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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글 모음
1. 여드름
사춘기를 맞이해 이성을 그리워하기 시작하면 큐피드 화살이 안면에 집중적으로 날아와 꽂히고 그 흔적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떤 방패로도 그 화살을 막을 수는 없으며 어떤 영약으로도 그 흔적을 지울 수는 없다.
다만 세월의 강물에다 자신을 맡겨 버리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일 뿐이다.
2. 바보
지능지수가 모자라고 사리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지칭한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정상인들은 대개 바보가 얼마나 행복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모른다.
바보는 정상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종류의 속박에서 탈피해 있다.
제도의 감옥 속에 갇혀 있지도 않고 무거운 지식의 사슬에 의식이 결박당해 있지도 않다. 그들은 번뇌를 모른다.
그들은 종교도 모른다.
곱하기도 모르고 나누기도 모른다.
만약 정상인들이 그들을 자기들과 똑같은 형태로 살아가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오직 몰라서 행복한 사람들이다.
3. 행복
모든 인간들의 최대 희망사항이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인간은 사랑을 주고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며 사랑을 유발시키는 것은 아름다움이라고 하는데
아름다움에는 내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이 있으며 작은 아름다움과 큰 아름다움이 있는데
스스로가 하나님과 같은 아름다움과 사랑을 갖는 것이 인간의 궁극적 목표지만 수많은 인간들이 욕망에 눈이 멀어 진실한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인간 스스로는 진실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므로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없으므로 진실한 행복도 느낄 수가 전혀 없다.
4. 자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에 구속되며 제도와 형식에 구속되며 개인에 구속되고 사회에 구속된다.
인간은 우주적 동물이다. 완전한 자유란 인간을 우주에게로 되돌려 주는 일이며 자연과 조화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일이지만 인간에게 이데올로기라는 괴물,
제도라는 울타리가 존재하는 한 완전한 자유는 결코 오지 않는다.
5. 사랑
반드시 마음 안에서만 자란다. 마음 안에서만 발아하고
마음 안에서만 꽃을 피운다.
사랑은 언제나 달디 단 열매로만 결실되는 않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욕망의 덩굴식물들이 기생해서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를 비우고 너를 채우려 할 때 샘물처럼 고여 든다.
그 샘물은 마음 안에 푸르른 숲을 만들며 푸르른 낙원을 만든다.
온 천지를 둘러보아도 사랑의 반대말이 없으며 온 우주를 살펴보아도 아름다움의 반대말이 없는 낙원을 만든다.
사랑은 바로 행복 그 자체다.
6. 접시닦이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이 유흥업소나 접객업소 등을 이용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수 없을 때 현장에서 취득할 수 있는 직업의 일종.
접시를 닦기 전에 마음부터 닦으라는 교훈이 내포되어 있지만 대체로 선량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돈이 급하여 선택하는 직업이며 정상적 신체기능을 가졌다면 특별 연수교육을 거치지 않고 단기간에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개 임시직이지만 엄처시하에 있는 공처가들에게는 거의 영구 직이나 다름없다. ㅎㅎㅎ
7. 인간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아담과 이브를 필두로 한 자손 모두 지칭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생명체이며 가장 욕심이 많은 철부지들이다.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고 당부하신 선악과라는 과일이 에덴동산이라는 낙원에 있었는데 어느 날 그만 뱀의 감언이설에 빠져 그 과일 한 개를 따 먹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름으로써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당했다고 한다.
이후 그 후예들은 몇 천 년 동안을 운명의 사슬에 묶여 자자손손 죄수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 나타나 전 생애를 다 바쳐 사면운동을 벌였으나 대부분 사면되지 않은 상태다.
단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르고 사랑하고 실천하면 사면되어 영생구원을 받으라고 하는데도 불신하고 지옥 가니 답답한 존재라는 것이 인간이다.
8. 인간
지구에 기생하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이기주의적으로 지능이 발달한 영장류. 지구에 기생하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많은 전쟁무기를 가지고 있다.
여러 번의 핵실험을 통해 대기권 안의 전 생명체들을 멸종의 지름길로 인도하고 각종 폐기물을 통해 대기권 전역의 생태 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으나 지구상에 기생하는 어떤 생명체도 숙주인 지구를 파괴하는 법은 없으며 오직 인간들만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자연에게서 많은 것을 착취해 왔으며 자연에게서 많은 것들을 베풀어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들은 가장 조화된 것은 가장 진화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으며 안다고는 하더라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아직 모르고 있다. 자신들의 껍질에 가리어져서 스스로의 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9. 인간
지구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피부에 기생하는 암세포와 다름없는 미생물이다.
