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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의 현대적 의미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
Ⅰ. 서유기에 대한 기초지식
1. 서유기의 저자
오승은(吳承恩;1500?~82?)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아님. 오승은의 자(字)는 여충(汝忠), 호(號)는 사양산인(射陽山人)이다.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으로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그나마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을 거듭한 끝에, 50세가 되어서야 성시(省試)에 급제하여 공생(貢生)이 되었다. 그리고 60여 세 나이로 겨우 동남부 지방의 일개 현승(縣丞)이라는 미관말직에 부임하였으나, 그것도 2년 만에 사직하고 물러나 불우한 만년을 보내다가 자손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서유기는 그의 나이 39-47세(1542-1550) 사이에 쓰고 그 후에도 조금씩 수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2. 서유기 소설의 성립과정과 특징
이 소설은 당나라 고승 현장(玄獎, 602-664)이 인도까지 고난에 찬 여행을 하여 불교의 원전인 경전을 가지러 갔던 역사적 사실에 근원을 두고 있다. 현장의 제자 변기(辨機)가 현장의 구술을 바탕으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쓴 이후, 불경을 얻는 이야기는 수백 년 동안 민간에 전승되어 드디어 남송 시대에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라는 이야기책으로 출판되기에 이르며, 원나라를 거치면서 소설과 희곡으로도 창작된다. 서유기는 이처럼 불경을 구하는 민간의 전설, 설화, 잡극 등에 사상성과 예술성을 한층 가미한 구어체(口語體) 장회(章回)소설이다.
삼국지연의, 수호전, 금병매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奇書)로 꼽힌다. 모두 100회로 구성된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주인공과 요괴들이 하늘과 땅을 오가며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낭만주의적 소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용왕이나 옥황상제의 권위에 도전하고 자연력과 사회악의 상징인 요마를 물리치는 주인공의 활약을 통해 평민들의 저항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점, 낙관주의적 정신을 지닌 손오공, 요괴의 유혹에 쉽게 이끌리는 저팔계의 성격을 통해 독자에게 풍자와 해학을 선사하고 있는 점, 주인공 일행이 겪는 81번의 고난을 통해 불교적 고행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는 점, 민간의 언어를 받아들이고 산문과 운문을 적절히 섞어 쓴 점들도 주목되는 특징이다.
3. 대강줄거리
크게 나누어서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① 손오공의 성장(제1∼8회) : 화과산(花果山) 선석(仙石)에서 태어난 오공은 변신하는 기술을 몸에 지니고, 근두운(觔斗雲, 한 번 공중제비를 돌면 1만 8000리를 난다)을 타고, 여의봉(如意棒, 일격에 상대방을 쓰러뜨릴 수 있다)을 무기삼아 천지를 어지럽힌다. 일단 천제(天帝)에게 붙잡힐 뻔했지만, 반도(蟠桃)를 걸신들린 듯이 먹고는 또다시 천궁(天宮)을 어지럽히고, 천제 쪽 신들과 싸움을 되풀이한다. 최후에는 여래(如來)의 다섯 손가락 밑에 눌리고 만다.
② 현장의 성장(제9회)
③ 당태종(唐太宗)의 지옥순방(地獄巡訪, 제10∼12회)
④ 인도(천축국)로 취경(取經) 여행(제13∼99회) : 현장은 오행산(五行山) 밑에 있는 오공을 구출해 내고 여행길에 나선다. 도중에 백마가 된 용을 타고 전진하며, 인간의 집에 사위로 들어가 있던 돼지의 괴물인 저팔계(猪八戒)를 종자(從者)로 삼는다. 다음에 유사하(流沙河)에서 강물에 잠기는 사오정(沙悟淨)을 구해내 종자로 삼는다. 이리하여 일행은 팔십 일난(八十一難)을 만나, 가지각색의 요괴와 싸운다. 금각(金角) · 은각(銀角)을 표주박 속으로 빨아들이고, 나찰녀(羅刹女) · 우마왕(牛魔王)으로부터 파초선(芭蕉扇)을 훔쳐내어 화염산(火焰山)의 불을 끄고, 무사히 서방(西方)의 낙토(樂土)에 당도한다. 그리고 경문을 가지고 돌아온 일행은 훌륭하게 성불(成佛)한다(제100회).
