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지혜는 분명하게 다른 개념이다.
인간의 뇌에는 생각하는 힘인 지혜의 영역은 있어도 지식의 영역은 없다.
지식은 생각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남의 것을 잠시 빌린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식은 많은 양을 습득할 경우 잃어버리고 사라지고 버려진다. 영원히 자기 것이 될 수 없다.
지식을 담아두는 뇌의 영역은 기억력인데 동물이라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다.
지식을 활용하여 지혜를 얻기도 한다.
또는 스스로 깨닫기도 한다.
지혜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다.
동물의 뇌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뇌의 영역이다.
공부를 하는 과정은 지식을 습득하여 지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식의 습득만으로 그친다.
아무리 학벌이 좋아도 지식의 습득만으로 그만둔다면 지식의 활용 범위는 단순하고 좁아진다.
그러나 지식을 통해서 깨달은 사람은 활용 범위가 무한하다.
문명인과 미개인의 차이가 무엇일까?
1972년 뉴기니 해변을 걷던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해변에서 뉴기니 유력 정치인 얄리를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그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 왜 흑인은 백인처럼 화물을 만들지 못하는가요? "
‘총 균 쇠’ 라는 제목의 책은,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하고 태어나서 뉴기니 밖을 나가보지 못한 순진한 얄리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얄리가 얘기하는 화물은 백인들이 가져온 여러 가지 문명 물질 즉, 콜라 옷 총 성냥 의약품 우산 등 당시 뉴기니에서는 생산할 수 없었던 간단한 상품들을 말한다.
제러드와 얄리의 대화의 시작은, 인종간의, 대륙간의, 국가간의 문명과 권력의 차이와 발달 속도에 대한 원인을 알기 위한 것과 같다.
그것은 세계 역사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인종우월주의자들은 각 국간, 인종간, 미개인과 현대인과의 지능의 차이를 발견하려고 여러 가지 과학적 실험을 했으나 실패했다.
지능의 차이는 없었다. 다만 익숙한 문명의 사회적 습관과 도구 사용의 문제만이 미개인과 문명인보다 낮았다.
오히려 진정한 지능인 지혜는 미개인이 문명인 보다 앞섰다.
지식이 많음을 자랑하고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위험하고 독선에 빠질 염려가 있다.
과학적 사고와 철학적 사고는 분명 다른 것이다.
예를 들면 사법고시는 법 조문을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는데
판 검사가 되면 지식만을 습득한 자와 지식을 모아서 깨달은 자의 차이는 현격하다.
지식만의 판 검사는 단순한 기소와 재판을 한다.
지혜가 있는 판 검사는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
그 차이는 엄청나다. 사회적 파문과 정치적 사건이고 역사를 변화시킨다.
윤석열은 서울대 법대 나오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찰총장까지 했다고 자부하면서 자신이 위대하다는 나르시즘에 빠져있다.
나르시즘과 마키아벨리즘과 사이코패스가 합쳐지면 대단히 위험한 인물이 된다.
제발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