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존자시여, 탐욕은 표상을 만드는 것이고 성냄은 표상을 만드는 것이고
어리석음은 표상을 만드는 것입니다.(*8)
번뇌 다한 비구는 이것들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존재하지 않게끔 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습니다.
존자시여, 어떠한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이 있더라도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 그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그런데 이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은 탐욕이 공하고 성냄이 공하고 어리석음이 공합니다.”
14. “존자시여, 이러한 방법이 있어서 이 방법에 의하면 이 법들은 뜻은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다.”
15. “장자여, 그대는 심오한 부처님의 말씀에 정통한 통찰지의 눈[慧眼]을 가졌으니 이것은 참으로 그대에게 이득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그대에게 큰 이득입니다.”
(*1) “여기서 문자가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하다. 뜻으로 보면
‘무량한 마음의 해탈’은 경지로는 고귀한 세계에 속하고 대상으로는 중생과 개념을 대상으로 가진다.
‘무소유의 마음의 해탈’은 경지로는 고귀한 무색계에 속하고 대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가진다.
‘공한 마음의 해탈’은 경지로는 욕계에 속하고 대상으로는 형성된 것들을 대상으로 가진다.
여기서 공함은 위빳사나와 동의어다.
‘표상없는 마음의 해탈’은 경지로는 출세간에 속하고 대상으로는 열반을 대상으로 가진다.”(SA.ⅲ.98)
첫댓글 탐욕=표상있음=불공=세간
동의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에서 탐욕은 공하지만 표상이 공하다는 말은 없는데요...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에서 유추하면 '표상'은 당연히 공해야...
표상은 있지만... 표상의 자성은 공하다고 해야할거 같은데요.
'탐욕은 표상을 만드는 것이고..'라고 하고 있어서요.
탐욕이 사라지면 표상도 함께 사라져서 텅빈, '없음'의 상태가 되리라 생각되고요.
이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에 이르러야 아라한과가 되는 것이니
아마도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의 상태는 '열반'을 가르킨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라한과는 선정상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지속되는 거라고 본다면요
일상에서 표상은 일어나니까 표상이 없다는 뜻의 표상이 공하다는 표현은 아닌거 같다는...
세속의 미녀를 보고
미녀다 추녀다 분별하지 않는다면 그 표상은 공한 것이 되겠죠.
'저 여인은 미녀다' 라는 표상이 그에게는 일어나지 않으므로
그 뜻으로도 공하고 실체로도 공하고..
@눈꽃 탐진치와 연관된 표상은 공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네요..
해탈이란 말이 영 헷갈리네요..증득했다는 것인지 ,여위었다란 것인지 , 벗어났다란 것인지 ㅜㅜ..
방문객님의 유려한 문체로 설명듣기를 바랍니다.
미투..
잠시 삽질인데요..가령.. 공한 마음의 해탈..무소유 마음의 해탈 ,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 등등의 표현들을 보자면..우몽은 불경스렵게도 청량리역은 청량리역이요..서울역은 서울역이요 용산역은 용산역이요라고 들려요..해서 놀다가란 것인지 눌러 살아란 것인지..머물 수 없다는 것인지 ..해서 해탈이란 말이 저렇게도 쓰이나 싶습니다..아님.. 색,무색처 선정들의 정형구들이 저렇게도 표현이 가능한 모냥이다 싶고요..뭐..우몽은 흐리멍텅 아리삼삼하다는ㅎ
아!!! 분명히 알아야 해탈한다는 말이구낭 ..아 시불 ..삽질 맞넹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