Ⅱ. 현대적 의미
1. 책 제목의 의미
서유기(西遊記)의 책제목을 한자 풀이 그대로 해석하면 ‘서쪽으로 여행한 것을 기록한 책’이 된다. 그런데 책제목의 중간 글자인 유(遊)는 ‘놀다’는 의미가 강해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여행의 의미보다 놀러 가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것은 불교의 법화경(여래수량품)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중생소유락(衆生所遊樂)이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중생소유락은 중생인 범부가 사는 사바세계가 그대로 적광토(불국토)라는 사바즉적광(娑婆卽寂光)의 원리에 의해 가능해진다.
서유기의 저자는, 이 세상이 고통스럽고 저세상에 가서야 행복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책제목을 통해 말하고 있다. 고통스러운 이 세상이 깨달으면 그대로 즐거운 세상이 되는 것이지 이 세상을 떠난 별도의 세상에 가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현실도피 혹은 현실부정의 사상은 잘못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삼장법사 일행이 서쪽 지방의 석가여래가 살고 있는 영취산으로 가는 동안에 81난을 만나면서 온갖 고초를 겪지만, 그것이 바로 깨달음을 열어가는 과정이다.
2. 주인공들 이름의 의미
1) 삼장법사(三藏法師)
불교에서 삼장(三藏)1)은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을 위한 교법(敎法)으로,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이다. 이 삼장에 통달한 스님을 삼장법사라 한다.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에서 공통된 승(乘)은 배 등의 탈 것에 태우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이 세상사는 것은 고통이라고 여기는 무명(無明)에서, 이 세상사는 것은 즐거움이라고 여기는 유명(有明)인 깨달음의 세계로 이동하기 위해 태우다는 뜻이 있다. 서유기의 주인공인 삼장법사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백마와 함께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서쪽의 낙토이며, 석가모니가 있는 영취산으로 가서 전단공덕불(栴檀功德佛)이 된다.
성문승은 부처의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인데, 자신이 무명임을 강하게 인식하고 깨달은 자인 부처의 소리를 듣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자를 말한다. 연각승은 자신에게 닥친 모든 상황이 바로 깨달음을 열어가기 위한 재료임을 인식하고 그 가르침을 얻기 위해 명상을 하는 자를 말한다. 보살승은 자신의 고통들이 무명 때문인지를 모르는 중생들을 안타깝게 여겨 함께 깨달음의 세계로 가고자 자비행(慈悲行)을 하는 자를 말한다. 그래서 이 삼승(三乘)들은 부처의 소리인 경(經)을 듣고, 부처의 율(律)을 지키며, 무명의 사고들을 격파하는 논(論)을 잘 사용한다.
2) 손오공(孫悟空)
손오공(孫悟空)의 한자 풀이를 하면 ‘공(空)에 대해 조금 깨달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서유기의 저자 오승은이 대승불교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공(空)에 대해서 어느 정도 깨닫고 있다는 자신감을 겸손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오승은은 손오공의 행동을 통해, 불교의 공에 대해 알면 옥황상제와 대적할 정도의 힘을 소유하게 되지만 그것이 불교 깨달음의 모두는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손오공이 사용하는 여의봉(如意棒)은 마음 내키는 대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무기이다. 육도(六道)인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 안에서는 공(空)에 대한 깨달음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이 여의봉으로 어떠한 적과도 싸워 이길 수 있다. 육도 안에서 어떠한 적과 싸워서도 이긴다는 말은 육도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손오공은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장생술(長生術)을 터득하고 있어서 불에도 타지 않고, 어떠한 무기로도 몸이 파괴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육도윤회를 벗어났다고 해서 성불한 것은 아니다.
손오공은 수라(修羅)의 중생이다. 수라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바다 깊은 줄 모른다. 그만큼 자신이 크다고 생각하며, 남에게 이겨야 속이 편하다. 그리고 자신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여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옳고, 타인이 하는 일은 잘못되었다고 하는 삐뚤어진 생각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손오공은 하늘나라의 옥황상제에게도 달려들며 겁내는 자가 없이 제멋대로 행동한다. 불도에 귀의하고 삼장법사를 돕는 공을 세워 투전승불(鬪戰成佛)이 된다.
3) 저팔계(豬八戒)
저팔계(豬八戒)에서 저(猪)는 돼지라는 의미이다. 저팔계가 돼지의 모습을 띄고 있기 때문에 붙인 성(姓)이다. 팔계(八戒)는 여덟 가지 계율2)이다. 관음보살이 지어준 저팔계의 법명(法名)은 저오능(猪悟能)이다. 여기서 오능(悟能)은 팔계를 지켜 능히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저오능은 본래 하늘의 장군인 천봉원수(天蓬元帥)였으나 항아(嫦娥)3)를 희롱한 죄를 지어 지상에 내려오면서 요괴가 된다. 요괴4)는 불교에서 지옥, 아귀, 축생, 수라의 중생(衆生)이다.