그것들은 지구의 피부 전역에 착생하여 닥치는 대로 부스럼을 만들고 종양을 일으키며 살을 썩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을 닥치는 대로 살상하고 심지어는 지역별로 세력권을 형성하여 같은 종끼리도 잔혹하게 목숨을 짓밟는다.
인간들의 체내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미생물들이 기생한다.
그 중에서 가장 진화된 미생물은 인간들이 백혈구라고 명명한 혈액세포의 일종이다. 그것은 핵을 가진 하나의 독립 세포다.
그것은 숙주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그것이 감소하면 숙주도 생명의 위협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지구는 인간이 감소한다고 해도 결코 피부질환만 치유될 것뿐이다.
지구가 바뀌기를 바라지 말고 인간 스스로를 바꾸면서 살아갈 일이다.
10. 자연보호
전 인류가 집단자살로써 자연에 귀의할 때야 비로소 성취되어질 수 있는 과업.
11. 창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 또는 만들어 놓은 것을 파괴시키는 일.
소망으로 창조되어진 피조물은 신에 가깝고 욕망으로써 창조되어진 피조물은 악마에 가깝다.
소망은 만인에게 이롭고 욕망은 개인에게만 이롭다.
성경에 의하면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과 우주 만물을 창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태초의 하나님은 단 두 명의 인간을 창조해 낸 데 불과했으나 오늘날 인간은 수천 종의 신(우상)을 창조해 내고 있으니
하나님 진노가 두려울 뿐이다!
12. 악마
인간의 영혼을 부패시키고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영적 존재의 총칭. 생각의 신생아실에서 탄생하여 마음의 영안실에서 소멸한다.
에덴동산(낙원)에는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천국에는 존재했다는 기록이 없다.
증오의 크기와 악마의 크기는 정비례하고 사랑의 크기와 악마의 크기는 반비례한다.
13. 질서
자연적인 질서와 인위적인 질서로 대별된다.
자연적 질서는 만물이 우주의 순화원리대로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수행하는 상태를 말하며 창조주의 주관 하에 완벽한 아름다움을 영구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정립되어 있다.
그러나 인위적인 질서는 자연으로부터 이탈한 인간들이 보다 부자연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도덕과 양심을 담보로 조리와 순서를 지켜 스스로를 속박하는 상태.
14. 훈시
어떤 의미에서건 자신을 거룩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들의 위상을 자신보다 하급서열로 설정 후 말로 어떤 가르침을 하달하려는 습성이 있는데 그 가르침을 일컬어 훈시라고 한다.
대부분 상투적인 어휘와 구태의연한 문장들로 조제된 무해무득의 첩약들이며 때로는 두통을 유발시키거나 오한을 유발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길어지면 고문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탁월한 언어 조제 술을 가진 명의는 훈시로써 집단과 개인의 고질병을 치유하고 역사와 운명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15. 각설이
끼니때마다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타령으로 각覺(깨달음)을 설說하고 한 덩어리의 식은 밥으로 개런티를 대신하는 무명 연예인들이다.
배부른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배역을 맡고 있다. 일정한 주거지를 소유하지 않으며 철새들처럼 유랑한다.
급속도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급속도로 그 수가 줄어들어서 거의 멸종상태다.
그들의 허기진 배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먹이는 지천에 깔렸어도 그들의 허기진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랑은 가뭄 여름 논바닥에 메말라 버린 세상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16. 존경심
자신을 낮추고 상대편을 높이어 공경하는 마음이다.
자만심이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는 피어나지 않는 연꽃이다.
겸양이라는 이름의 연못을 마음 안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피어나는 연꽃이다.
강요에 의해 드러나는 존경심이나 두려움에 의해 드러나는 존경심은 모두 모조품이다.
인품이 낮은 사람일수록 그러한 모조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존경심은 높이 세워져 있는 스탈린의 동상을 바라볼 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상의 머리 위에다 똥을 싸갈기는 비둘기를 바라볼 때 생겨나는 것이다.
17. 배금주의자
세상에는 하나님까지도 황금으로 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배금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황금을 보기를 하나님같이 하고 인간을 보기를 돌같이 한다.
황금은 그들의 우상이요 종교며 경전이다.
그들은 오직 재산을 모으는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일 뿐 베푸는 일에는 대체로 무관심한 편이다.
그러나 그들도 세상을 떠날 때는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된다.
이 세상 황금을 모두 손아귀에 쥐고 있어도 하나님의 부름을 거역할 수 는 없기 때문이다.
배금주의자들이란 결국 자신의 전 인생을 변변히 써보지도 못할 돈과 맞바꾸어 버리는 청맹과니에 불과한 족속들이다.
18. 도둑질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에게 부를 나누어 주기 이전에
못 가진 자들이 가진 자들의 수고를 자발적으로 거들어 주는 자선 범죄행위.
