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18일~21일(3박4일) 부산여행 6편. 2월 20일(수) 촬영
기장역에서 직진해 10여분 올라가면 대게거리가 나오고 그 조금 위에는 옛 기장읍성 터가 있습니다.
폐허가 된 기장읍성입니다. 지금도 발굴 중이네요.
남문터입니다. 반원형으로 샇여 있는 돌무더기는 성문앞에 있던 옹성의 흔적입니다.
기장읍성 /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40호.
이 성은 1356년(공민왕 5)에 축성된 옛 기장현의 읍성이다.
원래 옛 기장 시가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고 한다. 기장읍성은 고려 우왕 때 교리에 있던 읍성이 왜구의
침입으로 함락되고 관아가 불타버리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현재의 읍성이 있던 곳으로 치소(治所)를
옮겨 울산과 언양 등지의 주민을 동원하여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기장읍성은 둘레가 968m, 높이가 3.6m였으나,
지금은 동문터를 중심으로 둘레가 약 100m, 높이 4m의 성벽이 남아 있다.
성의 형태는 북쪽의 낮은 산과 남쪽의 평지에 축조된 축조된 평산성(平山城)이다.
축조수법은 평지에는 성벽의 내외측 모두를 돌로 쌓는 협축(夾築)방식이지만, 지형의 높은 곳은 성벽의 밖은
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채우는 판축(版築)방식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동서남북 4대문 가운데 동,서, 남문에는 반원형의 옹성이 있었으며, 동문터 부근에서 적대가 확인되었다.
성 안에는 관장의 집무처인 동헌을 비롯한 관청 건물이 성 밖에는 망풍정(望豊亭)등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철거 파손되었다.
지금 유일하게 장관청(將官廳) 건물만이 변형된 채 원래 위치에 남아 있다. (안내문 내용)
복원한 성곽이 아닙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옛성의 흔적이지요.
남문지를 통과하면 성내가 됩니다. 약간 높은 곳에 건물이 한 채 보이는군요.
바로 이 건물입니다. 이름도 생소한 장관청(將官廳)이라고 하더라구요.
기장 장관청 / 부산시지정 유형문화재 제153호.
기장읍성 내에 위치하고 있는 기장 장관청은 조선후기 우리나라 동남해변을 지키던 기장 지역의 속오군을
지휘 통솔하기 위해서 파견된 군장관들이 사용하던 집무소이다.
건물 내부에 대한 조사결과 대들보, 서까래, 도리, 기둥 등 주요한 구조부재 등이 원형대로 남아 있어
2013~2014년에 걸쳐 전면 해체보수를 실시하였고,
해체 보수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1835년에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장 장관청은 동래 장관청과 함께 전국적으로도 남아 있는 사례가 드문 군관용 관아 건물이다.
조선 후기, 중기 이래의 간소한 굴도리식 건물로 건축사적으로 크게 주목될 뿐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도
뛰어난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또한 기장 장관청은 조선후기 부산 및 기장 지역 관아 건축의 양상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건축 유구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동남해안의 전략 요충지였던 기장군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재이다. (안내문)
장관청의 정문입니다.
장관청 후원에 올라 본 풍경.
장관청의 측면 모습.
아궁이가 측면에 있네요.
장관청의 정문입니다. 오래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네요. 기장읍성에는 이런 회화나무가 3그루 있습니다.
이 곳에서 정말 친절한 관리자분을 만나 설명도 듣고 안내도 받았습니다.
동문으로 가는 길입니다.
성내에서 성밖으로 통하는 도로 위에 성을 복원해 놓았네요.
동문 앞에 있는 비석들입니다. 기장 여러 곳에 있었던 공덕비들을 이 곳에 모아 놓았습니다.
모두 39기의 비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에는 쇠로 만든 비도 5개나 있습니다. 이 사진에 2개가 보이죠.
나머지 셋은 이 사진에 있습니다.
공덕비들 중에서 제일 오래된 비. "현감강공유후청덕선정만세불망비"
"縣監姜公裕後淸德善政萬世不忘碑"
1654년(효종 4) 임금에게 진소(陳疏)를 올려 기장현으로 복귀시킨 인물이다.
재임기간 1652(효종 3)8월-1654(효종 5)8월. 비신 크기 112cm * 62cm *18.5cm. 건립년도 1654년 전후.
공덕비들 뒤로 성벽이 보이죠.
성벽은 심하게 훼손되어 거의 폐허가 되었으나, 이 곳 동문 옆 일부 구간은 잘 남아 있습니다.
동문터입니다. 동문터에는 문을 달았던 초석도 남아 있습니다.
동문을 지나 관아가 있던 초등학교를 지나면 바로 북문터가 나옵니다.
북문터는 심하게 훼손되어 보다시피 돌무지처럼 보입니다. 안내를 받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안내판이 있기는 하네요. 그러나 길가도 아니고.....
