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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홍주의 (제 44대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이 책은 따스한 마음으로 말기 암 환자의 곁을 지키면서 위로해주는 한의사가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의사가 쓴 글이지만 환자가 주인공이며 이 책을 통해 비슷한 처지의 환자와 가족분들의 따스한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고은 (강동경희대병원 간호사)
"슬프지만 아름다운 책입니다 암 병동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생동감 가득한 이야기가 듣고 싶은 분이라면 이책을 펼쳐보길 추천합니다."
양왕용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우리 인간들은 죽음 앞에서 당당한 경우가 드물다. 죽음은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가까운 가족이나 본인에게 현실이 되면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여 절망하고 크게 슬퍼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절망과 슬픔이 어떻게 극복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 그리고 보호자의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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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저 이렇게 계속 버티기만 하면 돼요?]
밥은 잘 먹는다는 말에 뭐가 제일 먹고 싶었느냐고 물었더니 곱창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로 평범한 16살이었다.
조금의 눈물도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이 흔들리는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곱창이 제일 먹고 싶다고 씩씩하게 말하던 아이가 그간 고생 많았다는 한 마디에,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원래 우는 성격 아닌데……. 그럼 저 이렇게 계속 버티기만 하면 돼요? 그러다 보면 낫는 날이 올 수도 있을까요?”라고 말했을 때.
잠시 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리며 “사실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 듣고 왔어요. 놓아야 할 때는 놓아주고 싶어요. 그렇지만 여기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치료는 없을까요?”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고있을 때.
알고 보니 몇년 전 내가 떠나보낸 환자의 가족에게서 소개를 받아 오게 되었다는 얘기에 이어 “그분 누님이 선생님께 감사하대요.”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47p 〈저 이렇게 계속 버티기만 하면 돼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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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불효한 자식을 살리셨습니다]
“어머니! 저는 한방 같은 거 안 믿는다고요! 또! 또! 저를 속여서 데리고 오신 거예요?”
노부부는 거부감을 강하게 내비치는 아들을 진정시키며 뭐라 설득하고 있는 듯했지만, 어르신들의 작은 목소리까지는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화의 결론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은 게 분명한 것이, 몇분 뒤 스테이션을 박차고 쿵쿵 나가는 아들의 걸음 소리는 확실히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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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최근의 이야기다.
“예전에 연구 글 보고 부모님이랑 왔다가 조금... 소란 피우고 나갔던 환자인데요, 저예전에 연구 글 보고 부모님이랑 왔다가 조금…… 소란 피우고 나갔던 환자인데요. 혹시 저번에 어머니께 주셨던 그 연구 약, 지금도 더 받을 수 있나요? 며칠 전부터 항암 치료를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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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사이에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모친이 돌아가셨다.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아들은, 어느 날 모친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서 정신을 번쩍 차렸다. 갑자기 쓰러지신 건 오래전부터 있던 지병의 악화가 원인이었고, 이미 몸과 마음이 노쇠해져 있던 어머니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한다.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부친이 본인 앞에 한약 봉투 하나를 툭 던지며 말했다.
“자, 너희 엄마가 너 살려보겠다고 받았던 약이다.”
-125p 〈어머니, 불효한 자식을 살리셨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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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제 그만 제발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첫날밤은 여느 환자와 다를 바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허공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환자와 그 옆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보호자의 모습. 신경안정제를 놓고 진통제를 늘리면서 보호자를 달래다 보면 환자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 며칠을 반복하니 이따금 환자는 초점 없이 나를 쳐다보며 “저기요, 여기 병원인가요? 진통제 방금 들어갔어요?”라고 말을 걸었다. 긍정의 대답을 하자 환자는 내 가운을 훑고 보호자가 옆에 없는 걸 확인하고는 이어서 말을 꺼냈다.
“선생님, 이제 그만, 제발,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심장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그러시는 거죠? 사모님 계시는데 잘 버티실 수 있어요. 더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 찾아볼게요.”