19. 열등의식
자신들이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건더기를 조금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생겨나는 우울의 늪지대.
神의 공평성에서 제외된 생활 형태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비하해서 생겨나는 의식의 지하 감옥.
그러나 모든 진보는 열등의식을 그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새에 대한 인간의 열등의식이 비행기라는 괴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20.이민 ~~ 자신을 다른 나라에 내다버리는 행위를 점잖게 이르는 말.
21. 광신자
오직 지상에서 자신만이 신의 유일한 사도라는 착각 속에 빠져서 모든 인간들을 악마로 규정하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굳힌 사람.
그들은 대개 제일 먼저 자신의 가족을 팽개침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모순점을 드러낸다.
그들은 오직 자신이 믿고 있는 신만이 전지전능하며 남들이 믿고 있는 신들은 무지무능하다고만 단정하는 특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타인의 종교적 성숙도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종교인이다. 그들은 천국에 대해서보다는 지옥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고 구원에 대해서보다는 멸망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용서에 대해서보다는 심판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성자들 행적보다는 죄인들 행적을 더 많이 알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자기 자신조차도 구원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들의 배후에는 욕망에 가득 찬 악마가 하나님 얼굴로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기주의적인 신앙심에 부채질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22. 완장
자신의 임무를 타인들에게 식별시키기 위해 팔에 착용하는 표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배들은 완장을 착용하게 되면 갑자기 자신을 영웅시하여 권력을 남용하고 타인을 멸시하려는 습성을 갖게 된다.
서민층일수록 완장에 약하고 특권층일수록 완장에 강하다.
23. 여름
일 년 중에 태양이 가장 심하게 발작을 일으키는 계절이다.
구름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바다가 빈혈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매미들이 발악적으로 울어댄다.
길바닥이 타고 있다.
태양이 쏘아대는 빛의 화살들이 모든 사물들을 살해한다.
수목들이 지친 모습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빨간 토마토가 익고 있다. 개들이 혀를 빼문 채 낮잠에 빠져 있다.
때로는 사나흘씩 비도 내린다. 밤이면 신음 같은 천둥소리가 잠을 설치게 만들고 밤새도록 은 백양나무 숲이 흐느끼는 소리도 들린다.
문득 지난여름의 잔해처럼 떠오르는 사랑의 편린,
보내지 못한 편지마다 곰팡이가 부식하고 있다.
24. 우박 ~~ 구름의 眞身舍利.
25. 파리
인간들에게 가장 싸구려 목숨을 가진 생명체로 취급되는 곤충.
조물주로부터 장티푸스, 콜레라, 아메바, 이질 등의 전염성 병원체를 인간들에게 공급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곤충. 여름에 많이 발생한다.
주 무대는 주택가의 쓰레기 처리장. 해변의 어물 건조장. 양돈, 양계장, 재래식 변소. 두엄더미. 동물의 시체 등이 있는 장소다.
잡식성이며 태고 이래로 인간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려고 부단히 노력해 온 곤충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조상을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한 뱀보다도 파리를 더 증오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뱀을 죽이는 도구보다 파리를 죽이는 도구가 더 많이 발달해 있음이 이를 입증한다.
파리는 비행하는 시간과 음식을 탐닉하는 시간과 명상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오직 간구의 시간만이 존재한다.
끊임없이 두 손을 맞 부비며 자신이 조물주로 부터 부여받은 임무에 대해 인간들의 오해가 없기를 간절히 비는 것이 생활의 전부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원수도 사랑할 수 없으며 파리도 사랑할 수 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파리는 부패의 전령이라 이 세상 만물들은 반드시 부패하고 썩지 않으면 하나님은 파리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 것이다.
파리는 부패를 촉진하고 부패는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촉진한다.
인간에게 불필요한 존재가 지구에게도 불필요한 존재는 아니다.
26. 성냥개비
본디는 한 그루 나무였다.
지금은 전신이 억만 갈래로 쪼개져 전생의 업보를 다 털었다.
마지막 희디흰 뼈 하나를 모두 태우고 적멸로 돌아갈 때까지 충혈 된 눈빛으로 암송하는 나무관세음보살.
27. 하루살이 ~~ 하루 만에 한평생을 사는 벌레.
28. 지렁이
우울한 지하의 방랑자. 지상으로 나오면 체액이 말라 질식사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상의 여러 가지 동물들이 지렁이를 즐겨 먹는다.
공중을 나는 새들도 지렁이를 즐겨 먹고 물속을 헤엄치는 고기들도 지렁이를 즐겨 먹는다.
땅 거죽을 기어 다니는 개미들도 지렁이를 즐겨먹고 땅속을 기어 다니는 두더지도 지렁이를 즐겨 먹지만 지렁이는 절대로 다른 동물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아무 무기도 휴대하고 다니지 않는다.
