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첫 토요일 성모 신심) 참된 믿음의 시작
토요일은 성모님 날이다. 쉬는 날이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돌아가신 성금요일 다음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성모님보다 더 슬퍼한 사람은 없었다. 아니 슬픔이라는 말로는 그날 성모님 마음을 다 담아낼 수 없을 거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마음은 공감하려는 시도조차 두렵다. 거기에 더해 성모님은 예수님이 어떻게 당신 태 안에 들어오게 됐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셨다. 하느님이 죄인으로 벌레처럼 수난하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셨다.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끝나고, 아들을 황망히 무덤에 묻은 다음 날의 성모님을 기억한다.
그날 성모님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독립전쟁이나 의로운 거사를 치른 대가도 아니고 갑작스러운 체포와 사형선고와 집행, 아들을 좋게 말하고 지금까지 그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경탄하던 이들이 돌변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쳐댔다. 그런데 아들은 털 깎이는 어미 양처럼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하느님의 뜻이라도 되는 거처럼 말이다. 성모님 안에는 분노는 물론이고 고민도 슬픔조차도 없었을 거다. 그래도 그분은 믿으셨을 거다, 아드님이 여러 번 예고했던 부활을. 하느님이 아기로 당신 태 안으로 들어오시게 했던 그날처럼, 그분은 또 한 번 하느님을 신뢰하셔야 했다. 남자의 도움 없는 잉태라는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일을 믿으셨던 거처럼, 이제는 죽음을 넘어서는 삶, 부활을 믿으셔야 했다. 그러니 그날 성모님은 슬퍼하셨다고, 그냥 그렇게만 말하자. 그리고 그날 밤에 예수님이 제일 먼저 성모님을 찾아오셨을 거라는 사실은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당연했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그런데 일본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징용과 강제 노동, 임금체불과 위안부 피해자는 있는데 피의자는 없다.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어르신은 이제 7명 남았다. 작년 그날 밤 그 난리를 쳐놓고 온 국민이 다 지켜봤는데 별일 아니었고 국민을 계몽하려고 했단다. 법원에 난입해서 특정 판사를 범인 잡듯 찾아다닌 이들을 의로운 이들이라고 한다, 그것도 국무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그 행위들이 명백히 위헌이고 위법했는데, 이상한 판결이 내려질까 봐 걱정된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화도 나고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이 될까 봐 불안하기도 하다. 기우라고 여기면서도 요즘 이상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하도 자주 벌어지니 그런 것 같다. 다시 한번 사필귀정(事必歸正)을 믿는다. 이런 혼란스럽고 답답한 현실을 바로 잡는 데에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나는 믿는다. 하느님의 정의가 이루어지고, 우리는 더 좋은 사회로 거듭나게 될 거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들이며 하느님이신 그가 수난하고 죽임을 당하고 무덤에 묻은 성모님 마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을 거다. 세상 어떤 것으로도 그분을 위로할 수 없고, 이해시킬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지극한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희망으로 바뀌어져 갔을 거다. 아들이 평소 말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실제로 일어나고 또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거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했던 거처럼, 임신 초기 아무런 태기를 느낄 수 없는 데도, 마치 미래를 다 내다보는 거처럼 찬미의 노래를 불렀던 거처럼, 아들을 무덤에 묻었는데도 다시 일어날 것을 믿기 시작하셨다. 바로 요즘이 성모님처럼 믿어야 하는 때인 거 같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하느님이 직접 일하실 때이다. 그러실 거라고 믿어야 하는 때다.
예수님, 주님은 착한 목자이시니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저희가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고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주님이 저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원수들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그리고 그 이후로 영원히 주님의 집에 살게 해주십시오(시편 23).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비난 분노 불평이 아니라 슬픔과 눈물로 저항하고 의로우신 하느님을 무한히 신뢰하게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