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나무Japanese Plum , 李 , スモモ酢桃Prunus salicina, 자도나무, 오얏나무, 자두
분류학명
어린 시절,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나는 학교 앞 문방구 맨 앞에 진열된 예쁜 뿔피리가 너무 갖고 싶었다.
당시는 어렵던 시절이라 집에 말해봤자 연필과 공책 이외의 이런 사치품을사줄 리 만무했다. 그래서 혼자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마당 구석의 자두를 따 모아 장날에 내다 팔기로 한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날 아침, 작은 자루를 둘러메고 시장으로 간 나는 좌판을 펴고 자두의 경상도 사투리인
“왜추 사이소!”를 외치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의 외침이 불쌍했던지 자두 한 자루는 금세 팔려나갔고, 어느새 뿔피리를
사기에 충분한 돈이 주머니에 들어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 저녁에 터졌다. 나의 좌판장사 소문이 집에까지 퍼져 부모님도
알게 된 것이다. 양반집 종손인 내가 장사를 했다는 것은 가문의 수치였다. 결국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 수익금을
압수당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장사를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다. 그때 만약 부모님이 나의 좌판장사를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셨다면 나의 인생길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초여름, 과일가게에서 만나는 진한 보랏빛 자두는 우리의 미각을 돋운다. 자두는 《삼국사기》에 복숭아와 함께 백제
온조왕 3년(15)에 처음 등장한다. 이를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에 시집온 것은 삼한시대로 추정된다. 적어도 2천 년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과일나무인 것이다.
자두는 우리말로 ‘오얏’이다. 오얏의 한자말은 이(李)로 우리나라 성씨로는 두 번째 많은 이씨를 대표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문대작》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도(紫桃)’라고도 하였다. 보랏빛이 강하고 복숭아를 닮았다는 뜻이다.
이후 자도는 다시 자두로 변하여 오늘에 이른다. 널리 친근하게 사용되던 오얏이 자두보다는 훨씬 더 정이 가는 이름이다.
자두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도리(桃李)’라 하여 대부분 복숭아와 짝을 이룬다. 중국이나 우리의 옛 시가에 보면
도리를 노래한 구절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도리는 또 다른 사람을 천거하거나 쓸 만한 자기 제자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도리만천하’라고 하면 믿을 만한 자기 사람으로 세상이 가득 찼다는 뜻으로 실세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의 역사서에 등장하는 도리는 흔히 이상 기후를 나타내는 표준으로 삼았다. 늦가을에 꽃이 피었다거나,
우박의 굵기가 도리만 했다는 기록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천자문》에는 ‘과진이내(果珍李柰)’라 하여 과일 중 보배는 자두와 능금이라고 했다. 그만큼 맛이 좋다는 뜻이겠으나,
오늘날의 우리 미각으로 본다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자두는 개량종으로 굉장히 맛이 좋아
졌음에도 흔히 자두라고 하면 신맛을 상상하여 입안에 군침부터 돈다. 재래종 자두는 엄청난 신맛에 요즈음 사람들은
결코 먹으려들지 않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두의 일본 이름은 아예 신 복숭아란 뜻인 ‘수모모’라고 했겠는가.
옛사람들은 복숭아와 함께 봄에는 오얏 꽃을 감상하면서 시 한 수 읊조리고, 여름에는 익은 열매를 따먹는 과일나무로서
곁에 두고 좋아했다. 좀 더 많은 과일이 열리게 하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동국세시기》에는 ‘나무시집보내기[嫁樹]’라
하여 정월 초하루나 보름에 과일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었다. 이렇게 하면 과일이 많이 달린다고 한다. 대추나무나
석류나무 등의 다른 과일나무에도 가수를 하며, 장대로 과일나무를 두들기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주술적인 행사뿐만
아니라 잎에서 만들어진 광합성 양분이 뿌리나 줄기의 다른 곳에 가는 것을 줄여 상대적으로 과일에 많이 가도록 유도
하는 과학적인 조치다.
흔히 쓰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란 말은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이다.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만큼 자두나무는 사람들 가까이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나무임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가 이씨 왕조이기는 하지만 자두를 상징물로 쓰지 않은 탓에 자두나무를 특별히 우대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대한제국에 들어서면서 왕실의 문장(紋章)을 자두 꽃으로 했다. 덕수궁 석조전 용마루, 구한말 우표 등에 사용되었고,
지금은 전주 이씨 종친회 문양이다.
자두나무는 전국에 걸쳐 인가 부근에 과일나무로 심고 있으며, 10여 미터 정도 자라는 중간 키의 갈잎나무다. 잎은
달걀 크기로 어긋나기로 달리고 끝이 차츰 좁아지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봄에 동전 크기만 한 새하얀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데, 보통 세 개씩 달린다. 열매는 둥글고 밑 부분이 약간 들어간 모양으로 여름에 보랏빛으로 익는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자두는 대부분 1920년경부터 심기 시작한 개량종 서양자두(학명 Prunus domestica)로 달걀만 한
굵기에 진한 보라색이며 과육은 노랗다. 재래종 자두나무는 중국 양쯔강 유역이 원산지로 열매는 둥글거나 갸름하며,
방울토마토보다 약간 큰 크기에 과육도 적다. 서양자두에 밀려난 재래종 ‘오얏나무’는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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