이빨도 없고 발톱도 없고 독침도 없다.
완벽한 비폭력주의자다. 징그러움과 꿈틀거림이 무기지만 그것으로는 적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먹다가 반만 남겨 놓으면 다시 한 마리의 완벽한 지렁이로 복원된다. 암수 양성을 모두 한 몸 안에 지니고 있으며 길이가 같은 지렁이끼리 배우자를 삼아 서로 자세를 엇바꾸어 사랑을 나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에게 대지의 창조자라는 찬사를 보낸 바가 있는데 이는 지렁이가 박토를 옥토로 바꾸어 놓는 토양의 마술사이기 때문이다.
지렁이 한 마리가 일생 동안 토해 내는 흙의 양은 수만 톤에 이르며 아무리 척박한 산성 토양도 기름진 알카리성 토양으로 변모된다.
만약 하나님이 지렁이를 이 세상에 보내시지 않았다면 지구가 오늘날 이토록 아름다운 초록별로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9. 사막 ~~ 바람의 무덤.
30. 콩나물
음지에서 물만 먹고 자란다.
거적때기 하나를 이불삼아 맨살을 부비며 오손 도손 서민으로 살아간다.
머리가 모두 샛노란 것은 햇빛을 간절히 그리워했기 때문이다.
저마다 가슴 안에 샛노란 해를 하나씩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31. 해파리
바다의 道信禪師다.
떠도는 일에도 걸리지 않고 머무르는 일에도 걸리지 않는다.
일엽편주지만 무심지경이다.
파도가 치면 파도에 흔들리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린다.
마음을 비워 온 육신이 투명하고 천지를 비워 온 바다가 투명하다.
32. 물보라~~포세이돈의 백마. 바다의 수염. 비탄의 분말.
33. 이슬
새벽에 내린다.
만물이 깊이 잠든 안식의 새벽에 소리 없이 내려와 꿈을 적신다.
神의 서늘한 입김이며 생명의 속삭임이다.
사물들의 표면에 닿아 물방울이 되고 물방울은 땅에 스미어 옹달샘을 만든다.
옹달샘은 그 흐름을 다하여 바다에 다다른다.
이슬은 바다의 투명한 미립자다. 모든 생명의 기원이다.
34. 앵두~~유년시절 누나의 가시 찔린
손끝에 맺혀 있던 선홍빛 피 한 방울.
35. 쓰레기 ~~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가공물들의 말로.
또는 지구가 바라보는 인간.
36. 텔레비전
수다스러운 가전제품. 시간과 채널만 조정해 놓으면 저 혼자서도 쉬지 않고 수다를 늘어놓는다.
언론매체의 중심적인 위치에 놓여 있으므로 독재국가에서는 권력의 꼭두각시가 되어 우민화 정책의 선봉이 되기도 한다.
온 국민의 눈이며 입이지만 꼭두각시가 되면 온 국민을 벙어리로 만들거나 장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에 주력하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도취에 빠져서 시청자들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는 프로그램으로 아까운 전력을 낭비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프로그램으로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생각케 만들기도 한다.
외래문화의 쓰레기를 유입하는 창구가 되기도 한고 전통 문화의 진수를 찾아내는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광범위한 정보도 내장돼 있고 다양한 상품광고도 내장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텔레비전에 조금씩 중독되어 있다고 하지만 심한 경우 이성을 잃어버리는 사태까지 일어난다.
텔레비전에서 얻은 정보면 무조건 신뢰해 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텔레비전에 붙어 있는 동안 자신의 금쪽같은 시간이 엄청난 양으로 폐기처분되고 있음을 허망해 하는 시청자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37. 삼각관계 ~~ 재능 없는 작가들이 일용할 양식처럼 울궈먹는
작품의 뼈다귀.
38. 지하철
후진국에서는 일명 지옥 철. 도시 서민들의 주된 교통수단으로 체형은 용과 흡사하지만 하늘을 날지는 못한다.
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
승차권을 소지해야만 탑승할 수 있으며 지정된 역에서만 정차할 수 있다.
신호등에 걸리지 않는다. 교통순경 눈치를 보지 않는다.
정체현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승객을 기다려 주지 않으며 승객을 기다리게 하지도 않는다.
역은 출퇴근 시간만 되면 전쟁터로 돌변한다. 지하철은 도막 난 금속의 빵 덩어리다.
배달되자마자 허기진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옆구리에 달라붙어 발악적으로 뜯어 먹는다.
아침이 파괴되고 하루가 구겨진다. 그러나 지하철은 도시 서민들의 타임머신이다.
꿈속에서는 언제나 시간의 바다를 건너 눈부신 행복이 미래로 질주한다.
