(통 400)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 있는 한 시골교회에는 여느 교회와는 달리 본당 안에 십자가가
두 개 걸려 있습니다. 설교단 뒤의 전통적인 십자가와 설교단 반대편 기둥에 있는
또 하나의 십자가. 단상의 설교자들이나 볼 수 있음직한 십자가의 유래는 17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스웨덴의 국왕 찰스 12세가 수행원들과 함께 예정에 없이 주일날 예배 중이었던
이 교회에 들러 뒷좌석에 앉아 목사님의 강연을 듣기 시작한데서 유래를 찾게 됩니다.
강단에서 설교 중이던 목사는 예기치 않게 들이닥친 왕과 수행원들을 보자 그만
당황하게 됩니다.
황급한 나머지 여러 날 준비해왔던 설교의 메시지를 멈추고 국왕의 방문에 걸맞은
립 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뛰어난 정치력, 지도력,
업적 등을 장황하게 늘어놓습니다. 이윽고 예배를 마친 뒤 국왕과 수행원들은 정중한
예의를 갖추고 가던 길을 서둘러 갑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국왕으로부터 그 시골교회의 목사에게 소포가 배달되었습니다.
기대감으로 흥분된 목사와 함께한 권속들은 소포를 풀어 봅니다.
바로 설교단 맞은 편 기둥 위에 지금 걸려 있는 바로 그 십자가와 함께 국왕이 친필로 쓴
다음과 같은 친서가 있었습니다.
“목사님, 이 십자가를 설교단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 맞은편 기둥에 매달아 놓으십시오.
그리고 설교단에 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주제를 잊지 않도록 그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십시오.” ‘주제를 잊지 않도록 십자가를 잘 보이는 곳에’라는 말의 의미는
‘십자가를 보며 잊지 말아야 하는 주제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만들어 냅니다.
작가의 주제란 드라마일 것이고, 사업가의 주제란 제품이며, 애인과의 주제는 사랑….
그렇다면 신앙인들 모두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주제란 혹시 불시에 예배에 참석한
국왕으로 인해 당황한 나머지 멈추게 된 ‘설교의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그날 참석한 국왕에게도 꼭 필요한 최고의 가치인
‘진리’인 것이며, 그 내용을 전하여 알게 하는 설교는 ‘복음’입니다.
바울의 이 한마디 말씀으로도 설명이 충분합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그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라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복음,
그것을 증거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모든 크리스천들의 주제일 것입니다.
1959년 중국의 침략을 피해 인도로 넘어온 80대의 한 티베트 도인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아무 장비도 없이 험준한 히말라야를 맨몸으로 어떻게 넘어올 수 있었단
말입니까?” 기자들의 질문에 도인은 이렇게 답변을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서 왔습니다.”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든 홀로 외롭게 버려져
있든 주제를 잊지 않는다면 넘지 못할 산이 없고 건너지 못할 강이 없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마음에 되새김질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멈추지 않고
걷는다면 어느덧 꿈에 그리던 영광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화신
기도:
주제를 잊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소서.
주기도문
찬송가는..공지클릭하여 들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주제를 잊지마십시요" 오늘은 이 말씀을 붙들고 시작하겠습니다. 순간순간 믿음의 본질을 놓치지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시험은 언제든지 오는것 같습니다.순간적으로 세상것에 생각이 가는 순간 마귀의 시험은 찾아오는 듯 싶습니다.늘 성령충만해 하나님을 바로보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