서문터입니다. 서문터에 있는 큰 나무는 회화나무입니다.
서문터 옆에도 일부 성벽이 남아 있어요.
서문터에 있는 회화나무예요.
성내에 있는 집들엔 유독 돌 담장이 많습니다. 모두 성돌을 이용해 만든 담장들입니다.
기장읍성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 왜장 구로다나가마사(黑田長政)가 장기주둔을
위해 해안가에 왜성을 쌓으면서 읍성 돌을 빼어가는 바람에 읍성이 폐허화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돌들은 이렇게 민가의 담장이 되었다네요.
성을 돌아 출발점인 장관청으로 왔습니다.
회화나무 품속에서 사철나무가 살고 있네요. ㅎㅎ
몇년 후면 기장읍성이 복원되겠죠. 성내에 살던 사람들이 많이 떠나고 빈집들만 남아 있습니다.
기장읍성 답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죽성리 해안가에 있는 기장왜성을 찾아 갔습니다.
입구에 기장죽성리 왜성이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왜성 입구에는 몇그루 안되는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네요.
정말 소나무가 몇 그루 안되죠.
얕은 언덕이지만 계단이 놓여 있습니다.
기장죽성리성이라고 쓴 표석도 있습니다.
올라가다 뒤돌아 보니 풍경이 끝내주네요.
참으로 멋진 풍경입니다.
파괴된 성벽이 보입니다.
그럼에도 외견이 우리의 성벽과는 다르군요.
수직으로 쌓은 우리 성과는 달리 왜성은 비스듬이 쌓았습니다.
(이곳에 수록된 모든 사진들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해변가 마을 풍경입니다.
영화촬영 때 세트장으로 만들어 놓았던 드림성당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인는군요.
등대와 드림성당 그리고 죽성리 해송이 어우러진 풍경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더랬습니다..
(이곳에 수록된 모든 사진들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일부 무너지기는 했지만 왜성의 느낌이 물씬나는 성벽입니다.
기장 죽성리 왜성 /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48호.
이 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953년(선조 26) 6월경에 일본 장수 구로다나가마사(黑田長政)가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방어하고 남해안에 장기간 주둔하기 위해 쌓은 일본식 성 가운데 하나이다.
정유재란 때에는 가토오 기오마사(加藤淸正)군이 주둔하였다.
일본식 성들은 대개 강이나 바다에 근접한 구릉을 택하고 수송, 연락관계 등을 참작하여 선박의 출입이
편리한 장소에 축성하였다. 이 성은 죽성리 부락의 뒷편 해안에 임한 요충지를 택하여 해발 50m의 산봉우리
에 쌓았는데 죽성면의 선창을 끼고 있어 많은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요충이다.
성역은 11,776평이고 성벽의 총 연장은 약 300m이며 둘레는 약 1km, 성벽의 높이는 약 4m이며 3단으로
비스듬히 축조되었다. 일본에서는 기장성이라고도 하지만 조선 후기의 기록에는 두모포영성(豆毛浦營城)
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성은 울산의 서생포성과 학성 그리고 부산성을 연결하는 중간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조선시대에 쌓았던 두모포영성을 헐어다가 쌓았다고 한다. 지금 성곽의 주위는 밭과 민가에 많이
잠식되었지만 , 석축은 비교적 원상을 유지하며 잘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일본식 성의 축성법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성 안 정상부에 비닐하우스가 있습니다. 아마 발굴시에 나온 유물들이나 장비 등이 보관되어 있는 것네요
성벽을 돌며 사방을 살펴 보았습니다.
어느 방향이던 시야가 막히는 곳이 없네요.
왜성에서 내려 와
바로 앞에 있는 죽성리 해송을 보러 갔습니다.
벌써 왜성이 저만큼 뒤로 물러 났습니다.
해송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는 미역을 말리는 그물판들이 깔려 있네요. 바다 내음이 진하게 났습니다.
죽성리 해송의 우람한 모습입니다. 멀리서 보면 한 나무 같지만 사실은...
기장 죽성리 해송./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50호.
본 해송은 5그루의 나무가 모여 마치 한 그루의 큰 나무처럼 보이는 노거수로서 수령은 약 250-300년으로
추정됩니다. 해송(곰솔) 종류로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빼어난 수형을 가지고 있으며,
황학대라 불리는 죽성항 배후의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 조망이 매우 뛰어나 주변에서 보면 그 모양이
매우 아름답고 웅장합니다.
나무 사이에 지어 놓은 제당.
해송이 있는 언덕에서 본 죽성항.
해안가로 나갑니다.
드림성당 앞 바다 입니다.
기장 답사는 아쉽지만 여기서 끝내고,
이곳 드림성당에서 용궁사까지 해파랑 길따라 13km를 걷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