39. 장마 비
여름 한 철 雨期를 기해 지속적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장마 비다.
세월이 젖는다.
사랑이 젖는다.
방황이 젖는다.
꿈이 젖는다.
범람하는 황토 빛 강물 위로 떠내려가는 통곡의 세월.
얼룩진 엽서가 배달되고 약속에 금이 간다.
기억의 서랍 속에서도 곰팡이가 피어난다.
유리창 속에서 도시가 흔들린다. 절망이 깊어진다.
시간이 침잠한다.
온 생애가 젖는다.
40. 수세미
걸레는 죽어서도 걸레가 되는 꿈을 꾼다.
죽어서도 걸레가 되는 꿈이 수세미의 씨앗을 눈뜨게 한다.
수세미는 온 세상을 닦아주고 싶은 소망으로 매달려있는 초록빛 걸레뭉치다.
41. 구름
때로 하늘가를 떠도는 풍류 도인이다.
허연 수염을 나부끼며 세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때로는 슬픈 영혼의 덩어리다.
암회색으로 온 하늘을 지우고 깊은 우울 속에 빠져 있다.
때로는 범람하는 비탄의 강이다.
하늘 전체를 통곡 속에 잠기게 한다.
온 세상을 적시는 눈물로 소멸한다.
42. 보신탕
음식문화가 가장 다양하게 발달해 있는 민족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영양식의 일종으로 인간에게 최후까지 자신을 보시하고 극락왕생하는 개들의 충정을 기리는 마음으로 보약처럼 복용하는 여름철의 음식이다.
서양 사람들은 보신탕을 먹는 동양 사람들을 미개인으로 취급하지만 음식은 환경과 체질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보신탕을 경멸한다고 말하지만 진실로 그렇다면 그들은 칠면조를 요리하는 법도 모르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단지 보신탕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비위가 좋은 체질을 갖고 있지 않을 뿐이다.
43. 호박꽃~~한여름 낮잠 드신 부처님 머리맡에 환하게 켜져 있는 조그만 황금등불.
44. 바퀴벌레
파리나 빈대처럼 인간의 생활근거지를 주 무대로 노략질을 하면서 살아가는 위생곤충으로 의복이나 음식물에 해를 끼친다.
주로 야행성이며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학자에 의하면 지구상 전 생명체가 멸종되었던 빙하기에도 죽지 않고 종족을 오늘날까지 보전했다는 곤충이다.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도 지칭된다. 인간보다 먼저 지구를 차지하고 있었던 곤충이지만 인간들은 이제 바퀴벌레에게 가느다란 벽 틈서리조차도 내어 주려 들지 않는다. 눈곱만한 과자부스러기 조차도 내어주려 들지 않는다.
오직 대량 학살만을 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퀴벌레가 미워도 빙하기로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바퀴를 굴리며 종족을 보존해 온 생명의 불가사의에 대해 최소한의 경의는 표해야 한다.
45. 신경통
날이 궂으면 뼈들이 먼저 알고 신음을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뼈들이 먼저 알고 비명을 지른다.
비로소 사람과 하늘이 따로가 아님을 알게 된다.
46. 성불구자 -- 모든 불제자. 성불하기를 구하는 사람. 成佛求者.
47. 출근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자신을 인간에서 로봇으로 전환시키는 행위.
직장을 가진 인간이라면 대부분 기상과 동시 출근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세면장에 들어가 부품을 소제 하고 에너지를 보충한 후 서둘러 직장으로 달려가 출근부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모든 작동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시킨다. 비애를 느낄 겨를조차 없다.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만 행복이 보장된다고 입력되어 있는 로봇처럼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출근은 보금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 보금자리를 일시적으로 떠나는 서민들의 습관화된 이별이다.
외로운 출발이다.
이 세상에 남들처럼 살아남아 있고 싶은 자로서의 소박한 희망이다.
희망에의 도전이다.
48. 스트레스
가슴 밑바닥에 침전된 불만의 찌꺼기를 연소하지 못할 때 생겨나는 유독성 페기물이다.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정신을 피로하게 만든다.
만병을 불러들이는 근원이 된다.
다량으로 침전되면 자체 내에서 폭발 위험성을 갖고 있다.
모든 경쟁과정에는 스트레스가 따르고 모든 패배 결과에는 스트레스가 증폭된다.
군자와 백치에게는 스트레스가 따르지 않는다.
능력이상의 욕망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어떤 경쟁에도 휩쓸림이 없기 때문이다.
49. 호수
고여 있는 슬픔이다.
고여 있는 침묵이다.
강물처럼 몸부림치며 흐르지 않고 바다처럼 포효하며 일어서지 않지만
다만 바람 부는 날에는 아픈 편린으로 쓸려가는 물비늘.
