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전기다
샐리 에이디 저자(글) · 고현석 번역
세종서적 · 2023년 08월 30일
신시대의 새로운 과학으로 부상한
억압되었던 진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선언했지만, 이제 "인간은 생체전기의 꼭두각시"라고 선언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 신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유전자뿐만 아니라 생체전기도 마찬가지이며, 우리는 전기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100년 전만 해도 생물학계를 비롯해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며, 지금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도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생체전기는 억울하게 오해를 받아온 개념이며 앞으로 인류의 미래를 바꿀지도 모르는 중요한 과학 개념이다.
이 책은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명체는 몸 안에 생체전기를 담고 있으며 이러한 생체전기를 활용해 신체를 형성하기도 하고 치유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오해를 받아 사이비 과학으로 매도당했던 생체전기의 역사를 짚어주기도 한다.
동물과 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세포는
스스로 전기를 발산한다
우리의 모든 감각, 움직임, 감정 그리고 심장박동은 신경이 발산하는 전기 메커니즘에 의존한다. 우리 몸에서 이런 메커니즘을 가능하게 하는 전기는 전기뱀장어에서처럼 별도의 기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 즉 단백질과 이온이라는 물질의 절묘한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신경과 근육세포는 사실 충전 가능한 미세한 배터리와 같다고 많은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렇다면 세포 안에 흐르고 있는 전기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 아이디어는 현대의학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생체전기를 원천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몸이 고장 났을 때 고칠 수 있을 정도로 생체전기 암호를 잘 해독할 수 있을까? 생체전기 연구자 중에는 생체전기라는 소프트웨어의 작동 규칙을 알아내면 몸과 마음이라는 하드웨어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연구자들은 사람의 전기 암호를 편집해 지능을 높이거나, 문제가 있는 성격을 다시 프로그래밍하거나, 절단된 팔다리를 다시 자라게 하거나, 몸의 유전적 설계를 완전히 바꾸는 등의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우리가 진짜로 전기적인 존재라면 우리 몸을 세포 수준에서 프로그래밍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독이 있는 뱀에 물렸을 때 우리 몸의 전기를 조작할 수 있는 약물을 이용해서 치료를 가능하게 하며, 심장 부정맥 치료제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현재 연구자들은 우리 몸 안의 전기가 잘못되어 발생한다고 추정되는 운동장애, 뇌전증, 편두통 및 일부 희귀 유전 질환의 치료에도 이러한 약물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면서 전류를 방출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우리 몸의 생체전기를 더 잘 조작함으로서 암을 치료하는 날도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미래에 생체전기가 작동하는 원리를 완전히 해명해 생체전기를 우리 뜻대로 조작하게 된다면 세포의 성장과 사멸을 제어할 수 있고 자궁 안에 있는 태아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생물학적 과정 또한 제어할 수 있다. 생체전기의 비밀을 밝혀낸다면 인간의 신체 형태를 정밀하게 재설계해 선천적 결함이나 암으로부터 인간을 구할 수 있다. 우리에게 몸이라는 전기 장치를 열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배선을 재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생체전기에 의해
밝혀지는 뇌의 비밀
생체전기의 신비와 비밀이 밝혀지면서 가장 많은 진전을 이룬 과학 분야는 바로 뇌과학일 것이다. 예를 들어 1993년에는 뇌졸중으로 몸이 마비된 여성의 대뇌피질에 전기 장치를 삽입해 컴퓨터가 이 여성이 사각형 안에 배열된 글자 중에 정확하게 어떤 글자에 집중하고 있는지 만드는 실험이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또 뇌를 측정하는 장치로 사람들이 “네”, “아니오”와 같은 말을 할 때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탐지해냈다는 결과가 보도되기도 했다. 이렇게 신경암호를 해독하는 시도가 성공을 거두면서 뇌의 전기신호를 사용해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일이 가능해졌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줬다.
뇌 회로에 무엇이 암호화되어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은 과학자들은 사람과 동물의 뇌를 열어 전극을 삽입하는 방법으로 더 정밀한 제어를 시도했다. 쥐의 뇌의 정확한 지점에 전극이 닿으면 쥐는 26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깨어 있기도 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로버트 히스는 자신의 동성애를 치료해달라고 찾아온 남성의 뇌에 자극장치를 이식했다. 이 방법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는 듯하다가 실패로 돌아갔다. 예일대학의 신경생리학자 호세 델가도는 투우 소 뇌의 특정 부위에 배터리로 작동하는 전극을 삽입했다. 그는 이 투우 소를 화나게 만들었고, 황소가 돌진하는 마지막 순간에 델가도는 무선 조정장치의 버튼을 눌러 전극을 작동시켰다. 이 전극은 소의 뇌 특정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했고, 소는 전기충격과 동시에 돌진을 멈췄다. 이 초기의 전극은 계속해서 발전해서 ‘뉴럴 레이스’, ‘뉴로 그레인’과 같은 소금 알갱이 크기의 마이크로칩 단계에 이르렀다.