저팔계는 욕심이 많은 아귀(餓鬼)의 중생이다. 아귀의 중생은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남의 것을 탐내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아귀의 아(餓)는 굶주림을 뜻한다. 아귀는 굶주린 상태에서 오로지 음식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듯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재물, 권력 명예, 지위 등)을 쟁취하고자 눈이 벌게져 있다. 저팔계는 하늘나라에서 항아를 탐냈을 뿐 아니라, 지상에 와서도 자신을 잉태해서 낳아준 어미돼지와 다른 돼지들을 모두 잡아 죽여 산을 점령하고 사람들도 잡아먹었다. 그리고 인간세계에서는 강제로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집을 점령하기도 했고, 서역을 가는 길에도 세 명의 딸을 한꺼번에 취하면서 부잣집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려 할 정도로 욕심이 많다. 저팔계는 불도를 행하고 공을 세우지만 욕심을 다 제거하지 못해서 부처가 되지는 못하고 정단사자(淨壇使者)5)가 된다.
4) 사오정(沙悟淨)
사오정은 천상에서 권렴대장(捲簾大將)이었으나, 반도(蟠桃)대회6)에서 옥파리(玉玻璃)를 깨트리는 죄를 지어 유사하(流沙河)의 요괴가 된다. 사(沙)는 모래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유사하라는 곳에서 살던 자를 의미한다. 오정(悟淨)의 오(悟)는 깨달음의 뜻이고, 정(淨)은 맑다는 뜻이다. 합치면 ‘깨달아서 맑음을 유지한다’거나, ‘맑음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는 의미이다. 맑음의 반대는 탁함이다. 그래서 오정(悟淨)은 ‘깨달아서 탁함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도 지니게 된다.
불교에는 오탁(五濁)이 있다. 겁탁(劫濁), 중생탁(衆生濁), 명탁(命濁), 견탁(見濁), 번뇌탁(煩惱濁)이 그것이다. 탐진치만의(貪瞋癡慢疑)의 번뇌가 일어나면(번뇌탁) 보는 것이 탁해지고(견탁), 생명이 탁해지며(명탁), 중생이 탁해진다(중생탁). 탁한 중생이 많이 모이게 되면 겁(시대)이 탁해져서(겁탁) 살기 힘든 세상인 오탁악세(五濁惡世)가 된다. 사오정이라는 법명에는 오탁악세를 정화하는 역할을 하라는 의미가 있다.
사오정은 지옥(地獄)의 중생이다. 이레마다 한 번씩 검이 날아와 옆구리를 백 번도 넘게 찔리고, 배고픔과 추위를 참을 길이 없을 정도로 괴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지옥은 땅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처럼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사방팔방이 꽉 막혀서 꼼짝 달싹도 못하면서 오로지 고통에 떨고 있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지옥은 미움이고 분노이며 원한에 가득 차서 상대를 고통스럽게 해야 속이 풀리는 상태를 말한다. 불도를 행하고 삼장법사를 도와 임무를 완성하는 공을 세워 금신나한(金身羅漢)7)이 된다.
5) 백마(白馬)
백마는 원래 서해 용왕 오윤(敖閏)의 셋째 아들 옥룡(玉龍)이다. 불장난을 하다가 하늘 궁전의 명주(明珠)를 태워버렸기 때문에 그의 부친이 그를 불효죄로 상소하여 하늘나라 법도에 따르면 죽을 죄를 지은 상태였다. 그런데 관음보살이 삼장법사가 서역으로 가는 길에 탈 용마(龍馬)로 쓰기 위해 옥황상제에게 청을 넣어서 살려두었다. 그는 사반산(蛇盤山) 응수간(膺愁澗)에서 용으로 지내는 중에 삼장법사가 타고 가던 원래의 백마를 잡아먹고 나서 자신이 백마가 되어 삼장법사를 태우게 된다.
불교에서 용왕은 축생의 대표로 불린다. 그래서 용왕의 아들인 백마는 축생(畜生)의 중생이다. 축생은 어리석으며, 동물적 본능대로 행동한다. 강자 앞에서는 아부하고, 약자 앞에서는 한 없이 강하며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에 산다. 백마는 삼장법사를 도와 불경을 당나라까지 잘 전하고 나서 팔부천룡(八部天龍)8)이 된다.