기다림 끝에 흘리는 눈물들은 기다림 끝에 흘린 눈물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호수가 된다. 온 하늘을 가슴에 담는 사랑이 된다.
50. 음담패설 淫談排泄. 음담으로 배설하는 것이다
51. 속물근성
천박한 자기수준을 끝끝내 개선하지 않은 채로 자신이 타인에게 가치 있는 존재로 부각되기를 바라는 습성.
모든 욕망의 나무를 자르지 못한 채 가지마다 공명심, 이기심, 질투심, 시기심 따위의 거추장스러운 과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살아가는 습성.
아무 철학도 없고 아무런 고뇌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요긴한 생활필수품. 소인배들의 전유물.
52. 가래침
감정 대립 시 상대방의 면상에다 뱉어 주기 위해 목구멍 깊숙이 휴대하고 다니는 타액의 일종으로 일반적인 침보다는 접착력이 강하며 누런빛을 많이 띠고 있을수록 품질이 우수하다.
상대방에 혐오감의 농도와 가래침 뱉고 싶은 충동은 정비례하고 가래침에 대한 불쾌감의 농도와 상대방에 대한 자비심은 반비례한다.
53. 장발족
머리카락에게까지도 끝없는 자유를 주며 사는 봉두난발의 자연주의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머리카락이 길면 일단 장발족으로 간주하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로 되어 있다.
한국은 한때 유교영향을 받아 머리카락을 중히 하는 것을 효도의 시초로 생각했던 적이 있으며 고종 때 내정개혁에 의해 단발령이 내려지자 선비들은 도덕이 당에 떨어졌음을 통탄하여 며칠씩이나 비탄의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제 삼 공화국 시절에 장발이 남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죄목으로 경찰관이 가위를 들고 다니며 거리에서 단속하거나 적발하여 재판에 회부시키는 강권을 발동시킨 적이 있다. 머리카락과 자유는 밀접한 관계있다. 자유를 최대한으로 통제 당하는 집단은 대개 머리카락을 짧게 깎는다. 노예, 죄수, 스님, 군인, 학생 등이 그 한 예다.
의학의 성인 이제마 선생은 사상의학을 통해 사람의 머리카락이란 울창한 숲과 같으며 숲의 산사태를 방지하고 땅을 기름지게 하듯이 머리카락을 기르면 그만큼 건강도 좋아지고 수명도 연장된다고 설한 바 있다.
54. 대머리
어느 모임이든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리를 빛내줄 수 있는 이동식 인간 서치라이트.
자가 동력장치에 의해서 빛을 발할 수 없고 오직 다른 발광체에 의존해서만 빛을 발할 수 있다.
얼굴의 영역이 확장되어 있으므로 비누의 소모량이 타인들보다 많은 편이지만 머리의 영역이 축소되어 있으므로 샴푸의 소모량은 적은 편이다.
헤어스타일을 다양하게 바꿀 수는 없지만 가발은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55. 강대국
인도주의로 포장된 여러 가지 공해 물질들을 약소국가에 강매하며 자국의 문화쓰레기를 타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
타국의 전통문화를 가장 많이 파괴시키는 나라.
평화를 가장 많이 부르짖는 나라.
그러면서 전쟁에 가장 많이 관여하는 나라.
56. 피뢰침
뇌성벽력 속에 오직 고요함을 지키며 기다리다가 일순간에 천둥번개를 낚아채 버리는 원효대사의 낚시 바늘.
57. 3맹 세대
컴맹, 팝맹, 햄맹 상태에 빠져 있는 세대를 말하며
컴퓨터와 팝송과 햄버거를 모른다는 공통점을 간직하고 있다.
58. 전쟁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해 인류의 평화를 파괴시켜 버리는 정신질환 적 집단행위.
59. 선진국
다른 나라보다 먼저 물질과 문명을 선택하고 자연과 인간을 버린 나라.
60. 공중전화
동전 몇 푼을 집어넣으면 그리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 컵씩 마실 수 있는 음성자판기.
전신전화국에서 관리하며 주로 사람들이 많이 내왕하는 장소에 설치되어 있다.
약속의 징검다리가 되지만 후진국에서는 고장을 빙자하여 서민들 땀내 나는 동전을 갈취하는 노상강도로 돌변해 버리기도 한다.
6
1. 붕어
자연이 문명의 탁류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을 자연 속으로 낚아 올리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하는 미끼.
62. 가을
영혼마저 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제일 먼저 가을이 온다.
고난 세월 끝에 열매들이 익고 근심의 세월 끝에 곡식들이 익는다.
바람이 시리고 하늘이 청명해진다.
사랑은 가도 설fp임은 남아 코스모스 무더기로 사태 지는 언덕길. 낙엽이 진다. 세월도 진다. 더러는 소리 죽여 비도 내린다.
