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기쁨'을 바랍니다. 그 기쁨을 찾습니다. 기쁨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기쁨이 아니라면 삶의 어디가 있을까요? 그래서 나도 저너도 그리고 우리 모두도 그 기쁨을 바라고 희망합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칭찬을 샘솟는 샘물처럼 하라."
"기쁨을 생수의 강처럼 하라."
희생과 절제, 반성과 회개하는 것도 그 기쁨 때문입니다. 사랑과 자비를 배우고, 선과 진리를 행하는 것도 '기쁨'을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기쁨. 이 기쁨은 '복음'에서 나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소식이 기쁨입니다. 하느님은 이를 위해서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당신의 그 행업의 전부가 그 '기쁨'에 있었습니다. 복음을 두고 만남이 '기쁨'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렇습니다. '나'를 만날 때, 나 스스로를 '기쁨'으로 만나야 합니다. '너'를 만날 때도 만찬가지. 그리고 우리와 모두를 만날 때도 '기쁨'으로 만나야 합니다.
기쁨으로 만날 때, 나를 포함하여 모두를 착함과 참됨, 그 아름다움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기쁨이 샘솟고 흐르게 합니다.
모두는 기쁨의 자격이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모두가 기쁨을 누릴 특권이 있습니다. 설령 그가 허물이 있고 못났다고 하더라도 그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기쁨을 위해서 하느님 나라의 말씀을 가르쳤으며, 아프고 불편한 이들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묶이고 눌린 이들을 풀어주었으며,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게서 그 굴레를 벗기셨습니다. 실상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신 것도 육과 죄의 굴레에서 소멸되어 사라질 수 밖에 운명의 인간을 죽음에서 해방 시키기 위해서, 그 기쁨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하고 선과 진리, 평화를 사랑하는 것도 '기쁨' 때문입니다. 그 기쁨을 위해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기쁨의 나라입니다. 그 의로움은 선의 '기쁨'에서 옵니다.
주님, 오늘 기쁨으로 시작하게 하소서. 기도와 나눔과 만남에서 그리고 모임에서 그 '기쁨'이 샘솟고 흐르게 하소서. 그 기쁨에서 하느님 나라를 보게 하소서. 그 의로움을 보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