또한 전기장치를 뇌에 이식해본 결과 원인 불명이거나 치료하기 어려운 신경질환이 크게 개선되었다. 현재 전기를 통해 뇌를 제어하고 조작하기 위한 연구는 계속 진행되어, 다이빙으로 사지마비가 된 이언 버크하트라는 청년의 운동피질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서 그가 로봇팔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 장치의 도움으로 버크하트는 물 컵을 손에 들고 입술에 댄 다음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또한 사람의 특정 행동에 대응되는 뇌 패턴을 기록한 다음 이 알고리즘이 담긴 칩을 다시 사람의 뇌에 부착하여 특정 행동을 재현하려는 인공기억에 대한 연구 또한 진행 중이다. 뇌에 관한 기술은 많은 진보를 거듭한 동시에 여러 한계에 노출되어 있지만, 계속해서 발전 중에 있다.
인간의 몸과 미래 과학의 운명을 좌우할
생체전기는 우리에게 얼마나 생소한 개념일까?
-생체전기의 최초 발견자는 사이비 과학자로 매도당했고, 뇌파의 최초 발견자는 학계의 조롱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초기의 과학자들은 교수형에 처해져 죽은 살인범들의 시신을 해부하고 실험함으로써 인간 몸에 흐르는 전기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썼다.
-생체전기의 최초 발견자인 갈바니와 배터리를 발명한 볼타는 친구였지만 볼타가 앞장서서 그의 동물전기 이론에 반대하자 둘은 단칼에 철천지원수로 변해버렸다.
-쥐의 뇌에 전극이 닿으면 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26시간 동안 깨어 있기도 했다.
-한 과학자는 투우 소의 뇌에 전극을 삽입한 뒤,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소를 버튼으로 조작해 멈추게 만들었다.
-현재 뇌의 전기에 관한 연구는 한 청년의 운동피질에 컴퓨터 칩을 집어넣어 그가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뇌에 삽입하는 전극의 FDA 승인을 위해 한 연구자는 완벽하게 건강한 자신의 뇌에 인체 사용이 금지된 전극을 삽입하였다.
-척수에 있는 신경세포의 전기를 조작하는 실험을 반복한 끝에 과학자들은 사지마비 환자의 걷는 능력을 다시 회복시켰다.
-여러 실험들을 통해 난자와 정자 모두 놀라울 정도로 왕성한 전기적 활동을 하는 살아있는 세포라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정자나 난자의 전기를 조작하여 생식기능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뉴런만이 통신을 관장하는 전기 메시지를 보낸다는 기존의 견해는 점차 사라지고 모든 세포가 전기 통신을 주고받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심지어 암세포마저도 형성될 때 체내에서 전기신호를 발산한다는 추정이 제기되었다.
-생물의 조직 발달에도 전기가 개입하며 생체전기의 조작으로 개구리의 입 부분에 눈이 자라나게 했다.
-현재의 생체전기 연구는 전기를 조작해 줄기세포를 지방세포, 뼈세포, 신경세포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시험 중이다.
-세포의 전기적 특성을 이용해 암 세포와 건강한 세포를 구분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전기신호를 제어해서 암세포를 다시 건강한 세포로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게놈’, ‘마이크로바이옴’ 다음은 ‘일렉트롬’이다!
인간 운명을 결정짓는
생체전기의 힘
여전히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생체전기 이론은 많은 윤리적인 화두 또한 던져준다. 즉 생체전기가 개발되어 인간의 뇌나 신체 기능을 강화하게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의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생체전기를 사용하는 것과 남보다 앞서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생체전기를 사용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생체전기를 이용해서 자신의 신체를 강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생체전기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뭔가 모자란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생체전기에 관한 기술을 비윤리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이런 기술이 상용화되고 구매 가능해지면서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저자는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자신 또한 과거에는 열등한 인간의 몸을 금속을 이용해 강화시킬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사이버네틱스는 특정한 신경말단들을 전기 장치로 교체해 건강을 증진시키고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이 방식으로 우리가 인간 신체의 한계를 넘어 사이보그의 미래로 진입할 수 있다는 유혹적인 환상을 지금도 우리에게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체전기에 대한 연구는 이런 것들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생명체는 열등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생명체는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더 놀라운 존재라는 것과 알면 알수록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는 복잡한 존재라는 것이 이 책이 궁극적으로 던지는 메시지이다. 앞으로도 생체전기 연구는 우리로 하여금 우주와 자연에서 우리의 위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끔 계속해서 발전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