수은주가 떨어지고 외로움이 깊어진다. 제비들이 집을 비우고 국화꽃이 시든다. 국화꽃이 시들면 가을이 문을 닫는다.
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무서리가 내린다.
가을이 끝난다.
가을이 끝나도 외로움은 남는다.
63. 영혼 --- 우주 무임 승차권.
64. 재
불에다 살과 뼈를 모두 주었다.
자신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을 때는 존재의 아름다움도 알지 못했다.
지금은 실낱같은 바람 한 가닥에도 환희로 전율하는 존재 미립자로 남았다. 비로소 무소유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65. 안개 ~~ 떠도는 물의 혼백.
66. 역사
과거를 비추는 미래의 거울이다.
인간이 얼마나 오래도록 자기들끼리의 처절한 투쟁을 계속 했는가 기록해 놓은 시간의 유물이다.
역사는 조작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며 역사는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역사는 비록 감출 수는 있어도 지울 수 없는 고행의 흔적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일수록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한다.
궁극적으로 역사는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기록된 반성문이다.
67. 거품 ~~ 空虛의 無精卵.
68. 대금산조
소리죽여 흐르는 통곡의 강물이다.
피울음 삼키면서 돌아보는 세월이다.
세속을 등지고 마주 앉은 적막강산. 구름은 소리를 따라 하늘 언저리를 떠돌고 숲들은 달빛아래 숨을 죽인 채 새들을 잠재운다.
대금 하나로 이 세상 모든 한을 잠재우고 대금 하나로 이 세상 모든 혼을 仙界에 이르게 한다.
風流의 道다.
69. 인생 ~~ 인간답게 살기 위해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야 하는 비포장도로.
70. 결혼
사랑에 대한 착각을 최종까지 수정하지 않은 남녀들이 마침내 세월의 함정 속에 공동으로 투신하는 사건.
71. 주름살
인간이 나이 많으면 세월이 그가 걸어온 인생여정을 그의 피부에다 빠짐없이 설형문자로 음각해 놓는데 한 결 같이 칼날에 베인 듯 예리하다.
肉眼이나 腦眼으로는 判讀不能이지만 心眼이나 靈眼으로는 판독이 가능한 대 장편 서사시. 눈물이 많았던 인간일수록 주름살의 골은 깊어지고 근심이 많았던 인간일수록 주름살의 잔가지가 무성하다.
생각이 진중한 자는 노인을 마주 대할 때 그 주름살을 보고 천지의 고요함을 배운다.
72. 낙엽
수확의 가을이 끝나면 나무들은 잎을 떨구어 자신들의 시린 발목을 덮는다. 바람이 불면 세월의 편린처럼 흩날리는 갈색葉信들.
모든 사연들은 망각의 땅에 묻히고 모든 기억들은 허무의 공간 속에 흩어져 버린다.
나무들은 인고의 겨울 속에 裸身으로 버려진다.
낙엽은 퇴락한 꿈의 조각들로 썩어가지만 봄 되면 다시 푸르른 숲이 된다. 숲의 영혼을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73. 사형수 ~~ 세상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선고 받은 사람.
74. 철새
떠돌던 나그네 영혼이다.
날개를 얻어 구만리 창천을 날 수는 있어도 아직 윤회의 바다를 다 건너지는 못했다.
계절이라는 이름의 건널목에서 날개 접고 앉아 잠시 안타까운 사랑을 배우다 떠나갈 뿐이다.
모든 건널목마다 이별이 기다리고 모든 건널목마다 재회의 기약이 백지화된다.
달밤에 떼를 지어 윤회의 바다를 건너갈 때 그 울음소리를 듣고도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은 진실로 나그네의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75. 갈대 ~~ 시린 가을 하늘가에 빠르게 한 획씩 그어 놓은 신선의 가벼운 세필 자국.
76. 실연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반의 칼을 맞고 피 흘리는 영혼으로 절망의 터널에 내 팽개쳐지는 상태.
믿음도 백지화되고 소망도 거품화 되고 사랑도 사막화된 상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나 제 정신을 되찾음으로써 홀로 비탄의 강물 속에 수장되는 상태.
사랑과 증오의 전환점.
그러나 이성간 전형적인 사랑은 대개 실연까지가 그 사랑의 완성단계다.
77. 여자
남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난해한 학술자료다.
아무리 연구를 계속해도 그 본질이나 특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는 존재다. 때로는 얼음같이 차갑고 때로는 불같이 뜨겁다.
때로는 가시처럼 날카롭고 때로는 솜털처럼 부드럽다.
때로는 풀잎처럼 연약하고 때로는 칡뿌리처럼 강인하다.
