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23
야마오카소하치 대하소설
이길진 옮김
솔 출판사
11권
"정치가 만인의 희망을 뒷전으로 미루었을 때는 벌써 패배한 거나 다름없어.
전쟁과 마찬가지야.
생각지도 못했던 행복을 가져다주었을 때 비로소 만인은 따르게 돼.
반대로 백성들이 이것도 해달라.
저것도 해달라고 말하게 되었을 때는 무슨 일을 해도 이미 늦어.
전혀 고마워 하지 않아.
고마워하기는 커녕 아직 모자란다...... 모자란다고 불만을 늘어놓으면서 천하에 분쟁의 씨를 뿌리는거야........ 이 이치를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해.
지금까지 난세가 계속된 것은 만인의 희망이나 욕구를 미리 내다보는 훌륭한 인물이 없어서야.
우다이지님은 시작하셨어.
우리가 우다이진님의 뜻을 확고하게 이어받아야 해.
만인의 희망을 멀리 앞질러 보고 아 저런! 저런! 하는 탄성을 듣지 못한다면 그 뜻을 이어 갈 수 없어."
"하하하, 아무래도 그대는 지나치게 겉만 보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천하를 노리는 게 아니야.
나는 단지 우다이진 님의 뜻을 받들어 움직이는 자에 지나지 않아.
이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우다이진 님의 뜻을 계승하려고 행동하는 동안 저절로 천하가 내 손에 들어온다면 도리가 없는 일이지만."
71쪽
이에야스는 이러한 사태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선망도 하지 않고 반감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차야는 황홀하게 바라보면서 왠지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차야는 이 어마어마한 모든 준비를 히데요시의 지극한 충성이라고 볼 만큼 단순한 사나이가 아니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노부타마나 카츠이에 , 카즈마스 등에 대한 히데요시의 도전이다........'
차야는 그 교묘함에 혀를 내두를 뿐......
인내라는 점에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주군 이에야스가 끝내 서쪽으로 얼굴을 돌리려 하지 않은 현명한 안목을 이제와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
76쪽
"하지만 교역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오.
작은 다이묘들이 서로 갈라져 다투기만 하고 있으면 위태로워서 가지고 있는 보화도 이용할 수 없소.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천하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하고......."
무장들이 열심히 천하를 다투고 있을 때, 한편에는 어떻게 하면 부를 늘릴 수 있을까 하고 전혀 다른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더구나 그것은 결코 작은 힘이 아니었다.
사실 그들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히데요시의 이번 행사도 이처럼 훌륭하게 진행시킬 수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77쪽
"긴밀한 유대라고는 하나 별로 까다로운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오.
자기 이익만을 위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모함하지 말 것.
자신을 부유하게 만드는 동시에 일본과 동업자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길은 바로 이 두가지 길뿐이오.
그리고 교제는 어디까지나 혈육처럼 하도록 해야 할 것이오."
86쪽
토시이에가 이누치요라는 아명을 마타자에몬으로 고쳤을 무렵 느닷없이 노부나가 앞에 나타난 '원숭이'가 지금은 토시이에 스스로가 존대를 하게 될 만큼 관록이 붙어 있었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옛날부터 이렇게 될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88쪽
"고작 농민 출신에 불과한 교활하기 짝이 없는 자가 공을 세웠다고 하여 여간 우쭐거리고 있지 않습니다.
한번 따끔한 맛을 보여주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아니, 히데요시를 그렇게 하찮은 인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좀 더 냉정하게 살피셔야 합니다."
94쪽
"자네는 아직 젊어!
이해할 수 있을 것일세.
이 히데요시는 우다이진님에게 발탁되어 그 밑에서 자랐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하타모토의 면모를 보아도 알겠지만, 우다이진 님이 문벌을 싫어하여 나를 등용했듯이 나도 또한 실력 위주, 인물 위주로 사람을 등용하는 등 하나에서 열까지 우다이진 님을 본받아 살아오고 있네.
우다이진 님이 돌아가신 이상 이제 나는 우다이진 님을 대신하여 천하를 손에 넣는 일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몰라.......
아니. 다른 생활 방법이 있는 줄은 전혀 모르는 가엾은 사내일세."
히데요시는 예리한 칼로 가슴이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카츠토요의 말이 옳았다.
히데요시 자신도 카츠이에 휘하에는 들어갈 수 없는 격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병약한 카츠토요는 그와 같은 두 사람의 성격이 지닌 비극성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99쪽
카츠이에와 히데요시가 양립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114쪽
"나는 지금까지 치쿠젠님을 속이 좁고 아집이 강한 분인 줄로만 생각해왔는데 큰 잘못이었소."
"우리는 이번에야 비로소 치쿠젠님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소.
치쿠젠님은 단순히 얕은 지혜를 가진 분만은 아니었어요.
진실한 마음을 가진 분이었소."
"아마 카츠토요님도 아셨을테지.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책략을 부리는 사람이었다면 어찌 오늘날과 같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겠나.
치쿠젠님을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뜨거운 정애를 느낄 수 있기 때문.......
이런 점을 모르고 그분을 가리켜 남을 농락하는 명수라고 비방한다면.....
글쎄 그런 사람의 마음이 도리어 한심스럽다고 해야겠지."
'승부는 싸우기 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다......'
이 얼마나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히데요시란 말인가.
아니, 히데요시 개인의 힘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의 통찰이 정세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점에 있는지도 몰랐다.
154쪽
"바로 그 점일세.
이쪽 사자로 간 사람이 도리어 히데요시의 편이 되어 돌아온다면 웃음거리가 될 거야."
180쪽
"아니......
일천명을 사만이나 되는 군사로......"
"예, 이것이 히데요시의 무서운 점이고 동시에 위대한 점이기도 한것입니다.
종횡무진으로 기략을 쓰는 체하지만 그는 적보다 적은 수로 싸움에 임한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도전할 때는 반드시 적의 몇 배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상대의 내부에 교란의 손길을 뻗치면서 공격합니다.
그가 군사를 동원하여 싸움에 패한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히데요시는 이기도록 만들어놓고 나서야 싸웁니다."
314쪽
3,000의 군사가 자기와 같이 죽을 결심으로 성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그때의 실감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아내가 남아 있기를 원했던 모양이다.
이상한 놈이야........'
315쪽
오이치 부인이 성에 남았다면 끝까지 히데요시를 괴롭힐 생각이었으나, 갑자기 그 모두가 싫어졌다.
피신시켜야 할 사람을 피신시켰다는 안도감 외에 그는 까닭모를 깊은 낙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어차피 죽게 될 싸움 아닌가.....'
이런 생각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그처럼 집착했던 '고집'의 그림자가 흐려졌다.
그의 고집은 오이치 부인에게 보이기 위한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만일에 그렇다면 카츠이에란 사나이는 얼마나 순진한 악동인가........
330쪽
카츠이에는 한 발을 난간에 걸치고, 그러나 밑에서 올려다보는 수천의 눈보다는 뒤에 있는 오이치 부인의 눈을 크게 의식하고 있었다.
'이 카츠이에는 그대를 배신할 사나이가 아니오.
잘 보시오.
늙은 무사의 처절함을.......'
340쪽
히데요시의 인물 그 자체가 보기 드문 영재일 뿐 아니라 그가 지향하는 '천하 평정'의 큰 뜻이 그대로 신불의 뜻과도 합치한다.
신불 자신은 말을 않는다.
그러나 만민에게 평화를 갈망케하여 그것이 히데요시를 크게 뒷받침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