겉으로 감정을 숨기고 애써 여상히 말했지만 환자의 대답은 같았다.
“저 좀 포기해 주세요.”
꽤 자주 원망의 말도 날아오곤 했다. 포기해 줄 수 있으면서 왜 안 해주냐, 왜 내 말은 아무도 안 들어주냐, 누가 원해서 여기 있는 거냐, 당신이 뭔데 내 인생의 마지막을 휘두르려고 하냐…….
그렇게 3주 동안 같은 상황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며 모두가 힘든 밤을 보냈다. 물론 나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17p 〈선생님, 이제 그만 제발 저 좀 포기해주세요〉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YG-9th6ci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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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 중에 999명은 필요 없다고 말해도, 단 1명의 환자가 살려달라는 걸 들어주는 의사가 되려면 공부 계속해야 돼.”]
“아빠 만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얼른 얼굴이라도 쓰다듬어 드려.”
‘죽음’이라는 단어에 공포심만 느낄 뿐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다가오는지는 몰랐던 아이에게는 그저 얼음장같이 차갑고 꺼칠꺼칠하며 딱딱한 아빠 뺨의 촉감만 기억되었다.
죽음은 그저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남은 자들의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였다. 더 이상 밤마다 먹던 과일도, 사달라 조르는 것도, 외식도, 해외여행도 당연하지 않았다. 당연해서 스쳐 지나갔던 아빠의 모습 또한 오히려 그가 떠남으로써 기억 속에서 더욱 곱씹어졌고 선명해져 갔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아빠라고 말하던 엄마는 매일 밤 아이를 끌어안고 흐느끼며 “엄마는 아빠 없이 못 버티는데 떠나기에는 우리 공주님이 자꾸 눈에 아른거리네. 우리 다 같이 끌어안고 낭떠러지에 떨어질까?”라고 말했다.
어느 날은 학교 선생님이 말했다.
“성적이 왜 이렇게 자꾸 떨어지니? 집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했니? 누가 돌아가시기라도 했어? 아니잖아. 요즘 부쩍 더 놀고 다니는 게 선생님 눈에도 자주 띄었어.”
또 다른 날은 우연히 탄 택시에서 기사님이 정치 뉴스를 라디오로 듣다가 문득 화를 내며 말했다.
“이 사람은 애비 없이 자란 여자라 애초에 국회의원을 할 자격도 없어.”
불특정 다수에게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마다 기억 속에 드문드문 남아 있는 아빠의 모습을 끊임없이 긁어모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빠의 생을, 아이는 학창 시절을 지나오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닳고 닳을 정도로 애틋하게 그리워하다 어느새, 그의 생이 자신의 인생에도 익숙하게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커서 보니 아빠는 ‘혈액종양내과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고 어릴 때 아빠를 따라 돌아다니던 병실의 환자들은 모두 암 환자였다. 아빠가 말했던 1,000명 중 단 1명의 환자는 성인 백혈병 환자를 의미했다.
그런 이유로 진로 선택을 앞둔 나이가 된 아이는 남들에 비해서 아픈 사람이 익숙했고, 그중에서도 암이 익숙했다. 무엇보다도 누군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갈급한 도움의 손길을 뻗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아이가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 큰 용기를 주었다.
이때가 암 환자를 보는 한의사가 되기 위해서 내가 첫 발걸음을 뗐던 날이었다.
-211p 〈번외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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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는 의사 에세이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의사가 주인공이 아닌, 환자가 주인공인 에세이입니다. 의사의 전문성과 권위를 바탕으로 환자의 상황을 설명하기보다, 한발 물러선 시각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서 느껴지는 휴머니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출간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언니였으면 좋겠어요. 그럼 우리 엄마가 덜 속상할 텐데.”
출간을 준비하며 팀원들 모두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밤에 원고를 검토하면 아침에는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했습니다. 슬픔과 감동, 그리고 바쁜 일상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들의 환기처럼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