남자들에게 사랑의 열병을 앓게 만드는 독 향을 간직하고 있다.
사랑에 약하고 질투에 강하다.
어머니가 되었을 때 가장 성스럽고
아내가 되었을 때 가장 철부지가 된다.
변덕이 심하다.
눈썹 한 번씩 깜빡거릴 때마다 변덕은 두 번씩 일어난다.
남자는 마음에 의해 자신을 변모 시키지만
여자는 생각에 의해 자신을 변모 시킨다.
그러나 그 어떤 문장으로도 여자를 확실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단지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점은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나이가 들면 할머니로 변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78. 거울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치장하기 위해 거울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유리에 수은을 바른 거울을 말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만물이 저마다 하나의 거울이다.
시궁창도 고요하면 거울이 된다.
시궁창에 하늘이 비치고 태양이 비친다. 구름이 흐르고 새들이 난다.
어둠이 깔리고 별똥별이 떨어진다.
마음도 고요하면 거울 된다. 그 속에도 삼라만상이 모두 비친다.
다른 거울들은 존재의 외면만 들여다 볼 수 있지만 마음 거울은 그 내면까지를 선명하게 들여다 볼 수가 있다.
79. 메아리 --- 소리의 그림자.
80. 박꽃
달이 뜰 무렵 초가지붕에 청상의 혼으로 피어난다.
눈이 부시도록 희디흰 소복차림이다.
서슬 퍼런 정절에 달빛조차 무서리로 내린다.
바람이 불면 나지막이 흐느끼다 달이 지면 같이 진다.
그 자리에 박이 열린다. 보름달이 열린다.
81. 달
얼굴은 비추어지지 않고 마음만 비추어지는 천상의 해 맑은 거울. 미국사람들은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달에다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발자국을 찍고 성조기를 꽂았다.
한국인들은 아직도 툇마루에 홀로 앉아서 값싼 막걸리를 마시며 달에다 계수나무를 심는다.
옥도끼로 찍어 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양친부모를 모셔다가 천 년 만 년을 살고 싶어서다.
어느 문화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문화인가는 시인(詩人)들이 천상의 거울에 비춰지는 마음을 읽어 시(詩)로써 증명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82. 귀뚜라미
밤이면 벽 속에서 달빛으로 가느다란 소리의 사슬을 엮어 밤새도록
소야곡을 연주하는 가을의 작은 전령.
83. 일기장
자신이 하루 종일 시간에 멱살을 잡혀 끌려 다닌 흔적들을 날마다 문자로 정직하게 실토해 좋은 고백록.
84. 외등~~어둠 속에 박혀 있는 달마의 물기 어린 눈알 하나.
85. 들국화
기러기 울음소리 하늘을 청명하게 비우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달빛을 눈부시게 만들면 바람에 실어 보낸 그리움 언어들은 그리움의 언어들끼리 모여 달빛에 반짝이는 詩가 된다.
아무리 멀리 있어 안타까운 사랑도 아무리 벽이 높아 닿지 못할 사랑도 가을 들녘에 모여 꽃이 된다.
바람이 전하는 한 소절의 속삭임에도 물결같이 설레이며 흔들리는 꽃이 된다. 이름하여 들국화라고 한다.
86. 도자기
담는 마음을 배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살림도구가 아니라 비우는 마음을 배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예술품이다.
그 속에 일월이 뜨고 지고 그 속에 세월이 강물처럼 흐른다.
깨달음에 이른 자들은 그 속에 온 우주가 들어 있음을 안다.
87. 눈물~~지상에서 가장 투명한 詩.
88. 詩~~석탄 속에 들어 있는 목화구름.
89. 예술
술 중에서는 가장 독한 술이다.
영혼까지 취하게 한다.
예술가들은 숙명처럼 마셔야 하는 술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그들의 술주정에 의해서 남겨진 흔적들이다.
거기에는 신도 악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아름다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90. 새치
검은 머리카락들 사이에 섞여 있는 소수의 은빛 머리카락.
젊음이 다했다는 경보신호.
노인이 되기 위한 부분 예행연습.
세월의 또 다른 흔적.
91. 지팡이 ~~ 황혼의 동반자.
92. 똥 ~~ 대자대비의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또 하나의 부처님.
93. 새벽 ~~ 매복하고 있던 어둠이 은밀히 살해를 당하고 빛의 첨병들이 낮은 포복으로 진군해 들어오면 새벽이다.
사물들이 어둠의 포박에서 풀려 나와 조금씩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면 청소부들이 살해당한 어둠의 부스러기들을 비질하고 도시는 나지막하게 기침 하며 잠을 깬다.
시간이 청명하게 세척되어 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은 바로 이 시간에 남을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 영혼의 어둠속에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게도 당신의 새벽이 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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