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징어 한마리에 소주 주세요.." 적당히 넥타이를 풀어헤친 그 남자의 얼굴이 매우 어두워 보였다. 그래 뭐 티비같은거 보니까 꼭 저런 사람은 사연이 있더라구.. 그 남자는 연거푸 술잔을 몇잔 드리붓더니, 인제서야 깻잎에 오징어 몇마리를 턱턱 올려놓더니 우걱 우걱 씹어먹는다.. '콜록 콜록... 우웩...' 으유~ 보아하니 술도 못마시는 것 같은데.. 남자는 얼굴이 휑해지도록 기침을 하더니 이번엔 테이블 위에 담배를 하나 들고는.. 쓴표정으로 라이타 불을 붙인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 사람 같은데.. 술을 좋아하는 나는 가끔씩 이렇게 혼자 나와 포장마차 주인과 수다를 떨며, 그러다 소주 몇병을 까고 또 까고 비틀거리며 집에 가기 일쑤였는데.. 하지만 오늘은 주된 목적이 술이 아니라 저 신사분이 될 것 같다.. "하후~~ 하후~~ 콜록~~" 저사람 뭐야?? 담배도 못피는 인간이자나.. 술도 못마시고 담배도 못피면서 왜 저러는 걸까.. 갈수록 저 사람의 사연이 궁금해 지는걸.. 한참을 관찰하다 난 조심스레 술잔과 술병을 들고 그 사람 가까이에 섰다. "저~ 보아하니 혼자서 술마시는것 같은데 제가 술 동행 좀 해두 될까요?" 남자는 날 한참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며 떨어뜨리듯 말을 꺼냈다. "그래요, 술은 혼자 마실게 못되는것 같은데 저 좀 도와주쇼.." "본의아니게 아까부터 혼자계시길래 댁을 보게 됐는데.." 남자는 느슨해진 넥타이 끈을 다시 졸라메고는 말했다.. "제가 좀 우스꽝스럽게 보였죠??"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술도 첨이신것 같고 담배도 첨이신것 같은데.." "그냥 오늘은 남들처럼 날새면서 마셔보고도 싶고, 또 취해보고도 싶고... 지금 내 맘이 그러네요.."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나요??" 남자는 또다시 술을 연거푸 몇잔을 비우고선, 힘든 기침을 해댄다.. "이봐요 물마셔요. 술은 적당히 마시는 거에요.. 비록 이 조그마한 병안에 든 술이지만 이놈이 사람잡지 사람이 술을 잡진 못한다니까요.." "사실 말이죠.. 오늘이.. 오늘이 우리 마누라 생일이요.." "어~ 그래요? 어휴~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네요.. 빨리 집에 들어가야죠.." "우리 아내는요.. 우리 아내는요.. 새하얀 백합꽃을 선물받으면 꼬마 소녀처럼 좋아하곤 했어요.." "근데 왜 오늘은 빈손이에요??" "솔직히.. 솔직히.. 오늘은 마누라에게 백합꽃을 선물할수가 없을것 같아요.." "왜...왜요??" 청아하고 맑게 생긴 남자의 눈엔 어느새 깊은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곳이어 한마디만 더하면 저 맑은 눈에서 눈물이 우두둑 쏟아질것 같은 예감에.. 난 그 남자에 말을 한템포 막을수 밖에 없었다.. "어이구~ 술잔을 받아놓고 너무 오래 쉬었네 눈치없이.. 우리 같이 한잔하죠~" 한잔을 금새비우고 난 조심스레 다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왜요.. 오늘 적당히 마시고.. 아직 시간도 이른데 꽃집에 가서 백합꽃 한다발 사들고 얼른 집에 들어가요.." "안되요.. 아내는 날보면 분명 화낼꺼에요.." "예? 아니 이렇게 자상한 남편에게 화를 낸다뇨..???" 난 남자의 말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정말.. 같이 있어두 알수가 없는 사람이군.. "얼마전에요.. 몇일 안됐을꺼에요.." 넥타이끈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남자의 손이 파르르 떨림에, 초초하기까지 느껴졌다.. "얼마전이에요.. 제겐 사랑하는 딸이 하나 있죠..이름은 난지에요.. 최난지.." "이름이 참 이쁘네요.. 몇살이에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죠.. 녀석.. 매일 아침 늦잠꾸러기 이 아빠를 깨우면서 갖은 아양이란 아양은 다떨던 녀석인데.." "예.." "근데.. 그녀석이 몇일전에 죽었어요.." "예.. 예????" "교통사고래요....." 남자는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 다 토해내듯 그렇게 울고 말았다.. "근데요.. 근데요.. 그녀석.. 그 조그만 친구가..죽기전에 이 못난 아빨 찾았다는 군요.." "그... 그랬군요.. 그래서 마지막 딸아이의 모습은 보셨나요?" "아뇨.. 전 살아서도 또 죽음까지도 그친구를 지켜줄수가 없었어요.." "저런...." "그 친구가 죽기전에... 죽기전에 그랬대요.. 글쎄.. 그녀석이.. 그 조그만 녀석이 미안하대요.. 미안한건 난데.. 그녀석이 미안해대요 제게.." 남자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엉엉대며 울고 있었다. 그런 사연이 있어 그렇게 슬프게 술과 담배로 울고 있었구나.. "오늘 아내 생일인데.. 아내 생일인데.. 어떡하죠.. 전 어떡하죠.." "그게.. 왜 자신만의 탓이라고 생각하나요.. 바보같이.." "아내가.. 아내가 그랬어요.. 난지를 처음 품에 안으면서 우리 아긴 꼭 지켜달라고.. 머리도 이뿌게 빗겨주고 다른 아이처럼 예쁘게 옷도 입히고.. 우리 아기 피아노도 꼭 가르치고 학교에서 모임이 있을땐 다른 엄마들보다 꼭 먼저가서 우리 난지 기죽게 하지 말라구요.. 그게 아내가 마지막으로 제게 해준 말이었어요..............." - 그래서 전 아내의 생일에 그녀에게 백합꽃을 주기가 너무도 미안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